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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분석] 털면 나온다? 논란 부른 검찰 ‘별건수사’ - 살아있는 권력도 떨게 만드는 전가의 보도(寶刀) 

'별건’의 체포·구속을 이용하는 수사 방법에 대한 국내 통설은 위법 … ‘기업범죄 수사원칙’ 만들어 모든 기업범죄에 동일한 기준 적용해야 

조강수 중앙일보 사회부문 부장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을 계기로 검찰 수사방식을 본건수사 집중 방식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번에 검찰 조사도 자원이 없으면(자원 분야를 뒤지다 안 나오면) 그만둬야지. 마누라, 아들 (…) 다 뒤집어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이념을 달리하는 사상범도, 요즘 마약이나 폭력범도 그렇게 안 하잖아요.”

“검찰청법에 가지치기 수사를 못하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면 되나요. 포스코는 비자금만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자원 하다 없으니까 가족관계다, 압력이다, 분식이다, 비자금이다 뭐 생긴 것 다하잖아요. 포스코하고 우리하고 대비가 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없으니까(1조원) 분식(회계)으로 걸어서 신용평가 좋게 해서 대출받았다 이러는데….”

“(검찰 수사가 MB맨들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 검찰에서 딜하라 그러는데 뭐 내가 줄 게 있어야지요.”

4월 9일 자살로 생을 마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생애 마지막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주장들을 쏟아냈다. 검찰의 수사 착수부터 수사 방식까지 격한 불만을 토로했다. 대략 정리해보면 “MB정부 인사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자원외교에 많은 기업이 참여했고 정부의 성공불융자금도 대부분 다 받았는데 지금 갑자기 경남기업만 터는 건 이해가 안 간다”면서 답답함과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는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를 성 전 회장이 ‘별건(別件)수사’, ‘표적(標的)수사’로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한때 연 매출이 2조원대를 기록한 중견건설업체 오너가 느끼는 억울함의 강도가 이럴진대 매출 수십억~수백억 원 규모의 중소기업 대표라면 오죽할까.

300여 개 이상의 특허와 신기술을 보유한 국내 PVC 시장의 강소기업 P사는 최근 충청지역 검찰청으로부터 대대적 압수수색을 당했다. 표면적 혐의는 중국산 수도관을 국내산이라고 속여 팔았다는 것이라고 한다. 지역의 다른 검찰청에서 지난해 내사했다가 종결된 사안인데 이웃한 검찰청에서 다시 수사에 나선 배경이 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60대 초반의 이 회사 K대표는 지역 공무원들에 대한 뇌물공여 수사 차원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K대표는 품질 경영을 모토로 수십 년 동안 한우물만 파온 외골수 기업인이다. 대형 수도관을 생산하는데 얼지도 않고 두드려도 깨지지 않는다. 주철관보다 강한 제품 만들어 전 세계에 공급해왔다. 1990년대 중반 한보그룹 사태로 부도를 맞았으나 거래업체들과 대리점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그가 걱정하는 건 별건수사다”고 전했다.

표적수사 버틴 성완종, 별건수사에 무너져


▎3월 18일 오후 서울 답십리동 경남기업 본사에서 검찰 관계자들이 압수물품을 옮기고 있다.
별건수사, 표적수사 논란은 ‘권력형 게이트급’ 대형 사건은 물론이고 범죄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기업이나 개인비리사건 수사과정에서도 빈번히 제기된다. 수사를 당하는 피의자가 느끼는 체감지수와 수사를 하는 검사와 수사관, 경찰관의 생각 사이에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성 전 회장 사건의 경우도 비슷하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를 ‘표적수사’라고 주장했다. 그 몸통으로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를 지목했다. 이완구 총리가 지난 3월 12일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패와의 전면 사정수사를 선포했고 6일 뒤인 3월 18일 성 전 회장 자택과 경남기업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게 근거다. 이완구 총리가 평소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가까운 자신을 정치적 견제 대상으로 여기다가 천신만고 끝에 총리가 되자 정적 제거 차원에서 사정의 칼날을 겨눴다는 게 성 전 회장의 해석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성 전 회장은 적어도 ‘표적수사’는 피해갈 수 있었다고 판단했던 듯하다. 그러나 ‘별건수사’라는 전가의 보도 앞에는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던 형국이 됐다.

성 전 회장 측 관계자는 “수사의 칼날이 자원외교와 관련된 ‘성공불융자금’으로 향했을 때만 해도 법리적으로 다툴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이후 수사가 기업의 아킬레스건인 분식회계는 물론, 아내와 자식, 형제 쪽으로 전방위 저인망식으로 확대되자 자포자기한 측면이 적지 않다”며 “이에 성 전 회장이 자신을 ‘희생양’이라고 주장하며 죽음으로써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스스로 종결시킨 구도”라고 말했다.

극적인 반전은 성 전 회장이 현 정부의 친박(친박근혜)계 실세 등이 포함된 8인을 적시한 메모 한 장을 남기고 떠나면서 완성됐다. 원래 이번 사정 수사의 주체들이 원했던 건 과거 정부 실세 인사들이었는데 갑자기 수사가 역방향을 향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수사 단서는 수사의 물길을 과거 권력이 아닌 현재의 ‘살아있는’ 권력으로 돌려놨다. 경남기업 관련 수사는 성 전 회장의 죽음을 경계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자원외교 의혹 수사(1차)에서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의 ‘성완종 리스트’ 수사(2차)로 넘어갔다. 1차 수사는 핵심 피의자가 숨져 공소권 없음으로 봉인됐다. 현재 성 전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2011년 6월 한나라당 당 대표 경선자금으로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홍준표 경남도지사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 중이며 곧 이완구 전 총리가 두 번째 타깃으로 소환조사를 받는다.

성 전 회장은 충남 서산의 어머니 묘소에서 추모제를 지낼 때도 별건수사의 억울함을 털어놨다고 한다. 한 측근은 “성 전 회장이 ‘(검찰이) 나를 죽이는 것뿐 아니라 가족들도 다 죽이겠다는 얘기다. 큰 아들의 런던 유학비 등에 대해 업무상 횡령죄를 적용하려 하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제 잔재’, ‘먼지떨이식 수사’라는 논란도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4월 13일 업무를 시작했다. 특별수사팀이 주문한 것으로 보이는 도시락이 배달되고 있다.
그러나 자원외교를 담당했던 1차 수사팀은 “경남기업에 대한 수사는 별건수사가 아니고 정당한 수사”라는 입장이다. 자원외교 관련 비리 단서를 잡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자원외교에 쓰인 자금의 흐름과 관련 있는 횡령·배임 등의 범죄 혐의가 발견됐기 때문에 수사를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본건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별건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먼지떨이식 수사를 지칭할 때처럼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별건수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자금의 입구(출처)와 출구(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 뒤를 잇는다.

그렇다면 별건수사라는 건 성 전 회장만의 주관적 판단이었던 것일까? 또 별건수사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은 뭘까?

별건수사란 원래 수사하려는 범죄의 혐의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을 때 별개의 혐의를 수사해 피의자를 압박, 본건에 대한 자백을 유도하는 수사방법을 말한다. 일제시대 독립군을 잡아들일 때 쓰던 수법이라고 해서 ‘일제 잔재’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별건수사는 피의자 체포·구속을 지향한다. 법학계에서 별건수사와 별건 체포·구속 문제는 그 적법성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사기관이 본래 수사하고자 하는 사건(본건·本件)에 대한 체포·구속 요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을 때, 체포·구속 요건이 갖춰진 다른 사건(별건·別件)으로 체포·구속해 그 신병구속 상태를 이용하여 오로지 본건에 관하여 수사를 하는 경우(광의의 별건 체포·구속)라서다. 이 경우 본건은 중대한 범죄, 별건은 경미한 범죄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또 체포·구속 기간을 이용해 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 이외의 사실을 수사(특히 신문)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여죄(餘罪) 수사’로서 문제가 된다. 여죄 수사는 범죄 수사의 원활화 차원에서 수사기관이 구속한 사건과는 별개의 수사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여죄 수사가 허용되는 경우는 ‘피의자가 자진해서 여죄를 자백한 경우’, ‘여죄가 영장 기재 사안보다 경미한 경우’, ‘여죄가 영장 기재 사실과 동종 사안이거나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경우’ 등이 꼽힌다.

본건에 대한 조사를 위해 별건의 체포·구속을 이용하는 수사 방법에 대한 국내 통설은 위법하다는 쪽이다. ‘본건 기준설’이 이론적 토대다. 본건 기준설은 체포·구속이 자백을 얻거나 여죄를 추궁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처음에 법원에서 발부받은 영장 기재 범죄사실이 아니라서 영장주의를 무의미하게 하고 자백을 강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별건에 이은 본건 구속을 계속하는 경우 구속기간의 제한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게 논거다.

별건수사는 법 적용의 형평성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여러 가지 수사 및 기소에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행위로만 기소되는데 반해 어떤 사람은 본건과는 무관하게 별건수사를 통해 가혹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박동희 건국대 법대 명예교수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검찰의 ‘별건수사’는 사실상 보복이며, 원한 수사이고 약점 캐내기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행위 책임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사법정의가 아니다”며 “법 적용의 원칙은 이미 알려진 행위에 대한 책임 원칙에 입각해야 하고, 다른 행위 즉 묻혀 있던 어떤 행위를 연관시키는 소위 ‘별건수사’ 및 ‘확대인과관계론’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별건수사는 권력남용 금지 원칙과 명확성의 원칙에 대한 도발행위라고도 했다.

별건 체포·구속의 적법성 다룬 판례 없어

그러면서 통일독일이 1999년 동독의 마지막 총리에 대한 ‘탈출 동독인 사살 사건’에서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로만 기소해 6년6월 형으로 처벌한 사례를 들었다. 전임자가 사살 명령을 내린 것 외에 직접적 살인명령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인데 별건수사를 했다면 더 중한 형을 받았을 것이라는 거였다.

본건기준설의 반대가 ‘별건기준설’이다. 신체 구속의 적법 여부는 오로지 신체 구속의 이유가 된 별건 피의사실을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견해다. 별건에 대해 체포·구속의 요건이 구비돼 있는 이상 그 체포·구속은 적법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별건에 대해 신체 구속의 요건이 갖춰져 있는 이상 비록 수사기관이 본건을 수사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더라도 그것은 구속의 적법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장 기재 외의 별건을 수사한다고 해서 무조건 위법한 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사기 범죄로 구속한 피의자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살인이라는 더 큰 범죄 사실이 드러나도 다시 영장을 발부받기 전에는 추궁할 수 없는 모순이 생기기 때문이다.

별건기준설은 한 피의자에 대한 두 개 이상의 혐의 동시 처리는 범인에게 이익이 되고, 신체 구속 장기화를 피할 수 있으며, 수사의 반복에 따른 비효율성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영장에 수사기술상 장애가 없는 별건 사실만을 기재하는 것이 수사밀행성의 요청에 부합한다는 것도 논거다. 또 현실적으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청구 및 발부 단계에서 법관이 수사기관의 내심의 의도를 파악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별건 체포·구속의 문제는 공판단계에서 증거조사를 하면서, 특히 자백조서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조균석(55)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별건 체포·구속을 갖고 일률적으로 적법하다, 위법하다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서 영장주의의 정신과 수사의 형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며 “체포·구속 기간 전체를 본건 수사에 이용하는 등 별건에 대한 영장 발부의 정신을 몰각할 정도에 이른 경우는 위법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아직 별건 체포·구속의 적법성을 정면으로 다룬 판례는 없다고 한다.

구속 기간 동안 금지되는 본건에 대한 별건수사와 허용되는 여죄 수사의 구분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수사 실무에서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이현령비현령’으로 아전인수격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는 게 관행화된 현실인 셈이다.

애매한 별건수사 기준, 수사 현장에서는 어떻게 구분하고 있을까? 대검 중수부장과 검찰 최고위직을 지낸 L변호사의 말이다.

“별건수사(또는 구속)는 특수수사를 하다가 늘 부딪히는 법률적 딜레마다. 정립된 개념이 있는 게 아니다. 오랜 특수수사 경험에 비춰 내가 생각하는 수사가 가능한 별건수사냐, 수사를 해선 안 되는 별건수사냐의 기준은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것이냐, 아니면 수사 도중 우연히 범죄 단서가 발견된 것이냐다. 똑같이 별건이라 해도 수사 도중 특정한 의도나 목적 없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 한다. 새로 드러난 범죄 단서를 덮어둘 수는 없다.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다. 반면 어떤 수사를 하다가 안 되니까 다른 건을 파고드는 건 수사가 금지된 별건이다. 본건 수사가 잘 안되니까 가족·친지·사돈의 8촌 계좌까지 모조리 뒤지고 불러젖히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는 것이다.”

욕 먹어도 잘못 인정하고 물러나야 올곧은 검사


▎1.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때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입을 열기 위해 그의 가족과 주변 인사들에 대한 별건수사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 2.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왼쪽) 씨는 혐의가 안 나오면 별건수사를 통해 얽어매는 게 검찰의 수법이라는 주장을 폈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최교일 변호사는 구체적 사례를 들었다.

“병원에서 난동을 부린 환자를 병원 측이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검찰이 수사하던 중 병원이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장부가 나와 수사가 확대됐다면 그 경우 별건수사라 비난하기 어렵다. 원래 수사의 목적과는 다르지만 새로운 범죄 단서를 찾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뇌물수사를 하다가 증거가 나오지 않자 다른 혐의를 찾기 시작해 결국 간통사건으로 구속한 뒤 뇌물 수사를 한다면 명백한 별건수사다. 2011년 12월 당시 민주통합당 예비선거에 나온 김경협 부천 원미갑 예비후보의 돈봉투 의혹 사건 수사 때 부천지청에서 압수수색까지 했으나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3일 만에 내사 종결한 게 기억난다. 검사가 한번 칼을 뺐다가 아무 소득도 없이 물러서면 창피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다른 혐의를 찾는 것보다는 욕을 먹어도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는 게 낫다. 당시 야당이 ‘잘했다’고 칭찬하더라.”

당시 김씨는 줄곧 “돈봉투가 아니라 출판기념회 초대장”이라며 의혹을 부인했고, 검찰은 “김씨의 주장에 수긍할 점이 있어 수사를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같은 프레임으로 경남기업 사건을 들여다보면 검찰은 자원외교 수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정부 차원에서 깊숙이 개입한 사안인 만큼 전 정부 실세들에 건너간 금품 로비 의혹도 염두에 뒀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첩보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정·관계 금품 리스트를 확보한 상태에서 수사에 착수했다면 모르지만 ‘맨 땅에 헤딩’하듯 빈 손으로 시작했다면 오너의 배임·횡령을 먼저 겨냥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성공불융자금에 주목한 이유다. 4월 6일 검찰이 청구한 성 전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에는 2006~2013년 회사 재무상태를 속여 러시아 캄차카 석유탐사 사업과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산 개발사업 비용 등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지원되는 정부 예산 800억원을 대출받아 250억원을 횡령한 혐의와 800억원대 사기 혐의가 적시돼 있다. 95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도 있다.

이에 대해 성 전 회장은 성공불융자금 외 다른 혐의는 별건수사라고 인식했고, 영장실질심사 하루 전(4월8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수사에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검찰은 성 전 회장 자살 다음날(4월 10일) 공식 브리핑에서 별건수사 지적을 일축했다.

별건사건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거물급 인사 수두룩


▎김진태 검찰총장(왼쪽 셋째) 등 역대 검찰 수뇌부는 별건수사를 지양하라고 부단하게 지시해왔다
“실제로 경남기업 수사는 기업 비리와 자원개발 비리가 겹치는 사안이라 분리해서 수사하기는 어렵다. 정부의 성공불융자금이 기업 계좌로 들어가면 기업 자금하고 섞이게 된다. 이를 과다하게 받은 부분을 규명하기 위해 회사의 자금 흐름을 살펴봤고 그 과정에서 분식회계 단서를 발견해 수사한 것이다. 성 전 회장이 횡령한 자금의 사용처 및 비자금 통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가족 관련) 수사가 불가피했다.”

표적 수사에 대해선 “사람을 보는 게 아니고 비리를 보고 증거를 찾아서 나아가는 것이다. 자원개발 수사가 경남기업 한 곳으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어디 있나. 성공불융자금을 지원받은 공사나 민간기업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회사가 경남기업이라 수사 대상이 된 것이지 사람을 보고 한 표적 수사가 아니다.”

별건수사 논란은 대형 사건 수사 과정에서는 거의 빠지지 않고 제기된다. 대표적인 게 김영삼 정부 때 대검 중앙 수사부가 수사해 구속까지 했던 YS 차남 김현철 씨 사건이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돼 있지만 김현철 씨는 본건과는 상관없는 별건으로 구속됐다. L변호사의 기억이다.

“김현철 씨 사건은 원래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정·관계 금품로비 사건 수사과정에서 현철 씨에게도 돈이 갔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김현철 씨는 한보에서 한 푼도 받지 않을 걸로 나왔다. 김씨가 기업체 여러 곳에서 받은 돈을 지인 회사에 맡겨 놓고 이자를 받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했다. 한보그룹 수사 본건과는 무관한 혐의였다. 이론적으로 별건수사다. 당시 김현철 씨를 구속해야 한다는 여론에 대검 중수부장까지 교체해가며 수사가 진행된 결과로는 무색했다.”

현재 국민대 특임교수인 김현철 씨는 최근 성 전 회장에 대한 별건수사의 폐해를 지적해 화제가 됐다. 김 교수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혐의가 안 나오면 별건수사를 통해 무조건 얽어매는 게 검찰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성 전 회장도 자원비리와 관련된 횡령혐의가 나오지 않자 개인 비리로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나 역시 과거 한보수사가 안되니까 대선자금에 이자를 내지 않았다는 택도 없는 별건 혐의로 구속됐다”고도 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로 이어진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때도 별건수사 논란이 일었다. 국세청이 세무 조사를 거쳐 탈세 혐의로 고발한 사건이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사건으로 번졌다고 주장했으나 별건·표적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입을 열기 위해 검찰이 박 회장 가족과 회사 주변 인사들을 샅샅이 뒤지며 전방위로 압박했고, 결국 박 회장이 회사와 가족을 살리기 위해 진술을 시작했다는 게 정설이다.

2013년 한화 김승연 회장 수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횡령 혐의를 두고 시작했으나 입증이 되지 않자 배임 혐의 수사로 방향을 틀었다. 6개월 동안 13차례 37곳을 압수수색하고 임직원 350여 명을 소환조사해 ‘먼지떨이식’ 수사라는 비판을 들었다.

수천억원대 배임·횡령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선종구(68) 전 하이마트 회장도 지난 6일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자신도 별건수사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선 전 회장의 변호인은 “대검찰청 중수부가 1천억원대 재산 국외도피 혐의로 수사를 시작했고 800억원대 리베이트와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압수수색도 했지만 재산 국외도피와 리베이트는 검찰의 기소에서 빠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 선 전 회장의 가족과 지인에 대한 수사가 광범위하게 시작돼 먼지떨이식 수사를 해서 가족과 딸과 아들, 부하 직원, 수십 년 지기까지 수사해 탈탈 턴 것이 올바른 검찰권 행사인지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수뇌부와 일선 검사들 간의 온도차도 적지 않다. 수뇌부는 별건수사를 지양하라고 부단하게 지시한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지난해 12월 초 대검 반부패부 현판식에 참석해 “이제 검찰 수사는 성과위주 관행에서 벗어나 드러난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수사’, 범죄인이 아니라 범죄행위만을 제재해 궁극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수사’를 지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별건 혐의를 찾기 위한 광범위한 압수수색이나 무차별적 소환을 통해 관련자를 압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완종 메모 8인 수사는 환부 도려내기식 수사

김 총장 말고도 역대 총장은 예외 없이 환부를 도려내는 수사를 강조했다. 한상대 전 총장이 ‘스마트 수사’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별건수사의 경계가 애매해 실천으로 정착되지는 않고 있다. 어찌 보면 현재 진행중인 경남기업 관련 의혹 특별수사팀의 수사는 성 전 회장이 남긴 메모에 등장하는 8인에 한정된 전형적인 환부 도려내기식 수사다. 대대적인 압수수색도 없고 계좌추적도 없다. 이완구 전 총리의 경우 2013년 4월 4일의 행적, 홍준표 경남지사의 경우 2011년 6월 어느 날의 돈 전달 상황을 재현, 복원하는 데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별건수사 지적을 받은 성 전 회장이 자살하기 이전의 검찰 수사와 대조된다.

특수통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서 스마트 수사가 가능한 건 메모 속 수사 대상들이 현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라 오만 가지로 이것저것 파헤치다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걱정도 작용한 것 같다”며 “이번 기회를 검찰 수사 방식을 본건 수사 집중 방식으로 정착시켜 가는 계기로 삼으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찰이 기업을 별건수사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지 않기 위해 ‘기업범죄 수사원칙’을 마련해 모든 기업범죄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 검찰의 ‘기업범죄 기소원칙’을 그 예로 들면서다.

- 조강수 중앙일보 사회부문 부장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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