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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현의 글로벌 법률 가이드] 잘 쓰면 약이 되는 ‘주주행동주의’ - 경영권 감시 통해 투자자 이익 지킨다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확대는 세계적 흐름… 시장 제도와 관행, 투자문화 개선노력 병행돼야 

송창현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

▎주주들이 의결권을 활용해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기존 주주와 경영진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단기투자의 폐해를 막을 순 있으나 시장의 효율성을 해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지난 3월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국민연금과 일부 기관투자자들은 이사 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한전부지 매수에 대한 불만을 의결권 행사로 표출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2014년 말 기준으로 260여 개 국내 상장사에 투자해 국내 증시 시가총액 7% 상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장기적인 주주 가치를 증대한다는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해외 사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CalPERS는 기업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을 선정해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경영실적이 부진한 기업의 경영진 퇴진을 요구하기도 한다.

주주들이 경영진에게 배당확대, 자사주 취득, 사업부 매각, 구조조정을 요구하거나 환경, 노동, 기업윤리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기관투자자의 지분이 높아지고 ISS 등 전문 조언기관의 등장으로 경영진에 대한 모니터링 비용이 낮아지면서 ‘주주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가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주주들이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안은 의결권 행사, 위임장 권유, 주주제안, 광고나 홍보를 통한 압박도 있으나 실무적으로는 경영진과 대화를 통한 협상이 가장 효과적으로 보인다. 2006년 KT&G 경영권 분쟁 시 공격자인 칼 아이칸은 KT&G 경영진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이사회 의석을 확보해 경영에 참여한 이후 비핵심자산의 매각, 배당 등 기존 요구사항을 대부분 관철시켰다.

주주행동주의는 대리인 문제 완화,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제고, 사업재편이나 운영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증진 등 경영을 감독하는 순기능이 있다. 반면, 단기적인 이익 추구로 회사의 중장기 사업계획이 좌절되거나, 일부 주주가 다른 주주들의 희생 아래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한 부당거래나 주가조작의 위험도 존재한다. 또 경영진과 대립 과정에서 회사의 대외적인 평판이 나빠지고 정상적인 운영에 지장을 주어 오히려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단기투자의 폐해를 방지하고 충성도가 높은 주주에게 혜택을 부여한다는 명분으로 2년 이상 프랑스 상장회사 주식을 보유한 주주에게 2배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법령을 제정했고, 이 중 의결권은 2016년 4월부터 적용된다. 그런데 2년 이상 보유자는 프랑스 정부나 지배주주인 가문들이어서 오히려 주주권 행사에 의한 경영감시나 부실 경영진 교체가 어렵게 된다. 이로 인해 프랑스 상장사 주식은 저평가되고 프랑스 회사의 자금조달 비용은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바람직한 입법 사례는 아니다.

기존 주주·경영권 보호입법, 시장 효율성 해칠 수도

헤지펀드나 외국회사에 의한 경영권 도전과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기존 주주나 경영진을 보호하는 입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주주행동주의가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영실적 및 지배구조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장·제도·관행·문화를 점진적으로 구축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부실금융기관 경영진과 대기업 내부거래 관계자를 상대로 소액주주 소송을 제기하면서 주주행동주의가 시작됐다. 이후 자본시장의 성숙과 더불어 연기금 등 시장참여자들이 주주권 보호를 위한 목소리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펀드 운용사가 다른 주주들의 찬반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한 ‘중립적 의결권 행사제(Shadow Voting)’가 폐지돼 투자자 이익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의결권 행사를 할 수 있게 됐다. 또 전자투표제와 전자위임장을 통해 주주권 행사가 가능해져 주주행동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송창현 - 서울대 법대 졸업, 미국 컬럼비아대 법과대학원 석사(L.L.M.), 미국 UC버클리 법과대학원 법학박사(J.S.D.), 사법연수원 제26기 수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M&A·기업소송·정부규제)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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