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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리더십’ 보여 국민 마음 잡아라 

“클린턴, 새벽까지 전화기 들고 의회 설득… 남 탓 그만하고 MB 스스로 변해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칼럼 지식인의 時代有感 (끝) 

글■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집권 1년을 넘긴 이명박정부. 인사파동과 쇠고기정국, 용산참사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갈등과 소통 부재로 연일 소란스럽다. 연세대 한준 교수의 글을 이어받은 서강대 김재천 교수가 수렁에 빠진 리더십의 실체를 진단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직 시절 밤 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었던 부시 대통령과 달리 평상시에도 늘 새벽 1~2시까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남아 일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클린턴은 야심한 시간까지 오벌 오피스에서 과연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주변 인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클린턴은 밤 늦은 시간까지 전화를 들고 여·야 주요 정치인을 상대로 자신의 행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지지해줄 것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대통령이나 행정부가 주도해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실제로 법률화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적지 않은 진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입법 과정에서 미국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미국이나 한국 등 대통령제를 채택한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행정권과 입법권은 엄연히 분리돼 있고, 입법에 관한 헌법적 권한은 전적으로 의회가 행사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법안은 상당부분 의회의 복잡한 심의 과정을 통과해 법률화된다. 야구의 타자에 견줘 비유하자면 미국 대통령은 상당히 높은 타율을 유지하는 셈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이렇듯 높은 ‘타율’을 기록하는 이유는 대통령의 소속 정당, 즉 여당이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서가 아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확률은 ‘여소야대’일 때나 ‘여대야소’일 때나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정치, 특히 정당정치는 매우 분권화돼 있고 대통령이 당을 장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역시 매우 미비하다. 한국은 하향식 공천으로 중앙당이 공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정당 충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러나 국회의원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출직 정당 후보를 국민경선으로 결정하는 미국의 경우 정당에 대한 충성도가 한국에 비해 현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美 대통령 ‘설득력’ 통해 타율 유지해…

미국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재획득하고 본인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정당의 지침을 획일적으로 따르기보다 지역구민의 눈높이에 맞는 정치를 한다(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정당에 대한 충성심을 앞세워 폭력을 휘두른 우리의 국회의원들은 아마 다음 선거에도 쉽게 공천받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자신이 주도하는 법안을 법률화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의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미국의 대통령학 교수 리처드 뉴스타트에 따르면 이러한 힘은 대통령의 ‘설득력(power of persuasion)’에서 나온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하는 법안의 의회 통과를 위해 클린턴처럼 자정까지 집무실에 남아 주요 의회 지도자를 대상으로 집요한 설득 공세를 벌인다.

이러한 설득 작업의 대상은 여·야 구별이 없다. 대통령이 자신이 속한 정당을 물리적으로 장악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의 타율은 이러한 설득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탁월한 설득력과 소통 능력이 있던 클린턴은 의회 지도자와 대화에 열심이었고, 따라서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상당히 높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화를 무시한 부시는 여대야소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저조한 타율을 기록했다. 지난 1년 동안 ‘소통의 부재’는 이명박정권의 국정운영 행태를 평가하는 키워드로 자리매김했다. 우선 이명박정권은 출범 직후 국민과의 소통을 등한시했다. 이명박정권은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으로 대한민국의 절대적 통치 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착각했다.

대통령이 국익을 염두에 두고 심사숙고한 후 국가의 대사를 결정하면 국민은 이러한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해줄 것으로 오판한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1970~80년대 개발독재시대의 권위주의적 대통령 리더십은 사회의 이익이 다원화되고 정치의 민주화와 분권화 과정을 경험한 한국의 현 상황에서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이제 한국 국민은 미국 소고기 수입 재개와 같은 국가의 주요 결정과정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희망한다. 나아가 국가의 이익이 무엇이며 정책 우선순위가 어떻게 설정돼야 하는지 직접 결정하고 싶어한다.

대통령제에 대한 이해 부족의 심각성

물론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국정의 원만한 수행과 정권이 설정한 우선 정책목표를 차질 없이 달성하기 위해서라도 소통과 대화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정권이 늦게나마 언론매체나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과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은 다행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여전히 다양한 정치세력과 소통에 많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최근 이 대통령이 주도한 법안을 놓고 발생한 국회파동은 대통령의 소통 능력 부재 또는 소통에 대한 의지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여의도정치의 비효율성을 비판했다.

철저하게 실적으로만 평가받던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이 대통령으로서는 정책의 신속한 집행을 저해하는 여의도의 의회정치 과정이 비용에 비해 생산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으로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달리 국가를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춰 운영할 수는 없다.

특히 민주국가의 운영에서 의회정치는 비효율적이지만 우회할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정치 과정이 비효율적이라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정치란 경제와 달리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에 빨리 적응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정치력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은 임기 동안 정권이 설정한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길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물론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는 의회의 소수정파나 정치집단과 대화를 모색하고 정치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지난한 과제일 수 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수 있고, 다수의 힘을 동원해 의사를 관철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물리력에 의존한 강성권력, ‘하드파워’의 리더십은 쉽게 한계에 봉착한다.

다양한 정치세력으로부터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이 대통령은 연성권력, ‘소프트파워’ 개발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타율’이 출중한 미국 대통령들의 비결이 하드파워가 아니라 뉴스타트가 지적한 연성권력의 일종인 ‘설득력’에 있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실 대통령의 독단적 정치행태는 이명박정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행 대통령중심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한다. 일반 국민이나 정치인뿐 아니라 다수의 학자조차 대통령중심제 하의 대통령의 권한을 실제로 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것 이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어떻게 보면 ‘대통령중심제’라는 용어는 부적절한 표현이고,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의 제도’ 또는 ‘권력분산(separation of power) 제도’가 오히려 현행 제도의 취지를 훨씬 더 잘 반영한 용어일 수 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신생국가와 같이 미국의 제도를 모방해 대통령제를 채택했다. 18세기 말, 미국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당시 유럽 전제왕정의 권력집중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정치의 당면과제라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의 문제인식을 반영한 제도다.

국가권력의 집중과 창출에 대한 의지보다 권력의 분산을 통한 권한의 집중을 방지하려는 고민을 반영한 제도다. 그래서 국가의 3대 권력을 분할했고, 이들로 하여금 서로 견제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낸 것이다. 결국 미국의 대통령제는 분할된 정치권력이 합의를 도출해야 정책을 집행할 수 있게끔 한 비효율적 제도인 것이다.

이와 달리 영국식 의원내각제 하에서는 오히려 견제와 균형 또는 권력 분산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하원의 과반 이상을 차지한 정당이 배출한 총리는 헌법상 거의 완벽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MB, ‘진정한 소통자’로 거듭나야…

우리는 효율적 국정운영과 강력한 정치 리더십을 위해 영국식 내각제를 도입하기보다 대통령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채택해 운영하는 대통령제는 국정의 효율적 운영보다 권력 집중을 예방하기 위해 고의로 비효율적 요소를 삽입해 만든 제도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미국은 건국 이후 적어도 1930년대 초반까지는 대통령보다 오히려 의회가 더 큰 정치적 권한을 누렸다. 미국 헌법 1조는 대통령의 권한이 아니라 의회의 권한을 다룬다. 그만큼 의회가 행정부보다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1930년대 대공황의 경제위기와, 전후 도래한 냉전의 안보 위협으로 인해 미국 정치권력의 중심추가 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비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미국 의회는 다른 민주주주의 국가의 의회에 비해 훨씬 막강한 정치권한을 누리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힘이 있는 인물이라고 표현되는 미국 대통령은 국내정치적으로는 오히려 타국의 국가지도자들보다 상당히 제한된 정치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반대로 초헌법적으로 운영되던 제왕적 대통령제가 민주화와 탈권위시대를 거치면서 이제는 제도의 취지에 맞게 상당히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됐던 정치권력이 다양한 정치주체들에게 분산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여전히 본인이 절대적 통치권한을 부여받았다고 오판하고, 그러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수단이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현재 자신이 속한 정당의 과반에 가까운 의원들조차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엄연한 현실 아닌가?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일 수 있고, 특히 대통령제 하의 정책 집행 과정은 더욱 비효율적일 수 있다. 진정한 소통의 정치는 이 대통령 자신이 한국 대통령의 정치적 권한이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가능할 것이다.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의 물리적 권한이 제한적이라면 대통령이 원하는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본인의 정책의지 관철을 위해 대통령은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정치세력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다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정국 난맥상의 책임을 인터넷을 장악한 좌파세력과 반대만 일삼는 시민단체, 그리고 무책임한 야당에만 전가한다면 중앙·조선·동아 등 보수 언론과 여소야대의 상황만 탓하던 노무현정권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대통령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한다. ‘위대한 소통자’로 기억되는 레이건 대통령의 대국민 설득 능력을 이 대통령에게도 기대해 본다. 자신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전화기를 들고 여야 지도자를 대상으로 집요하게 구애를 했던 클린턴의 설득의 정치, 소통의 정치를 이 대통령에게도 기대해 본다.

김재천

1965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 석사, 예일대 국제관계학 석사 및 정치학 박사. 예일대 강사 및 덴버대 초빙교수 등 역임.

현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저술로 ‘Comparing the Power of Korean and American Presidents: An Institutional Perspective’(Pacific Focus, Vol. 14 No. 1, Spring 2004) 등이 있음.


200903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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