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양승국 변호사의 산에서 만난 사람] 환경예술가 박병욱 

“세계의 자연이 우리의 캔버스이자 무대죠” 

후타오샤 트레킹 길에서 들은 ‘예술로 풀어보는 환경사랑’ 자연의 소재와 재료로 자연 속에 무엇인가를 세우거나, 자연의 언어를 몸짓으로 표현한다. 때로는 춤과 음악 혹은 영상으로 자연을 말한다. 환경예술가 박병욱과 그가 이끄는 다국적 환경예술단체 ‘나인드래건헤즈’ 회원들과 함께 뜨거웠던 지난여름 개발 바람에 밀려 사라질 위기에 처한 차마구다오(茶馬古道)로 갔다.

▎‘나인드래건헤즈’ 회원들과 차마구다오를 걷던 다원예술가 박병욱 선생이 후타오샤 한 구간에서 절벽 아래로 흐르는 진샤장을 가리키며 밝게 웃고 있다.

자동차가 진샤장(金沙江)을 따라 하바쉐산(哈巴雪山)으로 접어들자 진샤장 건너편의 위룽쉐산(玉龍雪山)도 점점 일어섰다. 가파른 두 산이 만들어낸 깊고 좁은 협곡, 호랑이가 사냥꾼에 쫓기다 훌쩍 뛰어 건넜다는 후타오샤(虎跳峽)에 이제 곧 당도한다. 진샤장의 강물은 다가올 그 협곡의 사나운 기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유유하다.

환경예술가이자 ‘다원(多元)예술(독립예술, 비상업적 대중예술, 비주류예술을 통칭)’의 기획자인 박병욱(58) 선생이 주관하는 ‘나인드래건헤즈(nine dragon heads)’ 팀과 함께 중국 윈난(雲南)성의 쿤밍(昆明)·다리(大理)·리장(麗江)을 거쳐 후타오샤로 들어서는 길이다. 그 옛날 마방들이 당나귀에 ‘푸얼차(普耳茶)’를 싣고 티베트로 넘나들던 ‘차마구다오(茶馬古道)’를 따라 걷고 있다. 국제 환경미술 심포지엄인 나인드래건헤즈는 환경예술가·행위예술가·비디오예술가 등 어찌 보면 예술 분야에서 첨단을 걷는 예술가들의 국제적 모임이다. 8월 3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 이번 행사엔 미국·호주·스위스·덴마크·한국 등 다섯 나라 작가들이 참가했다(후타오샤 트레킹은 8월 6~7일).

1954년 부산에서 태어난 박 선생은 미국의 예술아카데미대학교(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공연연출(Performing Arts)로 석사학위를 받고 행위미술·설치미술·비주얼아트(Visual Art) 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원예술활동을 펼친다. 독립 큐레이터, 조형예술가, 무용연출가로서 1996년 나인드래건헤즈를 설립했으며, 사라예보예술축제와 뮌헨 톨우드축제 등의 예술감독을 맡는 등 국내외에서 활약해왔다. 문학·미술·음악·연극 같은 고전적 장르의 고정성을 탈피해 유연하고 다양한 장르를 창조하려고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한다.

나인드래건헤즈 행사가 올해로 16번째를 맞았다고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출발점이 궁금합니다.

“제가 1980년대 초 대청호와 가까운 충북 청원군 문의면 구룡리에 작업실을 만들어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대청호에 잠겨 고향을 잃어버린 수몰민을 만나면서 그들의 상실감이나 애환 등을 느낄 수 있게 됐지요. 산골짜기에 커다란 호수가 생긴 데 따른 자연과 환경의 변화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제 작품활동의 방향도 환경예술 쪽으로 나아가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뜻을 같이하는 무용·음악·조각·그림·사진 등 여러 분야의 예술가를 만났는데 차츰 공동 창작활동을 하는 쪽으로 발전했지요. 그 과정에서 ‘야투(野投)’라는 자연미술연구회에도 참가하게 됐고요.”

야투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임입니까?

“‘들에 인간을 던지고, 들을 인간에게 던진다’는 뜻을 담은 이름인데 1981년 충남 공주에서 창립됐어요. 캔버스라는 제한된 화폭에서 벗어나 자연을 캔버스로 삼는 자연미술·설치미술을 추구하는 미술 모임이지요. 1991년과 1995년 야투 주최 행사의 일부를 제가 살던 문의면에 유치했죠. 그 과정에서 대청호라는 특수한 생태계를 갖춘 문의면에서는 행위예술이나 퍼포먼스가 중심이 되는 환경예술제를 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1996년 제1회 대청호국제환경예술제로 결실을 이뤘어요. 그때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13개국 20여 명의 작가를 초청했어요. 그 행사가 올해로 16회째를 맞았습니다.”

예술과 환경은 한 몸

‘나인드래건’이라는 명칭도 구룡리라는 지명에서 따왔습니까?

“맞습니다. 문의면에는 청원 두루봉유적으로 대표되는 선사시대 유적지가 있는데 ‘큰 용굴’ ‘작은 용굴’로 부릅니다. 이렇게 문의면에는 용과 관련한 오랜 역사와 신화가 전승하는 데다 제 작업실이 있던 마을도 구룡리였습니다. 이것을 기화로 아홉은 무한을, 용은 신화를, 머리는 정신을 나타내는 나인드래건헤즈를 국제환경예술제 이름으로 정했습니다.”

대청호에서 출발한 국제예술제가 지금은 외국으로까지 나오게 됐군요?

“2005년까지 대청호를 중심으로 청원군과 청주시 일원에서 행사를 열다 그 후로는 개최지를 다양화하고 있어요. 2006년에는 휴전선 비무장지대 일대, 2007년에는 새만금과 고군산열도, 거제도를 비롯한 남해안 섬들을 거쳐 2008, 2009년에는 제주도와 해운대 일원에서 행사를 열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서울 혜화동의 아르코미술관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전시회 도중 작가들이 실크로드로 날아가 고비 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을 돌아보고 돌아와 그곳에서 받은 창작적 감흥을 반영해 작품을 재창조해 전시회를 이어갔죠. 올해는 전시회는 따로 열지 않고, 차마구다오와 티베트, 에베레스트의 자연에서 얻은 창작적 감흥을 각자의 작품으로 남기게 됩니다.”


▎스물여덟 번이나 꺾어져 올라간다 해서 ‘28밴드’로 불리는 험한 길(위 사진)과 그 길을 말을 타고 오르는 ‘나인드래건헤즈’ 참가자들.

그동안 큰 변화를 겪어왔군요?

“원래 이번 여정은 몇 년 뒤로 예정했던 것인데, 최근 차마구다오와 티베트 개발이 급속도로 추진되면서 행사를 앞당겼습니다. 일정도 16박 17일로 길어지는 바람에 작가들이 많이 참석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후타오샤 입구인 차오터우(橋頭)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다. 트레킹 출발지인 나시야거(納西雅閣)에는 버스가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작은 차로 갈아탔다. 보통은 여기서부터 트레킹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나시야거까지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차오터우는 새로운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길을 닦는 공사가 한창이다. 예전에는 새나 쥐나 다닐 길이라고 하여 냐오루수다오(鳥路鼠道)로 불렸다는 차마구다오에도 개발의 광풍이 불어닥쳤음을 실감했다. 이러다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차마구다오는 사진과 영상으로만 남게 되지는 않을까?

차가 나시야거를 향해 올라간다. 예전 마방들이 다니던 좁은 길은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만큼 확장해 콘크리트로 포장해놓았다. 혹 맞은편에서 다른 차가 오면 어떻게 교행해야 할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나시야거커잔(客棧)에서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벽이나 창문을 둘러보니 이곳을 다녀간 트레커들이 붙여놓은 스티커와 작은 깃발, 감상을 적은 낙서들도 빼곡하다. 한글도 제법 눈에 띈다. 지난번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묵었던 로지에서도 느꼈지만, 한국 사람들의 극성스러움은 이곳에서도 예외가 없는 듯했다.

그곳 커잔 벽면에 붙어 있는 무슨 부호 같은 그림이 이방인의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는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문자였다. 중국의 상형문자보다 더 그림에 가까운 상형문자가 수많은 세월을 거쳐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셈이다. 이미 박제가 돼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상형문자가 이렇게 남아 있다니 신기했다. 그러나 이 동파문자 역시 이렇게 관광객에게나 보이는 문자로 박제화돼간다. 이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이 나시족의 삶 속에서 계속 살아 숨 쉬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가져볼 뿐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우리도 차마구다오에 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단순히 일반 트레커들처럼 걷는 데 그치진 않는다. 그 옛날 마방들처럼 말의 행렬을 재현해보고자 했다. 마방들이 그랬던 것처럼 직접 말을 끌어볼 생각도 해보았지만, 우리 눈앞에 펼쳐진 길은 스물여덟 번이나 굽이굽이 꺾어져 올라간다 해서 ‘28밴드’라고 불리는 험한 길이다. 더구나 말을 다뤄본 경험도 없는 우리가 이 험로를 말까지 끌고 가기란 만용에 가까운 일이다. 당초의 생각을 곧 단념하고 각자 배정된 말에 올라탄다. 이제 출발이다!

28밴드라는 별명에 걸맞게 길은 급히 꺾이며 올라가는데, 어떤 길은 마부가 옆에 서서 가지도 못할 만큼 좁고, 바닥은 울퉁불퉁하다. 그런데도 말은 그 길을 사람을 태우고 올랐다. 예전에 실어 나르던 푸얼차보다 더 무겁지는 않을까? 말들은 방귀를 뀌다 못해 똥을 싸고 콧방귀를 연신 흥흥거리는 모양새가 보기 딱할 정도다. 나를 태운 말은 자기 편한 쪽으로 길을 오르느라 사람 걱정은 안중에도 없다. 나를 길옆 나뭇가지에 사정없이 부딪치게 하더니 결국 미끄러져 중심을 잃고 나자빠졌다. 적지 않은 내 몸무게에 무거운 배낭까지 짊어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가파른 언덕길에서는 말 못하는 말이지만 마치 속으로 숫자를 헤아리듯 숨을 고르다가 단번에 몇 발자국을 뛰어오르기도 한다. 옆에 아찔한 절벽이 나타날 땐 제발 말이 실수하지 말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맘 같아서는 어루만져주면서 격려라도 하고 싶으나 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바쁘다. 선두에서 가던 동료 작가가 그런 말들이 애처로웠던지 28밴드가 끝나기도 전에 말에서 내린다. 이때다 싶어 뒤따라 말 등에서 내리려는데 한동안 다리에 어찌나 힘을 줬던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28밴드가 끝나는 해발 2670m 지점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낭떠러지 저 아래로 진샤장이 요동치면서 후타오샤를 굽이쳐 흐르는 장관이 펼쳐져 있다. 진샤장 바로 위의 벼랑으로는 강줄기를 따라 포장이 된 후타오샤 아랫길(low pass)이 내려다보인다. 지금 우리가 걷는 윗길(high pass)만은 흙길 그대로 남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환경은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라면서도 환경예술이라는 개념은 쉬 가늠하기가 어렵다. 잠시 쉬는 틈을 타서 박 선생에게 청해 몇 마디 더 들어보았다.

“환경예술이란 예술성과 환경성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예술과 환경의 관계를 조화롭게 설정하는 ‘예술로 풀어보는 환경 사랑 이야기’쯤으로 정리할 수 있지만, 이제 막 시작된 분야라서 아직 확립된 개념은 없습니다. 이 환경 사랑 이야기는 자연에서 소재와 재료를 얻어 자연에 그대로 작품을 설치하거나, 단순한 설치에서 나아가 자연의 언어를 자기 몸짓으로 표현하는 행위예술(퍼포먼스)을 하기도 하며, 춤과 음악과 영상으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덴마크 출신 행위예술가 스틴의 ‘소망샘’이라는 이름의 퍼포먼스.

그가 말을 이어갔다. “환경예술은 특히 이를 풀어내는 주변 환경과 감응하다 보니 그 작품이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의 환경에 따라 그때그때 느낌이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예술은 다원예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예술을 한다면서 오히려 환경을 해치는 경우도 있었지만, 환경예술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작품도 그대로의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행위예술은 그들만의 영역?

미술에 몸담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어릴 때부터 무엇을 만들거나 그리는 재주가 있었는데 마침 이웃집에 화가 선생님이 살아서 그 영향을 받았죠. 그런데 군인이시던 아버지는 저한테 직업 군인의 길을 걸으라고 하셨죠. 아버지의 강권에 반발해 해병대를 지원했고, 군복무를 마친 뒤로는 중이 되겠다 마음먹고 머리를 깎고 3년간 절밥을 먹기도 했어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결국 부모님 승낙을 얻어 제 뜻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기존 실내 중심의 미술활동에 만족할 수 없어 밖으로 나오게 됐죠. 그것이 구룡리로 작업실을 옮긴 이유입니다. 그 뒤로는 환경예술에 눈을 떴고 지금은 다원예술 기획가로 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가족 가운데 아내는 무용을 하고 아들은 미술을 전공합니다.”

주요 작품을 소개해주신다면요.

“2007년 새만금 행사 때 ‘뭍으로 오라’는 제목으로 퍼포먼스를 했고, 제주 행사 때는 해녀들이 바다 위에 띄어놓는 기구를 이용해 ‘Jump into the unknown’이라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그 외에도 ‘처음 꽃을 사랑한 사람’이라는 무용 퍼포먼스에서는 대본과 연출을 맡았어요. 2006년에는 오스트리아 정부와 유럽연합(EU)이 전 세계적으로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했을 때,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한국 측 기획을 일임받아 오스트리아에서 온 지휘자 게르하르트 레스키와 함께 대전과 청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바쉐산의 꼭대기에 오르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이다. 하바쉐산은 해발 5396m나 되는데 언감생심 정상에 오르기란 무리다. 애초에 차마구다오는 티베트로 가는 가장 효율적인 길인 만큼 정상을 지날 이유도 없다. 급한 내리막이 어느 정도 평탄해지자 마부들은 다시 말에 오르라고 주문한다. 계속 걸어볼까 잠시 생각했지만 오늘밤 묵기로 한 중더우커잔도 얼마 남지 않아 그냥 말에 올라탔다.

길이 내리막이라서 말들도 한층 느긋해진 눈치다. 그러나 내리막길에서 말을 타고 가기란 역시 수월치가 않다. 말의 몸통이 기우는 대로 몸이 이리저리 쏠리는 바람에 오르막길에서처럼 있는 힘껏 발끝에 힘을 줬다. 한동안 말과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우거진 수풀 사이로 기와지붕이 보인다. 숲을 벗어나자 눈앞에 나타난 건물에는 일행이 벌써 도착했고 난 거의 꽁지다. 드디어 오늘밤 지친 몸을 누일 중더우커잔에 도착했다.

배정된 방에 짐을 내려놓고 식당 건물 옥상에 올라갔더니 눈앞에 위룽쉐산이 진샤장에 발을 담그고 선 듯 우뚝하다. 작가들은 트레킹의 피곤함도 잊은 채 곧바로 작업에 몰두했다. 미국에서 온 에드워드(Gabriel Edward)와 스위스에서 온 수산나(Mueller Susanna)는 열심히 위룽쉐산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다. 호주에서 온 일본인 작가 요코는 가져온 소품을 의자 위에 올려놓고 위룽쉐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덴마크에서 온 헨리크(Brochlips Henrik)도 마당에 빨간색 원뿔을 두 줄로 세운 채 사진촬영에 여념없다. 역시 덴마크 출신 스틴(Rasmussen Steen)은 준비해온 직사각형의 넓은 빨간색 플라스틱 판에 물을 붓고 사람들에게 각자의 희망을 종이에 적어서 띄워보라고 말했다. 처음 대하는 퍼포먼스와 예술작업이 흥미진진했다.

이런 작업은 퍼포먼스가 펼쳐지는 순간 그 자리에 모인 사람만 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니 영속적으로 남길 수가 없겠네요?

“꼭 영속적 형태로 남아야만 예술은 아닙니다. 예술은 단지 행위로써 펼쳐지는 그 자체로, 또는 어떤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작 과정 그 자체로도 예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술은 이 순간이 지나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작가는 그 퍼포먼스나 창작 과정을 사진이나 비디오로 담았다가 창작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설명하지요.”

스틴의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인가요?

“스틴은 저 물을 담은 판을 ‘소망샘(Wishing Well)’이라고 부르더군요. 스틴은 저 샘에 모든 이의 소망을 함께 녹여 앞으로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저 희망들을 심겠답니다. 작가들은 앞으로도 여행 중에 토론도 해가면서 이렇게 틈틈이 자기의 작품을 완성시켜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카트만두에서 이번 여행을 통해 완성한 각자의 작품을 발표하게 됩니다.”

현대예술은 작가 개인 영역으로 너무 깊숙이 들어가 사람들과의 소통을 등한시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래서 이러한 행위예술도 종종 나와는 무관한 개인적 영역으로 치부하고 멀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작가와 함께 여행하다 보니 그들이 몸짓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다. 남은 여정 동안 그들의 작품에서 뭔가 그 느낌을 공유하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트레킹 둘째 날이다. 오늘의 길은 큰 오르막 없이 산허리나 절벽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는 정도여서 전날 트레킹에 참여하지 않았던 나머지 일행도 함께 길을 나선다. 협곡 밑에서 진샤장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옛날 마방들은 온전히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 험한 길을 냈을 것이다. 수많은 희생도 따랐으리라. 길가의 무덤들은 그런 죽음의 안식처가 아닐까 싶다. 겨우 낸 길이니 바닥이 평평할 리 없다. 미끄러지지 않게 발밑을 신경 쓰면서 산허리를 돌아나가니 산 저 높은 데서 폭포가 쏟아져내린다.

관음폭포(觀音瀑布)란다. 소리를 볼 수 있는 폭포라는 뜻일까, 아니면 여기서 관음보살이 현신하기라도 했을까? 폭포를 조금 지난 곳에 현관사라는 조그만 사당이 절벽 위에 겨우 터를 잡고 섰다. 올라가보니 문이 닫혀 안을 볼 수 없다. 관음폭포와 관련한 무슨 이야기가 있을 듯한데 아쉬웠다.

헨리크는 길을 가면서도 빨간색 원뿔을 세워놓고 연신 사진을 찍는다. 부부가 함께 온 프레디(Luedi Fred Gottfried)와 수산나도 서로 눈에 바짝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고, 알렉스(Pedersen Alex)는 안대를 하고 양팔을 벌린 채 후타오샤를 가슴에 안으려 한다. 프레디와 수산나의 작업은 눈을 크게 뜨고 이 후타오샤를 담아가려는 것으로, 알렉스는 눈을 지그시 감고 오감을 집중해 후타오샤를 가슴에 담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나인드래건헤즈의 또 다른 행사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1996년부터 매년 사라예보에서 열리는 사라예보축제에 참가합니다. 처음에는 개인적으로 참가했지만, 지금은 나인드래건헤즈의 이름으로 여러 작가가 함께 참가합니다. 처음 축제에 참가했을 때 사라예보는 아직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무슨 작품활동을 할까 고민하다 사라예보 곳곳에 폭격으로 남아 있는 재를 수집하기로 했어요. 그것을 편지봉투에 넣어 ‘사라예보로부터의 편지(letters from sarajevo)’라는 제목으로 작품을 설치하고, 폭탄 잔해를 입에 물고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그때 제가 사라예보전쟁의 상처를 건드렸는지 그곳의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그때부터 줄곧 사라예보축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저한테 개막식 예술총감독을 맡겼고, 2014년에는 우리나라를 주빈국으로 초청할 만큼 나인드래건헤즈는 이제 사라예보축제에서 당당히 인정받고 있죠. 2004년에는 뉴질랜드에서도 행사를 열었어요. 그루지야전쟁 때는 그루지야를 방문해 국제 네트워크를 구성해 아티세트리움(Artisetrium)이라는 국제현대미술전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후타오샤 호랑이바위 위에서 부르는 노래

앞으로 나인드래건헤즈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10월에 스위스에서 행사가 열립니다. 15개국에서 24명의 작가가 참석할 예정인데, 개인작품 발표보다 토론 형식으로 심포지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인드래건헤즈는 앞으로도 이처럼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곳을 돌며 행사를 계속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코카서스 산맥 일대를 돌아보려 합니다. 물론 사라예보축제에도 계속 참석하겠죠. 올 연말에는 ‘극지 노마딕 레지던시’에 응모해 남극 세종기지에서 30일간 ‘과학과 예술’이라는 콘셉트로 현지 과학자와 함께 새로운 예술활동을 펼치려는 구상을 하고 있어요.”

산허리를 하나 더 돌아 나가자 오늘의 목적지인 티나커잔이 보인다. 길은 티나커잔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티나커잔에도 역시 한국 사람들이 벽 여기저기에 흔적을 참 많이도 붙여놓았다.

후타오샤에 와서도 진샤장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직접 물가로 내려가서 진샤장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진샤장 가의 중후타오샤로 가야 한단다. 일행 대부분은 그냥 티나커잔에서 쉬겠다고 한다. 박 선생은 이번 행사의 기획자로서 일행들을 돌봐야 하기에 남고, 일곱 명만이 가이드를 따라 중후타오샤로 향한다. 잠깐이면 도착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끝도 없다.

드디어 물가에 도착해 걸어온 길 위쪽을 쳐다보았더니 티나커잔 앞 도로와 이어지는 다리가 저 멀리 하늘 위에 걸린 듯하고, 그 밑으로 폭포수가 힘차게 쏟아져 내린다. 그 절경에 저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잠시 뒤엔 그 높은 곳까지 또다시 올라가야 한다.

가까이서 본 진샤장은 위에서 예상하던 것 이상으로 무섭게 요동치며 울부짖는다. 위에서 볼 때는 진샤장에서 래프팅을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도저히 진샤장을 타고 내려가다가는 목숨 부지도 어려울 듯하다. 강가에 큰 바위 하나가 진샤장을 노려보는 듯 서 있다. 바로 진샤장을 건너뛰려고 호랑이가 도약한 바위란다. 진샤장의 요란한 굉음에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가 더해진 듯하다. 잠시 호랑이바위 위에서 임솔내 시인이 어제 오늘 걸으며 작시했다는 <호도협>을 읊조렸다.

“천만년 고도 위에

네발 달린 신의 잔등 노새 위에 올랐었네

조로소도 협곡길은 우리네 인생길

호랑이의 울부짖음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 품에 누울지니

그 품안에 노닐지니”


이제 여정을 계속하면서 이 시에 이병욱 선생이 곡을 붙이게 된다. 그렇다면 티베트에서 네팔로 내려가는 협곡에서는 이 ‘호도협’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게 되리라.

다시 포효하는 강물을 바라본다. 호랑이와 진샤장이 어울려 외쳐대는 소리에 넋을 잃고 자리를 뜰 줄 모르는데, 가이드가 걸음을 재촉한다. 그래, 이제는 다시 또 다른 세계로 가야 한다. 다음 행선지는 샹그릴라다. 제임스 힐튼이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이상향으로 묘사한 곳이다. 가자! 샹그릴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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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호 (2011.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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