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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해부] ‘검찰의 꽃’ 서울중앙지검장의 파워 - 가장 막강한 칼, 누굴 겨눌까 

부패와의 전쟁 지휘하는 사령관, 청와대 직거래 가능한 넘버2의 두 얼굴… 지난 5년간 네 명 연속 TK 출신, 연말 임기 끝나는 총장 후임 인선에 시선 집중 

조강수 중앙일보 사회부 부장

▎2월 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박성재 신임 서울중앙지검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수사 중인 특수2부(부장검사 조상준)는 3월 15일 정준양(67, 2009년 2월~2014년 3월 재임) 전 포스코 회장과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박모(56) 전 동남아사업단장 등 전·현직 임원 10여 명을 전격 출국금지하고 이들의 관련 계좌 30여 개에 대한 추적에 돌입했다.

검찰은 박 전 단장 등이 베트남 현지 법인을 통해 조성한 100억원대 비자금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검찰은 비자금 중 일부가 정동화 전 부회장 등을 거쳐 이명박(MB) 정부의 핵심 실세들에게 흘러 들어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 수사의 칼날은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의혹뿐 아니라 정준양 전 회장 재임 기간 벌어졌던 각종 사업 관련 의혹들, 즉 포스코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포스코는 공기업으로 출발해 현재 민간기업이지만 회장 선임-퇴임 등의 과정에서 정권의 외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준양 전 회장은 2008년 말 포스코건설 사장이 됐다. MB 맨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발령 3개월 만에 임기를 1년여 앞둔 이구택 당시 회장이 교체되면서 차기 회장 후보군에 올랐고,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 등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2009년 2월 포스코 회장에 취임했다. 이 과정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정권 실세의 압력이 있었다는 주장이 윤석만 사장 측에서 나왔다. 특히 박 전 차관이 당시 유력 회장 후보들을 사실상 면접 보는 자리에 포스코건설 협력업체(기계설비)인 제이엔테크의 이동조(62) 회장이 동석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포항 출신 이 회장은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가 수사한 이른바 ‘파이시티 사업(서울 양재동 옛 화물터미널 부지에 복합유통센터 건립) 인허가 비리’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으나 사법처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차관이 파이시티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수사 과정에서 포스코건설의 공사수주 특혜 의혹이 불거졌지만 수사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준양 전 회장 취임 시 30여 개였던 계열사가 3년 만에 70여 개로 두 배 이상 늘었다”며 “이 과정에서 조세 포탈, 비자금 조성, 정관계 로비 등이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포함해 서울중앙지검은 특수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이른바 ‘사정(司正)’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2월초 고검장급 인사에서 TK(대구·경북) 출신 박성재(52·경북 청도·사법연수원 17기) 대구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되고 불과 40여 일 만이다.

박근혜 정부 3년차로 들어서며 부패 척결과 국가 기강 확립이라는 양수겸장을 노린 포석으로 보인다. 사실 현 정부 출범 직후 첫 특수부와 공안부 합동수사로 이뤄진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댓글을 통해 지난 대통령 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불구속 기소된 사건은 박근혜 정부에는 엄청난 부담이자 충격이었다.

포스코건설 건은 총리 담화에 대한 검찰 화답

그 직후 폭로된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사건’은 국가정보원의 반격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뒤이어 2014년 4월 16일 터진 ‘세월호 침몰 참사’와 그 책임 소재 규명 차원에서 벌어진 ‘유병언 일가 축재 비리 사건’ 수사는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정지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해 연말을 뜨겁게 달궜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수사들은 박근혜 정부로선 결코 달가운 게 아니었다.

따라서 이번 사정 수사는 지난 2년간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여야 정쟁으로 촉발된 수사나 대참사의 원인 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위한 수사에 몰두하느라 검찰 본연의 인지 수사에 소홀했는데 차제에 그런 수사를 재개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부정부패와의 전면전’ 선포는 3월 12일 이완구 국무총리의 대국민담화를 통해 이뤄졌다. 계기는 대검 반부패부 산하 방산비리 합동수사단의 수사가 급물살을 탄 것이라고 총리실 측은 설명한다.

합수단이 총리 담화 하루 전인 11일 공군전자전훈련장비(EWTS) 납품 비리와 관련해 이규태(66) 일광그룹 회장을 긴급 체포했는데 이것이 결정적 모멘텀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총리 담화는 오래 준비했다기보다는 갑자기 이뤄진 듯한 느낌이 강했다. 이 총리는 척결 대상 부정부패로 ▷방위사업과 관련한 불량 장비·무기 납품 및 수뢰 ▷해외 자원 개발과 관련한 배임과 부실 투자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횡령 등을 적시했다. 이중 방산비리, 자원외교는 지난해 말 야당이 국정조사 대상으로 요구한 것이었다. 특히 방산비리는 이미 지난해 11월 출범한 합수단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터였다. 해외자원 개발 관련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담화 발표 바로 전날(3월 11일) 형사부와 조사부가 수사하던 것을 재배당받아 자료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약 미리 준비해온 것이라면 담화 발표와 동시에 세 가지 수사에 착수했을 것인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총리 담화 발표 다음날(13일) 검찰이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됐던 포스코건설의 인천 송도 사옥 등을 압수수색한 건 이런 분석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올해 들어 첫 대기업 비리 수사로 기록된 포스코건설 건은 총리 담화에 대한 검찰의 화답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도 12일 총리 담화 직후 “그동안 상당한 기간 동안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수사를 할 수 없던 상황이었다”고 반성한 데 이어, 13일에는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부정부패 사범 단속 강화에 관한 특별지시’를 내렸다.

이들 세 가지 수사의 공통점은 해당 사업 추진에 관여한 이명박 정부 때 고위 공직자나 핵심 실세 등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정권 비리에 대한 전방위 사정 수사로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경제 살리기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전·현 정권 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걱정도 함께 나오고 있다.

현재 세 갈래 수사 중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맡고 있는 포스코건설 베트남 법인의 100억원대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수사에 대한 관심이 가장 뜨겁다. 이 회사 박 전 동남아사업단장 등 임직원들이 2009년~2012년 현지 고속도로 공사 등을 하청주고 베트남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아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업무상 횡령)를 받고 있다. 포스코건설 측은 리베이트를 만들어 베트남 업체들에게 전달한 것이라는 감사 결과를 이미 내놓고 이를 근거로 비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이 같은 주장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돈의 흐름과 사용처를 캐고 있다. 포스코가 기업 인수합병(M&A)을 하는 과정에서 고가로 인수하는 등의 비리 의혹도 조사 대상이다. 2010년 계열사 포스코플랜텍이 1593억원에 성진지오텍을 인수합병한 것과 지난해 국세청이 포스코에 3700억원의 세금을 추징한 뒤 역외 탈세 혐의로 포스코 P&S를 고발한 사건 등이다. 검찰은 정준양 전 회장과 정 전 회장의 뒤를 밀어준 배후 세력을 정조준하고 있다.

출범 110일을 넘긴 방산비리 합수단은 이미 예비역 장성 5명 등 23명을 기소하고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을 14일 구속했다. 다른 수사가 닻을 올린 데 비해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합수단은 구속된 이 회장을 상대로 군에 과다 청구해 받아간 500억원대의 사용처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무기중개업계의 큰손’으로 불리는 이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자금을 뿌린 것으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있다.

방산비리 적발은 김진태 총장의 성과?


▎지난해 5월 서울 대검에서 김진태 검찰총장 주재로 열린 전국 지검장 회의. 정부가 최근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면서 검찰의 행보가 한층 빨라졌다.
특수통인 김기동(50·연수원 21기) 검사장이 합수단 단장이며 특수-강력통인 윤갑근(51·연수원 19기) 대검 반부패부장의 지휘를 받는다. 어찌 보면 김진태 검찰총장의 성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검사장은 2012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재직 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SK㈜ 부회장을 횡령 혐의로 구속한 사건 등을 지휘했다.

특수1부가 타깃으로 삼고 있는 사건은 감사원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한 것 등 3건이다. 특수1부는 대기업·정치인 비리 등 굵직한 사건을 직접 인지해 수사하는 부서다. 한국석유공사가 캐나다 하베스트를 부실 인수해 1조700억원대의 투자 손실을 입은 부분을 우선 규명할 방침이다. 인수 과정에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 비서관의 아들 김모 씨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김씨는 하베스트 측 투자 자문을 했던 메릴린치 서울지점 상무다.

검찰이 대대적 사정수사에 곧 돌입할 것이라는 점은 지난 2월에 차례로 단행된 검찰 정기 인사(고검장급, 검사장급, 차장검사급 이하) 내용을 통해서도 일부 예견이 됐다. TK출신 박성재의 서울중앙지검장 발탁과 우병우(48·연수원 19기)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대 동기생인 ‘특수통’ 최윤수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라인업 등을 통해서다.

고대 법대를 나온 박 지검장은 강직한 스타일로 검사로서 자세가 바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 정치권에 인맥을 안 만들고 사건으로 만나면 잘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2002년 6월 검찰연구관 신분으로 대검 중수부에 파견된 그는 아태재단 비리 수사에 참여해 김대중 전 대통령 차남인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을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당시 주임검사가 대검 중수2과장이던 김진태 총장이었다.

30여 개 수사 부서에 250여 명의 검사 불철주야

박 지검장은 사법연수원 17기 동기생 중 존재감이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17기의 선두그룹으로는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 홍만표 전 대검 기획조정부장, 김경수 현 대구고검장, 조성욱 현 대전고검장 등이 꼽혔다. 그러나 홍 전 부장과 최 전 지검장이 잇따라 검찰을 떠난 데다 김 고검장은 김진태 총장과 동향인 경남 진주 출신이라서 서울중앙지검장 임명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방의 한 검사장은 “모든 인사의 기본은 지역”이라며 “무엇보다 그 기본에 충실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검사장은 “현 정부에선 정권에 가까운 곳일수록, 힘이 센 곳일수록 영남 출신이 특히 많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박 지검장은 최교일(53·경북 영주·연수원 15기), 조영곤(57·경북 영천·연수원 16기), 김수남(56·대구·연수원 16기) 전 지검장에 이어 네 번째 연속 TK출신 서울중앙지검장이 됐다.

‘특수통’ 검사 출신 우병우 민정수석과 인연이 있는 현직 검사들이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전진 배치된 것도 마찬가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지휘하는 최윤수 3차장은 특수 2부장 때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로비 사건 등을 수사한 특수통이다. 그의 한 측근은 “그림로비 사건 수사 때 서울중앙지검장이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었는데 당시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견해가 달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안다”며 “특수 수사의 노하우를 잘 알아 돈의 흐름과 정관계 로비를 밝히는 수사에서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장의 파워는 막강하다. 어떤 이는 검찰 인사와 예산을 관장하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검찰의 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검사라면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의 꽃이라는 데 이견이 거의 없다. 검찰의 본류가 수사라고 할 때 일선 지방검찰청 가운데 서울중앙지검이 전국 최대 검찰청이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특수·공안·부정부패 사건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948년 창설 이래 서울대 박종철군 치사사건(1987년), 최규선 게이트(2002년)를 비롯해 굵직한 대형 사건 수사를 적잖이 했다. 이중섭-박수근 그림 위작 사건(2007년), SK계열사 자금 횡령 사건(2012년)도 서울중앙지검 작품이다. 최태원 SK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형제를 기소했다. 최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 법정구속돼 복역 중이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 때인 1990년 3월 한 신문 기사는 박종철 신임 서울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 프로필을 이렇게 적고 있다. ‘검찰의 황태자 자리인 법무부 검찰1과장에 이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엘리트 코스만 거쳐 ‘검찰의 꽃’인 서울지검장에 발탁됐다.’

특히 검찰총장의 직할 수사 부서였던 대검 중수부가 2013년 4월 23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이래 서울중앙지검장은 부패와의 전쟁을 지휘하는 야전사령관으로서 명실상부한 검찰 조직의 ‘넘버 2’로 자리 잡았다.

사실 1981년 4월 대검 중수부가 현판을 내건 이후 정권 차원의 사정 수사는 중수부가 주로 담당했다. 1982년 이철희- 장영자 어음사기 사건의 두 주역을 필두로 노태우 전 대통령,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 씨,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 씨 등을 구속했다. 노무현 정부 때 김대중 정부 인사들의 대북송금사건, 이명박 정부 때 ‘박연차 게이트’ 수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중수부 폐지 후 거악 척결의 임무를 서울중앙지검이 사실상 도맡게 됐다. 대기업 재벌총수 및 전직 대통령 일가 등 대형 사건 전담이다. CJ그룹 횡령·배임·조세포탈 사건을 수사해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을 구속, 기소한 게 대표적이다. 또 ‘전두환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을 구성해 전두환 전 대통령 책임재산 전액을 확보했다. 5월엔 증권범죄 합동 수사단을 구성해 주가조작범죄 엄단에 나섰고, 4대강 살리기사업 입찰 담합 사건에 대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뒤 4개월 수사 끝에 11개 건설사 및 전 현직 임원 22명을 기소(6명 구속)했다. 남양유업의 대리점에 대한 강매 사건(일명 갑질 사건) 수사 및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형 사무장병원’ 단속도 서울중앙지검이 처리했다.

자연히 조직도 커졌다. 기존 특수1·2·3부에 더해 특수4부가 새로 설치됐고 수사 인력도 대폭 증원됐다. 지금 서울중앙지검에는 30여개 수사 부서에, 250여명의 검사가 불철 주야 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월 말 검찰 고등검사장급 전보 인사가 났다. 김경한 법무부장관-김준규 검찰총장 체제에서였다. 임지 부임은 2월 1일자였다. 6명의 인사 발표 내용 중 딱 한 줄이 눈에 꽂혔다.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한상대 현 서울고검 검사장’.

서울고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령 낸 거였다. 검찰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인사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알고 있었다. ‘악!’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직급상 두 자리는 고검장급으로 같아서 규정을 위반한 인사는 아니었다. 그러나 고검장급으로 격상된 후 7년 동안이나 그런 인사는 한 번도 없었다. 고검장 보직에서 지검장 보직으로 가는 건 인사 대상자들도 꺼렸다. 일단 하향 이동이라는 점이 걸렸다. 그 다음으론 자칫 검찰 수사의 중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무언의 합의 같은 게 조직 내부에 형성이 돼 있었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직행이 주는 폐단


▎3월 13일 검찰의 압수수색이 실시된 포스코건설 인천 송도 본사 사옥. 검찰 수사관이 물품을 담을 박스를 챙겨 들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날 인사에서 차동민 대검 차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이동했다. 그 인사로 검찰 직제상으로는 차동민 서울고검장이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의 상급자가 됐다. 불과 5개월 뒤 검찰총장직을 두고 두 사람이 경합했다. 고대 출신 한 지검장이 낙점됐다. 그는 서울중앙지검장에서 검찰총장으로 직행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사실 서울중앙지검장의 원래 명칭은 서울지검장이다. 2004년 2월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이듬해 4월 고검장급으로 격상됐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검사장급이 맡는 자리였다. 검찰총장이 되려면 고검장으로 승진한 뒤 몇 자리를 더 거쳐야 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가게무샤(그림자 무사)’역할을 했다. 매주 화요일이면 서울중앙지검장이 대검으로 건너가 검찰총장에게 주요 현안들을 보고하고 지시를 받은 뒤 이를 수사팀에 전달했다.

이 경우 근본적인 문제는 차기 총장 후보군에 들어간 서울중앙지검장의 손에 검찰 내에서 가장 크고 막강한 칼이 쥐어짐으로써 생겨날 수 있는 ‘가능한 변화들’이었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서 직접 수사지휘권을 갖고 있는 일선의 서울중앙지검장이 눈앞에 다가온 검찰총수의 직을 바라보며 청와대와 직거래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정치적 사건에서 무리한 수사를 하거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법무 장관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지휘 과정에서 공정성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거였다. 조직의 걱정임은 물론 국민적 우려이기도 했다.

“정의는 반드시 행해져야 할 뿐 아니라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1924년 영국의 ‘매카시’ 판결에서 비롯된 법언이다. 이 정의가 유효하다면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중립성·형평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수사의 독립성이 생명인 검찰 조직으로선 꽃이기는커녕 치명적인 독이 되는 셈이다.

‘정치권의 시녀’가 아니라 ‘청와대의 하인’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각종 수사에 임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한 전직 검찰 고위간부의 얘기다.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그림자에 그쳐야 한다. 그림자가 검찰권력의 최정점에 서려고 도모하기 시작하면 법무부-민정수석 라인, 청와대 문고리 권력과 직거래에 나서는 게 당연시 될 수 있다. 그러면 조직은 만신창이가 될 우려가 크고 검찰총장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한 전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53대)으로 재직할 때 처리된 사건을 두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 불거졌던 BBK 의혹의 당사자 에리카 김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에 대한 수사도 이뤄졌으나 일부 개인 비리만 사법처리해 졸속 수사라는 비난을 샀다. 2011년 8월 검찰총장에 오른 한 전 총장은 재직 시 서울중앙지검 산하 내곡동 수사팀의 내곡동 사저 터 매입 의혹 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 등 7명을 전원 무혐의 처리했다가 내곡동 특검팀(특검 이광범 변호사)의 재수사에서 결과가 바뀌었다. 한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려다 2012년 11월 말 ‘검란(檢亂)’ 사태를 맞아 “내부 오만과의 전쟁에서 졌다”는 말을 남긴 채 퇴임했다. 검심(검사의 마음)을 읽지 못한 한 전 총장은 청심(청와대의 마음)에 기댔지만 물길을 되돌리지 못했다.

YS이후 총장 16명 중 4명이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서울 서초동 소재 서울중앙지검 청사. 포스코, CJ 등 대기업 총수 비리의혹 사건이나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 등은 대부분 서울중앙지검 소관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발탁은 한 전 총장이 처음은 아니었다. 천성관(58·연수원 12기) 서울중앙지검장(51대)이 2009년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증 과정에서 ‘스폰서 의혹’으로 낙마했다.

그렇다고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가 검찰총장 자리를 보장해주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 때인 1993년 이후 현재까지 모두 16명의 검찰총장 중 서울중앙지검장 출신은 4명이다. 박순용(29대 검찰총장, 김대중 정부), 김각영(32대,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임채진(36대, 노무현 정부~이명박 정부), 한상대(38대, 이명박 정부) 전 총장이 그들이다. 또 이들 4명 중 박 전 총장은 대구고검장을 거쳐 총장이 됐고 김 전 총장은 대검 차장, 부산고검장, 법무 차관의 3단계를 거쳐 총장이 됐다. 또 임 전 총장은 법무 연수원장에서 총장에 임명됐다. 한 전 총장만 유일하게 직행했다.

서울중앙지검장 자리가 거꾸로 부메랑이 된 경우도 의외로 많다. 한 전 총장 직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경북 상주 출신의 노환균 지검장은 ‘차기 총장 1순위’로 거론됐다. 그러나 총장이 되지는 못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뇌물 수수 사건(2009년 12월 수사),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2008년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2010년 7월 수사) 등 정치권 관련 수사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느냐는 해석이 있었다.

최교일(54대)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한 전 총장 바로 후임이었으나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실언을 해 구설에 올랐다.

중수부 폐지 후 첫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조영곤(55대) 지검장은 뜻밖의 복병을 만나 하차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과정에서 촉발된 ‘항명(항명)’사건이 벌어져서다.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 직행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 검찰에 정통한 한 로스쿨 교수의 조언이다.

“우리는 정권에 따라 검찰총장이 되는 사람이 확확 바뀌지만 일본에서는 사법시험 동기들 사이에서 누가 검찰총장이 될 지 예측이 가능하다. 전문성에 따라 통상 법무성 출신과 수사통 검사로 나뉘는데 법무성 출신은 법무성 사무차관으로 올라가 동경고검장으로 간다. 수사통 검사는 동경지검장으로 갔다가 동경고검장에 오른다. 대개 동경고검장이 차기 검찰총장이 된다. 동경지검장에서 곧바로 총장으로 가는 경우는 없다. 수사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서다.”

올 12월 초까지가 임기(2년)인 김진태 검찰총장의 후임이 누가 되느냐가 서울중앙지검장의 검찰총장행이 관행으로 자리잡을지, 아니면 여러 경우의 수 중의 하나로 남을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김수남 대검 차장이 될지, 현직인 박성재 지검장이 직접 갈지, 16~17기의 또 다른 인물이 발탁될지 벌써부터 자못 궁금하다.

- 조강수 중앙일보 사회부 부장

201504호 (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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