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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이 돼버린 대한민국 국회의 초상 - 국회의원과 돈, 그 블랙홀의 세계 

의원 1인당 보좌진 포함해 연간 6억 원 받아, 300명에 1800억 원… 야당은 ‘생계형 의원’ 많고 수도권보다 지역구 의원이 돈 많이 써 

나권일 월간중앙 기자
국회가 넉 달째 ‘개점휴업’ 중이지만 국회의원들은 매달 1100만 원가량의 세비를 꼬박꼬박 지급받는다.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 1인당 세비와 사무실 운영비, 보좌진 7명의 급여와 각종 지원금으로 연간 6억 원이 지출된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늘 돈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다. 받지 않아야 할 돈을 받아 감옥에 가는 의원도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특권층’으로 꼽히는 국회의원들이 도대체 돈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가?

최근 불법적인 돈을 받고 입법로비를 한 혐의로 검찰에 소환된 새정치민주연합 김재윤·신학용·신계륜 의원. 김재윤 의원은 구속됐다.



9월 3일, 저축은행에서 수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수감됐다가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파기 환송심 재판을 받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이 재판부에 빠른 재판을 요구하는 발언 중에 이런 말을 했다. “2년여 동안 재판이 진행되면서 현역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을 제대로 못했다. 1년이면 나에게 1억 5천만 원(세금)이 들어간다. 그 돈이 성과 없이 낭비된 것에 대해 송구하다.”

법정에 있던 사람들은 국회의원의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야기라서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놀란 것은 감옥 생활을 하느라 의정활동을 하나도 못했는데도 정 의원 개인에게 국민세금 1억 5천만 원이 지급됐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 정 의원에게는 그를 보좌하는 직원들을 포함하면 5억 원이 넘는 돈이 지급됐다고 한다. 돈 문제로 감옥에 들락거리는 국회의원들이 끊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는 국민 입장에서는 국회의원이 월급만으로 생활하기 힘든 여건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과연 그럴까?

우선 가장 기본적인 세비(歲費)를 보자. 국회사무처(사무총장 박형준)가 발간한 ‘국회의원 권한 및 지원’ 자료 책자를 보면, 19대 국회의원은 매달 1031만 원(2013년 기준)의 세비를 받는다. 기본급에 해당하는 일반수당 646만 4천 원, 관리업무수당 58만 1760원, 입법활동비 313만 6천 원, 급식비 13만 원, 특별활동비(회기 중 1일당 3만 1360원. 결석 때는 감액)을 합친 금액이다. 여기에 상여금으로 연간 정근수당 646만 4천 원, 설과 추석에 지급되는 명절 휴가비 775만 6800원이 더해진다. 이를 종합하면 국회의원이 매달 평균 받는 세비는 1149만 원에 이른다.(표1 참조)

연봉으로 환산하면 1억 3700만여 원이다. 현재 국회의원 정수가 300명이니 매달 30억 9천만 원가량이 국고에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19대 국회 개원 뒤 여야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며 연봉 삭감 약속을 내놓기는 했다. 하지만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2년 3월 대표 발의(發議)한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 법안은 소관위인 국회 운영위원회에 2년 반 넘게 계류돼있다. 당시 민주당 의원 126명 전원이 개정안에 찬성했고, 새누리당도 실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법안은 의원들 사이에서 한 번도 논의되지 않았다.




기본연봉만 1억 3700만 원

국회의원 연봉 1억 3700만여 원은 서울에 사는 직장인 평균연봉 5855만 원(2013년 말 1713개 상장사 직장인 기준)의 2.3배 수준이다. 행정부처 장관(1억 5천만여 원)보다는 다소 낮지만 차관(1억 3500만여 원)급 공직자가 받는 보수와 비슷하다.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미국(1억 9488만 원)이나 독일(1억 4754만 원) 하원의원 보다는 낮지만 성숙한 대의정치를 선보이고 있는 프랑스(1억 2695만 원)와 영국(1억 1619만 원)의 하원의원보다 높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하는 일에 비해 얼마나 특권을 누리고 있는지 세비 액수만으로 정확하게 가늠이 안 된다면 1인당 GDP(국내총생산)로 다른 나라 국회의원과 상대평가를 해보면 된다. 1인당 GDP로 따지면, 우리나라 국회의원 세비는 1인당 국민소득보다 5배나 많다. 보통 2~3배 많은 다른 선진국들을 크게 앞선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신도 부러워할 직업이다.

물론 일을 잘하고 있는 국회의원에게 높은 연봉과 혜택이 주어지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사무처장 이태호)는 “국회의원이 지원받는 것은 의정활동에 어려움 겪지 않게 하자는 취지인 만큼 지원에 부합하는 성과를 내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지난 5월 이후 단 한 건의 입법도 없는 ‘무노동’ 상태에서 이 돈을 꼬박꼬박 챙겨가고 있다는 데에서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가 국회로 향하는 것이다. 김행범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이를 두고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연 6억 원의 세금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공공악(public bads)이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회의원이 진짜 신의 직업이라 부르는 것은 연봉액수가 아니라 국가가 제공하는 각종 지원과 혜택 때문이다. 국회사무처는 의원 개인에게 지급되는 세비 외에 매달 의원실에 필요한 일상적인 경비를 지원한다. 매달 의원사무실 운영비 182만여 원(전화·우편 등 공공요금과 사무기기 소모품비용), 공무출장 지원비 183만여 원(차량유지비와 KTX 및 선박, 항공기 이용비용), 입법 및 정책개발지원금 384만여 원(정책자료 발간비) 등 750만여 원(연간 9천만여 원)을 공식적으로 받는다.(표2 참조)

이 돈은 국회사무처의 사후관리를 받기 때문에 경비로 사용한 후 영수증을 제출한다. 국회의원들이 비행기나 KTX를타고 지역구나 행사 장소로 달려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교통비가 지급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가장 먼 지역구인 제주도 의원은 연 1360만 8천 원, 수도권 의원은 162만 3천 원을 지원받는다. 지역구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의 출장비는 135만 3천 원이 책정돼 있다. 국회의원회관 2층 강당과 세미나실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갖가지 이름을 단 이런저런 토론회를 열고, 부실한 자료집을 나눠주는 것도 꼬박꼬박 지급되는 이런 돈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선 탈 때는 비즈니스 석 이용

초선의원들에 따르면, 국회에 갓 입성해 국가의 혜택을 피부로 느끼는 때는 해외출장을 갈 때라고 한다. 항공기를 이용할때 국회의원은 기획재정부가 규정한 ‘장관급’ 대우에 따라 비즈니스석을 제공받는다. 출입국 시에는 공항의 VIP룸을 이용할 수 있고, 해외에 가면 재외공관의 외교관들로부터 영접을 받기도 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최근 당 연찬회에서 “국회의원이 그간 행사하던 기득권과 특권을 포기하는 실천을 하겠다”며 “의원외교를 나갈 때 비즈니스석이 아닌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한다”고 면피성 발언을 한 것도 잦은 해외여행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스웨덴의 국회의원은 관용차나 운전기사가 없고, 해외출장 시 이코노미석을 이용한다고 한다.

국회의원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의원마다 45~49평형의 의원회관 사무실이 제공되고, 7명의 보좌직원, 인턴직원 2명이 지원된다. 매달 580만 원이 지급되는 4급 보좌직원 2명, 500만 원의 월급이 지급되는 5급 보좌직원 2명, 그리고 6급·7급·9급 직원 각 1명씩 총 7명에게 1년 평균 3억 6795만 원의 급여가 나간다. 이는 기본 금액일 뿐 보좌직원의 경력과 호봉에 따라 더 늘어나는 게 보통이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몇몇 ‘악덕의원’은 보좌직원 7명의 이름만 등록해놓고 실제로는 2~3명만 근무하게 한 뒤 국고에서 나온 급여액을 자신의 통장으로 이체하는 ‘횡령’을 일삼기도 한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세비와 의원경비 지원금, 보좌직원 등의 급여 등을 다 포함하면 국회의원 1인당 연간 평균 6억 원의 돈이 지급된다고 한다. 이는 실제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9월 5일 새누리당 김현숙 원내대변인에 따르면, 내란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느라 지난 1 년간 의정 활동을 전혀 하지 않은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게도 총6억 2800만 원이 지급됐다. 이 의원 개인에게 1억 4400만 원, 보좌직원 인건비로 4억 3900만 원, 의원실 운영경비 4500만 원 등이 지급됐다. 국회의원이 300명이니 1인당 6억 원이면 연간 1800억 원가량의 국고가 매년 지급된다는 얘기다.


9월 1일 정기 국회 개회식에 참석한 국회의원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세비를 포함해 운영비와 의정활동 지원비, 후원금 등으로 매년 2억~3억 원의 돈을 받는 특권층이다.

“국회 비용 중에 눈먼 돈도 많아”

국회의원들에게는 이 밖에도 그럴듯한 명목의 비용들을 챙길 수 있는 명목의 돈이 많다. 국회의 18개 상임위(예결특위,윤리특위 포함)활동과 특위 활동이 대표적이다. 주로 3선 이상의 중진들이 맡는 상임위원장이나 특별위원장에게 매달 600만∼700만 원(연간 7200만∼8400만 원)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상임위원장들은 직급 보조비로 월 165만 원을 별도로 받기도 한다. 국회 개원을 앞두고 중진의원들이 서로 ‘물 좋은’ 상임위를 배정받으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은 어떠할까? 미국은 상임위원회의 위원장들에게 별도의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웃 일본이 상임위원장들에게 지급하고 있긴 하지만 연간 1100만여 원에 불과하다.

특별위원회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매년 상임위 외에 특별위원회를 매년 6∼7개 구성해 3~4선 의원들에게 위원장직을 맡기고 활동비를 정기적으로 지급하고 있다. 국회활동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19대 국회 전반기인 2012년에 설치된 8개의 특위는 평균 3차례 정도의 회의만 하고 2억 원 이상의 활동비를 받았다.

이처럼 상임위원장이나 특별위원장이 되면 세비의 60∼70%에 달하는 금액을 별도로 챙길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국회가 왜 다선 의원 중심으로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현행 국회법에는 상임위원장이나 특위위원장에게 활동비등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여야의 원내대표단이 ‘알아서’ 활동비 규모를 산정한다. 이 활동비는 영수증 제출을 강제하지 않는 등 비용을 투명하게 관리하지도 않는다.

상임위원장보다 선수(選數)가 많은 국회의 중진들에게는 품위유지비 성격의 돈이 나간다. 국회의장은 225만 원, 부의장 2명은 각각 175만 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국회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원내대표들에게도 한 달에 수천만 원씩이 지급된다. 이 비용에 정통한 한 인사에 따르면, 영수증 처리를 안 해도 되는 비공식적인 돈이다. 돈의 실체는 있으나 국회 예산 항목에는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활동비’ 성격이라고 한다. 이런 돈들이 여의도 국회 주변의 고급식당과 주점, 골프장 등에서 지출되면서 또 다른 ‘정치’가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보좌직원으로만 10여 년 넘게 일해 온 P씨는 “국회 비용 중에는 초선의원들은 잘 모르는 눈먼 돈이 많다. 다선의원들의 눈에는 이런 돈이 보이고, 또 이 돈을 어떻게 써야 법망에안 걸리는지를 잘 안다”고 말했다.

국회에는 이 밖에도 국회의원들이 요령껏 돈을 모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있다. 국회의원이면 누구나 후원회 계좌를 열어 연간 1억 5천만 원 한도의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모금이 가능하다. 일부 국회의원은 또 매년 정기국회를 전후해 책을 펴낸 뒤 출판기념회를 개최해 편법으로 정치자금을 받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열면 기업체나 이익단체, 국정감사 피감기관들이 알아서 책값을 비싸게 쳐주기 때문에 최소 1억~2억 원은 거뜬히 모은다. 보통 1만 5천 원 정가의 책 한 권으로 1년 후원금 한도를 넘기는 게 예사다.

기획재정위원회·산업통상자원위원회·국토교통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등 이른바 노른자위 상임위원장이나 당 대표를 지낸 중진 의원, 대선 후보를 지낸 의원들은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연간 후원금 모금 한도를 두세 배 훌쩍 넘긴다. 검찰에 따르면, 교육문화위원장을 지낸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사립유치원 특혜성 법안을 발의해준 대가로 자신의 출판기념회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측으로부터 책값(축하금) 명목으로 3800만여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는 이처럼 의원을 몇 번 했느냐는 의원의 선수와 ‘돈의 힘’을 무시 못한다. ‘계파정치’라는 비판을 받는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몇몇 계파 수장의 경우 “계파를 관리하는 충성도는 돈의 힘이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국회의원들은 이처럼 세비를 포함해 운영비와 의정활동 지원비, 후원금 등으로 매년 2억~3억 원의 돈을 쓸 수 있다. 이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쓰는지 국민은 궁금해 한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은 그 돈으로도 모자라 음성적인 후원금을 받는 게 예사다. 최근 여의도 의원회관 의원사무실마다 돈 문제로 좌불안석이다. 새누리당 중진인 박상은 의원이 불법적인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구속됐고,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 이사장으로부터 교명 변경 개정안 통과를 대가로 수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의 3선 의원인 김재윤 의원도 유치장에 수감됐다. 같은 혐의로 새정치민주연합 중진인 신계륜 의원과 신학용 의원도 불구속 기소됐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이자 윤리특위 위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 AVT사로부터 사업 편의 청탁과 함께 65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됐다가 부결돼 ‘방탄국회’라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여당은 관리형, 야당은 생계형 많아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의 승용차에서 발견된 돈뭉치. 의원들은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푸념한다.
국회의원들은 동료의원들의 비리에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정치자금을 조달하는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한다. “써야 할 돈이 부족해 이익집단이나 직능단체의후원,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정치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현재 구조에서는 어느 국회의원이라도 검찰이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최근 검찰의 잇따른 정치인 수사에 반발하고 송광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부결된 것도 의원들에게 퍼져 있는 이 같은 의식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의원들은 이렇게 많은 돈을 챙기고 혜택을 받으면서도 왜 돈에 쪼들릴까? 의원회관 주변에서 만난 여당 의원들은의정활동 외에 지역구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하소연 한다.

새누리당 재선의원 A씨는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한 달 세비 1100만 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지구당격인 지역사무소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 등 관리비용이 월 300만여 원, 지역행사를 챙기고 경조사에 얼굴을 내미는 비용 300만~400만 원이 들어간다. 현재 지역구 의원들마다 두고 있는 지역사무소는 국고 지원이 되지 않는다. A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B의원은 지방출신이라서 지역사무소를 군 지역에 2개나 두고 있어 사무실 운영비와 인건비가 A의원보다 두 배 이상 들어간다고 한다.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은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이자 윤리특위 위원장으로 있던 시기에 철도 레일체결장치 납품업체 AVT사로부터 사업 편의 청탁과 함께 6500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아 국회에 체포동의안이 상정됐지만 부결돼 구속을 면했다.
A의원이 의정활동을 하면서 아낀다고는 하지만 밥값으로도 매달 200만~300만여 원이 지출된다. 후원계좌가 있긴 하지만 소액이어서 한 달에 들어오는 고정적인 수입은 수백만 원 수준이다. 국회가 정책자료 발간비로 주는 돈이 연간1300만 원이지만 의정활동에 욕심을 내 의정활동보고서를 몇 차례 발간하다 보면 이 금액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A 의원은 “들어갈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적다. 이런 저런 선후배들이 주는 후원이 아니면 버티기가 힘들다. 동료 의원 중에 은행대출로 사는 의원도 있다”고 전했다.

야당 지역구 의원들도 쪼들리기는 마찬가지다. 한 달에1100만여 원의 세비가 나오지만 세 후 기준으로 900만 원 수준이라서 지역구 관리와 경조사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300만~400만 원에 그친다고 한다. 지방에서 상경한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사무소 운영은 물론 여의도 인근에 10평형대의 오피스텔을 마련해 거주하는 것이 보통이다. 오피스텔 임대료와 월세, 지역구 시·군의 지역사무소, 지역구의 자택살림을 다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야당의원들 중에는 세비와 활동비를 알뜰살뜰 아끼는 노하우를 발휘해 살림에 보태는 ‘생계형’ 의원도 더러 있다. 야당 의원 보좌관들에 따르면, 주로 돈없이 살아온 시민운동가 출신이나 여성의원들 중에 이런 유형이 발견된다.

“선거때 10억~20억 원 쓰는 것은 기본”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B여성의원이 대표적이다. B의원은 지역구에서는 부지런한 마당발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한다. 지역구의 광역의원, 기초의원들의 애경사는 물론 지역 유지들의 경조사에 자주 얼굴을 내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굴만 내밀 뿐 경조사비는 내지 않고 밥도 잘 사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경조사비 지출은 친인척 및 지인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법을 지키려는 의지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번 내기 시작하면 그 많은 액수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B의원의 보좌관은 “의원이 부지런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세비를 아껴 살림에 보태는 모습은 그리 보기에 좋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는 “기왕에 정치에 뛰어들었으면 시도위원장이나 최고위원도 생각해보는 등 선수에 맞는 정치적 도전도 염두에 둬야 하는데, 우리 의원은 도무지 그런 생각이 없다”라며 “정치활동과 관련해 지금과 같은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서는 자기 돈 없는 생계형 의원은 정치적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도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국회의원이 전당대회에 나서거나 시도위원장 선거를 준비하려면 최소 2억~3억 원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실제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경우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 돈봉투를 살포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이 특히 돈에 목말라 하는 때는 선거가 있는 해다. 새누리당 지역구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C씨는 “수도권이 아닌 지방의 지역구의원의 경우 선거 때 10억~20억 원을 쓰는 게 기본이다”고 말했다. 전략공천이 아니라면 예비후보로 출발해 경선을 거치고 본선에서 당선되기까지 그 정도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노년인권협회 회원들이 9월 13일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국회의원들부터 실천하라는 거리시위를 벌이고 있다.

야당의 재선 국회의원을 보좌하는 D씨는 “선거 때 돈의 힘이 발휘되는 것을 실감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2012년 선거때 일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상대 후보가 재력가로 소문난 전직 의원이었다고 했다. 상대 후보가 돈을 얼마나 뿌려댔는지 선거 1주일 전을 앞두고도 지지율이 15% 이상 뒤졌다고 했다. D보좌관은 “상대 후보는 앞서가는데 우리 후보는 지지율이 정체돼 있어 알아보니 상대 후보가 시군 단위 읍·면·동책에게 수백만 원씩 뿌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차례에 2억~3억 원씩 수십억 원이 내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돈의 힘’이 실제 여론조사에서 수치로 나왔던 것이다”고 했다.

D보좌관은 상대 후보가 안심하고 더 이상 선거자금 투입을 중단하면서 반격의 기회를 잡았다고 했다. 때마침 선거일 직전에 민심이 요동치면서 중앙당에서 대거 지원유세를 펼친 끝에 가까스로 당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당선된 의원은 상대 후보에 비하면 돈을 적게 썼지만 당선 뒤 그 빚을 갚느라 고생을 좀 했다고 한다. 이처럼 국회의원들은 기본적으로 선거를 치르면서 많은 빚을 지게 된다, 이 빚을 갚기 위해 받지 않아야 될 돈을 받거나 기업체나 이익단체의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상여금과 활동비 내놓는 의원도

돈 안 쓰는 정치는 불가능할까? 의원 상당수는 경조사비에 대한 부담을 많이 토로했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은 특히 평상시에도 경조사비 부담이 적지 않다고 한다. H의원은 “3개의 지역사무소에 청첩장과 부고장이 수시로 날아온다. 결혼식에는 못 가도 상갓집에는 꼭 가는데, 조의금을 넣지 않으면 나중에 ‘얼굴도 안 비쳤다’고 면박주기 일쑤다. 10만 원은 넣어야 욕을 먹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런 풍토는 수도권이 아닌 농어촌지역으로 갈수록 뿌리깊다고 한다. 양심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386운동권 출신인 40대의 한 농촌 출신 지역구 의원은 “지난 선거 때 출마했더니 점잖은 사람도 ‘면단위 농협조합장 출마해도 조합원들에게 30만 원씩 돌렸다. 국회의원 출마한다면서 돈 안 쓰면 욕먹는다’고 충고하더라”며 “밖에서 정치개혁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정치 현실은 다르더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우리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해 ‘욕하는 입 다르고 기대하는 눈’이 다르다. 말로는 돈 안 쓰는 정치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돈 쓰는 정치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라는 말도 했다. 몇몇 정치인은 중앙선관위로 의원후원금 모금창구를 단일화해 모아진 돈을 의원마다 똑같이 지급하자는 대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실현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돈 안 쓰는 정치가 어렵다고 하지만 모든 국회의원이 돈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이긴 하지만 돈과 거리를 두는 의원도 있다. 7·30 재보궐 선거 승리로 8월 1일부터 국회의원 신분이 된 이정현 의원은 지난 8월 받은 명절 휴가비 387만여 원을 받지 않겠다며 국회의장실에 반납했다. 지난 5월 이후 단 한 건의 법안도 처리하지 못해 식물국회 소리를 듣고 있는 데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고 했다.

국회 세월호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인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세월호특위 8월호 활동비 한 달치를 안산 단원고에 전달하겠다”며 특위 한 달 활동비를 내놓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말에도 ‘국무총리실 산하 민간인 불법사찰 및 증거인멸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가 성과 없이 끝나자 그간의 활동비 9천만 원을 국회사무처에 반납했다. 물론 이들의 이런 행위가 보여주기식 ‘쇼’로 비칠 수 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나마 위안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국회의원은 날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자리”라는 말이 있다. 돈의 블랙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풍토와 국민의식을 지적하기 전에 국회의원들의 자정활동이 선행돼 ‘돈안 드는 정치’를 위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1410호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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