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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나 좀 도와줘”‘아내 방패’에 숨은 잔꾀 政治?  

홈피 글 써서 관련자들에게 사인 보내기 ‘민첩’
법조인 지식·청문회 화술로 수렁 탈출 작전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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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훈범 중앙일보 기자 [cielbleu@joongang.co.kr]

<여보,나 좀 도와줘>. 노무현 전 대통령이 1994년 펴낸 자전 에세이 제목이다. 1993년 총선에서 떨어지고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있을 때다. 그는 이렇게 썼다.

“아내는 도대체 내가 하는 일에 끼어들려 하지 않는다. 평소 지역구 관리에 나서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지난 번 최고위원선거 때 대부분의 최고위원 후보 부인들이 선거운동을 하고 다녀도 아내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청문회 이후 수많은 잡지사에서 아내에게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인터뷰는커녕 사진 한 장도 찍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도 했다.

“처음 선거에 나왔을 때의 일이다. 선거참모들이 집에 와서 큰아이와 내가 웃통을 벗고 씨름하는 사진을 보고 홍보용 사진으로 쓰겠다고 하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해도 귀한 자식의 사진이 뭇 사람의 발 밑에서 밟히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참모들이 포기하고 말았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정치활동에 시큰둥했던 권양숙 여사였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내조의 여왕’다운 면모를 보였다.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두 번 그랬다. 한 번은 1988년 청문회 스타 노무현이 의원직을 사퇴할 때였다. 청문회가 여당의 불참으로 반쪽짜리 파행으로 치닫자 노무현은 청문회장에서 쓴 의원직사퇴서를 우편으로 국회의장 앞으로 부친 뒤 잠적했다. 사퇴서 내용은 이랬다.
“이제 노태우와 그 일파의 눈에는 국회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입니다. 회의에 불참해 국회를 반신불수로 만들고, 증인 출석을 방해하고, 부당한 행위에 대한 시정 요구를 묵살하고, 의결된 법안을 거부합니다. 정말 막가는 행위입니다.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는데 국회가 무슨 소용이고 국회의원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수안보·강릉 등 정처 없이 발길을 옮기던 노무현은 잠적 열흘째가 되던 날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되지 않았겠나 싶어 집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권양숙은 “집에 진을 치고 있던 지구당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고 소식을 전한 뒤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당당히 버텨야지 왜 사표를 내요? 뭐 잘났다고 여러 사람의 속을 이렇게 썩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사표를 냈으면 사람들 앞에 나타나 당당하게 안 하겠다고 말할 일이지, 비겁하게 도망은 왜 다녀요?”

당황한 노무현은 아내부터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지구당 사람들이 다 내려갔다는 말에 안도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웬걸,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지구당 부위원장이 손을 덥석 잡는 것 아닌가. 권양숙이 노무현을 안심시켜놓고 지구당 사람들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노무현은 “ ‘이것으로 게임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권양숙의 기지로 노무현의 의원직 사퇴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 내조가 없었더라면 대통령 노무현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 내조는 바로 요즘 벌어지는 일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검은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자신이 짊어진 것 말이다.

자신이 남편 모르게 돈을 받았다고 진술함으로써 노 전 대통령을 향하는 의혹의 시선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여기서는 권 여사가 단독으로 꾀를 낸 처음 것과 달리 부부가 사전논의를 한 정황이 엿보인다. 만

약 그렇다면 책 제목 그대로 노 전 대통령이 권 여사에게 “여보, 나 좀 도와줘”라고 부탁했다는 말이 된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4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사과문은 사실 좀 의외였다.

그는 ‘사과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1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는 정(상문)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이라고 밝혔다. 스스로 금품수수 사실을 시인함으로써 ‘노무현스러운’ 면모를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는 토를 단 것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 대목이었다. ‘저의 집’이라는 것은 ‘저의 집사람’을 일컫는 경상도 사투리라는 측근들의 설명이 따랐다.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이자 동지”라고 추켜세우던 부인에게 잘못을 떠넘긴 것이다. 아무래도 ‘노무현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2002년 민주당 경선 당시 상대 측이 장인의 좌익 경력을 문제삼자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고 맞받아쳤던 노무현 아니었던가? 사전 논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권 여사는 나흘 뒤 부산지검에 비밀 소환돼 조사받는 자리에서도 “100만 달러와 3억 원을 남편 모르게 내가 받았다”며 사과문 내용을 되풀이했다. 돈의 용처 역시 사과문에서처럼” “‘미처 갚지 못한 빚’을 갚는 데 썼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권 여사는 검찰에 차용증 등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

“왜 달러로 받았느냐”는 질문에도 침묵으로 일관했고 “누구에게 돈을 빌렸느냐”는 질문에는 “빌려준 사람에게 피해가 간다”는 말로 에둘러 피해갔다고 한다. 사실 부인한테 떠넘기기는 오랜 역사를 가진 수법이다.

“재상 집 문전에는 7품관이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뇌물이라는 것이 권력자에게 직접 전달되기보다 주로 주변인물을 통하는 우회로를 거친다는 말인데, 권력자의 애첩들이 그 창구 역할을 맡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예컨대 조선 말기 안동 김씨의 세도가 하늘을 찌를 때 영의정을 세 번이나 한 김좌근의 애첩 나합(羅閤)이 그렇다.

‘합’이란 정승에게만 붙일 수 있는 경칭 ‘합하(閤下)’에서 나온 말인데, 그 애첩이 나주 출신이어서 나합이라 불린 것이다. 어지간한 자리는 나합에게 뇌물만 먹이면 언제든 얻을 수 있었다. 임금도 마찬가지였다. 광해군의 애첩이었던 상궁 김개똥의 처소 앞에는 뇌물을 싸 들고 엽관운동을 벌이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심지어 한효순은 그에게 산삼을 바치고 정승 자리에 올랐고, 이충은 잡채를 바치고 호조판서로 승진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산삼 각로 권세가 중하더니 잡채 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라고 비웃었다. 실록이 전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뇌물수수가 세도가의 사랑방에서 첩에 의해 이뤄진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문제가 되더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려는 것이다. 세도가 자신은 “몰랐다” 발뺌하면 그만이고, 첩이야 잡혀가더라도 다시 얻으면 그만이었다. 오늘날 축첩제도가 없어졌지만 뇌물은 따라 사라지지 않아 부인들까지 나서서 뇌물 접수창구를 지키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전후 사정은 다를지 몰라도 노 전 대통령의 의도는 ‘7품관 수법’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사과문의 핵심이 사과가 아니라는 말이다. 권 여사와 박 회장 사이에 돈 거래가 이뤄질 당시 자신은 이를 몰랐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돈이 오간 사실을 모른 것이 사실이라면 죄를 묻기 어렵다. 대통령 부인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어서 권 여사에 대한 뇌물수수죄 적용도 쉽지 않다.

게다가 부인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그 돈이 청탁을 전제로 한 돈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다. 법조인 출신으로서 치밀한 법률적 검토와 계산이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애첩한테 바친 뇌물이 겨냥한 최종 목표가 애첩이 아니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한 아무 뜻 없이 자식 또는 사위에게 500만 달러라는 거액이 건네질 수 있으리라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 대목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이 다른 메시지를 갖는다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상문이, 나 좀 도와줘”로 대상이 확장되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이 발표된 지난 4월7일은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검찰에 긴급 체포된 날이었다. 정 전 비서관은 구속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박연차 회장과 더불어 자타가 공인하는 ‘노무현의 남자’들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죽마고우였던 정 전 비서관은 노의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사석에서는 말을 놓을 정도다. 곤궁했던 시절 고향 김해에 있는 암자에서 함께 고시공부를 하며 동고동락했던 사이다. 두 사람은 누워서도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대를 개발해 판매사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정 전 비서관은 사시에 계속 떨어지자 공무원시험으로 방향을 틀었다. 경상남도 7급 공무원을 시작으로 서울시 감사담당관(4급)까지 올라갔다. 중졸인 정 전 비서관을 감사담당관이라는 요직에 기용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1월 최도술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비리혐의로 구속되자 그 후임으로 정 전 비서관을 발탁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한다.

4급 공무원에서 단숨에 1급 자리에 올라선 정 전 비서관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그의 집사 역할을 담당해왔다.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재단 설립 등을 논의하기 위해 2007년 8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가진 3자 회동(정상문·강금원·박연차)에 정 전 비서관이 참석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검찰의 정 전 비서관 체포에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의 칼날이 자신의 목에 거의 닿았음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의 입이 열리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을 잘 뜯어보면 그러한 고심이 읽힌다.

“그리고 혹시나 싶어 미리 사실을 밝힙니다. 지금 정상문 전 비서관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조사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정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입니다. 그 혐의는 정 비서관의 것이 아니고 저희들의 것입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입니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전 비서관이 모든 것을 혼자 뒤집어 쓰지는 않을까 걱정해주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검은돈의 최종 목적지가 정상문이 아니고 그는 중개인에 불과한데 혼자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다음 문장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과 “미처 갚지 못한 빚” 말이다. 정 전 비서관에게 ‘빚을 갚기 위해 권양숙 여사가 노 전 대통령 모르게 시킨 일’이라고 진술할 것을 원격지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개연성이 있는 것이다. 그때까지 숱한 의혹에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체포되자마자 사과문을 발표한 것도 그러한 추측의 신빙성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정 전 비서관은 사과문 내용을 변호사를 통해 전해 듣고 자신이 받았다는 진술을 갑자기 권 여사 쪽으로 번복했다는 검찰 전언을 쓴 보도도 있다. 게다가 사과문을 발표하려면 진실을 스스로 말하면 그만이지 “더 상세한 얘기는 검찰 조사에 응해 진술할 것’이라고 얼버무린 것도 시간을 벌겠다는 의미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이튿날 홈페이지에 두 번째로 올린 글을 보면 더 잘 드러난다. 겉으로 보기에 이 글은 첫 번째 사과문에 대한 지지자들의 과열반응을 자제시키려는 의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검찰 수사 방향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여보, 나 좀 도와줘”가 또 한 차례 외연을 확장하는 대목이다. 이번에는 “노사모, 나 좀 도와줘”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2일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세 번째로 올렸다. 권 여사가 조사받은 다음날이었다. 아들 건호 씨가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던 시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썼다.

“’몰랐다니 말이 돼?’ 이런 의문을 가지는 것은 상식에 맞는 일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증거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도를 보니 박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보도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저는 박회장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슨 특별한 사정을 밝혀야 하는 부담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얼핏 언론 보도에 대한 불만 같지만, 분명 박 회장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너만 입 다물면 증거가 없으니 함부로 입 열지 말라”고 말이다. 이와 함께 박회장이 검찰의 압력에 굴복해 허위 진술한 것이라는 뉘앙스를 짙게 풍긴다. 이런 노 전 대통령 측 태도는 스스로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지지자들을 결집하려는 인터넷정치의 시동이라는 분석이 많다.

자유선진당은 “진실은 은폐하고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수준으로 까발리겠다고 복선이나 깔면서 협박이나 해대는 것은 시정잡배나 펼치는 노하우지, 전직 대통령이 보일 행태는 아니다”라고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민주당 역시 “검찰에 나가서 할 얘기를 미리 공개적으로 함으로써 수사받는 사람들에게 ‘진술을 그렇게 해달라’는 암시를 준 것 같은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노 전 대통령의 자숙과 근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증인들을 법률지식과 논리로 굴복시켜 청문회 스타로 우뚝 선 인물이다. 그는 에세이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지식이 잘못 쓰여질 때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새삼 깨달았다. 한 사회의 가치관이 거꾸로 서 있거나 가치판단이 흔들릴 때 잘못된 양심을 가진 사람의 지식은 어떤 도둑질이나 살인보다도 위험한 범죄인 것이다.”

이제 그는 법조인으로서 쌓은 지식을 대통령일 때의 과오를 변호하는 데 사용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주머니에 들어갔든 쌈지에 들어갔든 검은돈을 받았다는 시인만으로도(검찰 출신인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말하는 포괄적 뇌물수수죄로서) 노무현 정부의 최대 브랜드였던 도덕성은 여지없이 무너졌고, 그것에 대한 국민의 환상은 산산조각 나버렸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잔해 속에서 그가 지식과 양심을 어떤 비율로 배합해 스스로 변호할지 두고 볼 일이다.

200905호 (2009.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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