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특별 인터뷰 |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회장 - “세계인의 고통 나누고 우리나라 이미지도 높여야죠”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이 가장 중요한 가치… 어머니의 사랑으로 지구촌 가족 품에 안아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회장은 “봉사를 통한 행복감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을 통해 가장 크게 발현된다”고 말했다.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회장은 올해, 유난히 마음 아픈 한 해를 보냈다. 세월호 사건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재난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무엇으로 위로할 수 있을까. 장길자 회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회원들을 꾸려 현장에 보냈다. 그러고 나서야 눈물을 닦을 수 있었다. 국적·인종·빈부·종교를 초월한 국제봉사단체를 이끌고 있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장길자 회장은 그러나 ‘지속돼야 하는 삶의 무거움’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다. 회원들은 팽목항과 진도체육관에서 정성껏 밥과 국을 지어 희생자 가족을 수발했다. 신음소리와도 같은 그들의 애절한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울었다.

‘인류 복지의 백년대계를 완성하는’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의 설립 목적을 다시 생각할 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다. 전쟁·기아·지진·홍수 등 숱한 재난과 고통이 여전히 세계를 휩쓸고 있다. 장길자 회장은 최근 볼리비아 아동 광산노동의 참상을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지켜보면서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동들의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국제적 네트워크를 통해 이들 아동을 돕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고통받는 이를 돕는 일에는 결코 망설임이 없다. 장길자 회장을 만나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글로벌 봉사의 현황과 업적, 그가 평생 견지(堅持)한 ‘어머니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물었다.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이하 ‘위러브유’)는 ‘어머니의 사랑’이 희생과 헌신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라 들었습니다. 올해 한국의 모든 어머니를 통곡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죠. 바로 세월호침몰입니다. 어떤 심경으로 바라보았습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슬픔은 부모가 자식을 앞세우는 참척(慘慽)의 고통입니다. 참척이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직 한 가지, 죽은 자식만을 생각하며 먹을 수도 잠잘 수도 없는 극한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부모의 마음을 말합니다. 살아있는 자가 감히 어떤 말로 이 고통을 위로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없다’는 것이 올바른 대답일 겁니다. 어떻게 유가족과 함께 이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유가족을 진심으로 돕고 위로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세월호 급식 봉사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위해 위러브유 회원들이 하루 24시간 쉼 없이 무료급식 자원봉사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광주와 목포 지역 회원들을 중심으로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20여 명이 조를 짜서 이틀씩 교대하며 갓 지은 밥과 국, 반찬으로 피해 가족들의 건강을 챙겼습니다. 24시간 쉬지 않고 급식 봉사를 했지요. 봉사자의 상당수는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와 아빠들이었습니다. 유족, 실종자 가족과 똑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그 분들의 진심 어린 봉사에 실종자 가족들도 위로를 받았고, 저도 크게 감동했습니다. 올해 세월호 사고로 우리 단체에서 매년 진행해왔던 걷기대회 등 주요 자선행사를 모두 취소하긴 했지만 봉사와 헌신의 질을 따진다면 어느 해보다 보람 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국경과 인종과 이념을 초월하죠. ‘위러브유’의 강력한 글로벌 역량과 결속력이 인상적입니다.

“저는 ‘아이들의 인성교육도 글로벌 시대’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세계를 이웃으로 생각하고 어려운 이들을 배려하는 봉사활동에 부모와 자녀가 함께 참여하자는 겁니다. 기후 난민돕기, 기후재난 피해 구호 등의 활동에 참여하면서 지구촌 전체가 직면한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국제적인 시각을 갖도록 부모가 도와야 합니다. 또한 국제 지원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지원을 받았던 지역의 사람들이 돕는 사람의 대열에 동참합니다. 봉사와 헌신의 국제적 선순환 과정이라 할 수 있지요.

선택과 집중의 사업 방식도 유효했습니다. 클린월드운동은 환경운동이자 전 세계 인류복지의 의식개혁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깨끗한 물’을 확보하는 문제에 우리는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는 것이 그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헌혈운동도 국내외적으로 꾸준히 펼쳤습니다. 헌혈 역시 생명을 구하는 일이죠. 의사들은 헌혈이 ‘장기기증과 맞먹는 소중한 기부’라고 말합니다. 모두 ‘어머니의 사랑’과 상통하는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사업입니다. 일관성, 지속성,자발성에 더해 전 지구가 공통으로 직면한 문제에 우리가 동참한 것이 세계인의 인정과 관심을 받게 된 배경이라 생각합니다.”

세계 각국의 긴급재난 지역에 회원들이 신속하게 달려가 구호작업에 나설 수 있는 단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합니다

“‘위러브유’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자발성이 활동의 출발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역에 긴급 구호의 필요성이 생기면 먼저 그 지역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에 달려갑니다. 누가 시켜서 가는 게 아니죠. 현장에서 그들이 파악한 사태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2차, 3차 지원팀이 꾸려지는 식입니다. 지속적인 국제 구호활동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도 무시할 수 없겠지요. 각 회원이 갖고 있는 전문지식과 기술도 큰 도움이 됩니다. 회원수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있습니다.”

“넘어진 이들이 스스로 일어서게 해야 진정한 봉사”


2012년 3월 26일 장길자 국제위러브유운동본부 회장(왼쪽)과 아프리카 가봉공화국의 알리 벤 봉고 온딤바 대통령은 지구촌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협약했다.
국제적 구호활동이 돈이나 물자로만 전달되고, 고통을 겪는 현지인과 교감 없이 전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러브유’의 현장주의는 어떤 원칙을 견지합니까?

“구호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는 현장에서 확인돼야 합니다. 반드시 현지인과의 협업 속에서 구호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이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해야 하고, 또 그들 스스로를 구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들을 구호의 객체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 역시 구호의 주체로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올해 필리핀 태풍 피해지역에 학교를 세울때도 그랬습니다. 학교 건설의 감리를 비롯해 건설 과정에서는 회원과 현지 주민들이 힘을 합쳤죠. 그 과정에서 아주 소중한 가치, 즉 상호 유대와 신뢰가 싹트게 됩니다. 스토리가 생기고 역사가 만들어졌습니다. 사업이 이렇게 이뤄져야 지속성이 담보되고 진정한 봉사의 의미가 드러납니다.”

‘위러브유’는 대가 없이 지원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한국을 알리고 이미지를 높이는 데에도 상당한 기여를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민간외교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사실 아프리카 지역에는 아직 남북한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이 과거에 제3세계 외교에 공을 들이면서 북한을 더 가깝게 여기는 사람도 있을 정도예요. 진심어린 마음으로 구호활동을 마치고 나면 한국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 따뜻한 이미지를 전달하는 하는 망외의 소득을 얻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봉사단체가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남을 돕고 있습니다. 지원받은 돈과 물질로 남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최선의 방법은 아니란 생각도 듭니다.

“‘위러브유’는 정부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않습니다. 모금을 위한 행사를 스스로 기획하고 재원은 철저히 자체적으로 마련합니다. 간혹 대기업에서 수억 원의 자금을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지원을 정중하게 사양합니다. 좀 어렵더라도 우리의 능력 안에서 알뜰하게 꾸려 실천하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엔을 포함한 국제 구호 및 봉사단체와 연대해서 벌일 수 있는 사업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합니다.

“헌신과 봉사의 연대는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계기와 상황입니다. 의도적인 기획은 뜻하지 않은 오해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자연스러운 계기가 마련된다면 언제라도 같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굳이 피할 이유도 없지만 인위적으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우리 단체의 방식이 아닙니다.”

매년 김장행사를 통해 어려운 이웃에게 ‘사랑으로 버무린 김치’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장께서 직접 가정을 방문해 그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경청한다고 들었습니다.



“몇 년 전 다문화가정을 방문해 김치를 전달한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출신의 주부가 심각한 향수병에 걸려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한국으로 시집온 뒤로 가정형편 때문에 5년 동안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우울증까지 앓게 되었을까요? 정말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러브유’의 지원을 주선했습니다. 그 여인은 베트남에 가서 친정 어머니를 만났죠. 한번 좋은 인연을 맺으니 그가 처한 삶의 양상에 깊이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김치를 트럭에 싫어 나눠주는 방식보다 직접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애환과 스토리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돈독해지지요. 그 여인은 지금도 제게 ‘어머니’라 부르며 살갑게 대합니다. 우울증을 말끔하게 고친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유족과 함께 통곡한 한국의 어머니들

돕는 사람은 시혜자 의식을 갖게 되기 쉽고, 도움을 받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끼기 쉽습니다. 봉사단체가 흔히 빠지기 쉬운 ‘시혜자 의식’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제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입니다.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한다면 그 행위는 모두 없었던 것이 됩니다. 그것이 저의 가장 큰 신념 중의 하나입니다. 대가를 바라는 생각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죠. 사심 없이 실천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지극정성을 다하는 마음 없이는 모든 봉사활동이란 허망한 행위에 불과합니다. 결국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 회원들에게 가장 강조해 부탁하는 말이며, 회원들의 마음속에 가장 깊게 각인된 신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로서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이 늘 어렵게 여겨집니다

“그 문제는 실천을 통해 해결됩니다. 대문호 톨스토이는 ‘봉사할 때 깊은 지혜가 생긴다’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봉사할 때 넘치는 행복이 생긴다’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지혜와 행복은 사실 상통하는 말이긴 합니다. 기쁜 마음 없이 지속적인 헌신을 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그 행복감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을 통해 가장 크게 발현됩니다.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먼저 실천해보는 것이 중요하죠. 그것은 ‘원래부터 사랑이 충만한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웃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실천을 통해 알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한 ‘깊은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얼마 전에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리비아의 심각한 아동 노동 실태를 보았습니다. 12∼13세에 불과한 아이들이 광산에서 허리가 휘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더군요. 제가 회원들과 함께 현지 상황을 알아보며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기쁘고 행복합니다. 지속적으로 돕고 관심을 쏟아서 그 나라에서 아동 노동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은 숭고하지만 때로는 협소한 이기심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직 내 아이만이 중요하다는 마음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런 어머니들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어머니의 마음 속에는 깊은 사랑이 내재합니다. 그 사랑이 짙은 구름에 가려져서 밖으로 표현되지 못할 뿐입니다. 문제는 각박한 현실입니다. 경제적 곤궁, 과도한 경쟁심, 우리 사회가 물든 물질주의의 폐해가 어머니 사랑의 분출을 막고 있을 따름입니다. 하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낙관합니다. 어머니 사랑에는 어떠한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생명의 힘이 있습니다. ‘엄마의 이기심’을 질타하기 전에 그 가치의 불변성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습니다. 한국의 모든 어머니들이 희생자 가족과 함께 통곡했습니다. 그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을 통해 모든 어머니의 마음이 하나라는 것을 우리가 확인했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우리에게 남긴 중대한 깨달음입니다.”

201412호 (2014.1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