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최영주가 찾은 ‘웰빙의 땅’ ②]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 "치악산 그늘에 숨은 참살이 땅..무릉도원" 

 

최영주 언론인·풍수지리연구가 ktrue@joongang.co.kr
치악산 아래 마을 수주면 운학리에서 섬안농원 쪽으로 가면 주천강 본류를 따라 도로가 나 있다. 계곡을 지나면 황금빛 들판을 만난다. 마을 앞 도로변에는 백일홍이 가을 햇볕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즐기고 있다. 굳이 복사꽃이 아니어도 꽃이 있는 마을은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마을 중앙에 파출소가 있고 그 앞에 ‘桃源’이라고 새긴 큰 바위가 있다. 이곳은 도연명이 말하는 이상향이 아닌 실재하는 도원이다.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한다.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면 훌쩍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다가올 동장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제대로 추수하지 못한 삶의 회한이 가을이면 더욱 사내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 것이다. 이번 가을, 세상의 번뇌를 씻고 다시는 속세로 돌아오지 못할 그런 참살이(wellbing)의 땅으로 떠나보자. 과연 그런 곳이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을까? 남한에서 가을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강원도다. 금강산을 풍악으로 물들인 단풍은 이미 10월 초에 설악으로 내려오고, 이어 중순이면 오대산까지 만산홍엽을 이룬다. 서울에서 남한강 물길을 따라 오대산까지 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뱃길은 끊어진 지 오래다. 부득이 자동차를 이용할 수밖에.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문막을 지나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남원주 방향으로 달린다. 산과 산 사이에 공중다리를 놓고 또 산을 뚫어 터널을 내 곧은길을 만든 중앙고속도로는 원주 시내를 일별할 틈도 없이 치악산 고개로 인도한다. 치악산의 가을 풍경을 엿보기 위해 휴게소에 잠시 멈춘다. 신선한 바람이 코끝에 닿는다. 상쾌한 기분이 전신을 타고 흐른다. 아, 이게 ‘강원도의 힘’이구나. 치악산은 까치의 보은(報恩)전설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일깨우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두 임금 혹은 쿠데타로 일으킨 새 나라를 섬길 수 없다는 저항정신을 길러주는 산이기도 하다. 고려 말 원천석이 치악산에 은거한 것이나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가 무릉도원에 칩거한 것이 그 예다. 시대가 바뀌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은 퇴색했지만 전원주택이나 ‘무릉도원’을 찾는 사람은 늘고 있다. 치악산은 서쪽이 원주이고 동편이 영월·정선·평창이다. 정선이나 평창에도 ‘무릉도원’이 있다. 그러나 치악산 아래, 영월군 수주면에 무릉리와 도원리가 있다는 것은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서울에서 치악휴게소까지 1시간 조금 더 걸렸다. 이제 30분쯤 더 가면 무릉도원에 들어서게 된다. 치악휴게소를 나와 5분 정도 달리면 첫번째 출구인 신림 톨게이트가 나온다. 요금소를 나와 88번 지방도를 따라 주천·영월 방향으로 진입한다. 얼마 가지 않아 ‘세한도’라는 펜션 안내 표지가 나온다. 왼편으로 펜션 한 채가 그림처럼 서 있다. 치악산 그늘에서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조금 더 지나면 국립공원 치악산으로 들어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원주시 신림면의 이름을 낳은 ‘신림(神林)’을 구경하려면 이곳에서 좌회전해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면 된다. 직진해 싸리재를 넘으면 신림면 황둔리가 나온다. 싸리재는 치악산 줄기가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기 위해 중간에서 힘을 모으는 곳이다. 기가 강하다. 강한 기는 산 아래 마을을 만들어 기를 누설한다. 황둔이 그곳이다. 육지 속의 섬마을

1. 궁궐용 목재로 쓰이던 황장목이 무성했던 두산리. 황장금표가 옛일을 증언하고 있다. 2. 눈밭을 기어가는 거북 모습을 한 설구산 아래 무릉리 중방동에 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다. 3. 운학리는 산골 끝에 이런 공간이 있을까 싶을 만큼 평지를 이룬 동네다. 마을의 상징인 노송공원의 소나무들. 4. 멀리서 바라본 도원리. 남향 터에 자리한 도원리는 넓은 들과 주천강의 풍부한 물이 어우러져 삶의 여유를 한껏 안겨준다.

황둔리는 작은 마을이 아니다. 장이 설 만큼 큰 마을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매우 양명하다. 마을 한가운데로 황둔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른다. 물길의 흐름만 보고도 황둔은 사람이 살 만한 곳임을 직감하게 된다. 농가의 모습에 생기가 흐르고 농부들의 발걸음이 가볍다. 전원주택지로서는 손색이 없다. 굳이 터를 잡는다면 황둔천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이는 곳, 하류에서 남향을 취하는 곳이다. 황둔에서 수주로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직진해 주천면을 지나 수주로 가거나 왼쪽으로 접어들어 황둔천을 따라 난 411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수주(水周), 물이 두루 두루 돌아가는 마을이라는 이름을 음미하기 위해 황둔천을 따라간다. 창문을 열고 콧노래를 부르며 시골길을 달리는 맛은 운전자가 아니면 못 느낀다. 몇 굽이 돌아 황둔천의 물길을 확인하다 깜짝 놀라게 된다. 물길의 방향이 달라졌다. 남에서 북으로 흐르던 물이 갑자기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내려가던 물이 역류하는 셈이다. 다시 주변을 살펴본다. 황둔천이 아닌 다른 강물이다. 강 건너 울창한 소나무 숲이 비밀의 열쇠다. 소나무 숲을 끼고 있는 섬안농원 앞에서 황둔천과 안흥에서 내려오는 주천강이 만나고 있다. 길만 따라가다가는 물길의 흐름을 놓치기 십상이다. 다리가 없던 옛날 주천강 건너 수주는 섬으로 불렸다. 그 섬 중에서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 무릉리요, 그 다음 큰 마을이 도원리다. 그리고 가장 작은 이곳은 여전히 섬안으로 불린다. 무릉과 도원을 보기 전에 수주면 운학리와 두산리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순서다. 요리나 공연의 경우 메인 음식이나 주인공은 항상 뒤에 등장하지 않던가. 섬안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끼고 상류로 올라가 주천강 두학교를 건너면 정선 소금강 같은 절벽을 만난다. 이 또한 절경이다. 이를 놓칠세라 모래톱에 ‘가든’이 들어서 있다. 이곳을 지나 운학리 가는 길을 따라가면 왼편으로 ‘산산가든’이 보인다. 산중에 또 산이라는 뜻일까. 산 자를 겹쳐 이름으로 삼았다. 입구에는 여느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두산리 마을 안내 지도가 상세히 그려져 있다. 굳이 발길을 이 마을로 돌리는 것은 이곳에 ‘황장금표(黃腸禁標)’가 있고 원천석 선생이 은거한 곳이기 때문이다. 배향산과 펜션 군락지 산산가든을 지나면 마을 입구를 막아버린 듯한 울창한 송림을 만난다. 한쪽으로 난 포장도로가 없다면 이쯤에서 발길을 멈추게 된다. 여기를 지나면 움푹 들어간 손바닥만한 마을이 나온다. 뒷산이 배향산(拜向山)이다. 이방원이 그의 스승 원천석을 만나러 치악산 아래 강림까지 왔다 결국 스승의 거처를 알지 못해 큰 산을 보고 절하고 돌아갔다 하여 배향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곳은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은둔지로 꼽은 곳이기도 하다. 두산리 일대의 산에는 소나무 황장목이 무성했다. 조선조 순조 때 이를 보호하기 위해 나라에서 ‘황장금표’를 세웠다. 그 표석이 지금은 마을 앞 다리 옆으로 옮겨져 있다.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해 언뜻 보면 개울가 막돌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세월의 탓인가? 눈을 들어 사방을 살펴도 황장목은 보이지 않는다. 등산객의 발길을 묶는 휴식년제를 알리는 입산금지 표지들이 곳곳에 서 있을 뿐. 은둔지답게 마을은 자급자족이 가능해 보인다. 논과 밭의 규모가 비슷하다. 비닐하우스에서는 백합을 키우고 있다. 두산리에서 나와 산산가든 건너편, 구룡약수에서 목을 축이고 운학리로 향한다. 주천강 옆으로 곱게 난 신작로는 조깅은 물론 마라톤 코스로도 일품이다. 강 옆이나 산기슭에는 소문 없이 지은 펜션과 전원주택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동양의 유토피아, 무릉도원 운학리(雲鶴里)는 이름처럼 구름과 학이 머무르는 마을이다. 하늘 아래 첫 동네이고, 막다른 산골이다. 강림으로 통하는 지방도를 확장, 개설하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역시 좁다. 이에 비해 1, 2, 3리로 나뉜 마을은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진다. 물이 들어오는 곳은 넓고 빠져나가는 곳은 좁다. 재운(財運)을 가두는 힘이 강하다. 지기의 영명함이 이 마을을 보면 드러난다. 어찌 사람의 힘으로 이곳에 이토록 많은 펜션을 세웠을까. 분명 지기가 불러들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주천강보다 맑은 운학천이 마을을 가로지르며 흐른다. 산에 비해 물의 양이 적은 것이 흠이지만 며칠이고 별을 헤는 밤을 보낼 수 있는 곳이다. 주천강은 강원도 횡성 태기산에서 발원해 안흥·강림을 지나 수주면에서 물도리를 친 다음 주천면을 한 바퀴 돌고 나아가 영월군 서면에서 평창강과 합류해 서강이라는 이름을 얻어 곧 영월읍에 이른다. 영월읍에서 동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서울로 들어온다. 수주면은 주천강이 물도리치면서 하회마을 같은 복지를 만든 곳이다. 운학리에서 되돌아나와 섬안농원 쪽으로 들어가면 주천강의 본류를 따라 도로가 나 있다. 계곡을 지나면 황금빛 들판을 만난다. 마을 앞 도로변에는 백일홍이 가을 햇볕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즐기고 있다. 굳이 복사꽃이 아니어도 꽃이 있는 마을은 그만큼 사람들이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마을 중앙에 파출소가 있고 그 앞에 ‘도원(桃源)’이라고 새긴 큰 바위가 있다. 이곳이 도연명이 말하는 이상향이 아닌, 실재하는 ‘도원’이다. 사람들은 ‘무릉도원’ 하면 금강산이나 중국의 장가계 같은 풍경이 빼어난 곳으로만 인식한다. 물론 일부는 맞지만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그려낸 도원은 정치적 박해가 없고 먹고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을 뜻한다. 동양의 선비들이 그려낸 유토피아, 이상향(理想鄕)이다. 도연명은 <도화원기>에서 진나라의 정치적 박해를 언급하고, 이어 도원의 삶을 이렇게 묘사했다. ‘…/서로 도와 농사에 힘쓰고 /해가 지면 편하게 쉬네./ 뽕과 대나무가 무성하여 그늘이 짙고/ 콩과 기장 때를 따라 심는다네./ 봄에는 누에 쳐 비단실 거두고/ 가을 추수해서는 세금도 안 낸다네/황폐한 길이 희미하게 틔었고/ 닭과 개가 서로 우짖고 있네/ 제사도 여전히 옛법대로고/ 옷도 새로운 형식을 따르지 않네./ 어린아이들은 멋대로 길에서 노래하고/ 백발노인들은 즐겁게 서로를 찾는다./…/ 비록 달력 같은 기록은 없어도/ 사계절 변천으로 1년을 알 수 있노라/ 기쁜 낯빛으로 마냥 즐겁게 살고/ 애를 써서 꾀나 재간을 피우지도 않는다./ 흔적 없이 가려진 500년 만에/ 홀연히 신비의 세계가 나타났으나/ 순박한 도원경과 야박한 속세가 서로 어긋나/ 이내 다시 신비 속에 깊이 숨었노라/ 잠시 속세에 노는 사람에게 묻겠노라/ 먼지와 소음 없는 신비경을 알겠는가?/ 바라건대 사뿐히 바람을 타고/ 높이 올라 나의 이상을 찾으리.’ 예나 이제나 크고 작은 권력 속에 벼슬살이하기 힘들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월급쟁이 생활도 쉽지 않다. 너나없이 전원주택이나 한 채 짓고 농사짓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토요 휴무일에 ‘도원경’을 찾아 떠나는 것만 해도 여간한 행운이 아니다. 설구산과 요선암
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법흥사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한 법흥사

국내 불교계의 4대 적멸보궁이 있는 곳이 오대산 중대암,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양산 통도사 그리고 사자산 법흥사다. 법흥사의 원 이름은 흥령사라고 전한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그가 이곳에 부처님의 사리를 모셨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는 곳을 말한다. 자장율사가 참선하던 토굴이 전한다. 신라 말기에 이르러 도윤국사와 그의 제자인 징효국사가 이곳에 흥령선원을 개원하고 선풍을 날렸다. 절 안에는 보물 제612호인 흥령사 징효대사 보인탑비와 징효대사 사리탑이 전한다. 사찰 뒤의 주산이 사자산이다. 그 생김이 마치 사자 같다. 사자의 기상으로 용맹정진하여 대각을 이루려는 선가의 의지가 터에 배 있다. 사자산 줄기의 끝, 주천강과 만나는 곳에 요선암이 있다. 요선암은 화강암이 주천강 물결에 씻겨 기묘한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이름은 평창·강릉부사를 역임한 봉래 양사언이 이곳 풍치에 반해 바위에 ‘요선암(邀仙岩)’이라는 글씨를 새겨놓은 데서 비롯됐다. 요선암 곁 산봉우리에 마애석불과 요선정이 있다. 마애석불은 고려시대 작품으로 고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주천강을 바라보고 있다. 석불 옆에는 1913년 건립한 요선정이 있다. 수주 요선계원들이 주천면 청허루에 있던 숙종·영조·정조대왕의 어제시 현판을 이곳에 걸기 위해 정자를 짓고 가마로 모셔왔다고 한다. 어제시 현판을 둘러싸고 일본인과 한국인, 그리고 요선계원과 주천면 주민 간에 얽힌 일화들이 한 편의 소설보다 흥미롭다. [놓치면 후회할 먹을거리] 취나물향이 일품인 산취냉면 법흥사 일주문 옆에 있는 신라식당은 산취냉면으로 유명하다. 근처 자연산 취나물을 채취해 그 진액을 넣어 면발을 만든다. 1인분 5,000원으로 독특한 취나물 향기가 냉면에 배어난다. 법흥천에서 잡은 다슬기로 만드는 올갱이해장국도 신라식당의 특미다. 주인의 인심을 말해주듯 다슬기의 양이 풍부하고 밑반찬으로 산채나물이 여러 가지 나온다. 무릉리와 도원리에서는 민물매운탕을 주 음식으로 내놓는다. 영월과 정선 일대에서 특별한 음식은 메밀로 만드는 꼴두국수다. 어려운 시절 하도 국수를 많이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나온 이름이다. 메밀로 만드는 막국수와 다르게 면발이 굵고 뜨겁게 먹는다. 주천면 주천초등학교 입구의 신일식당이나 제천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이밖에도 산추나무 열매로 만드는 산추두부, 메밀묵밥 등이 있다.
그런데 여기 도원은 어떤가. 주천강에는 사시장철 물고기가 뛰놀고, 마당보다 넓은 들판은 가난을 물리쳤다. 집집마다 고추 말리고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풍수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다. 남향 터에 마을 밖으로 주천강이 기를 가득 품은 채 안고 돌아나가고, 뒷산은 물론 사방의 산이 천도복숭아처럼 생겼으니 어느 구석에 살기가 있겠는가. 1914년 이전에 이 마을은 섬안, 도내(島內)라고 했다. 일제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이 마을을 도원으로 개명했다. 일본인의 눈에도 도원경으로 비친 것이었을까. 일제가 개명한 지명 가운데 잘 지은 것 중 하나다. 지금은 동·서·남으로 도로와 다리가 나 어느 구석에서도 ‘섬안’이라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도원리에서 동쪽으로 주천강을 따라가면 요선암과 요선정을 만난다. 요선정 건너편 암벽에 생육신 원호와 조여·이수영이 함께 단종의 안위를 걱정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새긴 ‘삼공제명암’이 있다. 요선정은 무릉리와 도원리 그리고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리로 들어가는 삼거리 랜드마크다. 법흥리 역시 운학리처럼 최근 들어 집단 펜션 지역으로 급변하고 있다. 수주에 가면 꼭 들러볼 곳이다. 이제 우리는 이 여행의 마지막인 무릉을 볼 차례다. 무릉리 전경은 주천에서 평창으로 가는 궁터 삼거리, 수주면 입구에서 보아야 한다. 이곳 역시 도원리처럼 주천강이 마을을 감고 돌아간다. 도원리가 남향 터라면 이곳은 동향이다. 터의 방향은 도원에 비해 다소 떨어지지만 뒷산의 정기나 마을의 지기는 역시 흠잡을 데 없다. 주산인 뒷산이 설구산(雪龜山)이다. 한겨울 눈이 내린 다음날 주천강 건너편에서 보면 이름 그대로 설구산은 마치 눈밭에 거북이가 기어 가는 모습 같다고 한다. 풍수적으로는 목마른 거북이가 주천강으로 물을 마시러 들어가는 갈구음수형이다. 설구산 아래 면사무소가 있는 중방마을은 연화부수형, 연꽃이 물 위에 떠 있는 모습. 거북이나 연꽃 모두 신령한 동·식물이다. 무릉에서 도원에 이르는 주천강은 S자 모양이다. 구부러진 위쪽 안이 도원이고, 아래가 무릉이다. 옆으로 보면 태극 형상이다.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고 생명의 기원이다. 수주면 무릉과 도원이 ‘무릉도원’으로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이런 태극 기운과 무관하지 않다. 무릉도원에 그냥 들어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술 익는 마을, 주천(酒泉)이 그 입구를 지키고 있다. 취하면 어디인들 무릉도원이 아니랴마는 옛 주천의 술샘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이 사는 곳이나 묻히는 곳, 모두 인연 따라 되어지는 법. 욕심을 버리고 흐르는 강물처럼 살라고 수주는 속삭인다.

/images/sph164x220.jpg
201906호 (2019.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