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업

Home>월간중앙>경제.기업

직장인 리포트 | 정년(停年)까지 롱런하는 인재의 특징 - 생산성 높이느냐, 침체에 빠지느냐 

성숙한 중년은 조직 이끄는 역량 발휘, 미성숙한 중년은 불만 속에 침체… 나이를 초월하는 끝없는 지적 호기심이 젊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들어 

박지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고령화 사회를 맞아 40~50대 연령층이 늘어나면서 중년 직장인들의 고민도 증가한다. / 사진·중앙포토
캐나다 출신 심리학자 엘리엇 자크(Elliott Jaques)는 40~60세 사이 중년기의 삶을 일컬어 ‘중년의 위기(Middle Life Crisis)’라고 표현했다. 사실 이 나이의 중년은 아직 젊고 의욕적이면서도 성숙함과 노련함이 갖춰지는 아름다운 시기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시기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청춘을 다 바친 직장에서의 은퇴 불안감, 버거워지는 가정경제 지출, 은퇴 후의 경제활동에 대한 고민, 자녀의 출가와 부모의 죽음 등 인생에서의 큰 변화나 갈등으로 인해 중년들은 큰 위기감을 느낀다.

연말연초 40대 후반~ 50대 초반 모임의 주제 또한 대부분 건강, 자녀, 돈, 직장의 얘기로 압축되곤 한다. 정년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연령층일수록 정년까지 어떻게 완주하는가에 대한 관심도가 더 증가한다. 결론은 항상 “어떻게든 버티고 꽉 채워서 퇴직하라”는 말로 귀결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중년의 위기는 바로 직장이 주는 불안감의 또 다른 양상이기도 하다. 문제는 회사 내에서 이러한 위기의 중년 비중이 점점 늘어난다는 점이다. 저성장, 고령화 시대를 맞아 실제로 조직 내 40~50대 구성원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터의 변화는 중년 직장인들의 위기감을 키운다. 과거엔 소수의 중년이 직장 내 확고한 위계질서 기반 위에서 조직을 이끌었다면 요즘은 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업무 환경이 중년의 어깨를 짓누른다. 조직에서 롱런(Long-run)하자면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가 산 넘어 산이다.

중년 직장인들의 위기를 초래하는 조직 내 큰 변화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나이가 많다고 대접받는 시대는 지나갔다. 과거에는 직급이 낮거나 승진 시기가 다소 느려도 어느 정도 나이에 의한 파워가 작동했다. 이제는 단순히 나이가 많다고 챙겨주거나 고려해주지 않는다. 존경의 대상이 나이에서 실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에 따른 예의범절이 사회정서상 어느 정도 유지는 되겠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실무를 기피하거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이는 금세 조직에서 도태된다.

게다가 포지션(Position) 획득이 어렵다. 과거에는 ‘장(長)’ 자리는 하나씩 맡고 있다가 퇴직하는 게 당연시된 적이 있었다. 요즘은 예전 같으면 팀장 역할을 할 법한 연령의 중년 직장인들이 여전히 팀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직 성장의 정체, 낮아지는 퇴사율, 조직 노령화 등으로 인해 중년 인력이 늘어나는 구조가 주된 원인이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이제는 정년까지 현역 팀원으로 뛰어야 하기도 한다. 문제는 포지션 즉 조직의 장을 맡는 것이 인정 또는 존중받는 기준이라고 굳게 믿었던 현재의 중년 직장인들이 실무자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잘 적응할 수 있는가에 있다.

가속화되는 지식 진부(陳腐)화의 속도도 위기감을 키운다. 예전엔 40대의 경험이 훌륭한 자산이었으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요즘은 40대 노하우의 영향력이 줄어든다. 자신만의 경쟁력 있는 자산이 구닥다리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최신 지식으로 무장한 젊은 사원도 넘쳐난다. 이들에 맞서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지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현실도 버거울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의 변화로 인해 결국 40대 중·후반의 직장인들은 자아 존중감이 하락하고, 동기부여가 안 되며, 역할 불안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예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변화 탓에 현재의 40대 직장인들에게는 정년 연장 시대에 바람직한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모델(Role Model)’마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점점 위기의 일터가 되는 듯하지만 너무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아직 그 수는 많지 않지만 임원이 아닌 현역으로 많은 나이까지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 회사에 가치를 기여하고,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는 인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롱런하는 인재, 나아가 정년 퇴직 후에도 그 능력을 인정 받아 재고용되어 지속적으로 일하는 역할 모델들을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일정한 특징과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실무자로서 오래 일하는 이들일수록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미덕과 장점을 보유하고 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연극 <황금연못>에 출연한 배우 이순재 씨(오른쪽)와 나문희 씨. 이들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인기를 누린다. / 사진·중앙포토
이들은 무엇보다 나이로 권위를 세우지 않는다.

나이와 경력에 신경쓰기보다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회사생활의 중심에 둔다. 회사와 동료, 후배들에게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유형이다. 정년 퇴직 이후에도 재계약을 통해 예순이 훌쩍 넘도록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A부장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항상 젊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 것을 롱런의 비결 중 하나로 꼽는다. 이들에게 나이가 들었다고 고참 대우를 받으려고 하거나 귀찮고 힘든 일을 떠넘기기 시작하면 후배·동료들도 불편해지고, 종국엔 본인 스스로가 적응하는 데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나이 여든에도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면서 많은 후배 연기자들로부터 존경받는 배우 이순재 씨. 그 역시 나이로 권위를 세우기보다 주어진 배역과 작품을 위해 몰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나이 먹었다고 주저앉아서 어른 행세하고 대우받으려고 하면 늙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시트콤을 통해 코믹 연기에 도전, 시청률 올리기에 일조하기도 했다. 또 엄청난 노력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연극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하는 등 기대 이상의 역할 변화를 시도하는 적극적인 모습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주고 있다.

롱런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일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의 소유자다. 회사에서 주어진 일을 정신 없이 수행하다가 문득 일정 포지션 즉 팀장이나 임원 승진에서 누락되면 구성원들은 ‘조직은 이렇게 몸바쳐 열심히 일해 온 나를 몰라주는구나’라는 생각에 불만이나 분노, 또는 열등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에 빠져들기 쉽다.

롱런한 인재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외적 상황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내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일에 대한 철학을 수립한 공통의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나의 꿈이나 일의 목적,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파악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지 되새긴다면 불만을 갖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기보다 일을 통해 스스로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라는 화두를 스스로에게 계속 던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하여 많은 나이에도 왕성한 집필활동을 했었던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지 질문하면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추고,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일하며 얻는 10가지 행복>의 저자 다사카 히로시는 일에 대한 철학은 현실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한 닻이라고 했다. 오랜 기간 의미 있고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에 대한 나만의 철학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정년까지 롱런한 사람들의 셋째 특징은 지속적으로 실력을 키우고자 노력한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찾고 그 분야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중년 지도>의 저자 가와기타 요시노리는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내세울 만한 장점이나 특기가 없다면 이제는 정년까지 다다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아무리 훌륭한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이제는 현재의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라는 점을 늘 유념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국내 대기업의 B부장은 자신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터넷 등으로 쉽게 설명된 다양한 지식이 널린 세상이지만 이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젊었을 때부터 탄탄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년 최대의 적은 자만심


▎지난해 9월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장년 일자리 채용 박람회를 찾은 구직자들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이처럼 나이 들어서도 지속적으로 전문성 확보에 노력하는 게 생존의 비결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머리가 굳어서’라는 사유로 스스로의 한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200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인간의 지식 업무 능력은 45세를 지나 60세까지 발전한다’는 연구 결과를 실은 바 있다. 미국 UCLA 버클리 의대 신경과학자 연구팀이 1958년 당시 21세 대학생 142명을 대상으로 40년 동안 장기 임상 실험을 실시한 결과, 인간의 뇌기능이 60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다.

실제로 미 해군 최초 여성 제독이자 최초의 컴파일러를 개발하고 ‘프로그램 버그’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는 40대가 되어서야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시작했다. 유명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가 90세 이후에도 하루 6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지금도 연습을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물론 개인 차이야 있겠지만 직장에서 자신이 전문성을 발휘해 일했던 분야에서 ‘머리가 안 돈다’는 이유로 공부를 게을리하는 것은 단순히 ‘노화’라는 통념에 사로잡힌 게으름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 새겨볼 필요가 있다.

중년 나이에 경계해야 할 적은 바로 ‘나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는 자만이다. 이 함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일깨운 이들이 최후의 승리자들이다.

<마흔 혁명>의 저자 다케무라 겐이치는 나이를 먹었지만 현역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호기심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자인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는 ‘지금껏 항상 그렇게 해왔어’라는 자세가 비극을 부른다고 말했다. 일에 대한 경륜이 쌓이고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에 대해 ‘다 해봤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을 아껴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자기 지식 범주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된다.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기존의 틀을 깨는 생각과 행동으로 무장해야만 롱런할 수 있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C부장은 “회사 생활 20년이면 사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만, 자신이 아는 지식이 최고인 양 안주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세상의 변화를 살펴보고 지적 호기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벌써 60줄에 들어선 이 부장은 회사를 그만두면 공부하고 싶은 분야로 상대성이론을 설정했다. 관련 저서를 읽어보면 재미가 붙더라는 이유에서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끝없는 지적 호기심이 그를 젊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열심히 일한 만큼 성찰과 감사의 그릇도 키워야 한다. 롱런한 인재들은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알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우선 이들은 자기 성찰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즉 자기자신의 한계나 약점을 알고 이를 수용했으며, 자신이 지니지 못한 다른 사람의 강점을 인정하고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높다. 이들에게서는 퇴직할 시점에서 임원이 되지 못한 것, 아주 많은 연봉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나 스트레스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히려 내게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면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데 감사한다.

감사와 배려, 자아 성찰의 힘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과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 배려하는 마음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나와 내 주위 사람들이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나보다 나이 어린 팀장이더라도 그를 도와 팀의 성공에 일조하는 즐거움을 알고 있으며, 후배 팀원을 배려하고 포용하는 마음도 넓다는 특징이 있다. 남을 탓하는 부정적 심리는 불안을 회피하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감사와 자아 성찰의 마음가짐을 깊이 새기는 삶의 자세는 스스로에게 자아 존중감을 북돋워주고 임원이란 자리가 아니어도 스스로 일 속에서 성취감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저명한 발달 심리학자인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중년을 ‘생산성 vs 침체성의 시기’라고 규정했다. 중년은 자신 이외의 타인의 발전이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여 생산성을 창출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하지만 미성숙한 경우에는 관심이 자신에게만 국한되고 결국 침체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조직 운영 방식은 과거와는 다르게 바뀔 수밖에 없다. 조직 내 중년 세대층이 두터워지면서 개인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야만 정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조직에서 나를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포지션 획득의 경쟁에서 밀렸다고,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이 상사가 되었다고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한 상태로 회사 생활을 한다면 과연 에릭슨이 말한 ‘생산성’의 창출이 가능할까? 침체에 빠지느냐, 생산성을 내느냐는 결국 개인에게 달린 몫이라고 할 수 있겠다.

- 박지원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201502호 (2015.01.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