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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인물] 클린 인터넷 커뮤니티 ‘일워’ 운영자 이준행 

“똥밭으로 변한 인터넷, 이대로 놔둘 수 있나요?” 

김슬기 월간중앙 기자 rookie@joongang.co.kr /사진·지미연 기자
대기업 프로그래머 생활 접고 인터넷 보안관 자임하는 커뮤니티 개설…욕설·비방 난무하는 인터넷 세상에 향기 나는 꽃밭을 가꾸련다!

▎인터넷 세상의 정화를 표방하는 이준행 씨는 기술적으로 깨끗한 공간을 만들고, 사용자들의 성숙한 인터넷 문화를 조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클린 인터넷 커뮤니티 개설로 화제에 오른 인물이 있다. ‘일간워스트(이하 ‘일워’. www.ilwar.com)’ 운영자 이준행(29) 씨가 주인공이다. ‘인터넷 청정구역 만들기’를 선언하고 나선 이 커뮤니티가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이하 ‘일베’. www.ilbe.com)’와 비교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 더 큰 관심을 끌어모으는 듯하다.

그는 지난해에 언론사들의 선정적인 기사 제목 뽑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온라인 세상에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의 이런 행보는 사람들의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온갖 언어유희가 동원되는 과정에서 ‘오염된 낚시터’로 변질돼버린 인터넷 세상에 대한 반성을 불러왔다.

일베를 패러디해서 만들었다지만 커뮤니티 ‘일워’의 분위기는 정반대다. 이씨는 “우리 커뮤니티를 관통하는 기본정서는 너그러움”이라며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상대방을 향한 격려와 용서, 화해가 넘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일워에 올라오는 게시글들을 살펴보면 회원들끼리 서로 헐뜯거나 욕하는 내용이나 댓글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용자 간에 진지하게 토론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분위기가 눈에 띈다.

인터넷 클리닝 보안관 자임

이는 ‘일워’를 운영하는 이씨가 철저하게 게시판 필터링을 하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비방이나 욕설, 여성 혐오나 사회적 약자 폄하 등의 내용은 철저하게 걸러낸다. 이씨는 다른 커뮤니티에는 없는 소통 공간도 다채롭게 구성했다. ‘선행미담밭-착한 일 좋은 일 한 거 나눠요’ ‘도와줘-고민상담, 진로상담, 인생상담 따뜻하게 도와줘요’ ‘정치사회밭 -의견이 조금 달라도 경청하고 이야기하기’ 등 커뮤니티 이용자들의 따뜻한 소통을 전면에 내세운다.

운영자가 기술적으로 ‘깨끗한 공간’을 설계하고 나서자 사용자들도 ‘열린 토론을 지향하고 서로 욕하거나 싸우지 않는다’는 합의가 자리 잡은 셈이다. 일워에서는 좋은 글을 ‘풍작’이라고 부르는데,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다채로운 소통을 이끌어낸 글은 ‘대풍작’이라고 부르며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따로 모아둔다.

그는 일워를 운영하면서 ‘모두가 즐겁게 놀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고 했다. 지금의 인터넷은 익명성을 전제로 상대방에게 막말을 하거나 ‘나와 성향이 다른 남’을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일워에서는 ‘다양성’을 포용하자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네티즌들 사이에 인터넷 악성 댓글의 주 생산자로 지목되곤 했던 ‘초딩’(초등학생), ‘중딩(중학생)’ 등 10대 청소년들이 “그동안 인터넷에서 놀 공간이 없었다”며 일워를 찾아오는 발길이 늘어난다. 여성을 향한 일방적인 비방에 남성 커뮤니티 가입을 꺼리던 여성들과 인터넷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40~50대 중년층도 자녀의 도움을 받아 일워로 몰려든다. 이씨는 “비방과 공격 대신 대화와 격려가 있는 커뮤니티 문화가 다양한 세대, 연령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인터넷은 사회 전체를 반영하는 거울인 셈이잖아요. 사회가 양극화되면서 소통의 단절이 일어났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봐요. 일워에서 좋은 말을 쓰고 서로를 격려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이트에 가서 욕설을 하거나 비방을 하기 힘들듯이, 한두 사람의 노력이 아닌 여러 사람의 변화가 있다면 지금의 인터넷 문화도 더 나은 쪽으로 바뀔 수 있다고 봅니다.”

건전한 소통이 오가는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일워의 움직임은 이씨의 지난 행보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일워를 만들기전인 2013년 1월에는 ‘충격고로케(hot.coroke.net)’라는 언론 비판 사이트를 만들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충격’ ‘헉’ ‘경악’과 같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을 남발하는 언론사 온라인 사이트들의 순위를 매기는 사이트였다.

이씨가 이 사이트를 만든 계기가 있었다. ‘난소암에 걸린 한 여성 연예인이 자연임신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의 기사에 ‘자연 임신 안 돼…충격’이라는 제목이 붙은 걸 보고 나서다. “너무 화가 났어요. 저널리즘을 표방하는 언론사가 자극적인 단어만 골라서 쓰는 건 분명 잘못된 거잖아요. 구체적인 통계를 통해 ‘이게 언론사가 할 짓이냐’ 하고 보여주려는 목적에서 사이트를 만들었어요.”

“오염된 인터넷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돼”

그는 ‘충격’ ‘멘붕’ ‘입이 쩍’ ‘화들짝’ ‘몸매’ 등 언론사들이 온라인 기사 제목에 사용하는 주요 단어들을 뽑아 이들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론사의 순위를 매겼다. 1위를 차지한 언론사들에는 ‘최근 가장 충격 받은 언론사는 ○○○입니다’ ‘최근 가장 멘붕인 언론사는 ○○입니다’ ‘최근 가장 경악한 언론사는 ○○입니다’라는 문장을 만들어 거꾸로 비판했다. 언론사들이 남발하는 단어를 그들의 수식어로 바꾸어 조롱한 것이다.

충격고로케의 등장에 일반인들은 “통쾌하다” “속이 다 시원하다” 등의 반응을 보냈다. ‘클릭수’를 기반으로 광고 수익을 얻는 언론사들이 무비판적으로 선정적인 단어를 남발하는 것에 대해, 이씨가 최초로 ‘유머러스한’ 방법으로 경종을 울렸기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충격고로케는 ‘풍선효과’를 내고 말았다. 선정적인 단어를 쓰지 않던 언론사들마저도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기 시작했고, 순위권에 들지 못한 언론사들이 경쟁사를 이길 목적으로 노골적인 제목의 기사를 경쟁적으로 쏟아낸 것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인터넷을 지금처럼 계속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개인과 기업, 언론사 등 모든 사용자가 깨끗한 인터넷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포기했기 때문에 ‘정글’과 같은 인터넷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게 그의 견해다. 양극단으로 나뉘어 서로를 헐뜯고 비방하고,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게 된 책임이 모두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적어도 언론사라면 처음부터 선정적인 기사 제목을 달지 말고 자사의 기사 품위를 떨어뜨리는 욕설 댓글을 방치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클릭수가 곧 돈’인 인터넷 환경이 사람들의 싸움과 비방을 방관한 셈이죠. 포털 사이트들도 마찬가지예요. 설립 초반에 있던 깨끗한 인터넷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기능이 요즘에는 거의 사라졌어요. 개인도 책임이 있는 글을 쓰려하기 보다 인터넷을 욕설과 감정의 배출구로 사용하고 있고요. 모두가 방관하고 있지만, 지금의 인터넷을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신념이에요.”

개발자와 인터넷 사용자가 ‘함께 노력하는’ 사이트를 운영하겠다는 이씨, 그가 바꿔나갈 인터넷 세상에는 향기가 가득할 듯하다.

201403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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