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종미 교수의 베이징워치 | 톈안먼 광장의 공자 동상 논란 

광장에 세워진 9.5m 공자 동상으로 여론 분열
최근의 복고주의 반영… 전통사상이 유토피아가 아니라는 우려도 

[찬]“공자상 건립은 역사문화적 대표인물 선양하는 순수 의도” [반]“공자 높이기는 신민 통치의 정치적 의도를 드러낸다”

▎1월 11일 중국 수도 베이징 톈안먼 광장 동쪽 국가박물관 앞에 공자 동상이 새로 세워졌다.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트레이드 마크는 쯔진청(紫禁城) 성문에 높이 걸린 마오쩌둥(毛澤東)의 사진이다. 1월 11일 그 톈안먼 광장 국가박물관 북문 앞에 9.5m 크기의 거대한 공자 동상이 세워졌다. 정적 린뱌오(林彪)와 공자를 한 묶음으로 묶어 비림비공(批林批孔)이라 했던 그 마오쩌둥과 공자가 비스듬히 서로 곁눈질하게 된 셈이다. 묘해도 참 묘한 인연이다.

1990년대 필자가 유학할 당시에는 베이징에 있는 거의 모든 대학의 정문 입구에 거대한 마오쩌둥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택시를 타면 마오쩌둥 사진이 거울에 부적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는데 그걸 왜 달았냐고 물었더니 신(神)처럼 위험에서 라오바이싱(老百姓)을 보호해준다고 말했던 순진한 택시기사들이 생각난다.

그 많던 마오쩌둥 동상과 사진과 어록집이 다 어디로 사라지고 지금 베이징에 유일하게 남은 기념물은 톈안먼 광장의 대형 사진과 마오쩌둥 기념관이다.

톈안먼 광장을 오가며 광장을 내려다보는 마오쩌둥의 사진이 언제까지 걸려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공자가 그를 내려다보며 웃는다. 사실 공자 입장에서는 웃을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인형을 처음 만든 이는 후손이 없을진저!(始作俑者,其无后乎)”라고 공자로서는 최대의 욕을 작용자(作俑者)에게 퍼부었음에도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니 말이다. 작용자는 진실이 없는 허상을 만드는 사람, 나쁜 전례를 만들어놓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엄격히 따지면 오늘날 톈안먼 광장의 공자상은 마오쩌둥의 사진과 상징 코드가 같다. 중국에서 공자 부활의 신호탄이 톈안먼 시위의 수습이라는 정부 주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즉 1989년 6월 4일 정부의 계엄령 선포와 무력 진압으로 막을 내린 민주화 시위를 일부 서방세력의 사주를 받은 몇몇 학생의 무력선동으로 규정하고 공산주의도 아니고 서구 민주주의도 아닌 데서 찾아낸 제3의 길이 덩샤오핑 정부 주도의 공자 부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90년대의 중국 학술계에는 유가 전통 부활과 관련된 학술대회가 많이 열렸다. 유사한 주제와 유사한 제목의 학술대회가 하도 많이 열려 중국인 교수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그래야 정부에서 학술지원금이 나온다고 귀띔해주었다.

중국인의 갈증을 달래주는 묘약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오늘날 중국은 상층부에서 하층부까지, 아니 하층부에서 상층부까지 ‘공자열(孔子熱)’ 혹은 ‘국학열(國學熱)’로 뜨거워졌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자·유학·국학은 부유해진 현대 중국인의 정신적 갈증을 해소해주는 마법의 묘약 같은 역할을 해왔다. 자긍심이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진 중국 사회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전통에서 만고해법을 찾는다는 자신감이 넘쳐난다.


▎베이징의 런민대학 캠퍼스에 세워진 공자상.

2002년 중국 관료 배양의 산실인 런민(人民)대학이 공자연구원을 발족하고 이어 2005년 국학원으로 승격 개원하면서 공자 동상을 캠퍼스에 설치했다. 2004년에는 중국 교육부에서 해외에 100개의 공자학원을 건립하겠다고 선포한 이래 현재까지 이미 88여 개 국가에 300여 개의 공자학원이 세워져 중국어와 중국 문화 전수의 해외기지 역할을 한다. 2004년 중국공산당 제16회 전당대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처음으로 ‘화해사회(和谐社会) 건립’을 중국 사회주의 건설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였다. ‘화해’라는 말은 화합과 조화를 중시하는 유가적 전통 개념이다. 이로부터 ‘화해’는 중국 현대사회의 유행어가 되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화(和)’ 자의 다양한 고한자 자형(字形)을 퍼레이드로 재현하여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중국의 국학열은 중국 전통복장에 현대화 요소를 가미한 패션 브랜드의 탄생으로 이어지고 지난해 급기야 청명절·단오절·중추절을 3일 연휴의 새로운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 전통 부활의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2500년 전의 성인 공자가 현대 중국 사회에 다시 부활한 셈이다.

사실 필자가 베이징대학에서 만난 학생들 중에 중국 고대문학 전공자 내지는 중국 고대철학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논어>나 <맹자>, <노자>나 <장자> 등 중국 고전 원서를 읽어본 학생은 매우 드물었다. 오늘날 중국 사회의 전통사상 붐은 경전 자체에 몰입해서 우러나오는 일종의 감동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해석에 기댄 유행과도 같은 경전 몇 구절의 인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공자를 재해석하여 광범위한 유행으로 만든 사람은 베이징사범대학 교수 위단(于丹)이다. 2004년 중국 중앙TV <백가강단>에서 <논어> 강의를 하면서 전 국민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그녀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강의를 엮어 출판한 <논어심득(论语心得)>은 중국 내에서만 무려 400만 부가 팔린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경제적 풍요를 달성한 중국인의 심리적 공백은 마르크스도 아니고 서구사상도 아니고 중국 역사 고전이 채워준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했다. 국가 정치지도자로부터 회사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공자사상이 하나의 화두처럼 유행어가 되었다. 정부 주도의 공자 부활이 십여 년 만에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는 듯했다. 덕분에 <논어>는 물론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중국 고전 열풍이 불었다.

공자와 아바타의 대결

여론은 한쪽이 달아오르면 한쪽이 식혀주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는 바링허우(八零後, 1980년대 출생자)를 중심으로 한 네티즌들이 여론 형성에 기여한다. 네티즌들 사이에 공자 부활을 보는 냉랭한 기류는 지난해 중국영화그룹공사가 한화 350억원을 들여 제작한 블록버스터 영화 <공자>가 나왔을 때 감지되기 시작했다. <공자>는 국가가 주도한 공자 부활의 대표적 사례다.

당시 3D 영화 <아바타>와 동시 개봉되었는데 <공자>를 살리려고 <아바타> 상영관을 제한하고 조기 종영하도록 조치했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더욱이 <아바타>에서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족이 생명의 나무를 공격하는 장면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지역 개발 장면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민족의 ‘화해사회(和谐社会)’ 건설에 위배된다는 평도 조심스럽게 제기되었다. 하여튼 당시에는 영화가 공자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영화 자체의 비판이 많았다.

현재 중국의 네티즌은 전통사상을 빌미로 확산되는 중국 국수주의를 조심스레 우려하는 수준에 왔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방미 중 오바마 대통령 주최로 열린 백악관 만찬에서 재미중국인 피아니스트 랑랑(郎朗·1982년생·만주족)이 <나의 조국>이라는 곡을 연주한 사실에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랑랑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오바마 대통령 부부의 초청으로 만찬장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었다. 그가 연주한 <나의 조국>은 중국 영화 <상간링(上甘岭)>의 주제곡으로 국민가요 반열에 오른 유명한 곡이다. 랑랑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중국어와 영어로 번갈아 선율이 아름다워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영화 <상간링>의 주제곡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이 영화는 1956년 출품된 ‘항미원조(抗美援祖)’, 즉 “미국에 대항하여 조국을 구하자!”라는 중국 혁명영화 시리즈의 제1탄으로서 <나의 조국>은 반미 투쟁을 하는 인민지원군이 자신의 고향과 조국에 느끼는 애정을 그린 노래였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에 너무 과민반응한 결과 랑랑 연주에도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 …랑랑은 순수예술가로서 본인이 밝혔다시피 연주를 통해 민족주의를 드러낼 의도는 꿈에도 없었다. 그는 “한 사람의 중국인으로서 조국과 다른 나라의 교류에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을 영광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그의 연주는 순수했다.

-랑랑 지지자

영화 <상간링(上甘岭)>이 ‘항미원조(抗美援祖)’ 영화라는 사실은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랑랑도 분명 알았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이 노래를 연주곡으로 선택했다면 그의 동기나 지능을 의심해야 한다. 만일 그가 몰랐다면 어렸을 때 중국에서 받은 교육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나 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만일 오바마 대통령 방중 당시 공식만찬에서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인 피아니스트를 초청했는데 그가 미국과 중국의 전쟁에서 중국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곡을 연주했다면 중국 정부와 국민이 가만 있었겠나. 아마 중국인은 큰 모욕을 느꼈을 테고 이는 중대한 외교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랑랑 비판자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여론이 들끓자 1월 24일 백악관 대변인 토미 비터가 미국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랑랑의 연주가 미국을 모욕했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발상”이며 “그의 연주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었다”고 해명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인터넷을 달구는 찬반 양론

올해 톈안먼 광장의 공자상 건립을 두고도 인터넷상에는 찬반 양론이 뜨겁다. 정확히 말하면 일부의 찬성과 다수의 반대다. 먼저 공자상 건립 지지자들의 말을 들어보자.

“‘후한산이 다시 돌아왔네’라는 어떤 영화의 유명한 대사처럼 2011년 톈안먼 광장에 ‘공자가 다시 돌아왔다.’ 중국국가박물관 문 앞에 공자 조각상이 세워졌고 이를 두고 의론이 분분한데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1919년 5·4운동 시기에는 계몽주의 입장에서 공자를 비판했고 1960, 1970년대 문화혁명 시기에는 혁명적 입장에서 비판했다. 이에 반해 오늘날 공자상 건립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너무 과민반응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는 단지 국가박물관을 확장 개축하면서 정문 앞에 역사상 유명한 인물의 조각상을 세웠을 뿐이며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중국 역사 수천 년을 통틀어 가장 경쟁력 있는 인물이 공자 아닌가. 비판자들은 이 동상의 배후에 ‘공자 높이기(尊孔)’를 통해 달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국가적 의도라면 드러내놓고 선전해야지 왜 이런 동상 하나 속에 은유적으로 감추었겠나.”

중국국가박물관 여장신(呂章申) 관장은 공자상은 장소에 걸맞은 문화적 상징물이라고 역설했다. “중국국가박물관 북문 광장은 중요한 관중 출입문이다. 세계적 거리인 창안제(长安街)를 향하고 고궁을 마주해 매우 중요한 정치적·문화적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중국국가박물관은 중국의 역사·문화·전통을 적극 계승하는 최고의 전당으로서 이곳의 중요한 상징성에 부합하는 문화적 상징물을 조성했을 뿐이다.”

공자상 건립 비판자들도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역사를 돌이켜볼 때 공자가 무엇을 대변하여 왔나? 공자가 생전에 스스로 ‘상갓집 개’에 비유할 만큼 그의 사상은 어느 군주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 때에 통일이 이루어진 후 세상을 안정시켜야 할 시기에 그의 사상은 비로소 주목받았다. 공자의 사상이 백성을 신민(臣民)으로 만들어 지배계층이 백성을 길들이기에 적합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자의 사상 중에 훌륭한 요소도 적지 않지만 이는 단지 부수적 요소고 중국 역사에서 그가 각광받은 지배적인 이유는 백성의 신민화(臣民化)였다. …중국인의 도덕 수준은 공자 동상을 세운다고 해서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개혁개방 이후 일부 관료의 부정부패로부터 ‘권력과 돈이 최고’라는 그릇된 신념이 팽배하여 왔다. 만일 공자 동상을 세워 도덕적 타락을 개선할 수 있다면 차라리 공자 배지를 만들어 관료들 가슴에 달도록 하든지 공자 말씀을 홍위병 전서처럼 만들어 관료들의 손에 쥐여주고 각고의 학습을 하도록 하는 편이 낫다.”

찬성자의 주요 의견은 공자상 건립이 역사문화적 대표인물을 선양하는 순수 의도라는 골자고 반대자의 의견은 공자 높이기(尊孔)가 신민(臣民) 통치의 정치적 의도를 함축적으로 드러낸다는 주장이다. 마침 톈안먼 광장 공자상 조성에 이어 1월 25일 광둥성 인민대표대회 대표 리우샤오펑(刘小锋)이 광저우 광장에 공자상 건립을 결의하고 “인민의 도덕 제고” 운운한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이는 네티즌의 즉각적이고도 집단적인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공자로 대표되는 중국의 전통사상이 중국 사회가 당면한 현대적 과제, 현시대가 요구하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중국 철학자들조차도 갈수록 뜨거워지는 ‘공자열’ ‘국학열’을 두고 전통사상이 유토피아가 아니라고 우려를 표명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황허(黃河)의 도도한 물결은 이미 물꼬를 텄다. 꽃은 옛 가지를 의지해 핀다. 오늘날 중국의 공자 부활이 2000년 만에 고목에서 피어오른 아름다운 황금꽃이 될지 아니면 고목에 꽂아놓은 조화가 될지는 참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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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호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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