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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는 국제전이었다 

스탈린의 세계赤化 야망…김일성-마오쩌둥이 ‘실전’에 옮겨
한국군·미군·유엔군이 지킨 것은 이 나라뿐 아니라 세계였다

기획특집2 | 한국전쟁 60주년 특집-그 전쟁의 진짜 의미를 찾아서 

6·25전쟁을 ‘한국전쟁’이라고도 하지만 이는 Korean War를 번역한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전쟁은 냉전시대의 또 다른 대표적 전쟁이었던 Vietnam War(베트남전쟁)처럼 Korea War로 표기하지 않는 것일까?

베트남전쟁은 본래 프랑스에 대한 베트남의 독립전쟁으로 출발하여 프랑스군을 대신한 미군으로 이어진 전쟁이었기에 ‘베트남인의 전쟁(Vietnamese War)’이 아닌 ‘베트남에서의 전쟁(Vietnam War)’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은 남·북한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에 우방국들이 끼어든 전쟁이었기에 ‘한국에서의 전쟁(Korea War)’이 아닌 ‘한국인의 전쟁(Korean War)’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호칭이야 어찌 되었든 두 전쟁 모두 나중에는 국제전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수많은 병력이 동원된 가운데 사상자 또한 엄청난 전쟁이었다. 6·25의 경우 남한에 파병된 16개국의 병력은 도합 61만여 명, 북한에 파병된 2개국(중공·소련)의 병력은 도합 95만여 명이었고, 남한에 파병된 16개국의 병력 손실(전사·부상·실종·포로)은 16만여 명, 북한에 파병된 2개국의 병력 손실은 55만〜90만 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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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호 (201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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