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현대미술 10대 작가 ⑧ >> 쩡판즈, 가면 쓴 작가의 삶과 예술 

그는 마치 가면을 바꿔 쓰듯 옛것을 버리고
10년마다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갔다 

파리 = 심은록 월간중앙 통신원

▎쩡판즈가 자신의 초기 작품 ‘병원’ 연작을 배경으로 서 있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만 해도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하고 손가락질했다. 이제 그는 생존한 현대작가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가가 됐다. Photo: SIM EunLog.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은 미국 갤러리스트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sian)이다. 미다스의 손을 가진 그는 제프 쿤스, 대미언 허스트, 리처드 프린스 등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대작가를 발굴하고 키워냈다. 가고시안 갤러리에 속한 작가는 세계적으로 잘나가는 작가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다. 그는 세계 주요 도시 곳곳에 대기업 형태의 갤러리를 두었으며, 아시아에서는 올해 초 홍콩에 갤러리를 개관했다. 현대미술의 거대 시장으로 급속히 떠오르는 중국을 겨냥했다고 보인다. 홍콩의 이 가고시안 갤러리(Gagosian Gallery in Hong Kong)에서, 쩡판즈(曾梵志)의 전시가 9월 24일부터 11월 5일까지 열린다. 쩡판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10대 작가 중 한 명으로, 생존작가로는 유일한 아시아 작가다.

가면 이전 시기-고기와 군중

중국 문화대혁명이 시작되기 1년 전인 1964년, 쩡판즈는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인쇄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는 문화혁명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당시 초등학생이 착용한 붉은 스카프는 마오쩌둥(毛澤東)을 향한 충성심을 상징했다. 그 스카프를 착용한 학생은 모범생으로 대우받았다. 쩡판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다른 학생들은 모두 붉은 스카프를 받았지만 그 혼자 스카프를 받지 못했다. 그의 담임선생님은 어린 쩡판즈의 ‘눈’에서 불온한 사상이 보인다며 비판했다고 한다. 쩡판즈는 “내가 겉보기에는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 듯했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의심했다”며 “선생님의 말이 맞았다”고 인정했다. 그럼에도 어린 시절 붉은 스카프를 받지 못해 느낀 열등감과 고통은 이후 그의 작품에 반영됐다.

붉은 스카프를 받지 못하고 낙오자처럼 자란 쩡판즈는 1986년 후베이 미술학교(Hubei Academy of Fine Art) 회화과에 입학해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활발히 활동하며 재능을 발휘했다. 독일 신표현주의 작가 작품에 매료돼 이들의 방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화폭에 재현했다. 1991년에는 후베이 학교 졸업작품으로 ‘병원’ 연작을 그려 주목받았다. 전체적으로 암울한 톤의 이 작품에서 병실·수술실·대기실을 비롯한 병원의 모습이 표현주의적으로 묘사됐다. 특히 거친 터치와 등장인물의 윤곽선이 두드러졌다. 몸에 비해 큰 손과 얼굴, 얼굴에 비해 큰 눈과 진하고 검은 눈동자가 의도적으로 과장됐다.


▎‘병원’ 연작에서 이미 ‘마스크’(가면·mask)의 전조가 될 ‘마스크’(의료팀이 쓰고 있는 마스크)가 보인다. Vue in situ de l’exposition Zeng Fanzhi à Gagosian Gallery Hong Kong, 24. 09.–05. 11. 2011. Photo: SIM EunLog. Courtesy Gagosian Gallery.

쩡판즈는 “병원 옆에 있던 집에 화장실이 없어 매일 병원 화장실을 이용했다”며 “그때 병원에서 본 장면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무표정한 의사, 겁에 질린 환자, 신음 소리, 상처처럼 매일 봐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불안한 병원 풍경과 작가 가족의 가난한 삶이 ‘병원’ 연작에서 나타난다. 학교 졸업 후 쩡판즈는 고향에 있는 광고회사에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1990년대 초반에 쩡판즈는 시뻘건 날고기 덩어리와 그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고기’ 연작에서도 그의 생활 환경이 드러났다. 더운 여름, 그가 정육점을 지날 때 냉동된 고기 위에 누워서 시원하게 잠자는 노동자들을 보며, 상반된 기묘한 감정이 생겨난다. “그 당시 나는 배가 고팠기에 한편으로는 붉은 고기가 먹고 싶다는 생각,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고기의 피로 얼룩져가는 사람들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이후 내가 작품에서 붉은색을 많이 쓰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느낌이 나를 매혹했기 때문이다.”

‘고기’ 연작은 독일 표현주의와 영국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영향을 받아 작품에 사실적이면서 동시에 심리적 묘사가 나타난다. 정육점 노동자들이 깔고 누워 있는 고깃덩어리 혹은 정육점에 매달려 있는 고깃덩어리와 사람이 다를 바 없이 표현된다. 마치 고깃덩어리의 집합이 사람인 듯하다.

중국 후베이 미술관에서 개최된 ‘쩡판즈 개인전’에 ‘고기’ 연작이 출품되자 작품의 충격적인 이미지에 놀란 일부 관람객이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림 속의 붉은색에 혐오감을 느꼈다고 한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다른 어느 색보다 의미가 각별하고 친숙하다. 국기, 건물 색, 결혼식 예복, 명절과 행사용 장식을 비롯한 주요한 곳에 붉은색이 들어간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행운을 불러오고, 불행을 막아주고, 부귀와 태양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색깔이다. 그러나 쩡판즈의 붉은색은 화려하고 아름답다기보다는, 치열하고 본능적인 생명력과 삶의 상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가면 시기-개인과 도시

1993년 29세였던 쩡판즈는 베이징 땅을 밟았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좀 더 진지하게 작품활동을 하려고 베이징에 왔다. 내 고향 우한에서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에는 내가 미쳤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쩡판즈는 거대 도시 베이징에서는 그의 예술이 좀 더 이해받고 깊은 예술적 교감을 나누게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20세기 급변하는 중국 역사의 치열한 현장이자 급속한 경제성장의 심장이었던 베이징에서, 그는 변화와 부조리, 허영과 가식을 느꼈고, 참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려운 상황에 낙담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에 중국이 빠르게 변하면서 중국인이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 쩡판즈는 “도시 사람들은 멋있게 보이려고 외모를 바꾸지만,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작가는 도시 속의 이질감과 고독, 혼란과 슬픔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고 ‘가면’ 연작이 탄생했다.


▎고기’ 연작 중 하나로 고기와 사람이 같은 스타일로 재현됐다. Vue in situ de l’exposition Zeng Fanzhi à Gagosian Gallery Hong Kong, 24. 09.–05. 11. 2011. Photo: SIM EunLog. Courtesy Gagosian Gallery.

‘가면’ 연작에서 등장인물은 도시인처럼 잘 입었으나 머리와 손은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커서 우스꽝스럽다. 깊이 없는 단색으로 처리돼 배경이 사라진 화면에서는 인물이 부각된다. 이 인물은 풍선처럼 공중에 떠 있거나, 어딘가에서 불쑥 솟아난 듯하다. 작가는 현실감 없는 이런 인물의 부유성을 줄이고자 그림자를 그렸다. 그런데 이 그림자를 자세히 보면 같은 화면에서 그림자 하나는 남쪽으로, 또 다른 그림자는 북쪽으로 그늘져 있어, 태양이 두 개 이상 있음을 암시한다. 인물들이 쓴 가면은 얼굴색과 확실히 구분되는 흰색이지만 얼굴에 이식된 듯 완벽하게 밀착돼 있어, 영원히 가면을 벗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쩡판즈가 우한의 시골에서 그렸던 ‘병원’ 연작이나 ‘고기’ 연작에는 사람과 사물이 가득하고, 이들이 서로 얽히고 섞이며 집단주의·전체주의 양상이 나타난다. 반면에 그가 베이징에서 그린 ‘가면’ 연작에서는 등장인물이 독립적이다. 시골의 정서와 비슷하게 사람과 사물이 뒤섞였던 화폭은 도시의 정서처럼 차갑고 싸늘해진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가면을 씌우기 전에는 화폭의 강렬한 분위기에 만족해 등장인물의 내면세계에 관해 생각지 않았다. 그러나 가면이 씌워지자 가면 뒤에 감춰진 인간의 모습이 불현듯 궁금해지고, 미세한 암시를 통해서라도 그의 감정을 읽고 싶어졌다. 시골 사람은 자신의 삶과 아픔을 드러내 보이지만, ‘가면’ 연작에 등장하는 세련된 도시 인물은 그의 고달픈 삶을 가면 뒤에 감춘 후 위세를 부린다.

1997년부터 ‘가면’ 연작이 좀 더 밝아지고, 배경에 다양한 풍경이 등장했다. 등장인물도 좀 더 안정되어 보이고, ‘가면’ 연작 초기에 나타났던,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손등의 작은 뱀 같은 핏줄도 실지렁이처럼 부드러워졌다. 베이징에 이주한 지 5년이 지났을 때, 30대였던 쩡판즈가 중국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알려졌다. 그는 어느덧 도시생활에 익숙해졌다. 1994년부터 7년 동안 그렸던 ‘가면’ 연작이 끝난 후에, 2000년 초부터는 작품에서 가면이 드물게 등장했다.

가면 후-자연으로

‘가면’ 연작에서 관람객의 시선을 가장 끄는 부분은 몸과 얼굴에 비해 큰 입과 눈, 손이다. 인물의 입은 인공적인 웃음을 짖는다. 비정상적으로 큰 눈은 더 이상 마음 읽기가 가능한 창(窓)이 아니다. 하얀 가면의 분위기와는 다른, 살아 움직이는 듯한 거친 붉은 손만이 진실을 말하는 듯하다. 이런 손을 보면 가면 뒤 얼굴이 작가의 초기 표현주의 스타일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가면’ 연작은 쩡판즈를 세계적인 유명 작가로 만들었다. Vue in situ de l’exposition Zeng Fanzhi à Gagosian Gallery Hong Kong, 24. 09.–05. 11. 2011. Photo: SIM EunLog. Courtesy Gagosian Gallery.
그런데 가면을 벗었을 때 반전이 생긴다. 가면 뒤 얼굴이 가면의 얼굴 모습과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히려 가면 뒤 실제 얼굴이 더 냉랭하고 무표정하다. ‘가면’ 연작에서 진리를 말한다고 여겼던 ‘손’이 이런 혼란을 야기했다. 이전까지 관람객은 개인과 외부 세계 사이 ‘단절’이 가면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가면을 벗자 가면보다 더 차가운 얼굴이 드러나 단절이 더욱 깊어졌다. 가면 덕분에 오히려 개인과 외부 세계 사이 관계 맺기가 가능했다는 ‘페르소나(persona:가면, 사회적 역할기능)의 역전’이 발생했다.

가면을 벗어던진 후 쩡판즈는 다양한 스타일의 ‘인물 초상’, ‘풍경’ 연작, 조각을 비롯한 새로운 조형세계를 보여줬다. 회화에서는 해체적인 카오스 선이 등장했다. 화폭 전체에 무질서하게 난무하는 불규칙한 짧은 선분이 이미 완성된 인물 혹은 풍경을 망쳤다. 이런 카오스적인 선은 또 다른 가면의 연속처럼 정체성을 흔들었다. 작가는 새로운 선을 이렇게 설명했다. “붓 두 개로 그림을 그리는데, 붓 하나가 창조를 하면, 또 다른 붓이 이를 해체한다. […] 나 자신을 묶어두는 일을 싫어한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려고 카오스적인 선을 사용했다.” 구상적인 형상이 비논리적인 선에 의해 무너지면서, 추상적인 자유로움이 나타났다. 카오스적인 선은 인간·동물·사물·자연의 경계를 거리낌없이 오가며 그 경계를 해체했다.

쩡판즈는 회화에서처럼 조각에서 한 가지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다양한 유형의 작품을 보여줬다. 지난해 중국 상하이에 있는 록번드 미술관(Rockbund Art Museum)에서 열린 전시에서 그의 조각 작품은 ‘부재’와 ‘또 다른 가면’을 떠올리게 했다. 우선 ‘부재’와 관련해 넓은 전시 공간에 매머드의 긴 상아 두 개가 공중에 떠 있었다. 커다란 상아 두 개를 가진 매머드가 살아 있는데, 마치 우리 눈에만 매머드의 거대한 몸이 보이지 않는 듯 그렇게 교묘하게 설치됐다. 그렇게 멸종된 매머드의 부재, 거대 신화의 부재를 재현했다.


▎쩡판즈가 그린 후기 인물 초상 가운데 하나인 ‘작가 연작, 파블로 피카소’. Vue in situ de l’exposition Zeng Fanzhi à Gagosian Gallery Hong Kong, 24. 09.–05. 11. 2011. Photo: SIM EunLog. Courtesy Gagosian Gallery.

또 다른 조각작품은 그의 회화 ‘가면’ 연작을 연상시켰다. 대리석으로 만든 ‘속죄양’과 ‘천 아래 가려진 동정녀 마리아’(이하 ‘마리아’)는 동상에 천을 덮어놓은 듯했다. 그런데 이 천 자체도 대리석이라 결국 영원히 벗길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의 가면이었다. 상하이 록번드 미술관과 그 부근에 있는 유니언 성당(Union Church)에서 쩡판즈의 전시가 동시에 열렸다. ‘마리아’는 이 성당에 전시됐다. 이 작품이 성당에 전시된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 조각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두 팔로 안고 비탄에 잠긴 전형적인 형태의 ‘피에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마리아’ 조각은 들춰낼 수 없는 대리석 천으로 덮어놓아, 기독교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천 아래에서 한 여성이 한 남성과 입맞춤을 하는 듯 보일 수 있다. 작가는 고의적으로 혼돈을 일으켰다. 이런 형태의 조각을 가리키는 이름은 보통 ‘피에타’인데, 이 작품의 제목은 ‘천 아래 가려진 처녀(동정녀) 마리아’다. 작가는 조각의 이름에서도 고의적으로 야릇한 뉘앙스를 줬다.

또 다른 가면으로

쩡판즈는 ‘가면’ 연작에서도 이같이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작품을 그렸다.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의 구조를 그대로 빌려 썼지만, 성서의 인물(예수와 12제자)을 붉은 스카프를 착용한 그의 전형적인 가면 캐릭터로 대체했다(‘최후의 만찬’, 2002). 쩡판즈의 ‘최후의 만찬’은 문화혁명을 비판하는 듯하지만, 종교가 문화혁명이기도 하다는 양의적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는 회화에서는 가면을 벗었지만, 조각에서 또 다른 종류의 가면을 썼다. “중국적 정치적 팝아트와 냉소적 사실주의”가 아닌 “세계적 차원의 종교적 팝아트와 냉소적 사실주의”를 말했다.

쩡판즈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고수하며 한 스타일에 머물지 않고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작가다. 중국의 ‘아방가르드 4대 작가’로 꼽히는 웨민쥔(岳敏君), 장샤오강(張曉剛), 왕광이(王剛義), 팡리쥔(方力鈞)은 다음 작품에서 자신들의 대표적인 인물 캐릭터를 자체 복사한다. 웨민쥔의 파안대소하는 인물들, 중국의 유명 화가 장샤오강의 빛바랜 가족 초상, 왕광이의 ‘대(大)비판’ 연작, 팡리쥔의 ‘대머리 건달’ 연작이다.

쩡판즈도 가면작가로 각인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병원’ 연작이 주목을 받자 ‘고기’ 연작으로 주제를 바꾸고, ‘고기’ 연작이 관심을 끌자, 다시 ‘가면’ 연작으로 바꾸었다. 전 세계적으로 ‘가면’ 연작이 알려지며 가장 높은 호응을 얻을 때 그는 과감하게 가면을 벗었다.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초상’ 연작과 ‘풍경’ 연작, 조각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은 10년마다 너무 달라졌고, 그때마다 과거를 부정해야 했다”고 쩡판즈는 말했다. 그는 10년마다 정체성의 변화를 겪으며 가면을 바꿔 쓰듯이 옛것을 버리고 새 정체성을 취해야 했다고 한다. 쩡판즈의 작품은, 고대 라틴어 개념인 ‘페르소나’의 변천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 낱말은 처음에는 고대 그리스어의 번역으로 ‘가면’을 뜻했고, 이어 로마시대에는 ‘사회적 역할’을 의미했다. 이제는 영어의 ‘personality’(인격)와 ‘person’(사람)으로 발전돼 통용된다. 집합적이고 감성적인 정체성(‘병원’ ‘고기’ 연작)이, 개인적이고 이성적이며 도시적으로 변하면서 개인적 감성이 가려지고, 사회적 역할에 의한 통제가 가면으로 재현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면’ 자체가 사람의 고유한 인격이 되고 본질이 되기에, 가면의 존재 유무에 상관없이 인간은 사회적 페르소나로 다시 태어난다.


▎쩡판즈(오른쪽)와 필자. 뒤에 그의 유명한 ‘풍경’ 연작이 있다. 카오스적인 선이 화면을 지배한다. Photo: SIM EunLog.

■ 서양의 시각에서 본 쩡판즈

쩡판즈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비싼 현대작가다. 그만큼 전 세계에서 많은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를 확보했다. 프랑스에서도 쩡판즈에 보내는 경의는 남다르다. 쩡판즈를 프랑스 미술관에 처음 초대한 사람은 로랑 헤기(Lorand Hegyi)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장이다. 그는 일찍부터 아시아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진 미술 비평가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 서구에서는 동양 작가인 쩡판즈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 물어봤다.

2007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은 왜 처음으로 쩡판즈의 개인전을 열었나요?

“생테티엔 현대미술관은 오래전부터 극동아시아, 특히 한국·중국과 일본 현대 예술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지금까지 김수자·이수경·최대진·한명옥·권인숙·한순자·박애희·이슬기·성낙희·노상균·김현수·유혜숙·김오안·김희석·천성명, 그리고 히라키 사와, 게이 다케무라, 나카니시 나쓰유키, 마모루 츠카다, 시게루 반을 비롯한 많은 수의 극동아시아 창작자를 초대해 기획단체전을 열었습니다.

개인전 부문에서는 이미 뛰어난 작품으로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창작자인 이우환(2005년), 박서보(2006년), 얀 페이밍(2006년), 정상화(2011년) 씨를 초대했습니다. 한순자(2007년), 황영성(2007년) 작가와 같이 일관적으로 작품을 그렸지만, 프랑스 미술관에 전시가 없었던 작가들도 규칙적으로 초대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작가 쩡판즈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중국의 새로운 역사와 현대정치의 장에서 주체적으로 상황을 반영하는 작품을 만듭니다. 동시에 그는 불합리하고 연극적인 요소, 자연의 낭만적 비전과 시적 비전을 제공합니다.”

쩡판즈의 예술을 서구예술과 비교하면 어떤 점이 특별히 중국적인가요?

“쩡판즈의 비전에 설득당했습니다. 그의 작품의 이국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는 영화와 TV 소비사회가 조작하는 시뮬라크룸(모사물), 꿈, 욕망의 세계를 반영합니다. 현대적인 탁월한 표현으로 이 같은 복잡성을 잘 드러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전형적으로 중국적이며 현대적이고, 현대 중국사회 문화의 대변동을 잘 반영합니다. 동시에 쩡판즈는 미국 추상주의 전통, 특히 ‘추상표현주의’ 시대와 대화하고, 허구·가상·상상인 세계의 창조적 요소와 위에서 언급한 회화적 방법을 섞습니다.”

쩡판즈의 ‘가면’ 연작에서 ‘가면’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나중에 그가 ‘가면’을 벗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작가는 그의 회화 초창기에 가면이라는 회화적 모티프를 사용했는데, 이는 서양미술의 여러 시기에 가면이 스스로 감추는 다양한 메타포로 사용됐던 것과 비슷합니다. 작가는 여러 다른 체제의 권력과 개인의 모호한 양면성을 가면을 통해, 감춰진 정치·사회·윤리적 현실을 표출했다고 봅니다. 이처럼 예술가들은 개인적으로나 구체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작업 지속이 가능합니다. 일종의 자기 방어적 형태로 자신의 의견을 공식화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가면은 프랑스의 화가 와토(Watteau, 1684~1721년)에서 형이상학적 회화(Pittura Metafisica)나 독일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또 매너리즘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작가들 자신의 오랜 메타포였습니다. 예술가들은 그들이 이해하는 인간을 보여주려고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를 가졌던 광대 역할의 양면성을 추구하며 가면이라는 모티프를 사용했습니다. 가면은 참된 예술가의 운명과 사명이 모험·위험·무력함과 어울려야 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지시 기능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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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호 (201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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