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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 참사랑의 시인 이해인 수녀의 기도 

“힘들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시(詩)가 위로와 평안, 사랑 줬으면” 

사진 오상민 기자
‘세월호 참사’ 피해자 위해 작은 희생과 기도하며 지내…6년째 암과 친구하면서 명랑하게 사는 나이 칠십의 ‘명랑소녀’

▎사진기자의 포즈 요청에 결국은 이기지 못하겠다는 듯 이해인 수녀가 성모상 옆에 섰다. 이 수녀의 동그란 얼굴과 모자상이 쏙 닮았다.



암 투병 이후 부산의 수녀원에 머물며 기도와 시작(詩作) 활동에 매진하던 이해인 수녀가 지난 5월 큰 맘 먹고 서울을 방문했다. 1년 전부터 약속한 ‘가톨릭독서아카데미’ 주최의 북콘서트에 참석하고, 자신을 애타게 기다려온 가톨릭농아선교회 장애우들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나이 칠십에도 여전히 소녀처럼 맑은 미소로 우리 시대의 빛이 되어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해인(69) 수녀와 만난 5월 22일, 서울에 올라와 잠시 머물고 있던 서울 중곡동 천주교중앙협의회의 정원을 거닐던 이 수녀는 “내일이 수녀로 살겠다고 서원한지 꼭 46년이 되는 날”이라고 했다. 선교와 의료, 자선사업을 하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에 소속된 이 수녀는 1964년 열아홉의 나이에 홀어머니와 오빠, 여동생을 떠나 수녀원에 입회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갈멜수녀원에 들어간 친언니가 보내주는 수도원생활의 편지를 읽으며 세속의 삶보다는 수도자의 길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 수녀의 세례명 클라우디아는 가톨릭을 전교한 성바오로 사도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던 성녀 클라우디아를 지칭한다. 라틴어로는 ‘보호자’라는 뜻이다. 수녀원에 들어와 처음 시를 쓰면서 이 수녀는 수녀회 본원이 자리 잡은 부산의 푸른 바다(海)를 바라보며 대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평생을 자비와 사랑을 뜻하는 인(仁)을 실천하는 일에 바치기로 한다. 부모가 준 이명숙이라는 이름 대신 해인(海仁)이라는 가슴 따뜻한 필명이 그렇게 지어졌다.

바다는 온 몸으로 시를 읊는 나의 선생님/ 때로는 늦게 때로는 낮게 어느 날은 거칠게 어느 날은 부드럽게/ 가끔은 내가 알아듣지 못해도 멈추지 않고 시를 읊는 푸른 목소리의 선생님// ……아이를 달래는 엄마처럼 가슴이 열린 바다/ 그기도는 가진 게 많아도 뽐내지 않는다 줄 게 많아도 우쭐대지 않는다/ 답답한 마음 바다에 내려놓고 시원한 마음 들고 온다/ 가득한 욕심 벗어놓고 빈 마음 들고 온다……


▎이해인 수녀는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살면서 각자 기초적인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이라고 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해야 되겠구나’ 하고 각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수녀의 시 ‘바다의 노래’다. 그의 시를 만들어내는 원천(源泉)은 신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기도이지만 시를 품어내는 모태(母胎)는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를 담아낸 그의 시를 만난 사람들은 바다처럼 큰 마음과 깊은 위로를 체험한다. 그러나 풍요롭고 아름다운 바다도 사시사철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다는 생명을 삼켜버린 무서운 바다였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과 깊은 슬픔의 바다였다.

죽는 순간까지 부모 생각한 여학생 잊을 수 없어

바다가 세월호를 삼켰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너무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어른들의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죄 없는 아이들이 희생당했잖아요. 그래서 온 국민이 집단 우울증에 빠졌고요. 하지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사회가 잘못한 것들을 인정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 우리가 분노만 표출하거나 나라를 비하하는 말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처럼 다들 외국으로 이민 가면 지금의 우리나라는 또 어떻게 되겠어요?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살면서 바른 모습을 보이고 살아야 그것이 희생된 아이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사람들의 아픔이 너무 큽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의 토대가 허약하고 살아가는 게 많이 힘들더라도, 지금 있는 이 자리에서 이겨내야지요.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슴 깊이 간직할 것도 많아요. 오늘 아침에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진도 팽목항에서 한 달 동안 취재한 일본인 기자를 인터뷰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 일본인 기자가 희생당한 한 여학생의 가족을 인터뷰했는데, 그 여학생은 침몰하는 배 안에서 부모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기자는 죽는 순간까지 부모를 더 걱정한 여학생이 인상적이었다고 했어요. 그 여학생은 의연하고 침착하게 휴대폰이 불통이 된 다른 친구들의 부모에게까지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었는데, 그 배려심 또한 놀라운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기사를 읽다가 눈물이 막 났어요. 그 일본인 기자가 놀란 것은 또 있었어요.

전국 각지에서 합동분향소에 모여든 추모객들이 마치 제 자식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는 모습은 이례적이었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조의를 표하기 위해 옷을 차려입고 오는 것은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라고 했어요. 참사 이후 수습해가는 과정에서 한국인의 저력을 보게 됐다는 그 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가 절망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평소에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서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상황을 잘 추스를 수 있는 내적인 힘을 키워야 합니다. 요즘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시는 글들을 ‘교황어록’이라 부르며 따라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교황님 어록 중에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를 유지하는 3가지 방법’이라는 게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을 때에는 ‘이렇게 해도 될까요’ 하고 물어보고, 도움을 받을 때는 ‘고맙습니다’ 라고 말하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너무 쉬운 것들이죠. 우리가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살면서 해야 할 기초적인 것들을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나 하나라도 해야 되겠구나’ 하고 각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 하나라도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처음에 수녀원에서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는 저 혼자서라도 희생자들을 위해 작은 희생과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현장에 갈수도 없고, 아이를 잃은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그들을 위로할 수도 없는데, 제가 수녀원에서 할 수 있는 희생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제가 커피를 많이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하루 한 잔이라도 커피를 안마시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요! 그 생각하고 30분이 지나자 ‘내가 커피 한 잔 안 마신다고 뭐가 달라지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제가 커피 한 잔을 안 마시는 것도, 아이를 잃은 엄마를 위한 희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소한 것이지만, 누군가 기도하고 희생하면 하느님이 들어주십니다. 이타심(利他心)을 위한 여정은 거창한 곳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커피 한 잔 덜 마시는 것, 내가 나서서 길거리의 휴지라도 내가 먼저 치우는 것, 그런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수녀의 말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고, 목소리는 또렷했다. 진실을 말하는 시인의 감성이 담겨 있었다. 1980~90년대 이해인이라는 이름 석자는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에게 순수함과 따뜻함의 대명사였다.

기도는 나의 음악/ 가슴 한복판에 꽂아 놓은/ 사랑은 단 하나의/ 성스러운 깃발/ 태초(太初)부터 나의 영토(領土)는/ 좁은 길이었다 해도/ 고독의 진주를 캐며/ 내가/ 꽃으로 피어나야 할 땅……


▎이해인 수녀는 강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평범한 것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고 살자”고 말했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오는 詩

보잘것없는 작고 낮은 땅에서 사랑의 꽃을 피우겠다는 이 수녀의 당찬 시 ‘민들레의 영토’는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필리핀 세인트루이스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서강대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한 이 수녀의 시에서는 엘리트 의식이나 지식을 과시하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상의 언어로 순수함을 향해 나아가는 정결한 기도, 친근함과 위로가 넘치는 그의 시는 지치고 아픈 이들의 마음을 치유했고, ‘마음의 엄마’, ‘국민이모’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래서 당시 서점마다 이 수녀의 시집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지금까지 팔린 시집만 500만 부라고 한다. 하지만 이 수녀는 당시에 자신의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언론의 조명을 받는 게 기쁘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수녀님은 198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작가셨지요?

“1984~87년에 <민들레의 영토>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내 영혼에 불을 놓아> 3권의 시집을 냈는데, 책이 정말 날개 돋친 듯 팔렸어요. 종로서적의 베스트셀러 순위 1, 2, 3위가 다 제 시집이었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책 좀 안 팔리게 해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 언론에 자꾸 제 이름이 오르내리고, 조용히 살아야 할 수도자의 삶에 어긋나는 것 같아 걱정도 많이 했지요. 하지만 제 시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의 편지를 받고는 감사의 마음을 갖곤 했습니다. 편지와 엽서, 이메일로 고민과 마음을 전해오면 단 한 줄이라도 꼭 답장을 보내곤 했지요.”

깊은 명상과 수도생활에서 우러나온 이 수녀의 시는 머리로 읽는 시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오는 시다. 현학적이거나 어려운 시어보다는 쉬운 말을 사용하고, 읽는 사람의 마음결을 쓰다듬어주는 ‘착한’ 시다. 그래서 “단 한 번도 훌륭한 시인이라거나 문학적 평가를 받을 문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이 수녀이지만 그의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고 박완서 작가가 “이 수녀의 글은 들꽃이 피어나는 숨결에 귀 기울이는 기쁨이고, 보잘것없는 사람들 속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놀라움”이라고 했을까.

시(詩)란 무엇일까요?

“시를 읽으면 이웃을 용서할 수 있어요. 누구 흉보고 싶은 미운 마음이 들 때 꺼내서 읽어보면 참 좋아요.(웃음) 시는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이 있어서, 그 어떤 책보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습니다. 제 시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위로를 느끼며 평안을 얻고 사랑을 나누었으면 좋겠어요.”

시작(詩作) 활동은 어떻게 하시나요?

“늘 가지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둡니다. 종이에 먼저 기록하고 나서 나중에 컴퓨터로 옮기죠.”

혼탁한 세상에서 그 이름 자체로 ‘맑음덩어리’인 이 수녀는 언론이 늘 만나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수도자란 운명적으로 자기 삶을 주장하기 어려운 소임이긴 하지만 어떤 때는 자신을 찾아오는 언론도 반갑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수도자로서 남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그것 역시 고통이었을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언론에 나오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기도 합니다. 제 언니는 봉쇄수도원에 있어서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는데, 저는 세상과 걸쳐있는 셈이니까 신문이나 방송에서 찾아오겠다고 하면 무작정 거절하기도 쉽지 않지요. 거절하면 사랑이 없는 게 되니까요.(웃음)

사람들은 제가 방송에 나가는 게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자꾸 사양한다고 하는데 그게 그렇지 않아요. 시인이기 전에 수녀로서 저도 수녀원 안에서 감당해야 되는 일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만남을 사양하면 방송사에서 유명 탤런트를 동반해서 찾아오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처럼 언론과 만나는 일도 제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제가 나이 먹어서 이제 몸도 아프고 힘든데, 주위에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고, 천주교 수녀로 살기가 너무 힘들어요.”(웃음)

너무나 명랑하게 생활하는 통에 주변 사람들조차 그녀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잊곤 하지만 이 수녀는 벌써 6년째 암과 싸우는 환자다. 지난 2008년 7월에 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아직 완치 판정을 받지 못했다. 이 수녀가 암투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그녀의 시를 다시 읽으며 위로받기 시작했다. 근래 사람들 사이에 즐겨 애송되는 이 수녀의 시는 ‘행복의 얼굴’이다.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는 연단에 오래 설 때는 “제발 쓰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나에게 고통이 없다는 뜻은/ 정말 아닙니다// 마음의 문/ 활짝 열면/ 행복은 천 개의 얼굴로/ 아니 무한대로/ 오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경험합니다……

오늘 하루가 나의 전 생애

도무지 암과 투병하고 있는 환자로는 보이지 않으세요!

“다행히 제가 암과 친구가 돼서 기적적으로 좋아졌습니다. 이왕 암에 걸린 것, 물릴 수도 없잖아요.(웃음) 긍정적으로 살면서 시도 쓰며 사니까 견딜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덕분에 아픈 사람들 마음도 이해하게 되고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누가 제게 울지 않고 씩씩하게 웃으면서 ‘명랑투병’하는 비결이 뭔가하고 물어보면 ‘어떤 결심’이라는 제 시를 읽어드리고 싶어요.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 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오늘 하루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고 사는 마음,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만 들여다보면서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것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는, 그런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암과 친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처음에 암이라는 판정이 나왔을 때는 ‘씩씩하고 명랑한 내게 이런 게 웬일이지?’ 하고 크게 놀랐지요.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내 몸관리를 잘 못해서 암세포가 생긴 것이잖아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더 이상 커지지 말라고 암세포에게 계속 이야기했어요. 방사선 치료받고 항암치료 할 때도 지겨운 마음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생각하고 좋은 마음으로 하니까 남들은 토하고 머리도 빠진다는데 저는 그런 것도 없었고요. 요즘도 하루 다섯 차례 약을 먹고,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맥박과 혈압을 재는 게 불편한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동안 제가 괜히 수도생활을 한 게 아니었구나 하고 느끼게 됩니다.”(웃음)

이 수녀가 대화 도중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사진 기자의 포즈 요청을 결국은 거절하지 못하겠다는 듯 성당 옆 성모상 옆에 다소곳이 섰다. 그러고 보니 이 수녀의 동그란 얼굴과 푸근한 성모상이 쏙 닮았다. 투병 이후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견뎌내고 있다는 이 수녀의 얼굴은 아기 예수처럼 맑고 천진했다. 강연장인 불광동성당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대화는 계속됐다.

수녀원에서는 어떻게 지내시나요?

“새벽 5시에 일어나면 6시부터 기도 시간이에요. 6시30분에 미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저녁 8시에 강연이 예정돼 있지만 다른 때 같으면 그 시간은 끝기도를 하고 잠을 자는 시간이지요. 평소에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 사람들에게 뜬 구름 잡는 얘기를 안 하게 되니까 저도 요즘 인기 있다는 방송은 DMB로 시청하고, 인터넷에 들어가서 세상 소식도 듣습니다. 신문은 수녀원이 있는 부산에서 발행하는 <부산일보>를 즐겨봅니다. 요새는 스마트폰을 많아 사용하니까 카톡으로 지인들이나 독자들과 자주 안부도 전하고요.”

명랑하게 대답하던 이 수녀가 대화 도중 잠시 말을 끊을 때가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단속적으로 찾아오는 몸의 고통을 견디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명랑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몸에 동거하고 있는 그 아픔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나와서 ‘암덩어리야 안녕!’ 하고 말할 수 있는 수녀. 그런 마음을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련의 시간을 거쳤을까!


▎이해인 수녀의 명랑한 강연에 청중들은 울고 웃으며 깊은 감동을 맛봤다.



죽음 앞에서는 진실된 것만 남아

암과 싸우다 보면 자연히 죽음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가 암환자라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 전에 건강했을 때도 거의 하루에 한두 번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습니다. 수녀원에서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는 끝기도를 하면서 ‘오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죽음이란, 육체적인 죽음도 있지만 수도자로서 누가 내 자존심을 건드리고 나를 힘들게 했을 때도 수도자로서는 죽음을 연습하는 것과도 같아요. 현실에서 작은 죽음을 잘 연습해야 나중에 죽음과 정말 만날 때도 수도자답게 겸손하게 죽을 수 있게 되겠지요.”

죽음을 잘 받아들여야 삶이 더 충실해진다는 말도 있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연설에서 한 말이 있어요. 잡스는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큰 도움이 되었다. (…) 죽음 앞에서는 진실된 것, 중요한 것만 남는다’고 했어요. 잡스는 또 ‘삶의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기 위해 내가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이 하루에 적어도 한두 번씩 미래의 내 죽음을 미리 생각하는 것이었다. 내가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 한꺼번에 정리 안 된 것들이 다 정리되더라’고 말했지요. 잡스의 그 말에 정말 공감이 갔어요.

용서하기 힘든 사람이 있거나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올 때 저는 제 미래의 죽음을 생각하곤 합니다. 제가 상상 속의 관(棺) 속에 들어가 보면 못 참을 게 없고 용서 못할 게 없어요. 많은 경우 우리는 평생 안 죽을 것처럼 살지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루고 미루다가 나중에 뉘우쳐야지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 역시 죽음은 겪어보지 않은 세계라서 생경하고 낯설고 힘은 들지만 평소에 작은 죽음을 연습하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죽음이 올 때는 고통스럽겠지만 ‘아! 내가 잘 마쳤다’ 고 말하며 평화롭게 하늘나라로 이사 가는 것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수녀가 최근 외부강연을 할 때마다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고운말 쓰기’다. 특히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만나면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어린 시절부터 좋은 어록을 적어놓고 자주 읽게 해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삶이 힘들 때는 평정심을 찾는 좋은 말들을 기록하고 한번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이를테면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다”라는 말, “네가 살고 있는 오늘은 어제 떠난 내가 그렇게 바랐던 내일이다”는 말, “어둠을 원망할 시간에 촛불 한 개라도 켜라”는 말을 특히 좋아한다.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날마다 새롭게 살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과 겸손한 마음으로 평범한 것에서도 기쁨과 감사를 발견하고 살아야지요. 불평불만과 푸념은 줄이고 서로를 칭찬하며 살면 됩니다. 남의 흉을 줄이고 칭찬과 격려의 말을 나누면 더욱 좋습니다.”

예를 든다면요?

“우리의 언어생활을 바꿨으면 해요. 화가 나더라도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면 좋겠어요. 인터넷문화가 발달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질이 급해지고 욱하는 성질이 많아졌다고 해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가 ‘미치겠다’, ‘돌아버리겠다’, ‘뚜껑 열린다’, ‘까무러치겠다’ 이런 말들을 많이 쓰는데, 저희 수녀원에서는 화가 많이 나도 그런 말은 안 쓴답니다. 어떤 수녀님은 아주 화가 나면 ‘보통 일이 아니죠’ 라고 말을 하지요.(웃음)


▎평생을 수도자로서 살아온 이 수녀의 삶의 지향은 언제나 하늘로 향해 있다. 이 수녀는 자신의 시 ‘5월의 시’에서 “욕심 때문에 잃었던 시력을 찾아/ 빛을 향해 눈뜨는 빛의 자녀 되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했다.
직장생활 하면서도 동료들에게 ‘독종이다’, ‘지랄 맞다’라고 하지 말고 ‘그 친구는 조금 특이한 데가 있어’하고 말하면 얼마나 좋아요! ‘땡잡았다’고 하지 말고 ‘참, 복도 많으시다’라고 하고, ‘와~ 죽인다’고 하지 말고 ‘환상 자체였어!’ 라고 하거나, ‘신경 꺼’라고 하지 말고 ‘마음 놓으세요’라고 하면 더 좋잖아요. 불가피하게 욕을 하게 되더라도 ‘XX놈’이라고 하지 말고, ‘느티나무 같은 놈’, ‘장미 같은 녀석’으로 칭찬해서 말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소녀가 된 나이 칠십의 수녀

저도 그렇게 긍정적이고 명랑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우리 수도자들도 행복해야 한다고 봐요. 천주교 수녀는 왜 행복하면 안 되나요? 고등학생들에게 수녀 하면 떠오르는 것 다섯 가지를 써보라고 했더니 고독, 순결, 외로움, 희생 등 묵직하고 어두운 이미지만 생각하더랍니다. 행복이나 기쁨을 적은 이는 드물었어요.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기쁨을 잃어버리고 찌든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고 봐요. 제가 오늘처럼 멀리 외출하거나 강연대에 서게 될 때는 제발 쓰러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는 교황님을 생각해요. 교황님이 어렸을 때 많이 아팠는데, 할머니가 ‘너는 지금 예수님을 닮고 있는 거야’라고 했을 때 안 아팠다고 했답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견뎌내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강연장인 불광동성당에 도착했다. 이날 밤, 건축가 김수근이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한 아름다운 성당에서 이 수녀는 ‘사랑의 길 위에서’를 주제로 자신의 신앙과 시 세계를 아낌없이 펼쳐 보였다. 이 수녀의 명랑함은 이날 강연 중에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강연 시작과 함께 그가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황님이 언젠가 추기경들과의 축하 저녁만찬에서 ‘저들이 한 일(나를 교황으로 선출한 일)을 용서하소서’라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저도 오늘 교황님을 흉내 내보려고 합니다. 이 더운 저녁에 부산에서 기차 타고 온 작은 수녀를 보겠다고 이렇게 성당을 가득 메우신 여러분들의 인내를 여러분께서 용서해주고 축복해주시길 빕니다.” 청중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터져나 온 것은 물론이다.

이 수녀는 오는 8월 7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에서 북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에 맞춰 교황이 전하는 트위터 글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수녀가 답글을 달고 한 줄 기도를 넣은 것을 엮어 고운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란다. 이날 청중들은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함께 하며 그의 시들을 낭송하고 함께 나누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때여서 이 수녀가 쓴 시들 중에서 특히 ‘슬픈 사람들에겐’이라는 시가 많은 사람의 가슴을 적셨다.

슬픈 사람들에게 너무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주어요//……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가치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강연의 후반부, 이 수녀가 노래에 맞춰 팔을 높이 들어올리고 몸을 빙그르르 돌며 소녀 같은 율동을 선보이자 청중들이 모두 놀라며 박수를 치고 율동을 따라했다. 나이 칠십의 이 수녀는 그날 그렇게 소녀가 되었다.

내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이 수녀의 시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의 한 구절처럼 그녀는 삶에 지친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사랑을 주는, 참 사랑의 시인이었다.

201407호 (2014.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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