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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 중국이 세계시장이라고? 벼랑으로 떠밀린 한국기업 

 

베이징=김태완 한국경제신문 특파원
첨단제품 시장에서도 중국기업 역전, 독주(獨走)…대기업도 삼성전자와 한·중 합작 현대차 빼놓곤 생존마저 불투명

▎2013년 9월 중국 상하이 자유무역지대 개설 직전 건설 노동자들이 안내 간판의 마무리 공사를 하고 있다. 중국의 유력 기업들은 이미 내수시장에서 한국 대기업을 추월하는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베이징 북동부 광순베이다제(廣順北大街)에 있는 까르푸왕징(望京)점. 2층에 있는 대형 전자제품 매장의 TV코너에는 중국 제품 일색이다. 외국산 브랜드로 한쪽에 도시바 제품이 구색을 갖추고 있지만 삼성, LG 제품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매장을 지키고 있는 종업원은 “소비자들이 TV는 외국산보다 중국산을 더 좋아하다 보니 외국산 TV가 팔리지 않는 데다 값도 비싸 아예 갖다 놓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까르푸를 나와 길을 건너면 롯데마트 왕징점이 있다. 손님으로 북적거리는 까르푸에 비해 눈에 띄게 한산한 분위기다. 까르푸와 롯데마트에 상품을 공급하는 한 상인은 “롯데마트의 판매량은 까르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시장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한때 프리미엄 브랜드로 위세를 떨치던 기업들마저 이제는 그저 그런 업체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소매시장에서는 중국기업에, 부품 및 중간재 시장에서는 일본·독일기업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매년 인사철에 해당하는 연말·연초에는 구조조정을 맞아 귀국 보따리를 싸는 주재원이 늘어나 한인 밀집 거주지역인 왕징에서는 임대료가 떨어진다는 하소연이 나올 정도다. 현지에서는 “삼성전자와 한·중 합작법인인 현대자동차를 제외하면 살아남을 회사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위기감이 조성되고 있다.

실제 한국산업연구원이 중국 내수 수입시장의 주요 국가별 점유율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한국 제품의 비중은 2007년 7.0%에서 2011년 5.5%로 추락했다. 미국은 9.2%에서 8.9%로 소폭 감소한 반면 독일은 오히려 7.7%에서 8.2%로 늘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중국 기업뿐 아니라 주요 해외 기업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한화솔라원의 모듈이 적용된 중국 쉬저우의 태양광발전소. 한화그룹의 태양광사업은 중국 현지에서 아직 이렇다 할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SK와 한화, 돈 되는 사업모델 못 찾아

중국 시장은 세계 최대의 소비시장으로 여전히 빠른 성장을 거듭한다. 중국의 ‘국무원발전연구중심’에 따르면 중국경제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평균 7.5%의 성장을 거둘 경우 2020년에는 10조 달러의 내수시장이 형성된다. 이는 지난해 EU의 소비시장 규모 10조3천억 달러와 맞먹는 수준이다. 수출이 이끄는 한국 경제로서는 중국시장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중국 시장을 겨냥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전자는 지난해 중국 평판TV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2%대로 10위를 달린다. 5년 전인 2009년의 5.6%에 비하면 점유율이 절반 이상 줄었다. 지난해에는 대형 OLED TV 등 첨단 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이며 마케팅을 강화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현지의 평가도 냉랭하다. <인민일보> 인민망에 따르면 업계에선 오히려 LG전자가 중국업체에 비해 기술개발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평가할 정도다. 한 관계자는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는 주기가 중국업체는 평균 45일이지만 LG전자는 4개월이나 된다”며 “시장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LG전자는 한때 중국시장에서 명성을 날렸다. 중국의 에어컨 시장을 휩쓸었고 2006년에는 초콜릿폰으로 휴대폰시장에도 LG열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지금은 개인용 에어컨시장에서 철수했고, 휴대폰시장에서도 1%대 시장점유율로 바닥을 긴다. 두산인프라코어도 중국 굴삭기 시장에서 2010년까지는 7년 이상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업체다.

그러나 2011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더니 지난해 4분기엔 시장점유율 7.3%로 7위까지 주저앉았다. 두산인프라코어는 2011년 10월 쑤저우에 연간 1만 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소형굴삭기 시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공장 완공 직후 굴삭기 시장이 급속히 쪼그라들면서 제대로 가동도 못하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더 힘겨운 싸움을 치른다. 국내 1위 업체인 이마트는 한때 27개였던 점포수가 지금은 16개로 줄었다. 매년 중국에서 수백억 원대의 적자를 내고 있어 철수 초읽기에 몰려 있는 상태다. 롯데마트는 아직 확장세지만 중국 언론으로부터 “아직 중국식 경영법을 찾지 못했다”는 혹평을 들을 정도로 실적 악화에 시달린다. 2010년 롯데마트는 2018년까지 300개의 매장을 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지난해 말 현재 점포수는 110개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새로 문을 연 매장은 7개에 불과할 정도다. 롯데마트는 올해도 중국에서 10여 개의 점포를 새로 열지만 적자가 큰 점포는 문을 닫을 계획이어서 전체 점포 수에는 큰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지난해 롯데마트는 해외시장에서 830억 원의 적자를 냈다. 해외점포 중 중국점포가 차지하는 비중이 70%가 넘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시장에서도 큰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K와 한화도 중국에서 뚜렷한 비즈니스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SK차이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중국인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한 뒤 부동산·환경·문화 콘텐트 등을 주력사업으로 정했다. 그러나 2년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자 환경과 문화 콘텐트 사업은 사실상 포기했다. 한화는 2012년에 한화생명의 합작법인을 출범시키는 등 중국 사업에 의욕을 보였지만 총수 사법처리 와중에 별다른 사업 진척이 없었다. 중국에 있는 태양광업체인 한화솔라원도 업황악화로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에서 대박을 터트렸다고 알려진 기업들도 고민이 적지 않다. 파리바케뜨는 단기간에 중국에서 100호점을 내면서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지만 아직 흑자를 내지는 못하고 있다. 1조클럽에 가입한 오리온도 최근에는 성장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포스코 역시 중국 철강업체들이 급성장하면서 매출이 정체상태다.


▎2012년 7월 부산에서 열린 ‘한·중수교 20주년 기념 무역상담회’. 양국 간의 무역액은 비약적으로 증대하고 있지만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베이징 거리에 설치된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홍보 부스. 중국 기업은 첨단 전자제품 분야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우리 대기업을 쫓고 있다.
현대차도 고급화 이미지 구축에 실패

그나마 중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으로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꼽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중국에서 매출이 30% 이상 늘었다. 갤럭시 스마트폰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덕분이다. 그러나 올해 1∼2월에는 애플의 아이폰5와 중국 토종업체들의 공세로 매출이 예상외로 부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경우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차는 차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판매가 호조를 보인다. 외자브랜드로는 중국 내에서도 폭스바겐과 GM에 이어 셋째로 규모가 크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해마다 판매량이 줄어들 정도로 고전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고급차의 이미지 구축에 실패한 것이 앞으로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기업이 이처럼 중국시장에서 고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음의 3가지 이유를 든다. 첫째는 중국에서 생산비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90% 이상이 내수가 아니라 수출을 겨냥한 기업이다. 이들은 중국 현지에서 지방정부로부터 우대 혜택을 받고 토지를 공급받고 값싼 노동력을 고용해 만든 제품을 제3국에 수출해왔다. 칭다오 등 연안에 몰려 있는 한국기업들은 대부분 이런 기업이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이런 혜택은 거의 사라졌다.

중국의 노동비용은 이미 한국의 절반 수준으로 따라왔다. 중국은 매년 최저임금을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선전 시는 3월 1일부터 최저임금을 13% 오른 1808위안으로 인상했다. 선전시의 최저임금은 중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지난 5년간 84.5%나 뛰었다. 선전시의 경우 시급 최저임금은 16.5위안(약 2926원)으로 한국(5210원)의 56% 수준에 육박했다. 그러나 월 임금 1808위안(32만 원)은 베트남(약 13만6천 원)이나 캄보디아(약 10만7천 원)에 비해 3배 가까이 높다.

중국 인력사회보장부의 최저임금 규정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적어도 2년에 한 번 인상토록 되어 있다. 중국정부는 그러나 내수시장 진작과 소득격차 해소를 위해 최저임금을 매년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지난해에도 중국은 전체 31개 성시 중 27개 성시가 평균 17%나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2015년에 끝나는 12차 5개년 계획 기간에도 최저임금을 연평균 13% 올려 최저임금을 평균 도시임금의 40% 수준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정부가 국내 소비증가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임금상승률도 지난해 10.7%보다 높은 11%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둘째는 중국 정부의 외자에 대한 태도 변화다. 요즘 중국에서 외국기업들은 정부의 간섭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투자유치 단계에서는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지만 일단 돈이 들어가고 가동을 하게 되면 적지 않은 간섭을 한다는 게 진출 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외자정책에 대해 일부에서는 ‘관먼다거우’(關門打狗: 문을 걸어 잠그고 개를 패다)라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외자들이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하고 개처럼 두들겨 맞는다는 것이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외상투자지도 목록을 통해 외자의 투자를 규제한다. 이 목록에는 장려·제한·금지 등으로 나눠 항목을 열거하고 있다. 장려는 별다른 규제가 없지만 제한이나 금지에 포함되면 현지에서 사업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자동차 회사는 외자가 50%의 지분만 보유할 수 있고, 증권사나 보험사는 최대 49%의 지분을 가질 수 있다. 부동산·통신설비·출판·의약·석유가공 등의 분야도 제한 목록에 포함돼 규제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제도가 아니라 비제도적 횡포다. 이미 애플·스타벅스·삼성전자 등이 관영언론을 동원한 공격으로 브랜드에 상처를 받았다. 최근에는 반독점을 활용해 외자기업이 선전하고 있는 자동차·의약 등의 분야에서도 칼을 휘두르고 있다. 중국의 한 사업가는 “외자 기업들은 한 번 걸리면 훨씬 더 가혹한 처벌을 받는다”고 말했다.

과거부터 있었던 외자기업에 대한 혜택도 완전히 사라졌다. 중국의 지방정부들은 외국인 투자에 대해 과거에는 토지비용을 거의 받지 않았고 법인세도 3∼5년간 면제를 줬다. 그러나 최근에 지방정부들은 이런 혜택을 일부 첨단업종에만 제한했다. 전통산업에 대한 투자는 아예 꺼리는 분위기다.

외자기업이 넘보기 힘든 중국기업의 경쟁력

이런 분위기로 인해 칭다오에 있던 많은 한국기업은 문을 닫거나 한국으로 돌아오거나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있다. 칭다오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006~2007년 6천 개가 넘었다. 교민도 많을 때는 10만 명 규모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기업 3천 개, 교민 5만 명으로 절반 수준이 됐다. 금융위기 이후 급등한 인건비를 견디다 못해 많은 기업이 문을 닫았고, 한국으로 돌아온 기업도 많다.

KOTRA에 따르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유턴기업이 모두 51개로 대부분 칭다오에 있던 업체다. 칭다오의 한 기업인은 “요즘 한국인회 모임에 나가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허가가 안 난다’는 것”이라며 “전통산업은 설비 확장이나 추가 투자도 시정부에서 외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셋째는 중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중국 기업들은 지난해 <포춘>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에 95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반면 한국은 14개사에 불과했다. 두 나라의 기업들이 이제는 규모에서도 그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규모의 차이는 고스란히 경쟁력의 차이로 나타난다.

차이나모바일·공상은행·중국인수(中國人壽) 등은 큰 내수시장 덕분에 세계 1위 기업이 된 사례다. 유통업체인 화룬, 환경업체인 제넝환바오그룹, 식품업체인 중랑그룹 등은 국유기업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외국업체들을 제치고 내수시장 1위에 올랐다. 화웨이·레노보·산이중공업 등도 민간기업이지만 정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을 등에 업고 성장했다. 성장 과정이야 어찌됐든 이들 기업은 지금 중국 내에서 어느 외자기업도 넘보기 힘든 최강의 경쟁력을 보유한 기업이 됐다.

한때 외자기업들의 독무대였던 첨단제품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의 선전은 눈부시다. 세금 먹는 하마로 불리던 징둥팡은 최근 흑자로 전환하면서 글로벌 디스플레이시장에서 삼성과 LG의 독주체제에 제동을 거는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평판TV시장에서는 스카이워스·TCL하이센스 등 중국업체들이 1∼5위를 싹쓸이한다. 휴대폰 시장에서도 레노보·쿨패드·ZTE 화웨이·사오미 등이 글로벌업체들을 제치고 중국시장에서 2∼6위를 기록하고 있다.

까르푸와 월마트 등 외자기업으로 대변되던 중국의 소매유통 시장은 요즘 중국 업체들의 부상으로 격변기를 겪고 있다. 이미 소매유통시장 1위는 4천 개 가까운 점포를 보유한 중국의 롄화로 넘어갔다. 화룬완자·우메이·이추롄화 등도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반면 까르푸와 월마트는 대도시에 있는 적자 점포를 정리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월마트는 이미 30개 매장을 접고 중소도시로 눈을 돌리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의 하이마트와 같은 전자제품 유통업체인 쑤닝뎬치나 궈메이도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공룡기업이 된 경우다. 쑤닝뎬치는 지난해 매출이 2327억 위안으로 가전 1위업체인 하이얼을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이들의 위세에 눌려 자체 유통망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샹빙 장강상학원 원장은 “중국 기업들은 내수시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글로벌 기업이 되는데도 여러 갈래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며 “이는 한국이나 일본 기업에 비해 크게 유리한 점”이라고 분석했다.

요즘 중국의 인터넷 타오바오몰에서는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 전지현 씨가 드라마에서 입었던 의상이 불티나게 팔린다. 그러나 그 옷은 한국산이 아니라 중국 업체가 드라마를 보고 만들어낸 옷이다. 중국에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지만 실제 그 과실은 한국기업보다는 중국기업이 따먹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중국 패션업체인 한두이서(韓都衣舍)다. 이 회사가 만든 옷은 요즘 중국 젊은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 온라인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상하이·난징 등에 오프라인 매장까지 열었다. 비결은 한국의 첨단 패션 제품을 그대로 중국시장에 신속하게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브랜드인 H스타일의 H는 한국을 의미한다. 이 회사도 처음에는 동대문시장에서 나온 제품을 사다가 팔아 급성장했지만 지금은 의류를 자체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상당수의 소비자는 이 회사의 제품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한다.


▎중국에 진출한 롯데마트의 현지 매장. 중국 유통그룹의 도전으로 한국의 중국 유통업 진출은 그 수익성과 전망이 날로 어두워지고 있다.



‘한류’의 수혜기업도 대부분 중국기업이 차지

중국 화장품 업체인 한수(韓束)는 지난 2010년 한류스타 최지우 씨를 광고모델로 기용해 급성장했다. 대부분의 소비자는 이 회사를 한국 화장품 회사로 잘못 알았다. 그러나 한수는 성장 궤도에 오르자 지난해 중화권 스타인 린즈링을 광고 모델로 새로 기용했다.

한국의 히트상품인 바나나우유와 초코파이도 최근에는 중국산으로 탈바꿈해간다. 빙그레의 바나나우유는 올해 중국 수출물량만 150억 원에 달할 정도로 대박 품목이다. 그러나 중국의 위펑음료나 바오리징 등도 바나나우유를 만들어 경쟁에 나섰다. 특히 위펑음료는 제품의 포장에 한글로 ‘바나나맛 우유’라고 써놓아 중국인들은 이를 한국제품으로 혼동한다. 초코파이 시장에서는 아직 오리온 초코파이가 압도적이지만 중국업체인 다리가 시장점유율 16%나 차지하고 있다. 롯데 초코파이도 이제 시장점유율이 3∼4%에 불과할 정도로 떨어졌다.

한국기업이 중국에 본격 진출한지 2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중국은 말 그대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가난한 나라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우리 발밑에 있던 중국 기업들은 세계가 알아주는 글로벌 기업이 됐다. 중국 정부도 투자유치에 매달려 특혜를 남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비관세장벽으로 외자기업을 압박한다. 파이는 커졌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본다면 중국시장에서의 사활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관행을 털어버리고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중국 현지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조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중국 사업은 중국 전문가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 국회의원들과 현지 기업인 간담회에서 한 사장급 기업 법인장은 “중국에 나와 있는 법인 대표들은 군대로 치면 야전사령관이지만 본부의 참모보다도 힘이 없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실제 베이징에 있는 기업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중국 법인의 의사결정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중국 법인의 의견과 반대되는 결정이 내려지는 것은 다반사고 중국 법인이 아예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지 기업인들은 “중국 사업은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필요할 때가 많다”며 “현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신속한 결정을 하려면 본부의 컨트롤타워를 아예 중국으로 옮겨와야 한다”고 말한다.

둘째, 현지화를 강화해야 한다. 흔히 중국에서 현지화라고 하면 의사결정을 하는 주요 직책에 중국인을 임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주재원들의 현지화라는 게 기업인들의 지적이다. 하나은행·오리온·파리바게뜨·락앤락은 중국에서 비교적 잘나가는 기업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재원 대부분이 장기근무자라는 것이다.

특히 하나은행·오리온 등은 중국법인으로 발령이 나면 아예 본사법인에 사표를 내고 온다. 반면 아직도 많은 중국진출 한국기업은 3∼4년 주기로 주재원들을 물갈이한다. 문상준 SPC 베이징법인장은 “중국 시장을 이해하려면 최소 7∼8년이 걸리는데도 우리 기업들은 전문가가 아닌 단기 연수자만 근무를 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셋째, 중국인 및 중국 기업과 협력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중국시장을 뚫을 수 있는 기업은 많지 않다. 또 독자적으로 뚫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만과 홍콩은 진출 초기부터 중국인 및 중국기업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중국 시장에 안착했다. 지난 2월까지 주중한국대사관 경제공사를 지냈던 정영록 서울대 교수는 “우리 기업들이 도와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리인들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말

했다.

넷째, 영역을 좁혀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중국시장을 전방위로 공략하려고 한다. 그러나 중국은 31개 성시가 모두 다른 시장이다. 중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획일적인 시장 접근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상하이에서 돌풍을 일으킨 대만의 ‘85도씨 커피’는 여세를 몰아 베이징에 입성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한국의 쿠쿠전자도 산둥성에서 성공했지만 쓰촨성에서는 무기력하게 철수했다.

획일적 시장 접근은 실패 가능성 높다

전문가들은 전선을 좁혀야 한다고 말한다. 대만 데니스의 경우 중국에서 18개의 백화점과 168개의 할인점 및 편의점을 보유한 유통 거인이지만 스스로 17년 동안 허난성만 집중 공략한 것을 성공요인으로 꼽는다. 이문형 산업연구원 베이징 지원장은 “한국기업들이 13억 인구를 모두 공략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예를 들어 한국과 가깝고 정서도 비슷한 1억 인구의 산둥성에만 뿌리를 내릴 수 있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성공 가능성이 떨어지는 서부시장 진출보다는 동부연안 벨트를 한국의 대중국 진출거점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심을 끌었다. 산업연구원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우한·정저우 등 내륙 도시가 경제적 기반, 소비시장 성장성, 산업기반 등 객관적 투자환경은 뛰어나지만 한국과의 연고성, 지방정부의 우호정책 등의 분야에서는 옌청·옌타이·충칭 등에 비해 낮아 한국투자자에 대한 수용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지역적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충칭과 청두 등을 제외하면 서부 지역은 신중하게 그리고 선택적, 점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실제 현지에서도 지방정부 행정의 불투명성, 지역 상권의 텃세, 빠른 임금 상승, 낮은 브랜드 인지도 등으로 인해 한국기업들의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았다.

반면 동부지역 특히 산둥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전략적 거점으로 지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영삼 산업연구원 벤처기업연구실장은 “칭다오-옌타이-웨이하이-다롄으로 이어지는 동북연안벨트와 칭다오-롄윈강-옌청으로 이어지는 동부연안벨트를 한국의 대중국 진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전략적 거점을 기반으로 조금씩 내륙으로 진출하는 전략이 필요하며 이 전략이 성공적일 경우 한국은 안정적인 대중 비즈니스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섯째, 중국 진출기업들은 중국의 수요에 맞게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중국은 더 이상 자신들의 땅에 가공수출업체가 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신 경제의 업그레이드 수요에 맞게 기술력을 가진 첨단 기업들의 진출을 바라고 있다. 이런 점에서 7대 전략적 신흥산업(에너지 절감형 환경기술·차세대 정보기술·바이오·첨단장비제조·신에너지·신소재·신연료자동차), 문화창의산업, 수입대체 추진 산업 등을 중국 진출의 차세대 주력산업으로 삼아야 한다.

여섯째, 혁신형 중소기업의 진출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현재 대기업 중심의 대중 비즈니스는 퇴조 기미가 나타나고 있다. 반면 기술력을 가진 혁신형 중소기업들은 좁은 한국의 내수시장에서 성장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대외 진출역량의 부족으로 고심하고 있다. 정부가 혁신형 중소·중견기업의 부족한 국제화 역량을 정책을 통해 지원해줄 수 있다면 중국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1404호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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