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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화제] 대망론 꿈틀대는 TK 정치 1번지 대구 수성갑 

내년 총선 당선자 대선행 예약한다? 

서상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김문수 전 경기지사 출마 저울질에 야권 스타 김부겸 응전 태세… 정작 지역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거물’의 귀향 반기지 않는 눈치

▎지난해 9월 민생탐방의 일환으로 대구 수성구 희망로에서 영업용 택시를 운전 중인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혁신위원장. / 사진·중앙포토
철두철미한 권력의 메카인 대구라지만 유독 수성갑 선거구는 내년 총선의 격전지로 분류된다.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 야당 후보로 출마해 40.3%의 지지율로 고배를 마신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최고위원이 수성갑에 재도전하기 때문이다. 지역의 만년 여당 새누리당이 누구를 후보로 내든 예측 불허의 승부가 예상되는 선거구가 바로 이곳이다.


▎지난해 6·4 대구시장 선거 당시 시민의 사진 촬영 요청에 응하는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그 옆이 배우로 활동하는 딸 윤세인(본명 김지수). / 사진·중앙포토
최근엔 김 전 최고위원의 대항마로 김문수 새누리당 보수 혁신특별위원장이 거론되고 있어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된다. 김 위원장이 아직 출마의 변을 공식 발표한 건 아니지만 정치권에서는 수성갑 출마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 경기지사 재선, 국회의원 3선 관록의 김 위원장이 원래 고향(경북 영천)인 TK(대구·경북)로 돌아온다는 의미까지 더해져 중앙 정치권이 더 난리다.

수성갑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대구 정치1번지로 부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구이자 한강 이남에서 교육 수준이 가장 높아 엘리트, 소위 화이트칼라들이 밀집한 곳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마음만 먹었다면 경기지사 3선도 가능했다는 게 현지의 분위기였고 보면 그의 대구행은 뭔가 다른 배경도 있다는 인상을 준다. 대구에서 야당이 의석을 가질 확률이 가장 높은 수성갑에 출마해 김부겸 전 최고위원을 제압하고 여당 텃밭의 균열을 막는다면 새누리당, 김 위원장이 윈-윈하는 구도다. 그럼에도 딱 부러지는 답은 내놓지 않는다.

“대구 수성갑 출마를 결정했느냐?”고 휴대전화로 연결된 김 위원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나?” 무슨 답이 이런가. 다시 물었다.

대구에서는 김 위원장이 수성갑에 출마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 수성갑 출마라고 기사를 써도 되겠습니까?

“주위 여러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고, 지역의 분위기도 봐야 하고, 지역 정치권에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고….”

날렵하고 뭔가 똑 부러질 것 같은 이미지의 김 위원장, 그의 입에서 두루뭉술한 답이 계속 흘러나왔다. 고민이 크다는 것인가, 아직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가 아니란 것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의 말과 달리 몸은 이미 대구에 붙어산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틈만 나면 대구를 찾고 있었다. 택시기사로 분장해 민심 탐방에 나서는 것은 그의 주특기다. 지인들도 몰래 툭 나타나 이런저런 봉사활동도 펼쳐왔다. 언론에 소개된 행보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신출귀몰했던 횟수가 훨씬 많다는 전언이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사태 속에서도 대구를 연일 찾았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이진훈 수성구청장을 만났고, 그 전에는 현역의 이한구 의원이 사퇴한 당협위원장 사무실도 찾아갔다. 공석이 된 새누리당 수성갑 당협위원장 공모에 응하겠다는 의지도 여러 곳에서 피력한 사실도 들통(?)났다.

특히 국회 의원회관에서 대구 지역 국회의원 12명을 일일이 찾아 독대한 행보도 확인됐다. 김무성 대표와도 출마 관련 이야기로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말만 희미할 뿐 행동은 명료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 인사는 “지난해 보수혁신특별위원장을 맡았을 때부터 대구 수성갑 출마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일각에선 대구 수성갑 공천을 못 박고 위원장직을 수락했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라고 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수성갑에 꽤 공들여왔다는 것이 된다.

대구의 한 의원은 김 위원장과의 독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감이 굉장합디다. 보좌진 말로는 수행하는 분도 없이 홀로 의원실에 불쑥 들어와서는 제가 있는가 찾았다네요. 보통은 측근이나 비서 등을 대동하고 폼을 내지요. 그런데 김 위원장은 그러지 않았어요. 방으로 모시니 대구 정치권 이야기, 수성갑이 중요한 이야기, 본인이 가진 비전과 정치 철학 등등을 확실하게 어필했습니다. 40여 분 동안 같이 있었나? 저는 주로 들었고 김 지사(위원장)는 말씀 하시고. 제 의견을 물었다기 보다는, 내가 나갈 테니 좀 밀어달라는 뉘앙스로 받아들였습니다.”

‘좀 밀어달라’ 대 ‘두 마리 사자 키울 수 있나’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구시 선관위가 투표 독려 차원에서 수성구 범어네거리 상공에 띄운 무인비행기. 이 일대가 수성갑 선거구다. / 사진·중앙포토
대구 정치권은 내년 ‘수성갑 대전’의 중요성엔 크게 공감하지만 해결사의 자질에 대해선 이견을 보인다. 김부겸 전 최고위원이 전남 순천·곡성의 이정현 의원처럼 지역주의를 깨고 당선되면 대구에 ‘김부겸 도미노 현상’이 일 것으로 본다. 새정연이 홍의락 의원(비례대표), 이용득 최고위원 등 당내 TK 출신들을 내년 총선에 대거 투입하리라 걱정한다. 그래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동구을에서 빼내 수성갑으로 재배치시켜야 한다느니, 같은 수성구가 지역구인 주호영 의원(수성을)을 묘수로 기용한다느니 하는 설익은 이야기가 회자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기록된 ‘8080(80% 투표율에 80% 득표율)’의 신화가 깨질 수 있다는 점, 텃밭의 균열은 제2의 자민련 바람을 몰고 와 대구민심에 내재된 야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이 무섭단다.

그래서 대구 정치권은 시시때때로 모여 각자가 발굴한 인재풀을 보고하거나 청취하고 당사자의 의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확인한 본 바로는 김 위원장이 거론된 바는 없다. 대구의 다른 의원은 이런 말을 들려줬다.

“우리로선 한 울타리에 두 마리 사자(유승민, 김문수)를 키울 순 없는 노릇입니다. 김 위원장이 그렇다고 최적의 카드도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스토리에서만큼은 김부겸에 뒤지지 않고도 그보다는 젊고 신선한 후보를 찾아야 합니다. 이한구 의원처럼 경제통도 좋고, 기업인 출신으로 결이 다르거나, 전혀 정치할 것 같지 않은 저명한 인사 등등 양질의 다수 후보를 리스트에 올려 놓고 성사 여부를 살필 것입니다. 요즘 이런저런 분이 거론되고 있는데 더 공을 들여 찾아봐야지요. 공통된 의견입니다.”

김 위원장을 바라보는 새누리당 지역 정치권의 시선이 따갑다는 말이다. 따가운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김 위원장의 ‘진정성’으로 귀결됐다. “왜 수성구갑인가”에 대한 명분에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만약 패할 경우 김 위원장이 입을 상처도 상처지만 새누리당으로서도 새 판을 짜야 할 만큼 충격적 내상을 입을 수 있다는 걱정도 컸다.

그를 향한 냉랭한 시선 중 하나는 “수성구갑이 대권행의 한 도구 아니냐”는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박철언, 김만제, 이한구 등 수성구갑 지역에 걸출한 정치인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역의 발전 보다는 본인의 정치적 행보에 마음이 쏠려 지역민의 상처가 큰 것도 사실”이라며 “이제는 굵은 정치인보다는 지역을 위할 줄 아는 의원을 뽑고 싶다는 분위기가 크다. 왜 돌고 돌아 김문수가 수성구갑에 왔는가 따져보니 ‘TK맹주’가 대권에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답이 나왔다”고 했다.

“수성갑이 대권의 디딤돌인가?”


▎2012년 대선 당시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에서 박근혜 후보의 유세를 기다리는 시민들. 대구지역 유권자들은 박 후보에게 80% 투표에 80% 지지를 몰아줬다. / 사진·중앙포토
김 위원장은 지난해 7월 치러진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의 거듭된 서울 동작을 출마 요청을 외면했다. 그 카드를 마다하고 수성갑으로 향한 것을 두고 ‘TK의 맹주’, ‘포스트 박근혜’로 들어와 차기 대선으로 직행하리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TK 정치권에 어떤 직접적인 기여를 한 게 없다. 갑자기 새누리당의 텃밭인 수성갑 공천장을 거머쥔다면 낙천한 이들의 반발도 예상된다는 게 지역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정치 쇄신, 공천 혁신을 주도하는 그가 자신은 정작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구를 달라니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극복해야 할 장애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행정을 아는 이들 사이에서 그는 ‘지방 발전을 저해한 장본인’쯤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경기지사 시절 지역균형 발전보다는 ‘큰 수도론’을 설파하면서 수도권 규제 완화를 주장했다.

경기지사 시절인 2006년 10월 10일 그는 지사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 “수도권 규제완화는 역사적 책무다. 현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약탈경제’와 같다. 서울과 인천과 경기가 뭉치는 대(大)수도론만이 모두가 살 길”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는 “수도권 규제 완화가 없는 국가균형발전정책에는 반대한다”고 했고, 2008년에는 “수도권 규제로 국내기업들이 외국으로 탈출하고 있고 경제가 어려워져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수도권 규제 완화는 지방의 공동화를 재촉해 지역경제의 숨통을 조인다고 믿는 TK에서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심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과거사 외에 잦은 구설도 짐이 된다. 공식 행사장에서의 ‘춘향전은 변 사또가 춘향이 따먹는 이야기’라는 발언은 여성 비하 논란을 일으켰고, “나 도지사요” 일화는 네티즌의 단골 유행어다. “도지사 김문숩니다”라는 자기소개를 알아듣지 못하고 장난전화로 오해를 한 소방대원이 전보 조치된 일도 있다.

김문수 위원장과 김부겸 전 최고위원은 경북고 동문이다. 김 위원장이 51회, 김 전 최고위원은 56회다. 총선에서 김 위원장이 진다면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다. 김 전 최고위원도 이기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지역정가에 여전히 막강한 파워를 행사하는 경북고 동문회에는 두 사람의 격돌은 불편한 현실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새누리당에 유리한 대구 총선이지만 두 사람의 힘겨루기 결과는 예측을 불허한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대체적 인식이다. 오래전 TK를 떠나 경기도 등 수도권에서 활동한 김 위원장이 수성갑 공천을 받는다면 낙하산 후보라는 비아냥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지역사회 밑바닥 민심을 오래전부터 파고든 김부겸 전 최고위원과는 대조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는 말이다. 또 김 위원장의 과거 노동운동 경력이 보수의 아성 대구의 정서와 얼마나 조화를 이룰 지도 의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부겸, 지난 지방선거 득표만으로도 승산 자신

또 김부겸 전 최고위원은 19대 총선 수성갑에서 40.4%의 득표율을 올렸다. 2014년 대구시장선거에서 수성갑에서는 50.1%의 득표율로 46.7%를 얻은 권영진 대구시장을 이겼다. 시장선거의 득표율만 유지해도 승산이 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정치적 비중에도 불구하고 “김문수가 과연 김부겸을 이기는 필승카드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김 전 최고위원도 몸을 낮춘 채 김 위원장의 행보를 예의주시한다. 김 위원장 출마설과 관련해 그는 “나는 그분이 왜 수성구갑을 고집하는지 연유를 전혀 모른다”면서 “지금 대구 민심이… 그건 유권자들이 선택할 몫이지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수성갑에서 잠룡 두 사람의 격돌이 예고되자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비례대표)도 수성갑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구도가 묘하게 돌아간다. 강 의원은 출마선언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을 싸잡아 ‘지역구를 대권 디딤돌로 삼을 사람’으로 공격했다. 김 위원장, 김 전 최고위원 모두 진정한 대구발전은 뒷전이고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불타는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이런 상황인지라 김 위원장도 공식 출마선언은 뒤로한 채 지역 여론 탐색에 공을 들인다. 김 위원장의 출현으로 대구지역 총선 분위기가 슬슬 달아오르는 모양새다.

- 서상현 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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