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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 담뱃값 인상 ‘증세시대’ 신호탄? - 인상폭 2천 원, 세수 극대화 노린 황금율인가 

미신설된 개별소비세가 ‘증세 꼼수’ 논란의 핵심… 내년 증액 예정인 안전예산의 절반을 담뱃세로 충당 

함승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라면 회사가 라면값 100~200원만 올려도 소비자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담배 장사를 하는 정부는 아무런 사회적 논의 없이 80% 가까이 값을 올리면서 1천만 흡연자에게 아무런 양해를 구하지 않고 사회적 논의도 없었어요. 이게 말이 됩니까? 담뱃값 때문에 담배가 더 땅기네요.”


정부의 담뱃값 인상이 증세를 위한 정책이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담배코너를 정리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한 30대 직장인의 토로다. 국내 흡연자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반발이 만만치 않다. 논의 절차도 없이 인상안을 급작스럽게 발표한 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인상폭의 적정성부터 ‘증세 꼼수’ 등에 대한 논란도 거세다. 앞으로 쏟아질 세금인상 발표의 신호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9월 11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담뱃값 2천 원 인상 등의 내용을 담은 ‘종합 금연대책’을 내놨다. 기존 담배소비세·지방교육세·건강증진부담금·폐기물부담금뿐 아니라 종가세(가격기준 세금) 방식의 개별소비세 (2500원 기준 594원)도 추가된다. 이와 함께 물가와 연동해 담뱃값을 꾸준히 올리는 물가연동제도 병행하기로 했다.

정부가 내세운 담뱃값 인상의 가장 큰 명분은 ‘흡연 억제다. 정부는 높은 흡연율을 근거로 들었다. 한국 남성 흡연율(19세 이상 성인)은 43.7%. 15세 이상 남성을 기준으로는 3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6%)보다 훨씬 높다. 이와 달리 담뱃값은 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1 수준이다. 담뱃값이 싸면 청소년 등 새로운 흡연층이 생기기 쉽다는 게 정부의 주장이다.

‘흡연 억제’ 명분, 과연 믿을 만한가?


9월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이 참석해 담뱃값 인상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 최경환 경제부총리, 방문규 기획재정부 제2차관. /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금연 정책은 명분일 뿐 정부의 본심은 세수 확보에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담뱃값의 대부분은 세금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던 정부가 경기침체로 소득·법인세, 상속·증여세 등 직접세를 걷기가 어려워지자 간접세인 담뱃값에 손을 댔다는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이 2천 원 오르면 전체 세수는 연간 2조83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본다. 세부 항목별로는 신설되는 개별소비세 1조600억 원, 건강증진부담금 8700억 원, 지방세 7600억 원, 부가가치세 1천억 원, 폐기물 부담금 400억 원 등이다. 단, 이는 가격 인상으로 담배 소비가 34% 줄어든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흡연율 추세에 따라 세수 효과는 크게 달라진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재정 영향 분’에서는 담뱃값 2천 원 인상 때 5조2천억 원의 세수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번에 신설된 개별소비세도 ‘증세 꼼수’ 논란의 핵심이다. 개별소비세는 귀금속·자동차·카지노 등 사치성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별도의 높은 세율을 매겨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부과되는 세금이다. 다른 항목인 담배소비세와 지방교육세가 각각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으로 귀속되는 것과 달리 개별소비세는 중앙정부 국고로 간다. 굳이 없던 항목을 신설하면서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판을 부추긴 것이다.

정부는 “개별소비세로 걷은 1조600억 원(지방세 이전 제외)은 안전 예산 확충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정은 내년도 안전 관련 예산을 2조 원 증액한다는 방침이다. 늘어나는 안전 예산의 절반 정도는 담뱃세에서 충당하겠다는 것이다.

담뱃세의 절반을 차지하는 국민건강증진부담금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건강증진부담금은 각종 담뱃세 중 이번에 가장많이 오르는 항목이다. 현재 2500원짜리 담배에 354원이 부과되고 있는데 이를 841원으로 올릴 계획이다. 이 돈은 국민건강 증진 사업에 투입되는 건강증진기금의 재원이 된다. 그러나 흡연자들이 부담금 형태로 낸 기금이 복지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자료 : 기획재정부

‘증세 시리즈’ 첫걸음이라는 관측 제기


※ 비가격 정책 : 담뱃갑에 흡연 피해로 인한 폐암 사진과 같은 혐오 사진을 의무적으로 표기하게 하고, 소매점 등의 담배광고와 담배회사의 각종 행사 후원 등 직간접적인 광고행위를 전면 금지하는 정책
지난해 기금 예산의 49%인 1조198억 원이 건강보험 재원으로 사용됐다. 건강생활실천 사업에는 5% 안팎, 금연사업에는 겨우 1% 정도만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의 최비오 부장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부담금이라는 시스템으로 흡연자로부터 돈을 걷어 흡연과는 관련없는 정부 사업에 쓰고 있다”며 “증세 전에 잘못된 조세 구조와 불투명한 부담금 운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는지 문형표 장관은 9월 11일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건강증진기금 대부분을 흡연자 건강을 위해 금연사업에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6년까지 기금의 60%를 건강보험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 가 마련된 상황에서 금연 사업에 얼마가 배정될지는 미지수다. 이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사용 내용은 복지부가 임의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 결정사항”이라며 “흡연으로 인한 건보료 지출이 많기 때문에 배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담뱃값 인상이 ‘증세 시리즈’의 첫걸음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담뱃값 인상안 발표 이튿날인 9월 12일 정부는 ‘지방세 개편방향’을 발표했다. 지방재정 확충을 위해 10∼20년간 묶여 있던 세금을 대폭 인상하고, 국세보다 훨씬 높은 감면율을 점차 낮추는 내용이다.

안전행정부는 전국 시·군·구에 따라 1인당 2천∼1만 원, 평균 4620원이 부과되는 주민세를 2년에 걸쳐 ‘1만 원 이상 2만 원 미만’으로 대폭 올리기로 했다. 법인의 주민세도 과세구간을 현행 5단계에서 9단계로 단계적으로 세분화하고 2년에 걸쳐 100% 인상할 계획이다. 1991년 이후 묶인 자동차세도 2017년까지 100% 올릴 방침이다. 23% 수준인 지방세 감면율은 점차 국세(14.3%)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가 담뱃값을 비롯한 지방세 확충에 나선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재원 마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는 복지정책 확대로 심각한 재정 부족에 직면해 있다. 당장 7월부터 시행된 기초연금제로 각 자치단체가 올해 새로 부담해야 할 비용만 1조8천억 원에 달한다.

그 외 굵직한 복지제도로 인해 올해 부담해야 할 비용은 6조3900억 원에 이른다. 급기야 지난 9월 3일 전국의 시·군·구청장들은 정부가 복지비를 추가 지원하지 않으면 ‘복지 디폴트(지급중단)’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반기에만 8조 원이 넘는 세금을 걷지 못한 데다 내년에 10% 이상 증액될 복지예산을 마련하기 위해 세금 인상 카드를 꺼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침은 박근혜 대통령의 ‘증세불가’ 약속에 배치되는 데다, 서민 증세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어 정책 확정과 국회 통과에 진통이 예상된다.

담뱃값은 2004년 500원이 오른 뒤 한 번도 인상되지 않았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질 담배 가격은 계속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2004년 이후 물가상승률(2.4%)만을 감안하면 현재의 담뱃값은 3300원 정도다. 그렇다면 4500원은 어디서 나온 수치일까? 2천 원 인상안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성일 교수는 적정 담뱃값으로 4500원을 제시한 바 있다. 세계 126개국의 소득·물가·담뱃값·담배소비량 등을 분석한 결과다. 복지부는 “이 연구를 바탕으로 흡연율 목표치 29%를 달성하기 위한 적정 담뱃값을 4500원으로 도출했다”고 밝혔다.

저소득층 흡연율, 과연 떨어질까?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은 흡연과 금연 사이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인상폭 2천 원이 세수의 극대화를 노린 수치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난 6월 내놓은 ‘담배과세의 효과와 재정’ 보고서를 보면 4500원에서 담배세가 최대치가 된다. 담뱃값을 올릴수록 담배 한 갑당 세수는 오르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줄어든 담배 소비로 인해 전체 세수가 줄어들게 되는데, 이 정점이 바로 정부가 제시한 4500원이라는 것이다.

이번에 병행하게 된 물가연동제도 이 최적점을 유지하기 위한 도입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흡연율을 먼저 기준으로 삼았을지, 세수의 최적점을 먼저 참고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담배 가격과 세제를 어떻게 책정할까? WHO가 2010년 세계 187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60개 국가는 종량세, 60개국은 종가세, 48개국은 종가세와 종량세를 혼용하고 있다. 그 밖의 19개 국가는 담배에 아예 담배에 소비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정부가 발표한 대로 OECD 회원국의 담뱃값 수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특히 노르웨이(13.3달러), 아일랜드(11.14달러), 영국(9.8달러)등 EU 회원국의 담배 가격이 높다. 또 이들은 대부분 담뱃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를 넘는다.

EU 국가들의 담뱃값과 세금 비중이 큰 것은 EU의 규약 때문이다. EU는 회원국들이 종량세와 종가세로 구성된 담배관련 세금의 비중을 일정수준 이상 충족시키도록 하고 있다. 또한 부가가치세 등 일반소비세율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유럽 지역의 담뱃값이 높아지는 것이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의 근거로 제시한 OECD 평균 담뱃값도 회원국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EU 국가의 높은 가격에 따라 덩달아 높아졌다고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 외 선진국인 미국(5.72달러)과 일본(3.47달러)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다. 담배에 부과하는 세금 비중도 미국이 45%, 일본이 63%로 우리와 유사하거나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왜 필요할 때만 OECD 기준을 쓰느냐’, ‘그럴 거면 기름값이나 법인세, 자살률 관리나 먼저 OECD 수준으로 해라’는 등의 비난여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담배는 서민이 많이 찾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역진성 논란도 있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소득 최하위계층의 흡연율은 30.8%로 상위 계층(24.1%)보다 6.7% 포인트 높다. 더구나 담뱃값이 인상되면 소비자 물가도 오를수밖에 없다. 담뱃값이 2천 원 오르면 소비자물가는 0.62%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담뱃값 인상으로 물가가 오르겠지만 흡연 인구가 줄어들면 담뱃값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최근 물가안정 기조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담뱃값이 오른다고 해도 물가안정목표 안에서 관리가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이와 비슷한 논리의 대한금연학회의 성명을 인용해 “담뱃값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흡연율이 더 많이 떨어지므로 오히려 저소득층에 유리한 정책”이라며 서민 부담이 늘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민의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담배를 끊어서 줄어든 병원비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가 분석한 흡연의 의료비 지출 유발효과를 보면 20세 이상의 건강보험 진료비 지출중 4.6%만이 흡연으로 인해 유발된 의료비다. 담뱃값 인상으로 흡연율이 감소해도 이에 비례해 흡연으로 인한 의료비용 감소는 미미하다는 말이다.

또 이 보고서는 흡연자가 금연을 통해 비흡연자 수준으로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20년가량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신설한 개별소비세가 종가세 방식이라 세부담의 역진성이 완화된다고 설명하지만, 서민 증세 논란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인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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