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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몰락-상승세 한국, 추락의 위험요소 많다 

외양은 승승장구, 그러나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소득 7000달러 시대보다 삶은 더 불투명… 국가적 비전도 없어 저출산·고령화, 부동산 거품, 가계부채 급증, 소득격차 확대 등 20년 불황의 일본 답습 우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질수록 그 속의 구성원은 더욱 왜소해진다. 나라는 돈이 넘치는데 개인은 빈털터리다.

▎구직자가 ‘실업급여 설명회장’에서 센터 관계자의 설명을 들으며 실업급여 신청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립해 군사정권을 거쳐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다. 수평적 정권 교체를 두 번이나 이룬 민주주의 국가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먼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났다. 부자나라의 모임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열고는 국격이 높아졌다고 자축했다. 미국과는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팔았다.

경제지표도 좋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2월 이후 흑자행진을 계속한다. 올 11월쯤 무역 규모(수출입)가 1조 달러를 돌파하며, 3년 안에 프랑스·영국·이탈리아를 따라잡고 세계 5위의 무역대국으로 올라선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다.

75%의 중산층 소멸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외환보유고도 3000억 달러가 넘었다. 최근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유치했다. 동·하계 올림픽과 월드컵경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등 빅4 스포츠를 모두 여는 스포츠 강국이 된 셈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에 구제금융을 빌려준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이 국제경기를 치를 만한 기본 체력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IMF 수비르 랄 한국과장은 한국의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면서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낮아 공공부문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지출이 가능하다”면서 “올림픽 같은 큰 행사는 일자리 창출은 물론이고 평창 이외의 도시에도 긍정적인 부수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겉으로 본 한국은 승승장구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도 신나고 행복할까? 그렇다고 선뜻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직장생활로 내 집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접은 지 오래다. 1인당 GDP가 지금의 3분의 1에 불과했던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웬만한 직장인은 내 집 마련의 꿈 하나는 간직하고 살았다. 그때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75%에 달했다고 1990년도부터 1992년까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보건사회부 장관은 말했다. “6공화국 5년 동안 GDP가 125% 가까이 늘었는데 임금도 105% 정도 증가했다. 한국의 분배가 가장 공정하게 이뤄진 때가 그 시절이다.”

요즘은 정부가 나서서 공정사회를 외쳐야 할 정도로 분배 정의가 위기를 맞았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김병권 부원장은 “기업과 노동자, 대기업과 중소 영세기업, 부유층과 서민으로 사회가 양극화되고 격차는 갈수록 커져간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양극화는 필연적으로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대기업의 화려한 실적 잔치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손에 들어오는 게 보잘것없어 구매력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청년들의 미래도 암담하다. 아버지의 직업에서 아이의 미래가 상당 부분 결정된다. 초·중·고 시절부터 사교육에 짓눌려온 대학생은 상아탑에서 공부보다는 등록금을 마련할 아르바이트에 내몰린다. 고용 없는 성장은 대졸 청년실업자를 양산한다. 골목 상권도 대형 유통업체들이 점령하기 시작했다.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살면서도 6000~7000달러 시대보다 미래가 더 불투명한 게 오늘날 한국의 자화상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더 행복해지리라던 꿈은 산산조각 났다. 앞으로도 삶의 여건이 개선되리라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자살률·저출산율이 모두 OECD 회원국 중 1위다. 2100년까지 한국 인구가 1100만 명 이상 줄어든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기업은 수출 호조로 호황에 호황을 누리지만 개인들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올 1분기 국내총소득(GDI)은 직전 분기보다 0.6% 줄면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정부의 친시장정책·고환율정책으로 대기업만 덕을 볼 뿐 일반 국민은 손해를 본다는 불만이 늘었다. <88만원 세대> <디버블링>의 저자 우석훈 2.1연구소 소장은 “소득증가보다 물가가 더 올라 대부분의 사람이 가난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체적 통합력이 급속히 약화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도태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나라는 부자, 국민은 가난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 일본이 그랬다. 이러다 한국 경제가 20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의 길을 답습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새삼스럽지 않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전 총리는 1978년 펴낸 <새로운 보수의 논리>라는 책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 진입 직전의 일본을 이렇게 묘사했다. “일본 열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금 격렬하게 용솟음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본이 오도 가도 못하는 교착 상태에 빠지지 않았나’ ‘과연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엔화가치가 이렇게 올랐는데도 어느 집에서도 가계 생활이 풍족해졌다고 실감하지 못한다’ ‘이제 머지않아 고령화 사회가 도래해 일본 경제가 침몰하지 않을까?’ ‘이렇게 교육이 황폐해지면 다음 세대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지 못하는 것은 않을까?’”

한국인들의 고민을 그대로 대변한 듯하다. 한국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성장동력 약화, 부동산 거품, 국가와 가계의 부채 급증, 저축률 하락, 소득격차 확대 등 당시 일본이 직면한 난제들을 오늘날 고스란히 안았다. 심지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도시와 지방 간,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간 양극화의 급진전도 닮은꼴이다. 송양민 가천의과대학 보건복지대학원장은 지금처럼 모두가 제 잇속만 챙겨서는 미래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기업주와 노동자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도권과 지방이 대립하고 갈등하는 현실을 수습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1991년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침체 국면에 빠져든 일본은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가 경제적 몰락을 부채질했다. 당시 정부는 재정확대와 소비진작을 통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나 국가 부채만 늘렸다. 요즘 한국 사정이 꼭 그렇다. 양극화에 서민들의 주머니가 비자 국가 예산을 들여서라도 대학 등록금을 반으로 내리고,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졌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의식한 여야 정치권도 유권자의 요구라면 몸을 던져서라도 호응할 태세다. 이런 상황을 정책적으로 조율하고 국가 목표를 제시해야 할 대통령은 집권 4년 차 들어 레임덕에 빠졌다. 국가운영에 필요한 각종 연구와 방법론을 개발하는 민간연구기관인 국가경영연구원의 김현석 원장은 “현행 대통령 5년 단임제로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진단했다.

성장동력 다각화 시급

일본은 그나마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지위에서 침체 국면에 빠졌다. 20년 장기침체를 겪는 지금도 막강한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세계시장의 강자로 군림한다. 한국은 이제 겨우 세계 10위권이다. 선진국 진입도 못한 채 줄곧 2만 달러 대에 묶여 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거쳐온 여러 병리현상을 동시에 겪는다. 한국이 가장 자신 있어하는 수출 분야도 삼성·현대자동차·LG 등 간판기업들이 중국과 브릭스 등 후발 산업국들의 거센 추격을 받는다. 일본보다 체력이 떨어지는 한국이 자칫 삐걱했다가는 성장동력 상실 등 회복이 어려운 지경으로 빠져들지 모른다. IMF 수비르 랄 한국과장은 “한국은 수출 주도형 모델에서 수익을 창출해왔는데 이 하나의 성장동력에 주로 의지하다 보면 경제구조가 충격에 취약해진다”고 성장동력의 다각화를 권고했다.

경제에는 벌써 빨간불이 들어왔다. 가계 부채는 총액 800조원을 넘어섰고, 공공기관 부채도 216조원에 달한다. 공공 부채는 현 정부 들어 두 배로 늘어 국가 재정에 위협요인으로 지목된다. 게다가 정부 부채(2010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 33.9%) 또한 경제의 안정적 운용에 걸림돌이 된다고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주장했다. 그동안 한국 정부의 재정은 견실한 편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는 튼튼한 재정을 기반으로 공적자금을 조성, 기업의 부실자산을 쉽게 정리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 기업과 고용을 지원했다. 그런데 지금 정부 재정은 기로에 서 있다고 신 교수는 경고했다. “현재의 국가 부채 증가세로 봐서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제3의 금융위기에 효율적인 대응이 어렵다. 가계 부채가 높은 탓에 언젠가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야 할지도 모르고, 포퓰리즘 정책에 재정이 낭비되거나 총선·대선 등 선거가 다가오면서 재정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다.” 재정 악화가 금융위기를 초래한 그리스처럼 한국도 또 그런 취약점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고 신 교수는 지적했다.

불의에 눈감는 사회

공동체적 통합력이 급속히 약화된 한국 사회는 뿔뿔이 흩어져 각자 도생하는 이익집단을 연상케 한다. 지하철에서 누가 부당한 일을 당해도 멀뚱히 보기만 하거나 아예 외면한다. 그게 바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인데도 그렇다. 서로 배려하기보다는 경쟁의 논리와 비교우위만 강조되는 비정한 정글과 같다. 용케 살아남은 이들도 미래를 알 수 없다. 이를 다독거리고 여론을 수렴해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할 정치권은 권력욕에만 매몰돼 자기네끼리 싸우기 바쁘다.

대표적인 예가 포퓰리즘 논쟁이다. 포퓰리즘은 부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될 때 그것의 분산 수단으로 등장한다. 지금 빈익빈 부익부 구조가 심화되는 한국에선 어느 정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런데 어느 선에서 최적의 방안을 도출하느냐를 두고 여야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 일이 없다. 그저 일방적 주장만 할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반값등록금·무상급식 등 정치권의 복지 경쟁을 겨냥해 “정치도 선거를 앞두고 너무 포퓰리즘에 빠지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마 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 복지정책은 시대적 흐름이지 포퓰리즘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국가 재정의 근간을 흔들지도 모를 정책을 두고 여야가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일본의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현안의 처리 방식은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호 양보 혹은 절충이 모든 경우에 필수적이다. ‘윈윈’ 원칙이 반드시 적용돼야 한다. 또한 협력도 필요하다. 그리고 기본적인 토대는 ‘공통 언어’와 ‘공통 기억’이다.” 여기서 공통의 언어란 “토론할 때 같은 말을 하면서 다른 의미를 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와다 교수는 설명했다.

한국의 정치권은 무상급식과 반값등록금, 또 이를 포괄하는 포퓰리즘을 논할 때 이처럼 ‘같은 말을 하면서 다른 의미를 담지 않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주장만 배설하니 공론은 없고 당론만 무성하다.

포퓰리즘 논의가 겉돌수록 퍼주기식 복지 행정, 비효율적 예산 집행으로 이어진다. 정치권 모두가 토론하고 국민이 동의하는 포퓰리즘 관련 비전과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민주화 열기에 편승한 포퓰리즘을 적절하게 제어한 전례가 있다.

권위를 가진 중간지대 없어

복지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에는 충돌하는 이익의 균형을 잡고, 사회의 막힌 곳을 뚫어주는 권위가 절대 부족하다. 우석훈 소장은 “이념이 달라도 합리적으로 맞고 틀린 게 있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런 결론에 도달케 하는 권위와 경험이 일천하다”고 말했다. 공동의 가치와 이익을 대변하는 중간지대 내지는 주류적 흐름이 없다는 말이다. 이런 관성으로 가다가는 남북 문제, 동북아 현안 등 한반도의 안보와 번영에 직결되는 사안이 불거져도 능동적인 대응을 아예 기대하기 어렵다. 한반도의 통합성을 유지하고, 결정적인 시기 주변 4강의 한반도 이해관계를 조율해낼 만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201108호 (2011.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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