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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 일본 오키나와, 동아시아의 새 화약고 되나? -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70년 미일 안전보장체제 ‘흔들’ 

미군기지 필요로 하는 건 미국이 아닌 아베 정권이란 인식 확산 … 올여름 중앙정부와 지자체 대결구도 정점에 이를 듯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오키나와 주민들은 일본 중앙정부에 대한 역사적 피해의식이 누구보다 강하다. 독립을 빼앗기고 미군기지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오키나와를 중국 해상 무력의 확장을 저지할 전진기지로 간주하지만, 실상 21세기 미군의 동아시아 방위 전략의 중심은 알래스카, 하와이, 괌 세 곳이다. 오키나와에서의 미군 철수론이 힘을 얻을 때, 한·미·중·일 4국의 동맹과 대결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오키나와현 기노완 도심 한가운데의 후텐마 기지. 1995년 미 해병대원의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이후 이전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베이징 특파원으로 주재한 적이 있다. 그때 한가지 놀라운 발견을 했는데, 그것은 국가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더라도 평화로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일본보다 25배나 큰 광대한 영토를 보유한 중국을 미군이 아니라 인민해방군이라는 자국군대가 지키고 있다는 점, 이는 일본인인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국인 외교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사실은 그 역시 중국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중국인이라면 ‘자국영토를 자국의 군대가 지키는 것’은 어린아이들까지도 다 알만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 국민에게 미군 병사의 존재는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었다. 때문에 ‘우리나라를 지켜주는 미국의 군대’라는 생각이 우리의 오래된 상식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후 70주년을 맞는 2015년 일본에서는 이 오래된 상식이 바뀌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화약고가 되고 있는 곳이 오키나와다. 오키나와현에 있는 미국의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같은 오키나와현의 나고시 헤노코로 이전하는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다. 이를 추진하려는 아베 정권과 이에 반대하는 오키나와현 지방정부 사이의 갈등이 일촉 즉발 사태로 나아가고 있다. 오키나와현의 오나 가타케시(翁長雄志) 지사는 3월 23일 헤노코 해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방위성 산하의 오키나와 방위국에 1주일 이내에 모든 작업을 중지하도록 지시했다. 허가 없이 비행장공사를 위한 조사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탓에 산호초가 부러지고 바다 밑바닥의 파인 곳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지시에 따르지 않을 경우 암초를 파괴하는 매립공사의 허가 자체를 취소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3월 24일 “작업을 중지할 만한 이유가 없다. 정부로서는 엄정한 법령에 따라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3월 27일 오나가 지사는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의 헤나코 이전을위한 해저조사 등의 작업 중지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하야시 오시마사(林芳正) 농림수산성 장관에게 제출했다. 그러나 3월 30일 하야시 장관은 오나가 지사의 청원을 거부하는 회답을 보냈다. 이처럼 아베 정권과 오키나와 지방정부는 연일 ‘전투’를 반복하고 있다.

1995년 초등생 성폭행 사건이 점화


▎상하이항에 정박한 러시아 해군 순양함. 신 밀월관계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작년 센카쿠 열도가 있는 동중국해에서 합동해상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오키나와를 둘러싼 역사를 조금 설명해두자. 메이지(明治) 유신이 시작된 지 11년 후인 1879년 일본정부는 류큐(琉球)왕국을 폐지하고 일본국 오키나와현으로 이 지역을 편입했다. 그 후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침략하기 시작하면서 오키나와현은 ‘일본에서 아시아로의 전선기지’로서 ‘일본 본토의 방파제’라는 역할을 짊어졌다.

1945년 3월 일본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태평양전쟁 말기의 오키나와 상륙전에서 당시 오키나와현 인구의 4분의 1이 넘는 12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같은 해 8월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면서 오키나와는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군사 기지로 구축하고 그 후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 등의 후방기지로 활용했다.

1972년 5월 오키나와는 일본에 반환되었지만 미군기지는 그대로 남았다. 일본 영토의 불과 0.6%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현에 주일 미군기지의 74%가 집중돼 있다. 일본정부는 오키나와현에 연간 2천억 엔이나 되는 보조금을 쏟아 부으며 미군기지 주둔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1995년 9월 미군 해병대원이 오키나와의 초등학생 여자아이를 감금,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오키나와 전 주민이 들고일어나면서 ‘미군추방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운동이 일본 전국으로 비화되자 일본 정부도 간신히 움직이기 시작해 미국 정부와의 교섭을 시작했다. 그 결과 1996년 4월 도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공항’이라고 불리는 후텐마 비행장 이전에 합의했다. 단 미국 측은 ‘이전 장소는 오키나와 현 내에 한한다’라는 조건을 붙였다. 당시의 사정을 아는 전 외무성 간부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당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는 바로 2년 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총리가 북한문제를 둘러싸고 클린턴 정권의 노여움을 사서 총리 사임을 재촉받는 것을 직접 보았던 터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동 강간사건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으면 내각지지율이 떨어지게 되니 역시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일본 국민과 미국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빠듯한 타협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일본 정부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위험 천만한 후텐마 기지의 이전은 결정되었지만 오키나와현의 어떤 지역도 기지수용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에 2004년 8월 미군 헬리콥터가 후텐마 기지 부근의 학교에 추락했다. 마침 여름방학이라 교정에 학생들이 없어서 인명피해는 나지 않았지만 하마터면 대형참사가 될 뻔한 사고였다. 이 사고를 계기로 후텐마 주민의 비행장 철수요구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2006년 5월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합의에 이르렀다. 그것은 오키나와현의 육지가 아니고 나고시 헤노코의 바다를 매립하고 그곳에 새롭게 2개의 활주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육지는 어느 지역이나 반대가 극심하므로 궁여지책으로 바닷가를 매립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오키나와가 자랑하는 귀중한 자연자원인 산호초가 크게 파괴될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고 나서 다시 해당지역 주민의 반대운동이 거세졌다.

기쁨에 들떠 야스쿠니 신사 참배했던 아베


▎후텐마 기지의 미군 헬리콥터. 2004년 헬리콥터 한 대가 기지 근처의 초등학교 교정에 추락한 이후 철수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2009년 9월 자민당 장기 정권이 붕괴되고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민주당 정권이 탄생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현 밖으로 이전시킬 것”이라고 선언해 오키나와 주민의 갈채를 받았다. 그러나 이번엔 미국이 격노했다. 막 발족한 오바마 정권은 2010년 6월 하토야마 총리를 정권의 자리에서 끌어내려버렸다. 그 이후의 총리들은 두려움 때문에 ‘미국의 노여움’에 거역할 수 없게 되었다.

2012년 2월 정권을 탈환한 아베 자민당 정권은 나카이마 히로카즈(仲井眞弘多) 당시 오키나와 지사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나카이마 지사는 2013년 2월 5일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을 수용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관해서는 아베 총리의 측근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나카이마 지사는 경제산업성 출신으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장관의 부친과 오랜 친구사이다. 그 인연으로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을 받아들이면 매년 3천억엔 이상의 보조금을 오키나와에 지원하겠다’는 말에 설득된 것이다. 나카이마 지사도 본심으로는 반대했겠지만 어차피 일본 정부와 미국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보조금이 1천억 엔이나 올라간 상황이야말로 타협하기에 적당한 때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나카이마 지사의 결정에 대단히 기뻐하며 다음날 갑작스럽게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후텐마 비행장의 이전 문제로 나카이마지사의 허락을 얻을 수 없었다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에 접어들면서 다시 오키나와 주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1월의 나고시장 선거와 11월의 오키나와 현 지사 선거 및 12월의 중의원 선거 모두 반대파가 압승한 것이었다. 특히 오키나와현 지사선거는 이전 반대파인 오나가 후보가 36만 표를 획득했고 찬성파인 나카이마 지사는 26만 표 얻는 데 그쳐 참패했다. 새롭게 오키나와현 지사가 된 오나가는 취임 연설에서 목소리를 높여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저는 오키나와현의 지사로서 반드시 후텐마 기지의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을 저지하겠습니다. 오키나와현 면적의 약 20%(2만176㏊)를 점령하고 있는 미군기지야말로 오키나와의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최대의 요인입니다. 오늘부터 모든 미군기지의 철수를 요구해나가겠습니다.”

이때부터 일본정부와 오키나와현의 ‘새로운 냉전’이 시작됐다. 아베 총리와 스가요시 관방장관은 4개월 이상이나오나가 신임 오키나와 지사의 ‘취임인사’를 보이콧했다. 더불어 올해 3월 2일 일본정부는 나고시 헤노코에서 해안매립을 위한 사전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반대하는 주민과 정부가 연일 격돌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일본의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전면전을 벌이는 이례적인 사태가 벌어졌는데, 과연 아베 정권은 이후 어떻게 대처할 생각일까? 앞서 언급한 아베 총리의 측근에게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해보았다.

“현재는 일본이 오키나와에 의지한다”


▎오키나와 지사 선거를 앞둔 지난해 11월 8일 주민들이 후텐마 미군 기지의 이전 예정지인 헤노코 기지 앞에서 철수를 주장하며 시위하고 있다.
압도적인 다수의 오키나와 주민이 반대하고 있는데 아베 정권은 왜 이렇게 강경한 자세를 관철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아베 총리가 4월 26일부터 5월 3일까지 방미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과 일미 정상회담을 열기 직전, 방미길에 동행하는 기시다 외무장관과 나카타 니겐(中谷元) 방위청 장관이 새로운 ‘일미 방위협력을 위한 지침(日米防衛協力のための指針: 이하 일미 가이드라인)’에 서명하게 된다. 아베 총리와 외무장관, 방위청 장관의 방미는 올해 ‘아베 외교’의 하이라이트다. 거기에서 ‘후텐마 기지의 이전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라고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동맹국인 미국을 볼 낯이 없을 것이다.”

아베 정권의 체면을 위해 오키나와 주민을 희생시킨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이것은 일본 전체의 안보 문제다. 지난 1997년의 일미 가이드라인 결정 당시는 핵과 미사일 개발위협이 높아지고 있었던 북한을 가상적국으로 보고 그에 맞는 지침을 마련했다. 그런데 이번 가상적국은 빠른 속도로 군비증강을 진척시키고 있으며 특히 해군력을 증강시키고 있는 중국이다. 가이드라인에서는 ‘틈새 없는 실효적인 일미 방위협력의 강화’를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해양위협에 대해 일본과 미국이 일체가 되어서 대응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일본정부로서는 후텐마 기지의 이전 문제에 관한한 오키나와 주민과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그가 말해주었듯이 ‘중국의 위협’이란 단어가 전면에 내 걸리면 일본 국민이 어느 정도 납득당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본 정부는 중국과 평화우호조약을 체결한 1978년 이래 매년 한 번씩 전 국민을 상대로 ‘중국에 대한 친근감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0일에 발표된 최신조사에 의하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 ‘별로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일본인은 조사가 시작된 이래 최고인 83.1%에 이르렀다. 일본인이 중국인을 그토록 싫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무력으로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를 빼앗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 때문이다.

한국인은 일본의 센카쿠 열도 문제가 한국에서의 독도 문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양자는 비슷한 듯 다르다. 독도는 한국이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아베 정권은 일본자위대를 통해 무력으로 독도를 빼앗으려는 의사는 갖고 있지 않다. 처음부터 일본헌법이 무력행사를 금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센카쿠 열도는 다르다.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시진핑 정권은 틈만 나면 강제로 빼앗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중국의 경비정이 다반사로 센가쿠 근처를 순회하며 일본에 대한 도발을 되풀이하고 있다. ‘중국의 위협’이 실제로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일본 국민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입장은 또 달랐다. 반대파 주민의 입장에서 보도를 하고 있는 오키나와의 한 저널리스트에게도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오나가 지사는 취임 이래 “미군기지야말로 오키나와 발전의 최대의 저해 요인”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사실인가?

“물론이다. 작년 오키나와를 방문한 관광객은 705만 명으로 전년 대비 62%나 증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일부 오키나와현으로 반환된 미군기지를 관광 리조트로 재개발한 덕분이다. 일본 최대의 유통업체인 이온그룹의 대형쇼핑몰, 힐튼호텔, 포시즌스호텔 등 국내외 유력한 레저시설이 미군기지 철수지에 들어선다. 지난주에도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오키나와에 진출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오키나와현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미군기지 관련 수입은 5.4%에 지나지 않았지만 반대로 관광수입은 10%까지 늘어났다. 앞으로 미군이 전면철수하게 되면 오키나와 치안이 보다 안전해져 관광수입은 더욱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후텐마 기지 이전은 오바마의 관심 밖


▎오키나와의 명물 중 하나인 추라우미 수족관. 일부 오키나와현으로 반환된 미군 기지를 관광리조트로 개발한 덕분에 지난해 오키나와를 찾은 관광객이 705만 명을 기록해 전년 대비 62%나 늘었다.
아베 정권은 ‘일본 전체의 방위’라는 관점에서 오키나와의 미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위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보는가?

“그것이야말로 20세기 냉전시대의 사고다. 알래스카, 하와이, 괌 등 세 곳에서 동아시아를 방위하는 것이 21세기 미군의 기본전략이다. 실제로 오키나와에 주둔한 1만5천 명 이상의 미 해병대원 중 9천 명을 괌 등으로 이전 배치하는 것에 이미 양국이 합의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필요로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아베 정권이다. 오나가 지사는 ‘이전에는 오키나와가 일본에 의지했지만 현재는 일본이 오키나와를 의지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진실을 반영한다.”

이 저널리스트는 지금 오키나와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며 한 권의 책을 소개했다. 지난해 7월에 출간된 이 책은 <류큐독립론>이라는 강렬한 제목을 달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류큐(琉球)’는 일본의 합병으로 오키나와현으로 편입되기 전까지 이곳을 부르던 말이다. 저자는 1963년 오키나와현 이시가키시(石垣市) 출신으로 교토 류코쿠(龍谷) 대학 교수인 마쓰시마 야스카츠(松島泰勝)다.

곧바로 책을 구입하여 읽어보았는데 일본 최초의 ‘오키나와독립선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중후한 서적이었다. 책 띠에는 “왜 지금 독립해야 하나. 류큐인 교수가 써 내려간 식민지 류큐의 역사와 현상, 그리고 독립의 길”이라고 씌어져 있다. 내용은 메이지 유신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류큐-오키나와가 어떻게 일본과 미국 정부에 의해 희생되어 왔는가, 그리고 ‘영원한 희생자’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키나와가 류큐왕국으로 다시 독립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다른 한편의 ‘당사자’인 미국 국무성의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이 친구는 익명을 조건으로 상당히 정직하게 대답해주었다.

후텐마 기지의 나고시 헤노코로의 이전 문제에 대한 오바마 정권의 입장은 무엇인가?

“오바마 대통령은 이 문제를 중요시하고 있지 않다. 러시아와의 신냉전, 중동문제 등이 산적한 상태다. 비행장 이전 문제는 솔직히 언제 이뤄지든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2009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으로 일본, 한국, 중국을 방문했다. 일정이 빠듯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가장 중요한 상대국인 중국에 대해서만 공부한 채 첫 방문국인 일본에 내렸다. 공항에서 곧바로 도쿄 미국대사관에 들른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존 루스 주일대사에게 ‘한 시간 후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했다. 대사는 ‘후텐마 기지문제를 논의하십시오’라고 대답하고 즉석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자 오바마 대통령은 ‘Futenma, Futenma…’라고 외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쯤 오바마 대통령은 후텐마 기지의 이름조차 잊어버렸을지 모른다.”

결국 4월 4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급히 오키나와로 날아가서 그 다음날인 5일에 오나가 지사와의 회담이 실현되었다. 오나가 지사 취임 이후 5개월 가까이 아베 총리와 스가 관방장관은 그를 무시했지만 결국 전격적인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이 회담에서 스가 관방장관은 미군의 후텐마 비행장을 나고시 헤노코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오키나와 지방정부의 이해를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오나가 지사는 엄격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헤노코 이전 절대반대와 미군기지의 추방’을 공약으로 내걸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오나가 지사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4월17일에는 결국 아베 총리가 오나가 지사의 요청을 받아들여 면담이 이뤄졌다. 오나가 지사는 “아베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인 ‘일본을 되찾는다’라는 말 속에 오키나와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오키나와 현민은 후텐마 기지가 반드시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무표정하게 “후텐마 기지는 헤노코로의 이전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생각하고 있다”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오나가 지사와의 만남에서 아베 총리가 의식하고 있던 것은 오키나와가 아닌 미국이었다. 아베 총리는 4월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미일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에게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 계획은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이에 대해 오나가 지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해당 지역민의 이해를 얻지 못한 기지건설은 불가능하다. 늦어도 7월까지 내가 직접 방미해서 미국정부에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5월 17일 일요일에 오키나와 전역에서는 대규모 반대집회를 계획, 지사가 직접 시위에 참석할 것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재 아베 정권이 경계하는 것은 오나가 지사가 이끄는 오키나와 지방정부와 중국 정부가 한편이 되는 것이다. 앞서 인용한 아베 총리의 측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나가 지사의 딸은 상하이시 정부에 근무하는 중국인과 결혼했고 그녀는 <상하이주재>라는 보고서를 아베 총리 관저에 제출하고 있다. 이 라인을 이용해서 이후 중국이 오나가의 오키나와 정부를 후원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를 일본 정부는 최대한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3년 3월 발족한 시진핑 정권은 집권 후 2년간 오키나와의 동향을 주시해왔다. 시진핑 정권 출범 2개월이 지난 2013년 5월15일 <류큐독립론>을 쓴 마쓰시마 교수 등이 중심이 된 ‘류큐민족독립종합연구학회’의 활동이 시작됐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중국공산당중앙기관지 <런민일보> 계열의 국제신문 <환구시보>는 ‘중국 국민은 류큐독립연구회를 지지한다’라는 제목을 붙인 다음과 같은 사설을 실었다.

오키나와 독립 지지하는 중국의 속셈


▎지난해 7월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마쓰시마 야스카츠 교수의 저서 <류큐독립론>.
“중국 국민은 류큐독립연구회의 성립과 그들이 선포한 정치목표 ‘류큐독립’에 동의하며 지지를 보낸다. 물론 그들에 대한 우리의 성원은 단기적 효과로서는 미비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류큐국의 부활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힘이 될 것이다. 오키나와 독립에는 역사적 전통에 뿌리내린 정당성이 있다. 만약 실질적인 운동으로 전개되면 그것은 오키나와인의 현실적 이익과도 일치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879년 일본의 류큐합병 이후 류큐국 부활의 독립운동은 수시로 고조와 쇠퇴를 반복했지만 지금이야말로 열매를 맺을 때다. 중국은 이제 용기를 내어 지금까지 서방국가들과의 외교구습을 바꾸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들은 너무나 오랜 세월 그들에게 굴복해왔다. 지금이야말로 대외의 소프트파워를 사용하여 ‘대별산(大別山: 중국의 국공내전의 승패를 가른 대별산전쟁)으로 천리의 약진’을 시행해야 한다.”

아무튼 최근 접촉한 아베 총리 측근에 의하면 이대로 가면 나고시 헤노코에서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되는 올여름 일본 정부와 오키나와 정부의 전면대결이 피크를 맞이할 위험이 크다고 한다. 이 문제는 오키나와 주민만의 지엽적인 문제를 넘어 전후 70년의 일본의 안전보장 체제를 뒤흔드는 중차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키나와 문제가 중국과 미국의 참전으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화약고’가 될 수 있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201506호 (2015.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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