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포토 에세이] 구불구불 논두렁이 농부 주름살을 닮았네! 

조각보 같은 논배미가 정겨운 울산 연화산 다랑논 … 땅 고르고 돌 캐내고 석축 쌓으며 피땀으로 일군 삶터 

글·사진 주기중 월간중앙 기자

▎모심기가 끝난 울주 두동마을의 다랑논에 여명이 들고 있다. 구불구불한 논배미와 어우러져 멋진 추상화를 그려낸다.
논배미라는 말이 있다. 논두렁이 뱀처럼 구불구불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잘된 요즘은 잘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다랑논이 있는 산골에서는 아직도 논배미라는 말을 쓴다. ‘삿갓배미’도 있다. 너무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아 삿갓을 들고 봐야 보인다는 논이다.

우리 조상들의 땅에 대한 집착은 남달랐다. 땅은 곧 생존을 의미했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 산골로 내몰린 민초들은 하루 종일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하며 논밭을 일궜다. 산을 깎고, 돌을 캐냈다. 경사가 급한 곳은 밭이 되고, 느슨한 곳은 평평하게 깎아 논을 만들었다. 땅을 고르고 돌을 캐내고 석축을 쌓아가며 피땀으로 일군 땅이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가뭄으로 물이 귀한데다 노동력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모내기가 한창이던 6월 다랑논을 보기 위해 울산 연화산에 올랐다. 맞은편 산 아래 조각보 같은 논배미가 이리저리 얽히며 비탈을 따라 이어진다. 해가 떠오르자 논물이 빛에 반짝이며 금빛으로 변한다. 구불구불한 논두렁과 갓 심은 모의 곡선이 추상화를 그려낸다. 농부의 이마에 깊게 팬 주름살을 닮았다.

날이 밝아오자 들녘 곳곳에서 이른 새벽부터 모심기가 시작된다. 이앙기를 사용하지만 땅이 좁아 효율이 떨어진다. 마무리는 언제나 사람의 몫이다.

다랑논을 낭만적으로 보는 시대는 지났다. 일손이 달리는 데다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경지정리를 하고 수로를 놓으면 되지만 주민들은 다랑논을 고집한다. 절대녹지로 묶이면 외려 땅값이 떨어지는 요즘이다. 이제 다랑논은 하나둘 택지로 개발되거나 밭으로 바뀌는 형국이다.

다랑논은 땅의 역사다. 조상들의 애환이 서린 다랑논을 원래대로 보존하는 방안은 없을까. 모내기철을 맞아 다랑논이 있는 울주 두동, 남해 가천, 함양 마천을 돌아보았다.


▎1. 울주 두동에서 한 농부가 모심기가 끝난 논에 비료를 주고 있다. / 2. 다랑논은 소형 이앙기를 써서 모심기를 하지만 능률이 떨어진다. / 3. 남해 가천에서 열린 모심기 축제에 참가한 관광객들이 써레질 체험을 하고 있다. / 4 다랑논이 점차 밭으로 바뀌고 있다. 인건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 글·사진 주기중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