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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터뷰] 빅터 차 미 CSIS 한국석좌 - “북한 권력승계 불안정하다” 

■잇단 고위관리 공개 처형은 불안한 북한 내정 반영한 것 ■김정은, 러시아 전승절 행사 불참도 국내 문제에 발목 잡힌 결과 ■북 SLBM 발사, 핵 개발에도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그대로 ■6월 박 대통령과 오바마 정상회담의 최대 어젠다는 북핵 문제 ■북한 시장경제 확산이 궁극적으로 북한체제 붕괴 가져올 것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오상민 기자
북한이 5월 8일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수중발사를 단행함으로써 한반도와 주변 4강국이 일대 긴장국면으로 빠져든다. <월간중앙>은 미국 내 대표적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관련 연구 전담자인 빅터 차 한국석좌(미 조지타운대 교수)로부터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빅터 차 교수는 북한 SLBM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 제재 강화에 중국도 동참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이 지금 미국에 닿을 수 있는 미사일과 핵무기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심각한 위협으로 작용한다.”

빅터 차 교수는 북한의 SLBM 발사가 북한 핵무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한층 부추기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북한의 SLBM 발사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므로 북한에 한층 더 강도 높은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6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도 북핵 문제가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내년 미국 대선에서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은 한 대북 정책 기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사일 발사와 같은 각종 도발이 북미 관계의 변수가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빅터 차 교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시절인 2004~2007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아시아 담당국장을 역임했다. 또 북핵 6자회담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과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각각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월간중앙은 중앙일보와 미국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주최한 국제 세미나 참석차 방한한 그를 5월 7일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8일에 발생한 북한의 SLBM 수중발사와 관련해서는 e메일을 통해 추가로 그의 입장을 들었다.

러시아 전승절 하루 전인 5월 8일 북한은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했다. 김정은이 전승절에 참석하는 대신 SLBM 발사를 참관한 배경을 무엇이라고 보나?

“김정은은 초보적인 핵 억지력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는 현대적이고 경쟁력 있는 탄도 미사일과 핵무기 프로그램을 원한다. 모든 형태의 전쟁에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능력을 가진 무기 말이다. 그런 무기는 확산 가능성이 커 매우 위험하다.”

주한미군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를 들여오더라도 무용지물이 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SLBM 발사로 MD(미사일방어)의 중요성이 한층 더 부각 됐다고 본다. 사드는 한국이 갖추지 못한 지역 기반 MD 체계다. SLBM 공격을 방어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은 SLBM 발사로 오히려 한국에 사드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북한 장마당이 혁명의 뇌관 될 수도”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에 대한 노동당 결정을 지지하는 북한 주민들이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북한의 고위 관료 처형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내년 대선에서 만약 공화당이 집권한다면 대(對)북한 정책과 기조에 변화가 생기리라고 보나?

“북미 관계와 미국 대선 결과는 별개의 문제다. 북미 관계 변화는 미국의 정책에 좌우된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적으로 북한 자신에게 달려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에너지·식량 지원 그리고 관계 회복 등을 요구한다면 민주당 정부든 공화당 정부든 적극적으로 호응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은 올 들어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등 고위 관리 십여 명을 공개 처형했다고 한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은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처형과 같은 방식으로 고위 간부들을 처형한다. 김정은 체제에서 공개 처형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과거에는 없었던 일이다. 북한 내부가 불안정하다는 방증이다. 김정은 권력이 공고하다면 그렇게 많은 이를 처형할 이유가 있을까? 처형은 복종을 강제하는 수단인 셈이다.”

김정은의 러시아 전승절(5월 9일) 행사 참석이 무산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나?

“북한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다. 김정은은 러시아를 방문하기로 했다가 갑자기 불참을 결정했다. 국내 문제 때문이다. 완전한 권력 승계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황으로 비쳐진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는 북한 내 돌발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정은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한다. 장마당 같은 시장경제 요소가 이미 국가 경제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다. 시장경제의 확산이 북한 체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나?

“시장경제의 확산은 사람들에게 돈을 더 벌게 하고 더 행복하게 한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체제 안정에 이로울 것이다. 반대로 장기적으로는 결코 이롭지 않다.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정치 체제 아래서 주민들이 일단 돈맛을 알기 시작하면 점점 정부의 필요성을 덜 느끼게 된다. 나중엔 북한 정부를 압박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당장은 정권 안정에 기여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체제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봐야 한다. 저항을 모르던 북한 주민들도 당국의 시장 단속에는 들고 일어났다. 시장의 확산은 김정은 권력 체제에 균열을 불러오게 된다.”

“통일의 과제 한국 정부 혼자서 짊어질 일은 없어”

차 교수는 이 대목에서 “혁명은 절대 빈곤상태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는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말을 인용했다. 절대 기아와 가난에서는 주민들의 관심사는 먹고 사는 문제를 벗어나기 힘든 까닭이다. 오히려 혁명은 최악의 상황이 조금씩 개선될 때 일어난다는 게 몽테스키외의 통찰이다. 차 교수는 이를 북한의 현실에 대입하면서 “지금은 혁명이 벌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아직도 북한 주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차 교수는 북한 내 시장이 어느 정도 규모를 형성하는 단계에 접어들면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주민의 요구가 혁명으로 분출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북한에서 벌어지는 가장 경이적인 사건은 시장경제의 확산이다.”

북한 지도부가 그런 상황을 좌시하겠는가? 특정 시점에서 기존 정책을 수정하는 등 시장경제와 선을 긋고 나설 가능성은 없나?

“모든 정치 체제가 흔히 그래왔듯이 북한 지도부도 시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시장을 허용한다. 여기서 관건적 요소는 성장하는 시장에 걸맞게 정치 이념의 변화를 모색하느냐 여부다. 중국은 그 일을 해냈다. 1979년 중국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자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이념을 변형한 것이다. 북한도 내부 시장 경제 성장과 정치 이데올로기의 양립에 성공한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지난 25년 동안 중국은 북한에 사회주의 시장경제 도입을 촉구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노’였다. 북한도 언젠가는 시장경제 파워에 자신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조화해야 하는 때가 올 텐데… 북한은 그걸 거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부적으로 매우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덩샤오핑이 한 말이 있다. ‘부자가 되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북한 지도부의 유일한 관심사는 정치적 통제인 듯하다. 북한 주민들이 잘살고 말고는 안전에도 없다. 북한에 해피엔딩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유다.”

지난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반도의 통일 가능성이 100%”라면서도 “점진적 통일은 힘들다”고 말했다. 돌발사태 등과 같은 우발적 요인에 의해 통일이 이뤄진다는 뜻인가?

“통일 가능성은 100%가 맞다. 통일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갑작스레’ 성취될 것이다. 점진적 통일이 가능하자면 남북간 정치적 관여가 지금보다 훨씬 더 활발해야 한다. 북한 내부에서도 더 획기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에 관심이 없다. 남북 협력에도 시큰둥하다. 경제개혁도 뒷전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것이다.”

그런 상황을 남한이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한국의 역사를 돌아보면 하등 걱정할 게 아니다. 한국에서의 모든 변화는 언제나 갑자기 일어났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화도, 광복도 한순간의 일이었다. 한국전쟁도 느닷없이 터졌다. 경제성장도 초고속으로 이뤄졌고 민주화도 전광석화와 같았다. 이게 한국의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매번 믿기지 않는 도전에 매순간 성공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통일도 갑자기 될 것이고 한국에 엄청난 도전이 되겠지만 잘 극복하고 성공하리라 의심치 않는다. 한국은 혼자가 아니다. 미국도 힘을 보탤 것이고, 세계은행도 지원할 것이다. 이게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도 바람직하다. 한국은 이 모든 통일 과제를 혼자 짊어져야 한다는 중압감을 갖는 경향이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방국과 동맹국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게 된다.”

“내일 북한에 군사정변 일어나도 놀라지 않아”


▎평양 시내에서 패션 부츠를 신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여성. 북한에 자본주의 요소가 확산될수록 체제 위협은 증가하리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그는 5월 7일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한국과 국제사회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이 많은 비용을 유발하게 되므로 남북관계가 진전될 때까지 최대한 지연시키고 멀리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지금은 실(失)보다는 득(得)이 많은 기회로 보는 쪽으로 사고의 대변혁, 진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통일대박론’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의 진보 정부 시기에 위험하다고 보았던 통일에 대한 관점이 보수 정부 들어와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의 시점을 언제쯤으로 점치고 있나?

“내일 아침 신문에 북한 내부에 군사 정변과 같은 중대 사건이 터졌다는 뉴스가 실린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아마 모두가 ‘일이 잘못 돌아갔나 보군(things didn’t look right)’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놀라지 않는다. 반대로 25년 뒤에 우리가 다시 인터뷰를 한다고 치자. 여전히 북한은 김정은 체제 아래서 현상을 유지한다고 해도 그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통일은 100% 되지만 다른 가능성도 활짝 열려있다. 북한 사회가 개방되고 시장경제가 활성화될수록 정치 체제는 더 폐쇄적이고 경직된 구조로 치닫게 될 것이다. 끝내는 붕괴하고 만다. 뇌관을 때리는 방아쇠가 무엇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구 소련과 동독이 무너질 때도 그랬다.”

북한 미사일 발사와 함께 일본 아베 총리의 방미, 미·일 동맹의 강화도 한반도 주변 정세를 결정짓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해 5월 7일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 등 전 세계 역사학자 187명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집단 성명을 채택했다. 일본이 위안부 등 과거사를 왜곡하지 말고 직시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골간이다. 미국 내 대표적 한국통인 빅터 차 교수는 자신도 서명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를 촉구하는 전 세계 학자들의 집단 성명에 서명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서명을 마다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아베가 과거사에 관해 어떤 말을 하건 간에 역사는 이미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세상은 일본이 잘못돼 있고, 한국이 희생당했다는 것을 안다.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동원된 한국 여성들이 위안부 활동을 당했음은 전 세계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다.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마당에 아베에게 사과를 촉구하는 행위는 현실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정치적으로 비쳐진다. 일본이 틀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 둘째는 만약 아베가 사과한다고 한들 한국인들은 큰 의미를 두지 않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아베가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한다며 그의 진정성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언론 기고문에서 아베가 위안부 관련 사과를 하지 않는 게 역설적으로 동북아 정세 안정에 유리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것도 같은 맥락인가?

“아베는 아베만의 독특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가 만약(위안부 동원 등 과거사와 관련해) 사과를 하면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은 한층 쉬워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베를 보는 한국인들의 속마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본다. 변할 것 같은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베가 4월 말 미 상하 양원 합동 연설에서 (위안부와 관련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상심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확고부동한 사안이다. 아베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국제사회는 일본의 잘못을 안다. 게다가 동아시아에는 중요한 현안들이 있지 않나. 날로 노골화되는 북한의 위협, 공격성을 더해가는 중국의 태도와 같은 모두의 협력을 요하는 어려운 과제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아베 총리의 지난 4월 미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일본이 밀월 관계에 접어든 반면, 한국과 미국 사이는 껄끄러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동맹에 대한 의구심이 미국 내에서 제기된다고나 할까, 한·미 관계의 현주소를 어떻게 보고 있나?

“미·일동맹이 강화된다고 해서 한미동맹에 주름이 진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양자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미·일 정상회담에서 성취한 걸 보면 양국 관계에서 이미 이룬 것이 많다. 예컨대 타결 직전 단계에서 멈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만 해도 양국은 이미 수년 전에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해 이뤄낸 사안이다. 미·일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라 할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만 해도 한·미 간에는 이미 작전권 전환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에까지 와 있다. 다방면에서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를 앞서간다.”

“미국 정부, 한국 태도에 대한 피로감은 없어”


▎4월 29일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행한 아베 일본 총리. 빅터 차 교수는 한·미 관계가 미·일 관계를 앞서간다고 주장한다.
한·일 관계가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혀 진전을 보지 못한다는 시각이 있다. 한국의 태도에 미국이 차츰 피로감을 갖기 시작했으며, 미국 정부가 한국보다 일본의 입장을 더 양해하는 기류가 있다는데?

“아니다. 미국이 한국에 피로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미국의 관점은 언제나 미래 지향적이다. 결코 과거 회귀적 접근법을 꾀하지 않는다. 그건 미국의 문화이자 본성에 해당한다. 한·일 관계가 미래 지향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시아의 과거는 어두웠지만 미래는 밝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아시아의 앞날은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창창하다. 미국이 미래를 지향하자고 말하는 것도 아시아의 미래가 밝아서 그렇다. 위안부와 과거사 갈등 문제도 미국은 한국의 입장에 공감은 하지만 한·일 양국이 실용적인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는 바람도 갖고 있다. 미국은 (과거사에 갇혀 한·일 간 주요) 정책 현안이 겉도는 상황을 극히 우려한다.”

미국이 양자 관계에 있어 기본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에 일본의 명확한 입장표명 없이는 의미 있는 관계 진전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한·미 정부 간에 견해 차가 큰 것 아닌가?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일본의 진심 어린 과거사 사과 없는 관계 진전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정도로 이해된다. ‘일본과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가. 한국 정부는 단지 (지금의 일본과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걸 말할 뿐이다.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성사되진 않았지만 양국 간 실무 협조는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한·미·일 외교차관 회의가 워싱턴에서 열렸고, 북핵 6자회담에 참여하는 한·미·일 대표들도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았을 뿐 다른 많은 분야에서의 협력은 원활하다고 하겠다. 우호적이지 않은 국가 간에도 실질적인 협력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른 미국과 중국만 해도 그렇다. 지금 두 나라 관계가 나쁘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런 역사적 문제를 안고서도 여전히 많은 현안에서 협력을 추구하지 않나. 월남전에서 미국은 베트남과 싸워서 졌지만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비록 친밀하지 않은 국가 간에도 힘을 모으는 일이 가능하다.”

한·일 관계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말인가?

“국교 수립 50년을 맞이한 한·일 관계도 같은 여정을 걸어 왔다. 두 나라는 앙숙이면서도 협력할 것은 협력해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박근혜-아베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현실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같다. 그 여파로 양국 간 모든 관계가 교착상태에 있다고 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오는 6월로 예정된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촉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는데 어떻게 보나?

“한·미 정상회담에서 일본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지진 않을 것이다. 그 문제로 한·미 관계가 삐걱거리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에게 한·일 정상회담 개최를 요구하는 일은 없다고 본다. 두 사람은 실질적 협력의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친밀한 사이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친구다.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을 실로 존중한다. 내 생각에는 그들은 서로를 역사적인 인물(historic figures)로 평가한다. 그래서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박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하는 일도,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로 만나도록 강요하는 일도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한·일 정상은 TCS(한·중·일 협력 사무국: Trilateral Cooperation Secretary Japan- Korea-China) 회의를 통해 만날 가능성이 점쳐진다. TCS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외교장관 회의를 지원하고 3국 협력 사업을 발굴하는 기구다. 2011년 발족해 서울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해마다 3국 정상이 한자리에 모여 국가별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취지로 설립됐다. 지난해는 건너뛰었으므로 올해는 아마도 서울에서 열릴 것이다.”

왜 지난해에는 왜 열리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그 이유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 두 사람의 문제로 돌리지만 실은 중국이 (3국 정상이) 만나는 걸 원치 않았다. 그건 한국과 일본이 계속 반목하기를 바라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은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체제가 깨지기를 바란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심화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과 북한이다.”

박 대통령의 6월 방미에서 가장 눈여겨볼 대목을 꼽는다면?

“북한이 중요하다. 그들은 핵무기 제조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최근 수년 동안은 외교 무대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 북한을 다루는 전략적 관점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어젠다의 하나가 될 것이다.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문제도 비중 있는 쟁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처럼 한·일 관계 말고도 빅 이슈가 많다. 나아가 한국과 미국이 협력을 추구해야 할 글로벌 이슈도 이번 방미 과정에서 깊숙이 논의된다고 본다. 한국인들은 스스로를 작은 나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지만 세계는 한국을 더 이상 작은 나라로만 인식하지 않는다. 국제 사회의 중요한 행위자로 간주한다. 이를테면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방지와 같은 글로벌 보건 문제나 미국의 평화봉사단(Peace Corps)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를 자랑하는 해외봉사단 파견에서도 한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중국이 국제질서를 세우도록 놔둘 것인가”

차 교수는 핵안보에서 한·미 간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올 4월 타결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만 해도 핵 안보에서 획을 긋는 사안이라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 이후 핵안전 문제는 한국에 주어진 숙제라고 강조했다. 한국은 미국과 UAE간 ‘123협정(123-Agreement)’이 체결되면서 원전을 UAE에 수출한 국가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이 모든 문제에서 한국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로 발돋움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핵 안보가 한·미 공동의 관심사로 다뤄진다는 말인가?

“한국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겠지만 지구촌의 많은 이가 이런 글로벌 이슈와 관련한 한국과 미국의 리더십을 주목하고 있다. 핵안보 사례에서 보듯 미국은 한국 같은 국가와의 협력을 고대한다. 한·미 두 나라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누가 대신해주겠나? 중국이 한다고? 그 어떤 국가도 중국이 핵안보 관련 질서를 재단하는 상황을 반기지 않는다. 한국의 리더들은 한국의 역할에 대한 국제적인 인식이 한국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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