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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인터뷰 - 김병만의 끝나지 않은 도전 

‘도시의 원시인’ 유약한 ‘차도남’을 비웃다

슬랩스틱의 진수 보여준 개그콘서트 ‘달인’ 마지막 방송…
눈물의 피겨 무대 이어 ‘정글의 법칙’서 원시의 삶을 놀랍게 재생하는 이 남자! 

김병만은 요즘 방송가에서 확실히 잘 나가는 개그맨이다. 최고 대우를 받고 각 방송국의 예능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그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재주를 가졌다. 웃겼다가 울렸다가 자유자재다. 동시에 그는 수준급 배우다. 각본과 기획을 뛰어넘는 뭔가를 전달한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36년 인생을 송두리째 쏟아넣으니 스토리가 된다. ‘달인’에서는 능청스러운 연기와 묘기에 가까운 기술로 시청자들을 감탄시키더니 <키스 앤 크라이>에서는 노력하는 인간이란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그가 이번에는 정글로 뛰어들었다. 바나나 잎에 빗물을 받아먹고, 칼로 물고기를 사냥한다. 방영 초기인데도 사람들은 그의 신들린 듯한 연기에 푹 빠져간다. <월간중앙>이 김병만의 미스터리한(?) 세계를 탐험했다.

“‘달인을 만나다’의 류담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16년 동안 외줄을 타오신 외줄타기의 달인 낙상 김병만 선생을 모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외줄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남자는 줄을 잘 타야 돼. 줄 잘못 타면 쭉쭉 미끄러져.”

무대가 밝아진다. 핀 조명이 세 사람을 비추고 무대 위에 설치된 외줄에 앉은 남자. 그는 달인이다. 쇼가 시작됐다. 불안하게 외줄에 몸을 싣는다. 시청자는 실소한다. 어이없는 상황설정에 천연덕스러운 연기가 겹치면 웃음이 터진다. 시청자는 경악한다.

‘저걸 어떻게?’ 하면서 가슴을 졸인다. 그러나 기대대로 그는 해낸다. 시청자는 감동한다. 언뜻 위험해 보이지만 그가 반드시 해냈으면 하는 마음에 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시청자는 열광한다. 그가 외줄의 끝에서 당당히 내려올 때 모두가 박수를 보낸다.


그가 이 5분을 위해 수천 번 외줄에 올랐음을 알기 때문이다. 시청자는 용서한다. 달인이 조금 못해도, 한 번쯤 넘어지고 실패해도 너그럽다. 그 실패 덕분에 지금의 쇼가 가능함을 익히 아는 까닭이다.

김병만(36). 그는 그렇게 지난 4년간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다. 3m에 육박하는 뱀을 목에 감았고, 어떤 날에는 물 속에서 라면을 먹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도 고추냉이를 케첩인 양 먹었고, 맨몸으로 얼음 위를 걸었다. 매주 다른 이름의 달인이 되어 무대에 섰다. 횟수만 260번. 혹자는 “가학적인 몸 개그”일 뿐이라 했고 또 어떤 이는 “슬랩스틱의 진화”,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라고 했다. 어떤 평가가 더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런 비난과 칭찬을 넘어 김병만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웃기는 개그맨으로, 고난을 이겨낸 성공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 11월 9일. 이날은 김병만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날이 됐다. 정확히 3년 11개월 동안 계속해온 KBS 개그콘서트 ‘달인’ 코너의 마지막 녹화가 진행된 날이기 때문이다. 대기실 문을 열고 늘 입던 트레이닝복 차림의 그가 들어섰다. 오늘 녹화에 쓸 자전거를 들고서다. 바퀴가 하나뿐이다. 최근 해외에서 촬영한 프로그램 탓인지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 약간 야윈 듯한 얼굴이 안쓰러워 보였다. TV를 통해 안면이라도 없었다면 연예인이라곤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평범함이 그의 특징이다. 두툼하고 거친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는 그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다. 그 손길에 마치 앞으로 보여줄 게 더 많다는 확신이 전해져 오는 듯했다. 158.7cm의 작은 키. 그러나 특유의 자신감 때문인지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거인이다.

‘달인’을 드디어 끝내시네요. 대사처럼 16년은 하실 줄 알았는데. 어떤 기분이 드나요?

“아쉽지만 지금 이때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동료나 후배, 개그콘서트 관계자도 같은 생각을 할 거라고 봐요. 지금 출연하고 있는 다른 프로그램도 있고 소재도 고갈되던 터라 조만간 정리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죠. 저 스스로도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가 됐다고 판단했고요. 그렇다고 개그콘서트 그만두는 건 아니니 오해 마세요. 새 코너 준비해서 곧 돌아올게요.”


▎외발 자전거를 타고 포즈를 취한 김병만.

‘달인’은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코너였잖아요?

“물론이죠. 생각처럼 잘 안될 때도 있고. 근데 그거 아세요? 진짜 힘들 때는 몸이 힘들거나 다칠 때가 아니에요. 반응이 없을 때죠.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나갔는데 생각만큼 호응이 없으면 그게 제일 서운하더라고요. 육체적으로 힘든 건 금방 잊혀져요. 그동안 250회 정도를 한 것 같은데 저도 정확한 숫자는 몰라요.(웃음) 달인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어려움이 다 있어요. 외줄타기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일단 하루 이틀 연습해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지난해 추석 특집으로 <달인쇼>를 했었는데 기억나세요? 그때 일곱 개를 연속으로 했는데 아마 그 <달인쇼>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에요.”

2010년 9월 방영한 특집 ‘달인쇼’는 추석을 맞아 가족 단위로 TV 앞에 모인 모든 국민에게 개그맨 김병만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김병만은 개그콘서트에서 도전한 여러 달인의 모습 중 ‘추위를 못 느끼는 달인’ ‘흡입의 달인’ ‘잠수의 달인’ 등 베스트 일곱 가지를 골라 연속으로 시청자에게 선보였다. 당시 ‘달인쇼’는 모든 방송사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 중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피겨 요정 울린 달인의 비법 ‘땀’

김병만씨의 개그 코드에 대해 여러 이론적인 평가가 있는데 의식하시나요?

“그런 것까지 고민하지는 않아요.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저한테 맞아요. 예를 들면 오늘은 외발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잖아요? 그러면 잘 탈 때까지 연습해요. 그냥 그뿐이에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시청자 분들이 ‘아 저걸 무대에서 하기까지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까?’ 하고 그 과정을 많이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요. ‘기껏해야 3분에서 5분인데 땀이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시고 그 진정성을 인정해주시니까 저는 마냥 행복하죠. 그리고 다른 개그맨들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시청자들이 찾아주셨으니까 ‘더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래도 본인만의 장점이 있을 것 같아요.

“원래 성격이 뭐든 일단 해보는 성격이에요. 배울 때 ‘이분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인데 이분은 어떻게 이렇게 잘 타지?’하고 집중하면 어떤 급소가 있더라고요. 그런 걸 찾아내는 눈은 다른 사람보다 제가 조금 타고난 것 같아요.”

김병만은 결과가 아닌 과정을 더 인정받는 몇 안 되는 개그맨 중 한 사람이다. 마냥 재미있어서, 웃겨서 좋아하는 개그맨이 아니다. 그의 몸짓 하나하나에 누적된 노력과 연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람을 웃기는 일은 개그맨의 당연한 숙명과도 같다. 그러나 김병만은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선사한다. 놀라운 재주다. 김병만에 대한 KBS 이응진 PD의 평가도 이와 맞닿아있다.

“관객들은 코너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가 감당할 고통과 인내의 덩어리, 흘린 땀과 눈물덩어리가 자신들에게까지 굴러 떨어진다고 느낄 때 환호성과 박수를 보낼 것이고 나처럼 우는 사람도 나올 겁니다.”

실제로 김병만은 올해 초 많은 시청자와 관객을 울렸다. 연예인들이 피겨스케이팅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인 <김연아의 키스 앤 크라이>에 출연한 김병만은 연습 도중 발목 인대를 다쳐 진통제를 맞고 빙판 위에 섰다. 말 못할 고통을 참은 채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맞춰 연기를 선보였지만 실수가 많았다. 공연을 마친 후에는 결국 서 있지 못하고 무릎을 꿇은 채 심사평을 들어야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연아는 “점수를 떠나 내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았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가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하고 차가웠던 피겨 요정마저 울린 이유는 간단하다. 김연아는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나 큰 고통을 참아내고 이 무대에 서게 됐는지.

피겨 공연이 많은 분에게 감동을 줬는데?

“기억에 많이 남아요. 지금 생각하면 <키스 앤 크라이> 덕분에 <달인>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거기서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이 ‘달인도 그렇게 열심히 했겠구나’하며 격려해주셨거든요. 아픈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어차피 어렸을 때부터 까불고 돌아다녀서 성한 곳이 하나도 없어요.(웃음) 그래도 무대에 오르면 땀이 나야 제대로 한 것 같으니까 그냥 열심히 하는 거죠.”

도전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달인 역할은 없나요?

‘클라이밍의 달인’ 이런 걸 하려고 했었죠. 어디 올라가는 건 자신 있거든요. 그런데 세트 설치 문제가 생겨 접었어요. 기회가 되면 야외 버전으로 높은 나무에 올라가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이 역시 여러 제약이 있어서 못했죠. 참, 이번에 인도네시아 가서 40m 높이의 나무에 올라갔어요. 현지 부족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려고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지어놨는데 어떻게 생겼나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올라갔죠. 현지인들도 너무 신기해 했어요”

‘정글’에서 달인을 만나다

그는 최근 가장 ‘김병만스러운’, 그러나 가장 난처하고 어려운 장소에서 색다른 ‘달인’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자신의 이름을 딴 <김병만 정글의 법칙>을 시작했는데 이 프로그램의 화두는 ‘생존’이다. <정글의 법칙>은 그를 비롯해 류담, 리키김, 광희 등 출연자들이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는 오지에서 1주일 동안 생활하는 생존 버라이어티다. 현재 4회까지 방영됐는데 방송에서는 아프리카 나미비아의 악어섬으로 떠난 멤버들이 모기장으로 물고기를 잡고, 뱀과 애벌레를 구워먹는 등 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들의 눈물 나는 생존기가 화제를 모으며 <정글의 법칙>은 방송 3회 만에 시청률 10%를 넘어섰다. 최근 그는 시즌2인 인도네시아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시청자들이 정말 궁금해 합니다. 정말 제작진이 물도 먹을 것도 주지 않나요?

“(크게 웃으며) 솔직히 말할게요. 정말 죽기 직전까지 안 주다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줍니다. 안 그러면 진짜 다 죽어요. 그렇지만 먹을 거 다 먹고 그런 방송이 나오겠어요?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그건 안 되죠. 배가 고파야 본성이 나오거든요. 방송에 본성 나오지 않던가요? 정확히 안 죽을 만큼만 줘요. 정말 야박합니다.(웃음)”

인도네시아는 아프리카보다 나았나요?

“가기 전에 답사를 다녀온 카메라 감독님이 아프리카보다 열 배는 힘들 거라고 하셨거든요. 정확해요. 딱 열 배 힘들더라고요. 아프리카는 덥긴 해도 비가 안 오니까 어려움이 덜했는데 여기는 하루에 두세 번씩 비가 오니까요. 자다가도 비가 오니 대책이 안 서요. 나중에 촬영 끝나고 빠져 나올 때는 물이 허리 높이까지 차더라고요. 출연진도 힘들지만 진짜 달인은 카메라 감독님들이라고 생각해요. 한 분은 벌레 물린 데가 붓고 곪았는데 참고 계속 촬영하다가 결국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목발을 만들어 드렸는데 돌아올 때도 그 목발을 짚고 오셨어요. 벌레 때문에 잠을 못 자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정말 매력이 있어요. 왜 그런 마음 있잖아요. 싫은데 다시 가고 싶은.”

특히 새총으로 뱀 잡는 모습, 맨손으로 뿔닭을 잡은 모습이 충격적이었는데요.

“광희가 나무 위에 있는 뱀을 발견했는데 보니 나무 위를 계속 기어올라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새총으로 쐈죠. 잡고 나서 저도 깜짝 놀랐죠. 나중에 가죽을 벗겨보니까 척추에 맞은 것 같았어요. 뿔닭은 사람은 들어갈 수도 없는 빽빽한 넝쿨 밑에 살아요. 그런데 애들이 무슨 소리가 들린다기에 보니 뿔닭인 거에요. 미친 듯이 쫓아갔죠. 새총에 맞았는데도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서 넝쿨로 들어가더라고요. 뾰족한 가시넝쿨인데 얼마나 따갑겠어요. 근데 배가 고프니까, 잡아야 하니까 아무것도 안 보여요. 제정신이 아닌 거죠 뭐.”(웃음)

방송 보니까 다른 동료들은 너무 힘들어 하시는 것 같던데요.

“힘들죠. 사실 동네 냇가에 놀러 간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막상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적응하고 참을 수 밖에 없으니까 그게 제일 힘들었을 거에요. 게다가 엄청 위험하거든요. 안전 요원과 현지 가이드가 있다지만 사고는 순식간에 나요. 실제로 이번 인도네시아 촬영 때는 벼락을 맞은 나무가 숙소 바로 옆으로 쓰러졌어요. 계속 긴장하고 있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더하죠. 리키김은 정말 잘할 수 있겠다 싶어서 제가 추천했는데 그도 지치더라고요. 저도 체력적으로 진짜 힘들었어요. 화면에는 안 나왔는데 나무를 끌고 가다 몇 번이나 다리가 풀려서 쓰러졌어요. 술 취해서 주저앉는 것처럼.”

‘달인’이 ‘초식남’에게 던지는 메시지

제작진과 갈등도 있었다던데?

“처음 제가 생각한 건 인터뷰 없이 다큐멘터리 느낌으로 진행하는 거였어요. 어느 공간에 내버려두고 관찰카메라를 설치하고, 이후에 독백 인터뷰를 추가하는 그런 형태였거든요. 그런데 하루에 인터뷰를 네댓 번이나 하는 거에요. 방송으로 볼 때야 짧게 보지만 찍을 때는 한 명당 30~40분씩 합니다. 시간이 빡빡하고, 우리는 집을 지어야 하는데 말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화가 났어요. 나중에는 제작진이 이해해줘서 잘 조율됐죠.”

<정글의 법칙>에서 그가 보여주는 모습은 단순히 웃음을 전달하는 엔터테이너 이상이다. ‘달인’ 때와 달라진 점이다. 그는 <정글의 법칙>을 통해 웃음보다 더 근원적인 인간의 욕망을 전달한다. 먹고자 하는 욕망,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가 도끼로 나무를 패서 집을 짓는 모습, 칼 하나로 아무렇지 않게 생선을 잡는 모습은 유약한 도시의 현대인들이 잃어가는 그 무언가를 자극한다. 덩치는 훨씬 커졌지만 전등 하나 갈아 끼울 줄 모르는, 못 한 번 박아본 적 없는 이른바 ‘초식남’이 대세인 시대에 TV 속 그의 모습은 남자의 향기가 풀풀 나는 매력남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모습은 ‘달인’ 때나 <정글의 법칙>이나 마찬가지다. 때론 우매해 보이는 혹은 너무 우직해서 똑 부러질 듯한 그만의 근성에 시청자들은 늘 박수를 보낸다.

시청률이 잘 나와서 기쁠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많이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왜 남자들은 한 번씩 그런 상상하잖아요. 저는 어릴 적에 ‘톰 소여의 모험’을 보고 정말 감동받았어요. 무인도에 혼자 뚝 떨어져서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런 걸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못했는데 제안이 들어왔을 때 너무 기뻤어요. 일단 결과도 좋은 것 같아 저도 기분 좋습니다. 그런데 제작진은 어떻게 그런 장소만 골라서 찾았는지 진짜 먹을 게 없는 장소에다 우릴 떨어뜨려 놔요. 제 생각으론 원주민도 굶어 죽을 곳인데.(웃음)”

애벌레도 구워 먹던데 맛은 어땠나요?

“나미비아에서 먹은 그건 진짜 흙 맛이에요. 흙 맛 아시죠? 그런데 이번에 인도네시아에 먹은 사구 벌레는 맛이 괜찮더라고요. 바구니 벌레라고도 하는데 사구 나무 속에 원주민들이 키우는 거래요. 그게 원주민들에겐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거든요. 보세요, 먹을 거 없는 곳이라는 게 증명되잖아요.(웃음) 아무튼 그래서 그 벌레를 불에 구워 살짝 껍질을 벗기고는 다시 바나나 잎에 싼 다음 쪄서 먹어봤죠. 담백하더라고요. 열다섯 마리 정도 먹었는데 제 입맛에 맞았어요.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짚단을 뒤지다 굼벵이나 애벌레가 나오면 프라이팬에 볶으라고 하셨거든요. 그때 그걸 먹으면 입 안에서 툭툭 터지고 진흙 맛 같은 게 났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 생각이 났죠.”

지는 게 죽기보다 싫은 남자

정글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은 어떤 게 있나요?

“진짜 필요한 게 없을 때는 정말 미쳐요. 예를 들면 냄비 같은 거죠. ‘바나나 잎을 묶어서 해볼까’, ‘대나무처럼 속이 빈 나무 찾아서 끓여볼까’ 별 생각을 다 했어요. 어쩌면 저렇게 하나 생각하시는데 아마 대부분의 남성분도 거기 떨어뜨려 놓으면 다 하실 거예요. 그 일을 대신 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안 하는 거지. 정말 못해서 안 하는 분은 거의 없을 겁니다. 군대에서도 다 하셨잖아요?(웃음) 안 하면 죽는데 누가 안 해요. 신기한 게 정글에 들어가면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마음이 편해져요. 인터넷도 전화기도 아무것도 없으니 더 그렇죠. 현지 가이드 중 한 명은 아내와 이혼하고 정글에 산 지 10년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의 강인함은 절대 타고난 것이 아니다. 김병만은 전북 완주의 벽촌에서 학교가 끝나면 손에 삽과 망치를 들어야 했던, 무너져가는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그에게 지금의 작은 시련과 고통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 내성을 길러줬다. 그리고 지금 그가 TV를 통해 보여주는 모습은 그 차가운 시련과 수많은 실패 속에 스스로 키우고 단련시킨 근성의 결정체다.

얼마 전 TV 토크쇼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보였는데요.

“어렸을 때 아버지랑은 거의 대화가 없었어요. 꽤 부유하셨던 할아버지가 재산의 절반을 큰아버지에게 물려주시고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고모 이렇게 세분께 나눠주셨어요. 아버지가 그 돈으로 ‘집 짓는다’, ‘양장점 한다’ 여러 가지 하셨지만 쉽게 말해 다 날렸죠. 그나마 산과 밭 조금 남았는데 그마저도 다 없어졌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집에 오면 일을 했어요. 망치질에 도끼질에 다시 태어나면 농촌에서 안 태어나겠다고 할 정도로 일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장작 패서 불 때는 집에 살았다면 이해하시겠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는 별로 원망하지도 않았어요. 학교 다니면서 빨리 졸업해서 우리 집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죠. 내가 유일한 아들이니까 그게 당연했어요. 요즘 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시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 거죠.”

개그맨이 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죠?

“1994년인가 그랬을 거에요.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데 당시 <스타 예감>이라고 요즘으로 치면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거기에 제 친구가 나오는 거예요. 학교 다닐 때는 제가 늘 친구들을 웃기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친구가 TV에 나오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래서 그때부터 방송연예과 시험을 치기 시작했어요. 다른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정말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떤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죠. 대학 시험은 자꾸 떨어지고 연극 무대에도 서봤지만 잘 안 됐어요. 바퀴벌레가 우글거리는 사글세 방에서 대여섯 명이 살면서 근근이 버텼죠.”


오디션 낙방에도 ‘달인’이셨네요.

“(웃음) 저도 꿈이 있으니까 오디션을 보는 데 분명히 100%를 준비해도 막상 그 자리에서는 20~30%도 안 나오는 거에요. 그러니 더 답답했죠. 꿈이 가까이 있는 것 같으니까 더 미칠 노릇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좌절도 했는데 뒤돌아보면 너무 먼 길을 온 거예요. 포기하기엔 너무 늦은 거죠. 고향에 있는 친구들한테는 죽기 전에 안 내려간다고 떵떵거리며 말했는데 속으로는 ‘아! 이제 오갈 데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벼랑에 섰다는 게 아마 그런 느낌일 거에요.

보통 그 정도로 상황이 나빠지면 극단적인 생각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자서전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를 보면 김병만 씨는 대처방식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런 생각 안 했다면 거짓말이죠. 솔직히 말해 죽는 게 안 무서웠으면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죽는 게 진짜 무서웠거든요. 근데 그러면 지는 거잖아요. ‘죽을 정신으로 뭘 못해’ 하고 생각한 거죠. 어딜 가든 마찬가지지만 윗사람이 자기한테 싫은 소리를 퍼부을 때마다 다 집어 치우고 나올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제가 그 사람한테 지는 거니까요. 그냥 그때마다 그걸 에너지로 삼은 것 같아요. ‘두고 봐. 두고 봐. 사람 잘못 봤어.’ 이를 갈았죠. 연기학원에서 ‘너는 키가 작아서 안돼’라고 말할 때도 두고 보라고 했죠. 당신이 날 잘못 봤으니까. 제가 <출발 드림팀>에서 더 악착같이 뛰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요.”

‘이수근쇼’에 배우 김병만으로 출연

서러웠던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겠네요.

“왜 가끔 사람들이 가장 서러웠던 때가 언제냐고 묻잖아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물으면 기억이 잘 안나요. 늘 서러웠나 봐요.(웃음) 제가 방송국 공채만 일곱 번 떨어졌어요. 마지막으로 떨어졌을 때가 2001년 KBS 공채일 거에요. 그때 수근이도 같이 떨어졌죠. 어찌나 서러운지 수근이랑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죠. 그러고 나서 수근이는 수련원 강사를 한다고 지방으로 내려갔어요. 급전이 필요해서 계약금 미리 받았나 봐요. 이듬해에 제가 17기 공채에 합격하고 나서 수근이를 찾아가 설득했죠. 진짜 아까운 친구였거든요. 그 때문에 수근이가 저보다 한 기수 밑이에요.”

이수근씨와는 원래 성격도 잘 맞나요?

“개그맨이 되기 전에 수근이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했고 저는 연극을 했죠. 그래서 각자 꿈도 달라요. 수근이는 꿈이 대한민국 최고의 MC가 되는 거고 저는 희극 배우가 되는 게 꿈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리 싸움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 당시 대방역 근처 옥탑방에 살았거든요. 소주 한 병에 치킨 한 마리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이수근이 하는 토크쇼에 배우 김병만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하자고. 수근이는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이제 제가 훌륭한 배우가 돼야죠.”

그럼 궁극적인 목표는 희극 배우인 건가요?

“그렇죠. 새해부터 SBS 특집극 촬영에 들어갑니다. 비록 미니시리즈는 아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어요. 지금 연기 지도를 도와주실 선생님까지 찾고 있어요. 대본만 받은 상태라 가슴이 두근두근하네요. 또 얼마 전에는 제가 활동했던 극단 ‘미학’의 정일성 선생님이 10년 만에 연락을 주셨어요. 바쁜 줄 알지만 저에게 딱 맞는 역할이 있는데 해보지 않겠느냐고요. 돈과 시간을 떠나서 무조건 한다고 말했죠. 사실 연극은 자기 공부거든요. 한 작품 할 때마다 업그레이드 되니까요. 창작극인데 마누라한테 맞고 사는 역할이에요.”(웃음)

그 즈음 매니저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한마디 한다. “오빠 리허설 준비하셔야 되는데.” 일순 마음이 급해졌다. 꼭 물어야 할 질문이 남았기 때문이다. 결혼이다. 그는 지난 9월 ‘1년 이상 교제한 여자친구가 있으며 내년 4월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시 자신보다 큰 여자친구의 키를 공개해 큰 웃음을 줬는데 막상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때요? 김병만 씨는 여성분들에게는 좀 살가운 편인가요?

“(손을 내저으며) 아유, 절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정반대죠. 엄청 무뚝뚝한 사람이에요. 말도 없고 주로 행동으로 표현하죠. <정글의 법칙> 보셔서 알겠지만 제가 친절하게 요목조목 설명하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썩은 사과랑 멀쩡한 사과 있으면 그냥 제가 썩은 거 먹고 멀쩡한 거는 남한테 주는 거죠.”

옆에서 듣고 있던 매니저가 거들고 나선다. “형은 ‘썩은 거는 내가 먹을 테니 멀쩡한 건 너 먹어’ 이런 말도 안 해요. 그러니 TV 화면에도 안 나오죠. 이번 방송도 보니까 생선 한 마리를 먹는데 병만이 형이 제일 큰 부분을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병만이 형은 동생들한테 몸통 다 주고 뼈 밖에 없는 머리만 먹었거든요.”

다시 김병만이 웃으며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이번 방송 때문에 깨달은 게 있죠. ‘아 설명을 잘해야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받는구나. 몸으로 움직이는 거 필요 없구나.’ 이번 인도네시아 촬영 때는 움막집을 지었는데 계속 비가 오니까 애들은 안 쪽에서 자고 저는 비가 튀기는 입구에서 잤거든요. 이런 건 꼭 방송에 나와야 되요.”(웃음)

여자친구 앞에서 바뀌는 사람도 있잖아요?

“스킨십도 하고 ‘어쨌어, 저쨌어?’ ‘어디 아파?’ 뭐 이렇게 하는 걸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그러질 못해요. 생각해보면 어머니께서 그런 걸 가르쳐 주지 않으신 것 같아요. 참 무뚝뚝하셨거든요. 어렸을 때 제가 울면 욕을 섞어서 왜 우느냐고 다그치셨거든요. 그러면서 말없이 챙겨주는 그런 스타일 있잖아요. 만약 저희 어머니가 유치원 교사였다면 좀 달라졌겠죠.”

여자친구가 부디 이해를 잘 해주셔야 할 텐데요.

“이벤트 같은 건 잘 못해도 ‘이 사람이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구나’ 그런 정도는 알아요. 그래서 외국 갔다 올 때 선물도 사주고 하죠. 대신 ‘짜자잔~’ 이런 건 닭살 돋아서 잘 못해요. ‘괜찮은지 한번 봐’ 뭐 이 정도? 술 한잔 먹으면 가끔 표현도 하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사랑한다는 말은 하셨어요?

“그건 아직….”

결혼이 코 앞인데 그 말도 아직 안 했다고요?

“도저히 부끄러워서. 요즘 어머니가 저한테 ‘아들 사랑해’ 이러세요. 아주 죽을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생일 케이크 준비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데도 미칠 것 같아요. 그래서 한 번은 생일 케이크를 차버릴 뻔 했다니까요. 부끄럼이 많아요. 그냥 말 없는 걸 좋아해요. 사실 제 생각에 말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말로 우주여행 갈 것 같으면 저는 한 다섯 번은 갔을 거에요. 명왕성이 제일 멀던데요?”(웃음)

“한국의 찰리 채플린? 한참 멀었죠”

그가 살아온 36년 인생을 가로지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책임감’이다. 어려운 형편에 가장의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묵묵히 그렇게 걸어왔다. 그래서 그는 말보다 행동이, 표현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더 어울리는 남자다. 동생들이 더운 날씨에 지쳐 쉴 때도 김병만은 몸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그 지나친 우직함 때문에 가끔 독선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조직을 위해 가장 많은 부분을 희생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다. 그리고 지금도 김병만은 시청자를 감동시켜야 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항상 잊지 않는다.

정글의 법칙>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네요.

“‘달인’ 때와는 달리 제가 더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실전이잖아요. 달인은 많은 사람이 옆에 있고, 외롭다는 생각이 안 드는데, 거기서는 어느 순간 갑자기 복받쳐 눈물이 나고 그래요. 말 그대로 자연과 싸움이잖아요. 물론 목숨 걸고 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스토리보다는 그림 위주로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얼마 전 인도네시아 촬영할 때는 제가 직접 카메라를 몸에 달고 움직이면서 찍어보았어요. 확인해보니 저는 앞만 보고 갔는데 누가 옆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방송에서 ‘100% 리얼’이란 없거든요. 있을 수 없죠. 방송에서 위험한 장면이 나와도 사실 현지 가이드를 통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 받고 촬영하거든요. 준비만 잘하면 ‘100%에 가까운 리얼’을 시청자들께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10년 뒤 김병만은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10년 뒤면 제 키가 2~3cm 줄어 있을 거에요. 사람들은 나이 먹으면 키가 줄어들잖아요. 남들은 죽으면 화장하고 매장하는데 전 사라져요. 결국 키가 0이 될 거니까.(웃음) 하나 확실한 것은 그때도 저는 개그맨일 거고, 누군가의 개그 코너를 만들고 있을 거고, 또 배우로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을 겁니다. 더 열심히 달리고 싶어요. 나중에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시상식 무대에 오를 때 많은 후배들 앞에서 박수를 받을 수 있는 개그맨으로 남고 싶어요. 찰리 채플린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공로상을 받으러 나왔을 때 모든 동료와 후배가 진심으로 기립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게 바로 대부다’라고요. 저도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은 거죠.”

이제까지 잘 걸어오셨으니 앞으로도 그러실 거란 생각이 드네요.

“이제껏 걸어왔으니 앞으로는 차를 타고….”

‘빵’ 터졌다. 그는 역시 끝까지 위트를 잃지 않는 개그맨이다. 천천히 서둘러서 가는 진짜 남자다.

201112호 (20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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