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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슈] ‘야권 블루칩’ 손학규의 정계 복귀조건 

내년 총선 후 ‘대선주자’로 돌아온다? 

측근·지인들 “정계은퇴 선언한 마당에 컴백은 없다” 선긋기… 4·29 재·보선 새정연 참패 후 야권 지지층에서 구애 뜨거워져

▎4·29 재·보선 패배 후 새정치민주연합이 표류하면서 손학규 상임고문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그의 사무실에는 좌우명인 수처작주(隨處作主, 가는 곳마다 주인이 돼라)라고 쓰인 액자가 늘 걸려 있다. / 사진·중앙포토
5월 17일 <리얼미터>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 특히 야권에 파장을 일으켰다. 손학규(67)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22.4%의 지지율을 얻어 박원순(59) 서울시장(20.5%), 문재인(62) 당대표(19.4%)를 제치고 호남권에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1위에 올랐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이미 정계를 은퇴한 사람이 1위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이변이었다. 손 전 고문 측은 “손 전 고문은 이미 은퇴한 사람이니 여론조사에서 이름을 빼달라”며 다시 한 번 정치와 선을 그었지만, 그가 여전히 정치적으로 ‘생물(生物)’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손 전 고문은 컴백할까? 돌아온다면 그 시기는 언제가 될까. 또 어떤 모습일까?

지난해 8월부터 전남 강진에서 칩거(蟄居)하던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4월 25일. 이날 오후 서울 정동과 강남에서 열린 강훈식 당 전략홍보본부 부본부장과 배상만 전 수행비서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손 전 고문은 자신과 가까운 이낙연 전남지사와 조우했다. 당내 손학규계(系)로 분류되는 신학용·조정식·김민기 의원, 김유정·전현희·전혜숙 전 의원도 만났다.

손 전 고문은 결혼식에 참석한 뒤 전 의원, 옛 참모, 지지자 등 50여 명과 ‘번개 막걸리 회동’도 가졌다. 손 전 고문은 자신의 근황에 대해 “나야 뭐 자연과 같이 살고 있다. 바깥 소식은 모른다. 꽃피는 계절이고 해서 꽃피는 것 보고 새순 돋는 것 보고…”라고 선문답을 하듯 답했다.

손 전 고문은 지난해 7·30 재·보선 때 ‘수원의 대구’라는 수원병에 출마했다가 김용남 새누리당 후보에게 석패했다. 이튿날 손 전 고문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곧바로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정치인은 들고 날 때가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생각”이라며 “저녁이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고 또 노력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 되겠다”며 강진행(行) 승용차에 올랐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손 전 고문이 2012년 민주통합당(현 새정연) 대선후보 경선 때 들고 나왔던 슬로건으로 유권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정계은퇴 선언 후 손 전 고문은 곧바로 강진 백련사 뒤편 토담집에서 칩거에 들어갔다. 이 토담집은 백련사 스님들이 수행할 때 이용하는 곳이다. 아궁이에 직접 불을 지펴야 난방이 가능하고 칠흑 같은 어둠과 친해지지 않으면 밤을 지새기 힘든 곳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이 10여 년간 살면서 목민심서를 저술한 다산초당과는 지척에 있다.

정계은퇴 선언 이후에도 야권 지지층, 특히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서 손 전 고문에 대한 구애가 뜨겁다. 새정연 의원들도 정치적 이벤트를 치르기 전 손 전 고문을 찾곤 한다. 지난 2월 당대표 경선 때는 문재인·박지원 의원이, 4월 원내대표 경선 때는 이종걸 의원이 손 전 고문의 토담집을 방문하려 했거나 실제로 방문했다. 정동영 전 상임고문도 탈당하기 전 강진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이 정치와는 확실하게 선을 그으면서 이들과의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손 전 고문이 자신의 고향인 시흥이 아닌 다산이 실학을 집대성한 강진의 토담집으로 간 것 자체를 정치적 행위로 해석한다. 보통 시민으로 돌아갈 거라면 굳이 연고도 없는 토담집에 들어가 인고의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기를 단언할 수 없을 뿐 그의 하산(下山)을 기정사실화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기관 ‘타임알앤씨’의 박해성 대표는 “야당이 확실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장외에 있는 손학규 전 고문에 대한 야권 지지층의 구애가 커지는 것 같다. 특히 비노 진영의 경우 친노 대항마 1순위로 손 전 고문을 꼽는다”며 “김상곤 위원장이 이끄는 혁신위원회가 혁신안을 만드는 과정이든, 혁신안을 만든 이후든 주류·비주류 간의 ‘힘겨루기 2라운드’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내 갈등이 커질수록 ‘손학규 복귀론’은 더 강하게 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2008년 제18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침몰 직전이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에게 530만 표차로 대패한 뒤 당은 존립마저 위태로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 초기 ‘뉴타운 광풍(狂風)’이 불면서 민주당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당시 선거대책본부에 몸담았던 한 인사의 말이다. “수도권에서는 거의 전패의 위기감마저 감돌았다. 전체 299석 가운데 잘해야 50~60석이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그나마 당시 손 대표가 전면에 나서 당을 이끌었던 덕분에 81석을 건질 수 있었다.”

고비 때마다 보인 ‘버리는 리더십’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패배가 확정된 직후 선거사무소에서 지지자들에게 감사인사를 하는 손학규 고문. / 사진·중앙포토
2011년 4·27 분당 보궐선거 때도 손 전 고문은 희생을 감수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에게는 ‘천당 아래 분당’으로 불리는 성남 분당을에 출마한 것이다. 당내 일부 중진은 손 전 고문을 견제하기 위해 은근히 출마를 종용했다. 그는 독배인 줄 알면서도 기꺼이 잔을 들었고,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를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당대표이던 2011년 연말에도 손 전 고문은 한 번 더 자신을 버렸다. 주위에서는 “결국 통합의 열매는 친노들의 차지가 될 것”이라는 만류를 뿌리치고 친노가 중심이 된 ‘혁신과 통합(당시 문재인 상임대표)’과의 야권통합을 이뤘다. 그는 중앙위원회의·지역위원장회의·당무위원회의·의원총회 등을 잇달아 가동하며 당의 지혜를 모았고, 마침내 통합을 완성했다.

당시 손 전 고문을 보좌했던 김경록 전 민주당 상근 부대변인은 “분당 보선 때도 그랬고, 2011년 말 야권통합 때도 그랬듯이 손 전 고문은 ‘버리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참모들에게도 늘 ‘눈앞의 이익보다 더 큰 것을 보라’고 강조하셨다”고 설명했다.

김 전 부대변인의 말처럼 최근 들어 호남을 중심으로 손 전 고문의 인기가 올라가는 원인을 ‘버리는 리더십’에서 찾는 이가 적지 않다. 모든 선거에서 ‘전략적’ 판단을 해온 호남의 경우 특히 ‘버리는 리더십’이 주효한다는 것이다.

박해성 대표는 “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대선 직전 동교동계로 불리는 가신(家臣)들의 임명직 공직 진출 포기 선언이 큰 힘이 됐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야권단일화라는 명분 아래 정몽준 후보와의 여론조사를 받아들였다. 이런 게 ‘버리는 리더십’이고 유권자들에게는 진정성으로 다가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원한 새정연 관계자는 “버리는 리더십이라는 것이 반드시 호남 유권자들에게만 어필되는 것은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많은 당원과 지지자들이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모든 걸 버리고 전장(戰場)에 출전한 장수와 퇴로(退路)를 마련하고 나온 장수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고 꼬집었다.

4·29 재·보선에서 0대 4 참패 이후 책임론에 휘말리며 비주류에 끌려가던 문재인 대표는 선거 보름 후인 5월 14일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하라”는 비노의 공세에 맞서 “공천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심(私心)”이라고 맞불을 놓은 것이다.

코너에 몰리던 문 대표가 갑자기 반격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한 친노 인사는 “비노의 한 축인 김한길 전 대표가 5월 11일 ‘친노 좌장이 될 것인지, 야권 대표주자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며 문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며 “전직 대표의 당권을 내놓으라는 도발이 문 대표를 자극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 다른 인사는 “더 밀리면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다.

불쏘시개일까, 대안일까

사실 4·29 재·보선의 공천 과정은 물론이고 선거 과정에서도 문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낙제점”이라는 극단적인 평가가 잇달았다. 선거 다음날 기자회견에서도 문 대표는 반성과 책임보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공격이 먼저였다. 문 대표가 비틀거리는 사이 비노계인 이종걸 의원이 원내대표에 선출되면서 당이 다시 한 번 요동쳤다.

잠잠하던 문 대표의 역공에 비노 측은 발끈했다. 분당(分黨)도 불사할 듯 강한 어조로 문 대표를 성토했다.

“친노 패권주의를 청산하랬더니 공천권 지분을 얘기하고 나서는 게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주승용 최고위원) “비노에게 무슨 기득권이 있느냐. 기득권은 문 대표와 친노에게 있다.”(박지원 의원) “나라면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그만둘 것이다.”(정대철 상임고문)

하지만 부글부글 속만 끓을 뿐 뾰족한 대책도, 구심점도 없다는 게 비노 진영의 고민이다. 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 전 고문에게 계속해서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비노 일각에서는 계파색이 옅은 손 전 고문을 다시 옹립해 친노와 비노 간의 균형추를 유지하면서 차기 총선과 대선에 임한다는 시나리오를 그렸다는 후문이다. ‘문재인 사퇴-손학규 대표 추대’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비노 측의 문 대표에 대한 파상공세가 당내 지분을 요구하는 ‘욕심’으로 비치면서 되레 역풍을 맞았다.

한정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새정연의 차기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잠룡들 간 시소현상은 계속될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문 대표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김상곤 위원장의 혁신위 활동 결과에 따라 다시 한 번 시소가 크게 요동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새정연의 한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만일 손 전 고문의 정계복귀가 이뤄진다면 그 시기는 내년 총선 이후일 것”이라고 못박았다. “올해 2월 2년 임기로 대표에 취임한 문 대표가 내년 총선을 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나. 지금처럼 몸을 낮추고 숨길수록 손 전 고문에 대한 구애는 더 뜨거워질 것이다.”

손 전 고문을 보필했던 한 정치인은 최근의 상황에 대해 쓴소리를 뱉었다. 당은 어려울 때면 늘 손 전 고문에게 손을 내밀다가 ‘정상화’가 되면 ‘한나라당 출신’ 운운하며 공격한다는 것이다. “친노든 비노든 다 마찬가지라고 본다. 손 전 고문을 불쏘시개나 마중물로만 쓰려 한다. 냉정히 따져보면 새정연은 손 전 고문에게 빚이 있다.”

2012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 손학규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컴백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구원투수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인사는 “손 전 고문은 우리 당에 들어와 2007년 대선, 2008년 총선, 2012년 대선, 그리고 당대표를 거치면서 충분히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며 “당 내분이 격화되면서 벌써부터 내년 총선에서 패배의 두려움이 커지자 손 전 고문에게 ‘구원투수’ 역할을 해달라는 것 아니냐”는 설명을 곁들였다.

현재 당의 간판급들 가운데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손 전 고문의 영향력이 비교우위에 있다는 게 중론이다. 시흥 출신인 손 전 고문은 경기지사를 지냈고, 2011년에는 야당 입장에서 가장 어렵다는 ‘분당대첩(大捷)’을 거두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손 전 고문의 복귀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도 있다. 현재 당은 문재인 대표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친노와는 대척점에 있는 ‘비노’ 안철수 의원도 다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 때도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했었다. 당 밖으로 눈을 돌리면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 장외 우량주들이 있다. 지금은 시·도정(市·道政)이 우선이지만 정치지형의 변화에 따라 이들의 역할론이 대두될 수도 있다.

손 전 고문의 한 측근은 “총선에서 새정연이 승리한다면 문재인 대세론이 더욱 공고해질 것이고 그럴 경우 손 전 고문이 돌아올 공간은 원천적으로 차단될 것”이라며 “반면 총선에서 패하고 그 이후 비노 진영에서 새로운 간판을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면 그때는 손 전 고문이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만일 손 전 고문이 돌아온다면 당으로서는 경륜과 안정감을 겸비한 대선주자를 얻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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