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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현장 | 향토 영화관 ‘광주극장’의 실험 - 스크린에도, 객석에도 아날로그가 숨쉰다 

상업영화와 멀티플렉스 전성시대에도 예술영화·독립영화 상영 고집하며 향토 극장의 돌파구 열어 

글 윤재원 월간중앙 인턴기자 사진 지미연 기자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공세에 각 지역을 대표하는 단관 극장이 사라진 지 오래다. 초현대식 복합상영관의 거센 물결에 맞서 회고풍의 손간판을 고집스레 내건 곳이 있다.
광주광역시의 구(舊) 번화가인 충장로에 있는 광주극장이다. 8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극장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지역의 영화 애호가들과 소통하며, 관객에게 영화뿐 아니라 그 시절의 노스텔지어를 선물한다.


80년 역사를 가진 광주극장의 커다란 손간판과 옛날식 매표소에서 아날로그의 향수가 짙게 느껴진다. / 사진제공·광주극장

시내 한복판에 시간이 멈춘 듯한 빛 바랜 건물이 눈에 띈다. 1970~80년대에나 있었을 법한 커다란 손간판이 내걸려 있는 광주극장. 첫인상은 촌스러움과 고풍스러움의 중간 어디쯤이다. 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은 멀티플렉스 극장의 매표 기계가 아니라 그 시절의 아날로그식 매표소다. 낡은 유리창너머로 직원이 눈을 맞추며 묻는다. “어떤 영화 보시겠어요?” 표를 끊어서 삐걱거리는 목재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마치 흑백 사진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광주극장은 1935년에 개관해서 전국을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토 단관(하나의 스크린을 갖추고 단일 작품을 상영하는 영화관) 극장이다. 거대 영화투자·배급사의 자본과 CGV·롯데시네마 등의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밀려 서울에서도 단성사·대한극장 등 주요 영화관이 문을 닫거나 대자본과 합작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변모했지만 이곳은 꿋꿋이 80년의 전통을 이어온다.

3층 구조의 극장 안은 무려 800여 개의 좌석을 보유한 큰 규모 때문에 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을 공연하는 대형 홀을 방불케 한다. 오랜 역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순사들이 극장안의 동태를 살피고 영화 상영을 통제했다는 ‘임검석’(臨檢席: 극장 등의 단속 경찰관·소방관 등을 위한 특별석)도 그대로 보존돼 있다. 이 극장은 1968년 큰 불이 났을 때 잠시 휴관한 것을 제외하곤 상영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광주극장. 1935년에 광주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선인이 세운 극장이었다. / 사진제공·광주극장
광주 최초의 조선인 운영 극장으로 태어나

2층 상영관 입구 주변에는 커다란 영사기와 고전명화의 입간판들이 전시돼 있다. 3층 영사실에 들어가보니 CD나 DVD 플레이어처럼 디지털화된 필름을 상영하는 디지털 영사기와는 달리, 커다란 아날로그 필름을 걸어서 쓰는 옛날식 영사기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극장 관계자는 한 달에 한 번은 아날로그식 영사기를 이용해 필름영화를 상영한다고 설명한다.

극장 한켠에는 작가가 붓으로 영화간판을 그리는 간판실도 남아 있다. 광주극장은 복합상영관처럼 확대한 포스터를 실사출력한 간판 대신에, 아직까지 손간판을 내거는 몇 안 되는 극장 중의 하나다.

이곳에서 20년간 손간판을 그려온 박태규 화백의 말에서 한껏 자부심이 묻어난다. “광주극장은 저한테도 아주 소중한 공간이지요. 제 얼굴이기도 하고, 제 작품의 전시장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작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작업실이기도 합니다.”

1930년대 광주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국관’이란 영화관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가부키나 기미가요 등의 공연도 자주 열렸다. 이런 일본 취향의 문화공연은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다. 광주시민들로서는 우리 민족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에 목말라할 수밖에 없었다.

상인 김준실이 광주극장을 짓는 데 나섰다. 광주 충장로에서 남해당(南海堂)이라는 큰 악기점을 운영하던 김준실은 축음기나 음반을 팔며 자연스레 공연장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공사비 때문에 재정난을 겪던 그는 미곡상을 하던 광주의 유지 최선진에게 공사 중에 극장을 팔아야 했다.


극장 안에 있는 간판 제작실. 광주극장은 확대한 포스터를 실사 출력하는 대신, 아직까지 손간판을 내거는 몇 안 되는 극장 중의 하나다.
극장을 인수한 최선진은 1935년 10월 공사를 마치고 극장 문을 열었다. 광주 최초로 조선인이 운영하는 극장이 탄생한 것이다.

개관 이후 광주극장에서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렸다. 1930~40년대에는 악극단·창극단 공연을 주로 열어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6년 한국 최초의 발성영화였던 <춘향전>이 상영됐고, 해방 이후에는 애국강연회와 시민단체의 집회 장소로도 사용됐다. 1948년 문춘성의 권투 시범경기, 1956년 제1회 전국학생연극제 등 다양한 행사가 광주극장에서 열렸다. 20세기 최고의 현대무용가 최승희, 국악인 임방울 등도 이곳 무대를 빛냈다.

광주극장과 경쟁했던 제국관은 해방 이후 무등극장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공세에 밀려 2012년에 문을 닫았다. 이렇게 해서 광주극장은 광주의 유일한 단관 극장으로 남게 됐다. 현재광주극장 법인의 대표는 최선진의 후손인 최용선 씨가 맡고 있다


광주극장 안을 돌아보면 마치 흑백사진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껴진다. 2층에 전시된 필름 영사기와 고전명화 입간판들이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 극장에 올가을 추석 극장가를 휩쓸었던 <명량>이나 <해적>을 기대하고 갔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거대 자본이 투입돼 전국의 유통망을 통해 뿌려지는 블록버스터 상업영화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몫으로 돌리고 이곳은 오로지 ‘마이너의 세계’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광주극장은 흥행성보다는 다양성을 중시하고, 수익보다는 관객을 우선한다. 이곳에서는 흥행에 유리한 상업영화보다 <비긴 어게인> <그 사람 추기경> <족구왕> 등 작품성과 독창성을 인정받은 예술영화·독립영화들을 주로 상영한다. 더구나 극장을 찾는 관객의 영화감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영화 시작 전에 상업광고는 일절 하지 않고, 영화가 끝나도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조명을 켜지 않는다.

복합상영관에서는 볼 수 없는 광주극장만의 이상한 풍경은 극장주의 소신 때문이다. 대기업·대자본의 독과점 구조에서 벗어나 더 많은 저예산·다양성영화가 상영될 수 있게 하고, 관객의 영화 향유 경험을 보다 풍성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영화 상영만 하는 멀티플렉스와는 달리 광주극장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해 관객의 발길을 이끈다.
‘상품’보다 ‘작품’, ‘수익’보다는 ‘관객’ 우선

광주극장은 대자본이 좌우하는 한국영화 유통 산업의 물결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3대 배급사(롯데·CJ·NEW)가 영화 시장의 약 80%를 장악한 기형적 현실에 대한 도전이다. 거대 배급사들은 CGV(CJ계열)·롯데시네마 등의 상영관을 소유하면서 투자와 제작, 영화 배급까지 영화가 만들어지는 거의 모든 단계를 독점한다. 독립영화·예술영화가 끼어들 틈바구니가 없을 정도다.

이들 배급사가 보유한 상영관에 걸리는 작품은 국내에서 제작되는 영화의 3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아예 상영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셈이다. 운 좋게 이들 극장에서 개봉한다 해도 1주일 정도 징검다리 상영을 하고 끝내는식이다.

반면 대형 배급사와 자본을 등에 업은 작품들은 전방위적 홍보 효과를 누리며 단숨에 흥행작의 반열에 오르기 다반사다. 최근 관객 수 1700만 명을 돌파한 <명량>도 예외가 아니다. <명량>은 총 2508개의 스크린 중 무려 1586개에서 상영되는 호사를 누렸다. 이는 <명량>을 제작한 CJ E&M의 거대 멀티플렉스 유통망(CGV)의 힘에서 나온 기록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국의 스크린 3분의 2를 한 영화가 독점한 것이다.

같은 시기 국내에서 개봉한 70편 정도는 남은 스크린을 쪼개 이름을 내건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몇 안 되는 스크린을 나눠서 써야 하는 이들 개봉영화 중 독립영화·예술영화의 비중은 50~70%에 이른다. 천만 관객 영화는 작품성보다는 자본과 시장이 결정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처럼 자본에 의해 대중과 격리된 작품성 높은 저예산 영화들이 숨쉬는 공간이 바로 광주극장과 같은 예술영화전용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저예산 독립영화·예술영화의 상영 기회를 늘리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볼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2002년부터 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해마다 약 20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정하고 한 극장당 연간 최대 6500만 원을 지원한다. 이들은 219일 이상의 예술영화 상영일수를 충족시켜야 한다.

광주극장은 영진위의 정책적 지원이 시작되기 전인 2000년도부터 자체적으로 레이트 쇼(Late Show)라는 다양성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대형 영화관과 달리 다양성영화 전문 상영관으로 방향을 틀어 마니아층을 끌어들이는 차별화 전략이었다. 13년째 명맥을 유지해오는 데에는 영진위의 지원도 한몫했다.

그러나 영진위의 지원금만으로 운영비를 충당하기는 버겁다. 광주극장 관계자는 “다양성 영화의 관객수가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짧은 시간 안에 늘지는 않는다. 아직까지 큰 극장 규모를 운영하기에는 관객이 많이 부족해서 굉장히 긴축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오늘의 광주극장 만든 건 시민들의 관심

직원들은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다 광주극장을 시민 친화적인 문화공간으로 만들어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영화 상영만 하는 멀티플렉스 극장과 달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관객의 참여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고전영화를 함께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씨네클럽 1과 2분의 1’, 문화 소외계층에게 극장 외의 장소에서 영화를 상영해 주는 ‘공동체 상영’, 영화를 상영하면서 다른 이벤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독특한 관람방식의 ‘명랑극장’ 등이 그 예다. 행사의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많을 때에는 참가자가 100여 명에 달할 때도 있다.

“얼마 전에 나희덕 시인을 초대해 토크쇼를 했었는데, 그때 굉장히 감성도 충만해지고 좋았어요. 다음 프로그램도 기대가 됩니다.” 광주극장을 찾은 한 시민이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김형수 이사는 “단순히 스크린 앞에 앉아 화면만 보고 끝나는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달리, 이런 다양한 활동들이 진행되면 광주극장에 대한 친밀도나 애정도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광주극장의 노력에 시민들의 호응도 점점 커져간다. 하루 평균 관람객이 7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조금씩 고정 관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독립영화 마니아라고 밝힌 김형엽(44) 씨는 “영화에 더 잘 몰입할 수 있고, 또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그 여운이 다른 멀티플렉스 극장보다 더 오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단골 관객인 최경순(58) 씨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젊은 시절의 추억 때문에 CGV나 롯데시네마보다 광주극장을 더 자주 찾는다”며 애착을 나타냈다.

관객들은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다른, 인간적인 교감과 친근함을 광주극장만의 특별함으로 꼽는다. 김 이사는 “관객들 중 30년 단골, 많게는 50년 단골도 있다. 관객들끼리도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친밀한 커뮤니티가 자체적으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들은 이곳을 일종의 사랑방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영진위에 따르면 전국의 영화관 414개 중 예술영화전용관은 39곳, 47개 스크린에 불과하다(2013년1월 기준). 저예산·다양성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수는 전체 스크린의 약 2% 수준이다. 반면 독립영화·예술영화의 비중은 갈수록 늘어 2000년에 10%였던 것이 올해는 55%까지 늘어났다. 그렇다 보니 이들 영화가 제한된 극장에서 상영 기회를 얻는 것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나마 하루 2∼3회의 상영시간도 극장이 텅 비는 평일 낮 시간이 대부분이어서 관객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

멀티플렉스와 상업영화 위주의 구조 아래에선 소비자가 다양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도 줄어든다. 특히 서울이 아닌 지방으로 갈수록 예술영화 전용관이 턱없이 적어 관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극장에서 만난 이지송(60) 씨는 보고 싶은 영화가 마감될까봐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다고 했다. 이씨는 “광주에서는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데가 거의 없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금방 마감을 해버려 아쉽다”고 말했다.

김남훈 공정영화협동조합 상임이사는 사람들이 다양한 취향을 가질 수 있는 경로가 막혀 있는 획일적인 현실을 우려했다. 영화 시장을 장악한 상업영화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이 각자의 영화 취향을 가질수 없게 되고, 상업영화로 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김 이사는 “시민들의 영화 취향마저 자본이 결정하게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대형 영화관들이 영진위의 지원을 받아 예술영화전용관 분야에도 뛰어들어 업계에서 또 다른 논쟁을 부른다. 롯데시네마는 건대입구(아르떼관)와 대구 등에 예술영화전용관을 열었다. 롯데시네마는 이를 통해 영진위의 지원금까지 받아냈다. CGV도 지난해에 자체 예술영화전용관(무비꼴라쥬)을 통해 영진위의 지원을 받았다가 ‘대자본의 독식’이란 비판이 일자 올해는 지원사업에 신청하지 않았다.




광주극장은 광주에서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이다. 독립영화· 예술영화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 영화를 볼 수 있는 스크린 수는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예술영화관마저 넘보는 대자본 극장들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예술영화전용관 사업에 뛰어든 것을 두고 일부에선 ‘상업영화 독과점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구색 맞추기’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돈이 되는 목이 좋은 곳에만 전용관을 열어 상업논리를 앞세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분한 자본력을 갖춘 이들이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지방에서 오랫동안 힘들게 운영해온 지역 단관들이 지원금 공모에서 배제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빵 열 개를 가진 부자가 가난한 열 사람이 나눠 먹을 유일한 빵 한 조각마저 손을 대는 셈이다.

이지연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은 “지역 단관 극장들은 오랫동안 영화 문화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각 지역에서 어렵게 운영해온 경우가 많다. 이런 것들을 좀 더 보존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어서 예술영화전용관 지원사업이 있는 건데, 대자본 멀티플렉스 상영관들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대기업이라고 지원 대상에서 제외할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 단관들이 워낙 영상·스크린·위생 등 시설이 열악해 시설 평가 기준에서 대기업 전용관들이 점수를 잘 받을 수밖에 없다”며 “더 많은 예술영화 관객을 유치하기 위해 시설이 좋고 접근성이 뛰어난 곳을 지원하는 것도 정책 취지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과 지역 단체들의 요구를 골고루 반영해 건강한 영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영진위의 역할인데, 이를 외면한 것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형수 광주극장 이사는 “향토 극장들이 그 지역에 계속 자리 잡아서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자꾸 시장논리를 내세워 공간도 열악하고 관객도 얼마 안 된다는 이유로 지원을 줄이는 것은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는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영진위의 지원 정책이 저예산 독립영화와 영세 상영관을 살리고, 영화의 다양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각 주체가 스스로 길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자생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광주극장의 실험은 다양한 영화 기호를 충족시켜주는 독립영화·예술영화가 설 곳이 부족한 현실에서 저예산 영화 제작자와 관객, 영세 극장이 공생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극장을 찾는 관객도 적고, 정부의 지원금도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광주극장은 멀티플렉스 극장과 차별화된 그들만의 철학과 감성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흥행을 따르지 않지만 편안하고,영화가 끝나도 한참 동안 불 꺼진 객석에서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영세 극장들이 돌파구로 삼을 만한 모델이다.

광주극장 운영진의 장기 목표는 극장의 모습만큼이나 소박하다. “관객이 많이 와서 떼돈을 벌기보다 여태껏 해온 것처럼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극장의 한 세기를 지켜주셨던 관객들과 함께 새로운 100 년의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때로는 대형 스크린과 편안한 좌석, 상업영화가 있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닌, 오랜 추억과 관객에 대한 배려, 다양한 영화가 공존하는 광주극장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광주극장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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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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