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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도 힘든 남의 집 살림 어설픈 솜씨에 “진땀 뻘뻘!” 

한나절 일하면 5만 원 일당… “노느니 일해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지!” 

예나 지금이나 살림이 어려운 집안의 어머니들은 넉넉한 남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하고는 했다. 단순하지만 고되고 가끔은 서럽기도 한 노동이다. 그래도 어머니들은 꿋꿋이 집을 나선다. 남의 집 바닥을 닦고 그 집의 반찬을 만든다. 설령 그로 인해 우리집 살림이 소홀해지더라도 말이다. 불황의 그림자가 다시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다. 또 많은 어머니가 구인광고란을 뒤적이거나 인력업체에 전화를 걸고 있을 것이다. 불황을 이겨내려는 중년여성들의 고군분투를 직접 체험해보기로 했다.

흐린 구름이 잔뜩 모여든다 싶더니 가는 빗줄기가 거리 위로 쏟아졌다. 젖은 먼지 냄새가 가득 풍긴다. 곧 40~50대로 보이는 몇 명의 여성이 길가의 한 건물로 급하게 뛰어든다. 비를 맞으며 우왕좌왕하던 기자도 이들 틈에 섞여 건물로 들어섰다. 옷깃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낸 후 앞서 들어선 여성들의 뒤를 따라 건물 2층에 위치한 인력개발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부산진구 부전동에 위치한 이곳 부산진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는 이날 2월9일 가정관리사로 취업을 원하는 여성들을 위해 마련된 ‘가정관리사 교육과정’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강의실로 들어서니 겨울비가 내려 쌀쌀한 날씨 속에서도 20여 명의 참가자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메모지와 펜을 꺼내 드는 그들의 얼굴에서 긴장감과 뒤섞인 기대감을 엿볼 수 있었다. 친구와 함께 온 듯 옆 사람과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보였다. 전국 곳곳에 위치한 여성인력개발센터는 여성들의 취업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플로리스트·스포츠마사지사 등 전문가를 양성하는 과정도 있다.

그 가운데 가사도우미 혹은 가정관리사를 교육하는 과정은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 있고,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인력을 구하는 가정과 직접 연결해줘 취업과 직접 이어지기 때문에 더 인기가 많다. 강습료도 3만 원 대로 저렴하고 가끔 무료 강습도 실시한다. 부산진여성인력개발센터의 이번 교육은 3시간씩 3일에 걸쳐 진행된다.

교육과정을 따로 홍보하지 않지만 친구의 소개나 지인의 권유 등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덕분에 20명 정원은 항상 만원이다. 대부분 40대 후반부터 50대 중반까지의 여성들로 직장에 근무해본 일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이들이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터, 집안 돌보는 가사만은 자신 있는 만큼 시급이 적기는 해도 이 일을 찾는 것이다.

주부로서의 경험이 전무한 기자에게는 특별한 교육이 필요했다. 강의실에 들어가 한 40대 여성 옆에 앉아 메모지를 꺼냈다. 오늘은 강의 첫날, 주제는 요리다. 주부들에게는 가장 쉬운 주제이겠지만 자취 5년차인 기자에게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다. 교재로 쓸 복사물이 각각의 수강생 앞에 놓인다.

살펴보니 한식에 자주 사용되는 기본양념과 국물을 만드는 법에서부터 음식재료를 손질하고 보관하는 방법 등이 적혀 있다. 대학강사로 출강하는 식품영양학 전공자가 오늘의 강사다. 강사가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인사한 후 강의 개요를 설명하는데 갑자기 옆에 앉은 여성의 눈길이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는 연령대의 사람이 와 앉아 있는 것이 궁금했나 보다.

“학생이에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머니뻘 여성들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이고 나온 자리에 혼자 사심 어린(?) 목적을 가지고 나온 것이 미안했다. 모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후 강의에 집중할 뿐…. 주부라면 요리의 기본 정도는 다 알기 때문이어서인지, 수강생 중 일부는 시시하다는 표정이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될수록 먼저 손을 들고 질문하거나 강사의 말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 자기 생각을 말하는 등 적극적인 분위기로 변해갔다. 어쨌든 직업교육훈련이다. 이곳에 모인 여성들도 그만큼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다.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틈을 타 옆자리 여성에게 슬쩍 말을 건네본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사업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이 강좌에 등록했다고 한다. “지역 자활센터에서 창업을 도와준다고 하기에 가사도우미 파견사업을 한번 시작해보려고요. 제가 배워서 우리 회사에 소속된 사람들을 다시 재교육할 수도 있잖아요? 적게나마 강습료를 내고 듣는 것이니 많이 배워갔으면 좋겠어요.”


부산진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가정관리사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여성들. 강사의 말을 경청하는 모습이 진지하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강사의 말에 꼭 한두 마디씩 보태던 열성 수강생은 동생의 권유로 가사도우미를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동생이 김해에 사는데 자기 남편이 사장님인데도 파출부 다닌다고 하데예. 노느니 일한다꼬…. 나도 그거 보고 깜짝 놀라 시작하게 됐다 아입니까.”

“일이 고될까 걱정되지는 않으냐”는 질문에 “일하다 보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두루 만나게 되지만, 일이 다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원래 가게에서 장사를 했기 때문에 사람 대하는 것은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별 걱정은 안 한다고 덧붙였다.

요리와 세탁, 청소를 가르치는 가사도우미교육

이날 수업에 참가한 사람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사도우미로 일한 경험이 전무하다. 보통 아이들이 다 커서 일이 줄어든 50대 여성들이 주로 일한다고 하는데, 오늘 강의에는 40대 초반, 심지어 30대 여성도 보인다. 가사도우미들이 일하는 것은 한낮의 시간, 가정이 있는 젊은 주부라면 자식 뒷바라지를 비롯한 자기 집안 일을 챙기기 바쁠 테지만, 당장 생활비가 아쉬운 여성들은 자진해서 남의 가정 살림을 하러 달려간다.

불황은 불황인 모양이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살림을 사는 평범한 중산층 주부들도 이제는 불황의 잿빛 그늘 속에서 초조함을 느낀다. 남편은 아직 퇴직 전이고, 이제는 자식도 직장에 다니며 용돈을 챙겨주는데 굳이 육체노동을 하려는 이유는 뭘까?

“솔직히 요즘에 집에 있으면 무료하데예. 애들은 서울에서 대학 다니고 직장 다니고, 애 아빠가 회사 나가면 텅 빈 집에서 할 일이 없다 아입니까. 솔직히 제가 일해봤자 얼마나 번다고…. 끽해야 가계부 잡비로 나가는 거지….”

나이 든 부모가 집에서 편히 쉬었으면 하는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도 손을 놀게 두지 못한다.

“애 둘이 대학 다닐 동안 남편 월급은 고스란히 등록금으로 나가데예. 아직 막내 등록금도 한 학기 남았고….”

한 수강생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뜨끔했다. 그 여성의 친구로 보이는 옆의 수강생이 맞장구를 친다.

“벼룩시장 같은 정보지를 봐도 우리 같은 50대 초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청소나 식당의 주방 일밖에 없다 아입니까. 그나마 가사도우미는 파트타임으로 시간이라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니 좋지예.”

가사도우미 일은 4시간 정도 일하는 반나절짜리와 8시간 정도 일하는 한나절짜리가 있다. 시간은 각 가정의 사정과 일하는 사람의 사정에 맞춰 결정한다. 이곳 인력센터에서 연결해주면 반나절 일했을 때 3만 원, 한나절 일했을 때 5만 원 정도 받는다. 1주일에 세 번, 한나절씩 일을 나가도 한 달에 받는 돈은 60만 원 남짓. 고된 노동의 대가치고는 적지만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이 정도 선에서 인상되지 않고 있다.

긴 시간의 강의에 익숙하지 못한 주부들이 거의 지쳐갈 때 즈음 마침내 강의가 끝났다. 내일과 모레는 각각 청소와 세탁에 관한 내용이 준비돼 있다고 한다. 수강생들은 취업을 위해 자신의 개인정보를 적은 서류를 제출했다.

“요즘 사람 구하는 집도 잘 없다카던데….”

기대 반, 걱정 반의 말을 남기며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간다. 한국YWCA도 가사도우미로 일하려는 이들과 인력을 구하는 이들 사이의 창구 역할을 오랫동안 해온 단체다. 혹시 이곳에도 교육과정이 있나 문의해보니 기존에 일하는 여성들에 대한 재교육 일정이 잡혀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그 현장을 찾았다.

지난 2월10일 오후6시. 2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여성이 명동 YWCA회관 강당을 가득 메웠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여성들은 과정을 이수한 후 기수별로 관리한다. 조직적 운영을 위해서다. 담당자인 고혜승 여성능력개발부 차장은 이날의 재교육에 대해 “일명 잔소리교육”이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였다. YWCA, 일명 ‘Y’의 이름을 달고 각 가정에 일을 나가는 만큼 이들을 선도하기 위한 잔소리가 한없이 이어졌다.

“요즘은 가사도우미를 파견하는 업체도 엄청 많아졌고, 그만큼 우리에 대한 평가도 냉혹해졌어요. 인터넷에 한 줄만 나쁜 말이 올라와도 YWCA에서 연결해주는 분들 전체가 욕먹게 되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가사도우미로 각 가정에서 일할 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예절과 규칙에 관해서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처음 갔을 때는 꼭 신분증을 보여주며 확인시켜주세요. 앞치마는 새것으로 꼭 하나 가지고 가시고요. 일해주는 직업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전문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야죠. 업무 체크리스트를 직접 만들어 냉장고에 표시해 보세요. 집주인도 아마 더 만족하고 신뢰할 것입니다.”

앞치마 꼭 챙기고, 첫 만남 때는 신분증 제시

듣고 보니 하나하나 다 옳은 말이다. 남의 집 살림을 급료를 받고 하는 것인데 자기집 살림처럼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정성스럽게, 돈이 들어간 만큼 만족하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가사도우미는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공간인 집을 도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다. 철저한 프로 정신으로 임해야 한다. 왠지 어깨가 무겁다. 잘 할 수 있을까?

현재 YWCA에 등록된 가사도우미 회원은 700여 명에 달한다. 지금 같이 다들 지갑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이 많은 여성이 일할 집들이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고 차장의 말이다.

“일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급료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해요. 한나절 내내 일하는 사람을 구하는 문의가 확 줄고 반나절 일하는 사람을 많이 찾아요. 그것도 1주일 내내 하는 집은 거의 없고요. 1주일에 이틀, 사흘만 일해주기를 원하죠.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불편하죠. 한 집에서 오래 많이 일하면 훨씬 편하거든요.”

짧았지만 교육도 받았겠다, 일하는 도중의 예의에 관해서도 들었겠다, 이제는 슬슬 실전에 돌입할 차례다.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자취 5년차의 경험을 되새기며 나름의 매뉴얼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그러나 애송이 가사도우미를 누가 써주랴. 며칠에 걸쳐 힘들게 수소문한 끝에 겨우 일할 집을 구했다.

서울 잠원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단지로 향하는 아침, 그 날도 비가 왔다. 혹시 늦을까 싶어 서둘러 출발했다. 도착한 시간이 9시45분, 오히려 약속시간보다 15분 일찍 도착했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빵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남의 집을 이렇게 방문하는 것은 대학 시절 과외교사로 일한 경험 이후 처음이다.

긴장된 마음에 먹은 음식이 쉬이 내려가지 않는 느낌이다. 인터넷으로 뽑은 약도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 우산을 받쳐들고 아파트를 찾았다. 비슷비슷한 아파트 여러 개가 모여 있어 신중을 기하며 찾는다. 몇 동 몇 호인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잠시 망설이다 초인종을 눌렀는데 “누구세요~?” 아이의 앳된 목소리가 들린다.

‘어린 아기가 둘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렇게 큰 아이도 있었나? 내가 잘못 찾은 건가?’ 다행히 집주인이 문을 열어준 덕분에 잘못 찾은 줄 착각하고 뒤돌아서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방 3개, 125m2짜리 집은 가구가 없어 휑뎅그렁했고, 거실에서 만 세 살의 아이와 생후 10개월 된 아기가 열심히 장난감을 만지며 놀고 있었다. 가구가 없어 그런지 집안은 깨끗해 보였다.

“아이가 있는 집들은 다 이래요.”

집주인이 말해준다. ‘생각보다 일할 것이 없겠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는 한편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된다. 집 안에 들어선 이후 멀뚱히 서 있는데 아주 가시방석이다. 단란한 가족이 사는 집, 그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방인이 혼자 불안한 공기를 내뿜고 있다. 일단 일하러 온 것이니 일거리를 서둘러 찾아본다. 하지만 깨끗하다. 더러운 것이 없어 보인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순간 큰아이가 간식을 먹다 우유를 엎질렀다. 반사적으로 튀어가 바닥에 떨어진 우유와 간식을 닦아냈다.

“뭐, 더 시키실 일 없으세요?”

그야말로 우문이다. 일하러 온 사람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지, 주인에게 알려주기를 요구하다니….


“우유 엎지른 것을 닦다 보니 거실이랑 부엌 벽면 몰딩처리된 부분 위에 먼지가 많이 앉았네요. 일단 닦아주세요.”

서둘러 걸레를 찾으려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송구하다는 표정을 만면에 띄우고 물어보니 손수 걸레를 짜 건네준다. 이래서야 일을 돕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은 아닌지?

후회스러운 마음을 접어둔 후 걸레 들고 구석구석 몰딩처리된 부분에 앉은 먼지를 닦는다. 겉으로 보기에는 반짝반짝 깨끗한데 걸레로 닦아보니 새까맣게 먼지가 앉아있다.

“아기들은 장난감을 입에 넣거나 창문을 핥는 등 무엇이든 입으로 확인하려고 달려들기 때문에 어느 구석이라도 깨끗이 관리해야 하더라고요.”

집주인인 박윤정(가명) 씨의 말이다. 30대 초반의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첫째를 키울 때는 가사도우미가 딱히 필요 없었다고 회상한다. 그런데 유치원도 다니지 않는 두 명의 아이가 하루종일 엄마의 곁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점점 힘에 부쳐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됐단다.

걸레를 든 김에 온 방바닥을 다 닦기로 했다. 박씨도 웬만하면 가사도우미 아주머니에게 손걸레질을 부탁한다고 한다. 사실 기자도 집청소를 해봐서 알지만, 밀대걸레로는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 등 이물질이 잘 닦이지 않는다. 자취방 걸레질 실력으로 일단 도전해봤다. 우선 온 방에 흩어진 아이들 장난감을 정리해 박스에 담고 바닥에 엎어진 놀이기구도 다른 방으로 치웠다.

역시 25m2 남짓한 자취방을 닦는 것과 125m2에 달하는 아파트를 닦는 것을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으니 나중에는 어디까지 닦았는지 기억이 혼미해진다. 일일이 손걸레질하다 보니 딱딱한 바닥에 무릎이 스쳐 얼얼하고 허리도 아파온다. 더러워진 걸레를 다시 빨고 돌아오는 것만 예닐곱 차례. 겨우 바닥청소가 끝났다.

좌충우돌 애송이 가사도우미 “실수만발!”

다 끝내고 보니 베테랑 가사도우미인 성미옥(57) 씨가 해준 조언이 떠오른다. “먼저 방 안에 놓인 물건을 다 정리하고 밖에 나와있는 물건의 먼지를 닦은 후 방바닥을 닦아야지, 안 그러면 물건의 먼지가 닦아놓은 바닥에 떨어져요.”

후회한들 어쩌랴. 다시 놀이기구와 물건을 원위치로 돌려놓고 하나하나 먼지를 닦는다. 떨어진 먼지는 스스로 눈감아주기로 했다. 청소에 몰두한 동안 집주인 박씨도 무척 바쁘다. 두 아이의 아침을 먹이는 데만 1시간이 훌쩍 넘는다. 10개월 된 아기는 엄마가 손수 만든 이유식을 먹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입을 다물고 있고, 세 살 된 큰아이는 반찬은 쏙 빼고 국에 밥을 말아 먹는다.

억지로 밥을 먹이다 보면 음식이 온 사방에 튀는 것은 예사. 두 아이를 어르고 달래다 보면 한순간도 조용할 때가 없다. 한 아이가 울음을 그치면 다른 아이가 소란을 떤다. 그래도 능숙한 엄마는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타이르며 오전시간을 보낸다. 원래는 청소를 하기 전에 미리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빨아야 맞는 순서다.

낯선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당황한 나머지 깜빡 하고 말았다. 부랴부랴 다용도실로 향했더니 두 개의 바구니에 빨래가 가득 담겨 있다. 일단 모두 드럼세탁기에 집어넣고 작동버튼을 찾는데 아무리 봐도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다. 실수로 빨래를 망치게 될까 간이 콩알만해진다. 별 수 없이 아이 돌보기에 바쁜 박씨에게 구호를 요청했다.

“아, 이 바구니에 담긴 빨래는 아이들 옷이라서 삶아 빨아야 하는데….”

아뿔싸,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다시 아이들 빨랫감을 꺼내 분류해 놓는다. 알고 보니 아이 옷은 세제를 물에 풀어 큰 솥에 담아 푹 삶아야 한단다. 옷을 삶아본 적이 없으니 다시 박씨에게 되묻는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빈 말이 아니라 정말 한 것도 없이 시간이 갔다. 어느새 정오를 넘어 1시로 향하는 시계를 보고 박씨가 점심을 먹자고 한다. 한 일이 없어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일단 식탁에 앉는다. 밥상을 차리는 것도 박씨의 몫. 기자는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다.

“보통 아주머니들이 일하러 오면 세탁하는 동안 집안청소를 하세요. 사실 제가 아이들 때문에 집청소를 자주 해서 청소는 바닥 대충 닦는 정도이고, 주로 빨래와 요리를 많이 부탁 드리죠.”

박씨가 출산한 후 가사도우미와 산후조리사를 모두 합쳐 8명 정도의 사람이 이 집을 다녀갔다. 그 중에는 조선족 아주머니 두 분도 있었다. 자주 일터가 바뀌면 일하는 사람도 불편하겠지만 고용주인 박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알 수 없다!” 남의 집 살림규칙

큰애가 어릴 때는 새로운 사람과 적응하지 못해 바꾸기도 했는데, 대부분은 일하는 사람들이 그만두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더란다. 젊을수록 쉽게 그만두는 것 같다고, 박씨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아이가 하나일 때는 몰랐는데 둘이 되니 솔직히 힘드네요. 둘 다 어려서 어린이집에 갈 나이도 아니어서 24시간 제가 옆에 붙어있어야 하거든요. 일해주는 분이 오시면 하루 1시간이라도 짬을 내서 큰애를 데리고 놀이터라도 가볼 수 있어요.”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김밥 등으로 연명하던 터여서 고기반찬과 가지런히 놓인 나물반찬을 보니 원래 이 집을 찾은 목적 따위는 홀랑 날아가버리는 듯했다. 우겨 넣듯 단숨에 밥을 먹어치운 기자와 달리 박씨는 아이들에게 한 숟가락씩 밥을 떠 먹이느라 자신은 한 술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민망해서 서둘러 식탁을 떠났다. 아이들 아침을 먹이느라 생긴 설거지와 점심 때 쓴 식기를 챙겨 설거지를 한다. 일하는 집에 들어선 이후 기자를 가장 곤욕스럽게 하는 것은 힘든 노동도, 매분 울어대는 아이들도 아니었다. 어느 빨래바구니의 빨래가 세탁기에 들어가는 것인지, 어느 것이 걸레로 쓰는 천인지, 어느 수세미가 설거지할 때 쓰는 것인지 하는 세세한 그 집의 규칙들이다.

집주인이 있으면 귀찮게 하더라도 일일이 물어보면 되건만 혼자 남의 집에 덩그러니 남겨진 사람들은 얼마나 막막할까? 남의 집 살림을 해준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육체 노동이 아니라 한 가족의 가장 내밀한 곳을 정돈하고 가꾸는 작업이었다. 일하는 사람도, 고용하는 사람도 마음 맞는 곳을 찾기 힘든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그 뒤 한 시간 남짓 남은 오후시간에는 두 아이를 돌봤다. 집안일이 그리 많지 않은 박씨의 집에서는 보통 마지막 시간을 그렇게 사용한다고 했다. 큰아이를 위해 <아기염소> 동요를 일곱 번 정도 부르고, 작은 아이를 위해 인형극을 해주다 보니 오후시간이 지나간다. 일하는 사람을 4시간씩 1주일에 세 번 쓰기 때문에 퇴근은 오후 3시다.

이렇게 일한 일당은 3만 원. 한 달을 이 집에서 일하면 36만 원을 벌게 된다. 한 것도 없이 일당을 받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파트단지를 걸어 나온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하늘은 좀처럼 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처음 가사도우미를 나선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은 오늘의 기자처럼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남의 가정 가사를 돕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을 뼛속 깊이 느끼면서도 그래도 다음 번에는 조금 더, 그리고 그 다음 번에는 요령을 발휘해 조금 더 나은 솜씨로 해냈을 것이다. 한 집에서 20년 넘게 일했다는 가사도우미들은 그렇게 성실하게 실력을 발휘한 분들이다. 그 꾸준한 노력이야말로 어려운 시대에도 자식을 키우고 가게를 꾸려나가는 위대한 어머니의 힘이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길가에 울려 퍼지는 라디오 방송에서는 남쪽 지방 가문 땅에 단비가 젖어든다는 반가운 소식을 내보내고 있다.

200903호 (2009.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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