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월산대군이‘빈 배’탄 이유 오직 살기 위해서였다 

‘대군’은 경계 1호… 만사‘형’통은 역적모의로 간주
프리즘 | 조선왕의 형님들은 어떻게 처신했나? 

글■신명호 부경대 교수 [smh@pknu.ac.kr]
‘봉하대군’과 ‘영일대군’. 대통령의 형들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 중 한 명의 ‘대군’이 벌인 뇌물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마침내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조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권력과 가까울수록 달콤한 유혹도 늘어난다. 역사에서 왕의 형은 어떻게 처신했을까? 그 가깝고도 위험한 관계를 살펴본다.
고종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후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개화파와 위정척사파 사이에 대립이 격화되었고 국론은 완전히 양분되었다. 개화정책을 놓고 개화파는 구국의 정책이라 찬양한 반면 위정척사파는 망국의 정책이라 매도했다.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대립은 고종과 흥선대원군의 권력투쟁으로 발전했다. 10년 세도 동안 쇄국정책을 추진한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개화정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고종은 개화정책을 통해 자신과 흥선대원군을 차별화하고자 했다. 고종의 개화정책이 추진될수록 위정척사파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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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호 (2009.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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