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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인터뷰 |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 박원순 서울시장 

“보도블록 시장이라고요? 작은 것에 충실해야 큰일도 할 수 있죠” 

글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 사진 지미연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월 <한국갤럽>이 실시한 차기 대권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여야 정치인 가운데 1위를 했다. 재선에 성공한 뒤 국제적인 인사로 발돋움해 지난 8월 휴가기간에는 독일과 덴마크 등 유럽의 주요국을 순방한 데 이어 9월 21~23일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초청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공교롭게도 유엔기후정상회의 참석차 뉴욕에 머무르는 박근혜 대통령의 일정과 겹쳐 있다.
대선 출마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여러 차례 공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에 언론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1일 박 시장을 만났다.


대선 출마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그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2위를 오르내리는 그의 행보에 언론의 관심이 쏠린다.

■ 롯데월드 주변 싱크홀 염려는 과장된 것, 안전문제 철저히 점검해 결정할 것

■ 복지예산 대느라 지방정부 디폴트 위기, 안전·복지예산은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 세월호 교훈은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 다하는 것. 나는 시장 일에 전념하는 중

■ 광화문 농성장 왜 안 갔느냐고? 갈등 중재는 시장이 아닌 정치인과 원로들의 일

■ 동장 소리 들어도 좋아. 보도블록 하나라도 제대로 시공하는 게 더 중요하다

박원순(56) 시장은 재선에 성공한 이후 시간을 쪼개 분 단위로 움직일 정도로 더 바빠졌다. 주말과 휴일에도 공관에서 보고서를 읽거나 민원 현장을 찾아 다닌다고 한다. 수도 서울의 시장이니 만날 사람도 많고 결정해야 할 업무도 한둘이 아니지만 그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워낙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시민운동가로 살면서 일을 찾아 다니고 직접 챙기는 일이 체질화돼 그렇다는 후문이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그는 참여연대·아름다운가게·희망제작소 등에서 활동하면서 창조적 혁신을 통해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일을 해왔다. 서울시장이 되어서도 그런 생활태도가 몸에 배어서인지 자료를 모으고 토론하면서 변화하고 혁신해내는 일이 그에게는 일이 아니라 놀이처럼 보인다. 시장인 그의 관심영역이 늘수록 서울시청 6층 그의 집무실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그의 업무파일 개수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자세히 보니 2년 전에 만든 보도블록 파일은 더 두툼해졌고. 세월호 참사 이후 침수 대책, 싱크홀 종합대책 등 안전 관련 파일 목록이 더 추가됐다.

몇 달 전에 비해 시장실의 업무파일이 더 는 것 같다. 그런데 얼굴은 지난 선거 때보다 젊어 보이는데 웬일인가?

“염색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렇지. 그런데 머리카락은 조금씩 줄고 있다.(웃음) 힘들고 골치 아픈 일도 있지만 늘 즐겁게 일하려고 한다. 사람의 얼굴은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고민과 모든 걸 담고 있다. 요즘 TV에 비치는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보면 재선하기 전인 4년 전에 비하면 얼굴이 확 상했더라. 책임이 큰 자리라서 많이 힘든 것 같다. 저는 서울시장 되고 나서 즐겁게, 행복하게 일해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뭐든지 즐겁게 하려고 한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얘기를 즐겨 한다. 버락 오바마(54) 미국 대통령과 그의 이미지는 오버랩된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것도 그렇고, 인권변호사 출신인 것도 닮았다. 오바마는 시민운동을 하다 미국 일리노이주 민주당 연방상원의원을 지낸 뒤 대통령에 당선돼 재선에 성공했다. 박 시장은 소통령이라는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했다.


요즘 박원순 시장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시민안전이다. 8월 25일 안전한 수학여행 지원 및 학생안전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협약서에 서명했다 / 사진·중앙포토
박 시장께서 요즘 가장 역점적으로 살피는 현안은 무엇인가?

“중요하지 않은 현안이 없지만 가장 우선에 두는 건 시민 안전이다. 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늘 먼저 토론하고 현안이 있으면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여름이 막 지났지만 우리가 아직 풍수해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안심할 수 없다.

서울시의 수해방지대책본부가 해제되는 게 10월 중순이다. 앞으로 한 달 정도는 태풍이 어느 방향에서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 예컨대 지난번 서초동 우면산 산사태 이후에 이미 보강공사를 다 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돼서 ‘제 3의 기관, 외국기관에도 한번 맡겨봐라’ 하면서 이중삼중으로 계속 점검하고 확인하고 있다.

과거에 침수 지역이었던 세종로 광화문 일대만 해도 제가 회의를 열 번이나 소집해서 다 보완해놓았다. 시민들이 겉보기에 뭐가 변했나 하시겠지만 보도블록도 빗물이 잘 빠지도록 침투성이 좋은 것으로 교체했고, 화단도 지하 5m까지 모래와 자갈을 넣어서 물이 잘 빠지게 만들어 놓았다. 유사시에는 빗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인근 학교의 땅 밑에 큰 저수공간도 확보했고, 빗물이 한꺼번에 잘 빠져나가도록 하수관 위치도 변경했다. 이런 세세한 것이 서울시장인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다.”

“제2롯데월드는 싱크홀 우려 없어”

세월호참사 이후 안전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되면서 박시장도 시민 안전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특히 잠실에 신축 중인 초고층빌딩 제2롯데월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롯데 측이 저층부 상업시설 개장 허가를 서울시에 요청하자 서울시는 시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9월 6일부터 10일간 프리오픈(pre-open)을 통해 시민들의 평가를 받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이를 통해 미흡한 점들이 나타나자 서울시는 추가로 유관부서와 외부 전문가들이 안전·교통·방재분야 등에 대해 종합 안전점검을 실시한 후 임시사용승인 여부를 9월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가 시민안전과 사업주인 롯데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눈치를 보고 있다는 논란도 없지 않았다. 최종 결정을 준비하고 있는 박시장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었다.

‘제2롯데월드’라는 초고층 빌딩 신축에 따라 안전과 관련해 이런저런 구설이 끊이지 않는데, 서울시의 원칙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서랍장에 꽂혀 있는 싱크홀 종합대책, 수해대책 파일을 가져와서 설명하며) 그래서 제가 이런 자료를 끊임없이 보고받고 계속 챙기고 있다. 여러 방면으로 점검해봤는데, 롯데월드 개발 지역은 싱크홀로 인한 위험은 일단 없어 보인다. 다만 인근 석촌호수에 물이 많이 빠지고 있는데, 그 원인은 물론 물 빠짐 현상이 과연 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전문기관에 1년 정도 걸리는 정밀한 용역을 발주해놓았다.

최근 문제가 된 도로의 동공들은 싱크홀이라기보다는 지반침하에 따른 도로함몰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지하철 공사로 인한 지반침하도 있고, 하수관이 노후화되면서 물이 새는 과정에서 모래나 자갈까지 함께 무너져내린 현상도 있다. 전문가들도 당장 제2롯데타워로 인해 생긴 것은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더라.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많은 전문가의 얘기를 듣고 나서 얻은 잠정 결론이다. 그래서 롯데월드 지역의 안전 문제는 지금 구성돼 있는 시민위원회 분들의 의견을 다 들어보고 최종판단을 할 생각이다.

알고 보면 이런 것들도 과거와 달라진 행정이다. 예전에는 서울시가 결정해서 업체에 통보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전문가를 모셔서 시민위원회를 만들고,서울시 직원들과 관계없이 별도의 평가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시민들에게 현장을 공개하고 의견을 들어보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집단 지성의 힘을 믿는 행정이다.”

박 시장은 9월 5일 ‘서울시정 4개년 계획’을 직접 발표하면서 안전한 도시와 따뜻한 도시, 꿈꾸는 도시, 숨쉬는 도시라는 4대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정책은 ‘환경’과 ‘복지’였다. 그는 자동차보다 사람과 자전거를 우선하는 보행친화도시를 만들겠다며 ‘북한산-세운상가-남산-용산공원-한강’을 잇는 10㎞의 보행 길을 완성시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18년까지 서울 4대문 안 도로 12개 노선 15.2㎞의 차도를 1~2개씩 줄이겠다고도 했다.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동 주민센터를 ‘마을복지센터’로 개명하고 사회복지사와 방문간호사를 두 배 이상 늘려 명실상부한 복지지원기관으로 탈바꿈한다는 청사진도 발표했다. 하지만 그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을 비롯해 복지와 안전관련 사업을 위해서는 8조 원이 넘는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박 시장은 요즘 들어 부쩍 복지문제와 관련해서는 중앙정부에 대한 비판도 제기한다. 2013년 무상보육이 전면 확대되고, 올해 7월 기초연금이 시행되면서 서울시가 복지예산을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라며 “중앙정부가 복지정책을 결정하고는 지방 정부에 떠넘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속내는 뭘까?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 시장은 자료를 모으고 토론하면서 변화하고 혁신해내는 일에 능하다. 그의 관심영역이 늘수록 시장실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그의 업무파일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보편적 복지비용은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보편적 복지와 안전관련 예산은 중앙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서울시 재정에 뭔가 문제가 있나?

“전 국민이 수혜대상인 보편적 복지는 지방정부가 원천적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다. 지방정부는 세수가 딱 제한돼 있어서 중앙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물론 중앙정부가 힘든 건 알지만 지금 자치단체들마다 거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지경이라고 아우성이다. 서울시도 이미 긴축재정을 통해 지난 3년간 5조 원의 채무를 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사업은 많고 예산은 너무 없으니까 많이 힘들다. 서울이 런던이나 베를린 같은 세계 도시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지금 서울시 인구 1인당 예산액은 전국 광역자치단체중 거의 꼴찌수준이다. 중앙정부가 예산 재정 운용에 대한 큰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결단이 필요하다는 건가?

“예산, 재정에 관한 결단이다. 지방분권이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대통령께서 통찰해서 결단을 내려달라는 거다.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위해서 재정과 인사 자율권을 지방에 이양해야 한다.”

인터뷰 다음날인 12일, 정부는 지방세 대폭인상 계획을 발표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에 따른 복지비 부담 증가로 ‘복지 디폴트’를 경고하며 반발하자, 앞으로 2∼3년에 걸쳐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지방세를 두 배 이상 대폭 인상하고 재산세도 올리기로 하는 등 지방세 인상에 착수한 것이다. 하지만 박 시장 말대로 지방분권을 위해 재정과 인사 자율권을 지방에 주는 중앙정부의 결단은 아직은 바라기 힘든 상황이다. 박 시장으로서는 제한된 재정 범위 내에서 효율적인 개발과 혁신을 이뤄내야 하는 처지다. 이미 추진이 어려워진 뉴타운사업에 대해 출구전략을 제시한 것도 그런 복안을 담은 정책으로 꼽힌다.

시장 재임 이후 말 많고 탈도 많았던 뉴타운사업에 대해 출구전략을 제시했는데, 공약한 방향으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시의 ‘뉴타운, 재개발 출구전략’의 기본 원칙은 전적으로 주민의사에 따라 뉴타운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시민과 약속한 대로 실태조사를 통해 뉴타운 해제를 원하는 주민이 50%가 넘는 160개 구역(재개발 129구역, 뉴타운 31구역)이 이미 해제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서울시는 뉴타운을 해제하고 추진하는 단순한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거재생’이라는 도시정비사업의 새 패러다임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전면 철거형의 물리적인 정비방식을 넘어 사람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시재생이다. 과거처럼 무조건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개발이 아니라 문화, 역사를 보존하고 관주도가 아닌 지역주민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7월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립해 일자리 창출과 주거환경 개선, 마을공동체 회복이라는 3가지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 첫 대상 지역이 지난해 6월 뉴타운 지구에서 통째로 해제한 ‘창신·숭인’ 지역이다. 역사적 장소와 기존 주거지를 보존하면서 주거여건을 개선하는 한양도성 주변 성곽마을도 9개 권역 22개 마을을 대상으로 3단계로 권역을 나눠 재생사업을 추진할 것이다.”

박 시장의 관심사는 시민안전 대책이나 도시재생사업 등 서울시의 현안에 머물러 있지만 여의도정치권이나 언론들은 그를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주시하고 있다. 9월 7일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의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박 시장은 1위를 차지했다. 한국갤럽은 지난 8월 차기 대선주자와 관련한 첫 여론조사에서 박 시장이 1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안철수 지지층이 박원순으로 이동했다”는 해석을 내놓아 주목을 끌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6월 지방선거 이후 차기 대선주자 군에서 여당 인사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 야당 주자는 박원순 시장이라는 인식이 확산돼가는 상황이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서울시장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며 대권도전에는 손사래를 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서울시 인사들은 사회를 바꾸는 소셜디자이너(social designer) 1호를 자처했던 그의 성향으로 볼 때 필연적으로 나라를 디자인하는 ‘큰그림’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 2017년 대선을 고려하면 그는 민선 6기 재임기간인 3년여 동안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청와대로 직행한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 복원’을 통해 전 국민을 서울 한복판으로 불러들인 바 있다. 박원순 시장은 무엇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해볼 수 있는 국제적인 이벤트가 하나 있다. ‘박원순표 창조경제’의 이미지를 알릴 2015 서울 세계패션박람회다.


박원순 시장이 7월 25일 청와대에서 주최한 전국 시·도지사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박 시장도 창조경제를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이른바 ‘박원순의 창조경제’는 규제개혁이 요체인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는 내용이 다른 것으로 안다. 박 시장의 창조경제 요체는 뭔가?

“영국 런던이 창조경제로 인한 매출액이 전체 경제의 20%라고 한다. 과거에 디자인이나 패션산업은 주로 파리나 밀라노에서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런던, 베를린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예컨대 세계적 명성을 가진 ‘브레드앤버터(BREAD & BUTTER, 이하 BB)’라는 게 있다. 일종의 패션 이벤트 전문회사다. 이 회사가 한번 이벤트를 하면 1천여 개의 전 세계 패션회사가 따라다닌다. 패션산업이 번창할 수밖에 없다. 베를린이 BB를 개최해 10여 년 만에 세계 패션의 5대 도시가 됐다. 그런데 이 BB가 내년에 서울에서 패션박람회를 열기로했다.”

박원순표 창조경제는 패션박람회

박 시장이 유치했나?

“그렇다. 제가 BB 회장 일행이 몇 달 전 서울에 왔을 때 원하는 박람회 장소를 선택하시라고 헬기를 지원해드렸다. 이분들이 헬기를 타고 서울의 몇 군데를 골랐는데, 동대문디자인 플라자(DDP)와 한강 세빛섬 인근 유휴지를 선택했다. 그래서 내년 9월에 세빛섬 일대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앞으로 5년정도는 서울에서 BB의 패션박람회가 열릴 것 같다. 그렇게되면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서울 패션위크’가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행사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박 시장의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갔다. 박 시장 본인은 소박한 옷차림을 즐겨 하지만 패션계 인사들과 교류가 깊다고한다. 그는 2012년에 패션그룹상 패션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패션계 인사들에 따르면, 독일 최대 패션 박람회인 ‘브레드 앤 버터’는 구미지역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삶과 패션, 비즈니스에서 꼭 필요한 가치들을 선보이겠다는 취지로 2001년 시작된 대형 패션이벤트다.

BB는 매년 1월에 바르셀로나, 7월에 베를린에서 열린다. 전 세계 1천여 개 브랜드가 참여하고 패션업계 종사자와 바이어 등 8만여 명이 찾는 세계적인 패션 박람회다. BB는 특히 지난 10여 년간 베를린 패션위크와 연계되면서 27만 명 이상의 방문객을 유치해 베를린이 세계 5대 패션도시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박 시장은 8월 13일 유럽 순방 중에 베를린에서 칼 하인즈뮐러 BB 회장을 만나 박람회의 서울 개최에 합의했다. 이에따라 내년 BB는 1월 바르셀로나, 7월 베를린, 9월 서울에서 진행된다. 내년 9월 3~5일 한강 세빛섬 일대 고수부지에서 개최될 BBS(Bread and Butter Seoul)에는 국내외 400여개 패션 브랜드가 참여할 예정이다.

장한평 중고차매매단지에 튜닝산업 육성

BB측은 지난 5월 낸 공식 보도자료에서 “한국은 음악·패션·음식·테크놀로지가 발전하고 있고 서울의 거리 위는 하나의 패션쇼와 다름없다”며 “서울시는 이미 패션 산업을 도시의 8가지 신흥산업 중 하나로 선정, 정부 차원의 지원과 보조를 하고 있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서울시는 BBS 개최를 통해 서울이 동대문 의류상권과 연계해 패션산업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박 시장이 민선6기 취임 후 처음으로 유치한 대규모 국제행사인 만큼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는 눈치다.(박 시장은 인터뷰 다음날인 12일에도 BBS의 성공 개최를 위해 세빛섬에서 열린 사전 홍보행사에 참석해 국내외 패션업계 종사자들을 격려하는 등 정성을 쏟았다.)

BBS 박람회가 박원순표 창조경제의 한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창조경제라는 개념도 전향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있다. 한국이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장시간 노동을 하는데, 노동 생산성은 가장 낮다. 왜 그럴까? 쉬지 않고 계속 일만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일할 때 일하고 놀 때 놀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발전방향 성장동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저는 시민들의 삶의 질, 여유로움, 성찰 이런 것들 속에서 창조와 상상과 혁신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옛날처럼 부지런히 일한다고만 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1970~80년대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세상을 열어가야 한다.

예건대 서울에서 자동차 공업을 육성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동대문구 장한평 지역에 중고자동차 매매 단지가 있다. 우리가 그곳에 국제 거래센터를 만들어서 원스톱 쇼핑으로 모든 거래가 가능하게 하려고 한다. 튜닝산업이 한3조 원대의 시장인데, 장한평에 튜닝과 관련한 R&D와 중고자동차 중심의 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이처럼 혁신과 창조는 완전히 엉뚱한 걸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걸 가지고 하는 것이다. 이러면 서울시의 창조경제가 잘되지 않겠나! 서울시는 이런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직원들은 그런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느라 거의 뭐 빈사지경이지만.”(웃음)

박 시장의 달변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박 시장이 구상하는 창조경제 거점은 장한평뿐만 아니라 문화산업 중심인 ‘신홍합 밸리’(신촌·홍대·합정)를 비롯해 구로디지털단지(G 밸리), 상암DMC 등 다양하다. 물론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치밀한 재원조달 방안과 구체적인 콘텐트가 뒤따라야만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는 9월 4일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이사장으로 있는 동반성장연구소와 ‘서울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동반성장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박 시장이 “서울의 경제비전에는 창조경제거점 조성사업이 있고, 또 다른 한 축에는 경제민주화가 있다”며 정 전 총리에게 자문을 요청했고, 정 전 총리는 “동반성장은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고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을 이루는 수 단”이라고 적극적인 협력을 약속했다.

당장 여의도정치권에서는 정 전 총리가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을 코드로 박 시장의 경제 과외교사를 맡은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시장은 최근 서울시 경제진흥실장에 맥킨지 한국사무소 파트너인 서동록(45) 씨를 내정했다. 재정경제부에서 사무관을 지낸 엘리트 관료 출신인 그는 일자리 창출과 민생경제 등 박 시장이 관심을 두고 있는 서울의 경제정책 실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정운찬 전 총리가 경제 과외 교사를 맡고, 실무적 성과는 실력을 검증받은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박 시장의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386운동권 출신으로 민주당 국회의원을 지낸 소장파인 임종석(48) 부시장이 새정치민주연합과 연결고리 역할을 맡으면서 그의 정무적 기능을 보좌하고 있다. 이쯤 되면 박 시장의 대권 준비는 대강 그림이 그려진다고도 볼 수 있다.

큰 지도자를 꿈꾸는 박 시장에게 부족한 것은 없을까? 박 시장은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출신이다. 시민운동가 체질이 몸에 밴 리더다. 그의 페이스북 주소는 ‘hope2gether’다. 늘 희망을 강조한다. 민선 6기 시장 취임사에서도 “가장 낮은 곳, 시민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도자라면 자신의 자리에서뿐만아니라 뜨거운 갈등의 현장에서도 희망의 씨앗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요즘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 상황에서는 더 그런 주문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는 정치·사회 현안들과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시장이 광화문에서 농성할 수는 없어”

시장실에서 광화문이 지척이다. 세월호특별법을 요구하는 이들의 단식농성장에 박 시장은 왜 가지 않을까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허허.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당대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박근혜 대통령이 할 일이 있다. 제가 광화문에서 농성을 하겠나,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나? 제가 할 일은 시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정확히 하는 것이다. 시청앞 서울광장에 ‘마지막 한 분까지’ 라고 지금도 쓰여 있다. 그게 서울시의 의지다. 마지막 한 분의 희생자가 가족 품에 돌아올 때까지 추모하는 마음과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을 저도 갖고 있다. 또 하나,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시스템이 붕괴돼 발생한 것이다. 서울시도 그런 사고가 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사고라는 건 늘 징후가 있지 않나. 세월호도 그런 여러 징후가 있었는데 우리가 놓쳤던 것이고. 그래서 시장인 저는 우리 공무원들에게 그런 부분에 점검하고 또 점검하자고 늘 강조하고 있다.”


지난 선거 때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한 박원순 시장. 사람들에게 희망을 일깨우는 그가 정작 뜨거운 정치·사회 현안들과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있다는 말도 듣는다. / 사진·중앙포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지도자라면 갈등과 분열의 현장에서 화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던데?

“그것은 염수정 추기경님이나 우리 사회의 원로들이 하셔야 될 일이다. 저는 시장으로서 제 본분을 지키려는 것이고. 세월호 사건의 정말 큰 교훈은 각자 위치에서 각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아니었나. 그런 점에서 저는 서울시장으로서 빈틈없이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4년의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 시장으로서 무엇을 하고 싶은가?

정상성의 회복이다. 행정을 원칙과 철학, 상식, 합리, 균형 이런 잣대 위에 아주 반듯하게 올려놓는 것이다. 궤도에 올리는 게 어렵지 한번 올려놓으면 가는 건 쉽지 않은가! 제 관심은 아주 작은 데 있다. 보도블록 10계명, CCTV, 거버넌스 이런 것들이다. 저기 파일들 보시면 알겠지만 빛, 공해, 악취, 소음 등등 하나같이 시민의 삶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시민이 체감하는 것은 이런 작은 것들이다. 보도블록도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보도블록 하나 제대로 못 만들면서 어떻게 도시를 어떻게 제대로 만들겠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 않나? 지금도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에 가보면 로마제국 시절에 닦아놓은 길이 아직도 쓰인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맨날 갈아엎지 않나. (그가 보도블록 10계명이라 쓰여 있는 파일을 꺼내 들었다) 보도블록도 매번 제가 보고를 받는다. 여기 보면 어느 업체가 어떤 제재를 받았고, 어디가 문제이고, 보도블록 순찰 결과는 어땠는지 이것만 보면 딱 알 수 있다.”

박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들에게는 ‘디테일주의자’로 통한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보도블록 10계명이다. 그가 시장이 된 뒤로 서울시에서는 연말 동절기에 관행처럼 해온 보도블록 교체공사가 사라졌다. 박 시장에 따르면, 총 길이 2788㎞의 서울시 보도는 경부고속도로를 3회 왕복한 거리나 된다. 서울시민은 이러한 보도에서 하루 평균 70.3분을 보낸다.

박 시장은 그래서 2012년 5월부터 ‘서울시 보도블록 10계명’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다. 누가 공사했는지를 밝히는 ‘보도블럭 공사 실명제’, 보도 공사 하자 발생 시 최대 2년간 서울시 공사 입찰을 제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보행자 안전 도우미’ 설치 의무화, 파손블록을 신속하게 교체하기 위해 납품물량의 3%를 남겨두는 ‘보도블록 은행’ 운영, 11월 이후 공사는 금지하는 ‘보도공사 Closing 11’이 주요 골자다. 그는 서울시에 보도블록을 전담하는 보도블록혁신본부장 자리까지 신설했다. 이쯤되면 보도블럭 시장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보도블록 10계명’ 파일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박원순 서울시장. 디테일에 밝은 그는 작은 일에 충실해 큰일을 도모할 줄 아는 지혜로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보도블록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보도블록이 박원순의 행정을 보여주는 쇼윈도다. 우리가 보도블록을 투수블록으로 만들어서 지금은 비가와도 침수 피해가 줄었다.(보도블록 10계명 파일 속의 보도블록 시공 사진들을 보여주며) 여기 전신주 밑에 보도블록 처리를 어떻게 했는지 보라. 옛날에는 이게 제대로 처리가 안돼서 너무 엉성했잖은가? 그런데 이런 게 완벽하게 마감처리돼 있다. 보도블록과 도로가 연결되는 부분의 경계석도 확 낮췄다. 높이가 안맞으면 턱이 돼서 보행기나 휠체어가 못 다니잖나? 보도블록 놓을 때 기초도 달 다져야 보도 바닥이 침하되지 않고 고르게 된다. 이게 작은 일 같지만 작은 일이 아니다.”

보도블록 10계명은 박원순의 성공사례

작은 것에 충실해야 큰 일도 잘한다는 말로 들린다.

“(긍정하는 듯 웃으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추상적이고 큰 담론에 치우쳐 작은 것에 소홀히 하는데, 작은 것부터 바로잡으면 큰 틀이 바로잡힌다.”

그는 지난 6월 선거 때도 “꼼꼼함, 세밀함이 저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보도블록 10계명을 자신의 성공사례로 제시했었다. “이런 작은 거 하나 못하면서 어떻게 큰일을 제대로 하겠느냐? 글로벌 도시 만들려면 꼼꼼하고, 정말 치밀하고,기본과 원칙부터 잘해야 한다, 그래야 반듯한 서울시가 만들어진다”고도 했다. 반듯한 서울시 자리에 대한민국을 대입해 놓고 보면 대선 출사표나 다름없다.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랜드 디자인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했다. 작은 것에 충실하는것, 바로 생활정치다.

그래도 너무 작은 것에만 집착하는 것 아닌가?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을 복원하더니 국가까지 경영해보겠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국가를 경영해볼 생각이 없는가?

“없지요. 저는 (대선 주자가 아니라) 동장 수준이다.(웃음) 뭐든지 작은 일에 관심이 간다.”

박 시장과 인터뷰해본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박 시장처럼말 잘하는 시장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어지간해선 기자들에게 책 잡힐 얘기도 하지 않는다. 박 시장의 측근들에 따르면,화내며 다가오는 민원인을 만나도 박 시장은 일단 끝까지 다 들으며 마음을 풀어주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변호사 출신으로 달변인 데다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제압할 줄 아는 화술과 설득의 달인이라는 평이다. 그는 어수룩하면서도 능란하고, 순수하면서도 노회하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수 있는 것이다.”

[중용] 23장에 나오는 대목이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의 서책을 관리하는 환관 상책은 이 긴 구절을 숨 한 번 쉬지 않고 그대로 외워 정조를 감동시켰다.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동력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강조한 중용의 이 대목은 성군이 되고자 하는 정조의 평생 목표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박 시장은 작은 것부터 충실하게 해야 큰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셈이다.

수험생에 비유하자면 그는 지금 2017년 수능을 대비해 착실히 내신점수를 한 점 한 점 올려가고 있는 모범생 이미지다. 도토리키 재기식 계파싸움으로 날을 새우는 야권에는 아직 ‘원순 아지매’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2위를 달리는 그의 행보에 앞으로도사람들의 관심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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