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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정밀분석] 메르스 급속확산 4大 미스터리 

누가 메르스에 날개를 달았나 

감염경로 불분명하고 위험상황 축소·은폐 의혹 … 지역 감염·공기 중 확산 가능성도 주목해야

▎메르스 공포가 한국을 강타했다. 메르스는 기존의 통념을 깨고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위험성을 과소평가한 보건 당국의 늦은 대처도 확산을 부채질했다. 6월 10일 마스크를 쓴 서울 시민이 스파이더맨 모형 앞을 지나고 있다. / 사진·뉴시스
하얀 마스크를 쓴 신랑과 신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두 사람을 둘러싼 수십 명의 하객들. 평택의 한 결혼식 단체 사진이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연출한 것이지만 해외 언론들은 이를 한국 사회의 메르스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메르스(MERS-CoV: 중동호흡기증후군)가 걷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산된다. 한국 사회는 패닉에 빠졌다. 공포에는 루머가 따른다. 루머는 공포를 증폭시켜 사태를 악화시킨다. 공중보건방역체계의 선진국으로 꼽혔던 한국은 졸지에 중동에 이은 최악의 메르스 진원지로 추락했다. 이면에는 뿌리 깊은 관료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개선했다던 위기대응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정책 책임자들의 비전문성과 경제 우선논리가 발목을 잡았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악화는 없다’는 정부 발표는 과연 믿어도 될까?


▎6월 6일 경기도 평택의 한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와 하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중앙포 토
1◆삼성병원은 왜 ‘숙주’가 됐나

6월 16일 기준 메르스 확진자 수는 모두 154명. 그중 19명이 사망했다. 현재까지 삼성병원에서 메르스 환자 접촉을 통해 감염과 재감염이 반복된 환자 수는 80명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대부분은 14번 환자가 다녀간 응급실에서 접촉한 3차 감염자들이다. 그러나 응급실이 아닌 일반 외래 환자 2명도 메르스에 감염됐다. 환자를 이송한 구급차 운전자와 동승자도 감염돼 4차 감염까지 진행된 상태다.

삼성서울병원은 국내 첫 메르스 환자를 확진했다. 5월 17, 18일에 삼성병원을 찾아온 1번 환자가 바레인을 다녀왔다는 말을 듣고 응급실 진료 의사는 메르스를 의심해 질병관리본부에 검사를 의뢰했다. 다음날 이 환자는 메르스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병원의 실력이 입증되는 듯했다. 하지만 5월 27일 ‘슈퍼 전파자’로 불리는 14번 환자가 삼성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사흘간 머물면서 이곳은 국내 최대의 메르스 진원지가 됐다.

삼성병원에서 많은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이유를 전문가들은 “응급실 환경이 메르스가 전파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삼성병원은 지난해 100억원을 들여 응급실을 리모델링했다. 1275㎡(385평)에서 1970㎡(600평)으로 면적을 늘렸다. 병상 수도 58개에서 69개로 늘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삼성병원 응급실은 전국에서 넷째로 많이 붐비는 곳이다. 보건당국이 조사한 지난해 응급실 과밀화 지수는 133.2다. 과밀화지수가 100%를 초과하면 응급실 병상이 부족해 내원 환자가 간이침대와 의자, 바닥 등에서 대기할 수밖에 없다. 보건당국이 메르스 확산 범위로 보는 ‘2m 이내에서 한 시간 접촉’ 기준이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다.

삼성병원에 대한 보건당국의 비호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1번 환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질병관리본부는 밀접 접촉자가 115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삼성병원 측이 관리한 접촉 의심자는 환자 285명, 직원 193명이었다. 이 숫자는 6월 7일 송재훈 삼성병원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밝히면서 뒤늦게 드러났다. 병원 측이 축소해 보고했거나 보건당국이 대상자를 줄였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도 축소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진·중앙포토
보건당국에 보고 축소·묵인 의혹 제기


▎6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이 메르스 대응 민관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보고를 받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특히 보건당국이 집계한 115명에는 삼성병원 의사였던 35번 환자가 누락됐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삼성병원에서 제공한 밀접 접촉자 명단을 질병관리본부가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병원 측이 소속 의사를 고의로 누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후 정황은 보건당국이 고의로 삼성병원을 비호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35번 환자는 5월 31일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신고했다. 병원 측은 이날 저녁 이 환자를 격리했다. 35번 환자의 확진 일자는 6월 1일이다. 병원 측은 2일이라고 주장하지만 중앙메르스대책본부는 1일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는 2일과 3일 메르스 환자 집계에서 35번 환자를 누락시켰다. 35번 환자를 공개한 건 6월 4일 오후가 되어서였다. 권준욱 중앙메르스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은 5일 브리핑에서 재검 여부를 결정하느라 발표가 늦어졌다고 했다. 확진 즉시 환자와 동선을 공개하는 원칙을 유독 35번 환자에게만 적용하지 않은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병원 명단을 공개하는 시점도 석연치 않다. 방역 당국은 6월 5일 확진자 41명 중 30명이 발생한 평택성모병원 한 곳만 공개했다. 삼성병원은 7일 오후에 다른 병원들과 함께 공개됐다. 그런데 삼성병원은 정부가 병원 실명을 공개하기 3시간 전인 7일 오전에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삼성병원의 확진자가 급증하던 때였다. 더구나 송재훈 삼성병원장은 4일 새누리당 메르스 비상대책특위에 참석해 “메르스가 전파력이나 중증도에 비해 과도하게 포장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삼성병원은 이미 추가 감염자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35번 환자를 제때 공개하지 않고, 상황이 악화됐는데도 당국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분명한 직무유기이며 병원의 로비가 작용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은 “삼성서울병원장이 감염내과 전문의여서 병원 내에서 직원·의사·간호사·환자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악을 해서 관리할 것으로 생각을 했다”고 해명했다.

2◆공기 중 감염 가능성 배제 못해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이 6월 10일 삼성서울병원을 방문해 메르스 감염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메르스에 대한 보건 당국의 입장은 ‘공기 중 감염은 이뤄지지 않는다’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밀접접촉 기준을 ‘2m 이내에서 1시간 이상 접촉’으로 정했다. 메르스 환자의 입에서 나온 미세한 물방울인 비말에 섞여 가까이 있는 사람의 호흡기로 전염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런 논리도 100% 신뢰하기 어렵다. 이 논리대로라면 수백 평짜리 병원 응급실을 메르스 환자가 안방처럼 돌아다니며 모든 사람과 2m 이내에서 말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병원에서 감염된 메르스 확진자 중 2명은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일반 외래진료를 위해 방문해 감염자와 직접 접촉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이에 대해 보건당국은 화장실에서 접촉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의 청원경찰인 92번 메르스 확진 환자가 5월 26일 응급실을 찾은 6번 환자와 접촉한 시간은 응급실로 안내한 단 10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19번째 확진자인 평택 경찰관은 병원 안팎에서 메르스 환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아 지역 감염이 의심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정한 폐쇄된 장소 안에서는 공기 중 감염이 이뤄질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메르스 민간합동대책반이 평택성모병원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인 결과 에어컨 필터에서 바이러스 조각이 검출됐다. 최보율 한양대 교수(메르스 민간합동대책반 역학조사위원장)는 6월 5일 브리핑에서 “침 등의 비말이 오래 있으면 (병실 안에) 축적될 가능성이 높아 문을 열면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이집트의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는 “공기 중 감염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낙타 헛간 안의 공기 중에서 상당량의 메르스 바이러스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는 호흡기를 통한 공기 감염 가능성을 의미한다.

공기 중 감염 가능성은 ‘지역 간 감염 확산’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까지 보건 당국은 모든 메르스 환자가 ‘병원 내 감염’이란 입장을 고수해왔다. 중동지역 감염 경로를 참고한 입장일 뿐 인구밀도가 높은 국내 환경의 변수는 적용되지 않았다. 버스, 지하철, 다중이용시설 등 인구밀도가 높고 밀폐된 모든 장소의 환경은 병원과 비슷하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종합병원 전문의는 “운이 좋아서 지금까진 병원 안에서만 2, 3차 감염자가 발생했던 것이지 감염자가 완벽하게 통제됐기 때문이 아니다”라며 “감염자가 버스나 기차,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타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동안에도 접촉과 비말에 의한 감염 가능성은 충분히 높다”고 말했다.

3◆위기경보 격상 안했나, 못했나

6월 7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등은 4+4 회담을 갖고 “위기경보단계 격상을 적극 검토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여야가 한 목소리로 등급 상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위기경보 수준 격상에 부정적 입장이다. 왜일까? 6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행된 메르스 관련 긴급현안질의에서 밝힌 문형표 장관의 답변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문 장관은 “지역사회보단 의료기관 내 감염이 100%로 나와 있기 때문에 ‘경계’로 격상하지 않았다”며 “현재 ‘주의’ 단계이지만 실제 조치는 ‘경계’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계 단계로 올라가면 거기에 따른 국가 이미지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두 가지 실마리가 나온다. 실제 정부가 위기 등급을 격상할 경우 외국에서 한국에 대한 여행 자제령을 발동할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미국·일본·홍콩·러시아·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이미 한국에 대한 여행 자제령을 직·간접적으로 발령한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가 경계경보를 발령하면 대외적 이미지 악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이미지 등을 위해서는 단계를 선제적으로 올려 메르스 확산을 종결시키는 게 효과적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설득력 있다.

정부가 ‘경계’ 단계 격상에 난색을 표하는 두 번째 단서는 “실제 조치는 경계”라는 점이다. 한 야권 관계자는 “정부의 실정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초동 단계에서 메르스 사태를 진압했다고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문 장관의 말에서 그것을 알 수 있다. 문 장관은 ‘주의’ 단계지만 ‘경계’ 단계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다. 향후 기록에는 ‘주의’ 단계에서 메르스 사태를 방어한 게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등급 상향 조정 등은 정부의 대응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명목상으로나마 가장 낮은 등급인 주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정부가 등급 상향 조정 시기를 놓쳤기 때문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초기 대응에서 혼선을 빚으면서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현행 감염병 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따르면 감염병에 따른 위기 상황을 4단계인 관심(Blue)→주의(Yellow)→경계(Orange)→심각(Red)으로 구분한다. 주의 단계는 ▷해외 신종감염병의 국내 유입 ▷국내에서 신종·재출현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발령한다. 이 단계에는 질병관리본부 안에 꾸려진 중앙방역대책본부가 대응 실무를 총괄한다.

여야가 요구한 ‘경계’는 감염병이 타 지역으로 확산됐을 때 발령된다. 보건복지부와 국무총리(중앙안전관리위원회)를 중심으로 범정부 차원의 위기 대응체제가 가동된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중앙사고수습본부(본부장 보건복지부 장관)로 격상된다.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시작되는 것이다. 정부는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지난 5월 20일부터 6월 16일 현재까지 위기 경보 수준을 ‘주의’(Yellow) 단계로 발령해 유지하고 있다.

감염병 예방 책임기관인 질병관리본부의 미숙한 대응도 사태 확산의 한 요인이다. 한 야권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는 메르스 대응 훈련에서 현 단계 정도의 위기 수준에서는 위기를 주의 또는 그 이상인 심각단계로 격상했었다. 정부의 ‘메르스 대응훈련’을 보면 중동지역 여행을 다녀온 여행자가 메르스 의심환자로 발견될 경우 메르스 ‘주의’를 발령하고, 환자 가족과 의료진에 유사한 증상을 보이면 ‘경계’ 발령을 내도록 했다. 아울러 전국적 유행단계(5개 시도, 39명 환자 발생)에는 정부가 발령할 수 있는 최고 단계인 ‘심각’을 발령토록 했다. 하지만 실제 정부의 대응은 이와는 다르다. 훈련에서라면 ‘심각’ 단계가 이미 며칠 전에 발령됐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질병관리본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용역보고서 ‘신종 감염병 대유행 시 질병관리본부 비상인력 운영계획 연구’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 발생시 비상대응업무 숙지도 부분에서 질병관리본부 직원 297명 중 39%인 115명이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고, 14%인 43명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응답했다. 감염병을 관리해야 할 정부 핵심기관의 직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비상대응업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질병관리본부 직원 중 146명(49%)은 국내 신종 감염병 안전도가 낮다고 응답했다. 2명 중 1명은 우리나라가 안전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4◆사스는 잘 막았는데 이번엔 왜 실패했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건 전 총리가 2003년 7월 31일 국립보건원에서 열린 사스 방역 평가보고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메르스와 사스는 둘 다 호흡기질환을 일으키는 코로나(CoV) 바이러스의 일종이다. 외국에서 발생한 신종 감염병이란 점도 같다. 사스는 중국에서, 메르스는 중동에서 각각 처음 발생했다. 그러나 공통점은 여기까지다. 이후 정부의 대응과 결과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사스가 유행했던 200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가로 평가했다. 국내에서 확진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발 빠른 대응 때문이었다.

당시 정부 대응을 살펴보자. 2013년 2월 28일자 <중앙일보> 보도(고건의 공인 50년 13-사스 대책)에 따르면 2003년 2월 중국과 홍콩에서 폐렴과 비슷한 괴질이 돈다는 소문이 돌았다. 3월 17일 WHO는 이를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라고 이름 붙였다. 4월에는 사스 환자를 치료하던 홍콩 의사가 숨졌다. 고건 당시 국무총리는 4월 23일 관계부처 차관들을 소집했다. 이어 국립보건원(질병관리대책본부의 전신)에 사스방역대책본부를 가동했다. 국내에서 환자가 발생하기 전에 이뤄진 조치다. 고 총리는 25일 인천공항을 방문해 방역활동을 점검했다. 고 총리는 “복지부 주도의 대책본부로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대규모 방역은 한 부처의 힘만으로 안 된다. 상위부처인 국무조정실이 나서 국방부, 행정자치부 등 관련 부처를 총동원해야 했다”고 회고했다. 군 의료진이 공항 방역에 투입됐다.

28일에는 고 총리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고 총리는 담화문에서 “사스 의심환자는 10일간 강제 격리하겠다”며 “만약 여러분이 환자나 유사환자라면 여러분의 불찰이 사랑하는 가족을 바로 전염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 달라”고 당부했다. 병원협회, 의사협회, 감염관리학회 등 민간 의료단체 대표들을 초청해 자문을 구하고 민간 협력체계를 확인했다.

고 총리는 상황실에서 하루 두 번씩 보고를 받으며 방역 활동을 직접 챙겼다. 확진 환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중국·홍콩·싱가포르 등 주변국을 중심으로 세계에서 8천 명이 넘는 감염자가 발생했고 770여 명이 사망했지만 한국은 사스 청정국으로 주목 받았다. 사스 방역을 계기로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모델을 차용해 질병관리본부도 만들어졌다. 현재 메르스에 대응하는 질병관리본부 구성원은 대부분 당시 사스 방역의 일선에 나섰던 경험자들이다. 결국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은 컨트롤타워의 판단력과 의지로 모아진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관련 주요 관계자들의 인식은 낙제점이다. 가능한 한 상황을 축소하고 위험성을 과소평가하기에 급급했다. 국민의 건강보다 경제에 미칠 영향, 병원의 이미지 피해를 더 걱정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국내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날(5월 20일) 질병관리본부는 워크숍과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위기경보단계가 주의로 격상됐고 질병관리본부 내에 중앙방역대책본부가 가동된 날이었다. 본부장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치사율 40%’라는 위험성을 알면서도 행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변명치곤 너무 궁색했다.

질병본부 야유회 가고, 총리대행은 해외출장

확산 초기에 “사스보다 덜 위험하다”는 보건 당국의 입장은 거짓이었다. 질병관리본부는 메르스 환자 한 명이 0.69명(사스 2.2~3.7명)을 감염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7번째 환자가 발생한 5월 28일 양병국 질병관리본부장은 “2014년 사우디아라비아의 논문 중 병원 내 감염위험지수가 7(환자 한 명 당 7명에게 전파)로 보고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 장관은 첫 환자가 발생한 지 7일이 지나서 국회에 나가 처음 메르스에 대해 언급했다. 최경환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3일 만인 6월 2일에서야 긴급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었다. 전날(1일) 메르스 의심환자 중 첫 사망자가 발생한 뒤였다. 메르스 대응을 총괄 지휘하는 복지부 수장의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었다. 문 장관은 “메르스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 “감염경로가 의료기관 내에 국한되어 있어 관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WHO는 “최초 발생자가 들른 의료기관의 수를 볼 때 감염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최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회의를 마친 뒤 오후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각료이사회 참석을 위해 떠났다. 감염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당초 7일로 예정했던 귀국일을 하루 앞당겼다.

메르스 대응 미숙은 정책 결정권자들의 전문성 부족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공교롭게도 최 총리대행과 문 복지부 장관은 둘 다 경제전문가다. 최 총리대행은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다. 문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정팀장, 재정·복지정책연구부장, 수석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경제학박사다. 그의 전문 분야는 공공경제학과 사회보장보험 분야다. 메르스 사태 초기부터 경제 악영향과 대외 이미지 손실을 우려한 건 이런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 지식이 전혀 없는 장관과 총리대행의 조합이 결국 메르스 사태를 키운 주범”이라며 “컨트롤타워의 능력 부족이 얼마나 큰 참사를 불러오는 지 다시금 확인시켜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여전히 한 걸음씩 늦었다. 처음 메르스를 언급한 건 첫 환자가 발생한 지 열흘도 넘은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의) 전파력에 대한 판단과 접촉자 확인 등 초기 대응에 미합한 점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환자 수도 잘못 알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메르스 확진환자가 15명”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6시45분)에 발표한 확진자는 18명이었다. 청와대는 공식 유튜브 채널에 올린 해당 동영상에서 환자 수를 말한 대목을 삭제했다.

최 총리대행은 유언비어 유포에 대한 대응을 강조했다. SNS를 통해 메르스 확진 병원에 관한 정보와 정부에 대한 비판이 확산되던 시기여서 “메르스를 놔두고 국민과 싸우려 한다”는 비난이 제기됐다.

대한소아감염학회 회원인 한 대형병원 교수는 “감염병은 초기 소수의 환자를 집중 관리하면 확산을 거의 완벽하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통제 가능한 임계점을 넘는 순간 확산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져 손을 쓸 수 없게 돼버린다”며 “초기에 심각한 경계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방역 대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말했다. 너무나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인데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메르스 사태의 최대 미스터리다.

- 최재필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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