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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유럽을 휩쓰는 노타이·말총머리 지도자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젊고 자유분방한 정치 지도자들이 늙은 대륙 유럽에 변화와 혁신의 바람 불러… 그리스·스페인 등 남유럽에선 좌파, 프랑스·벨기에 등 서유럽에서는 우파 득세

▎유럽이 정치적 변화의 물결을 탄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본부 앞에 설치된 유로화 상징물. / 사진·중앙포토
#1. 5월 24일 치러진 폴란드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야당인 ‘법과 정의당(PiS)’의 안드레이 두다(43) 후보가 집권 여당인 시민강령의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62) 현 대통령을 제치고 승리했다. 오는 8월 취임할 두다 당선자는 폴란드가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난 1989년 이래 가장 젊은 나이로 대통령이 된다.

두다 당선자는 폴란드 남부 도시인 크라쿠프 출신으로 야젤론스키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2000년 초 진보 성향의 정당인 자유동맹에 가입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5년 총선에서 우파 성향인 PiS로 당적을 옮겼다. 2006년 PiS 정권이 출범하자 법무부 차관을 지내다 2010년 당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이 항공기 추락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비서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총선에서 고향인 크라쿠프 지역구에서 하원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돼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PiS 대변인을 맡기도 했고, 지난해부터는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폴란드에서 이름난 시인이자 문학비평가인 줄리안 코른하우서의 딸인 아가타 코른하우서와 결혼해 대학생인 딸을 두고 있다.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은 변화를 바라는 민심과 현 정부의 경제 실책 및 유로화 도입 반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국민들의 안보 불안 심리도 한몫했다. 특히 그는 20%를 웃도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는 젊은 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폴란드는 2004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지만 유로화 대신 자국 통화인 즐로티를 쓰고 있다. 코모로프스키 현 대통령은 유로화 도입을 주장했지만, 두다 당선자는 이에 강력히 반대했다. 반면 두다 당선자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폴란드와 러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의 폴란드 주둔을 강하게 요구했다. 폴란드는 냉전 시절 옛 소련이 지배하던 동구권에서 공산당의 일당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이 나라는 내각책임제로 총리가 국정을 총괄하지만,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외교·안보 정책에 의견을 개진하고 법률안 제출 및 거부권을 갖고 있다.

의원이 아닌데도 총리 오른 30대 지도자


▎1. 올해 초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시리자(급진 좌파연합)당 대표가 아테네 대학에서 지지자들에게 총선 압승에 대해 인사하고 있다. / 2. 말총머리에 수염을 기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스페인 포데모스당 대표는 연말의 치러질 총선에서 총리가 유력시된다. / 사진·중앙포토
#2. 이탈리아에서도 이미 역사상 최연소 총리가 배출됐다. 지난해 2월 22일 취임한 마테오 렌치 총리는 당시 39세였다. 1922년 39세로 총리에 오른 베니토 무솔리니와 비교해봐도 나이는 같지만 2개월이 어리다. 마테오 총리는 국제무대 경험은 물론 의원 경력도 없이 피렌체 시장에서 곧바로 중앙정치 무대에 진출했다. 피렌체에서 태어나 줄곧 피렌체에서 활동했고, 피렌체 법대 졸업 후 29세에 정치에 뛰어들었다. 시의회 의원과 의장을 거쳐 2009년 34세에 시장이 됐다. 청바지 차림에 경차를 모는 등 자유분방한 모습의 그는 시장 시절 텔레비전에 출연해 정치권의 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SNS로 젊은층과 대화하면서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이를 바탕으로 2013년 12월 중도 좌파이자 집권 여당인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후 그는 같은 당 소속인 엔리코 레타 총리(47)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레타 총리가 정치 개혁에 실패해 사상 최고 수준의 실업률을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해왔다. 그는 지난해 2월 13일 민주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총리 교체안을 표결에 부쳐 찬성 136표, 반대 14표로 통과시켰다. 그는 사임한 레타 총리 후임으로 정권을 잡았다. 의원내각제인 이탈리아에서 의원이 아닌데도 총리를 맡기는 렌치 총리가 세 번째였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자처하는 새로운 지도자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등 부패와 스캔들 및 정쟁을 일으켰던 정치 지도자들에게 넌덜머리를 냈던 이탈리아 국민들은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건 렌치 총리의 리더십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그의 중앙정치 경력 부재는 정치 혐오증이 만연해 있는 이탈리아에서 오히려 정치적 자산이 됐다.

경제정책 면에서는 좌파와 우파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3의 길’을 표방했던 블레어 전 영국 총리를 벤치마킹해 철도와 우정사업 등 국유자산 매각, 공공지출 삭감 등 중도 실용주의 정책을 제시, 시장에서도 우호적인 반응을 얻는다. 하지만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와 높은 실업률을 해소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제다.

폴란드와 이탈리아의 경우처럼 최근 들어 유럽 각국에서 40대의 젊은 정치 지도자가 대거 등장한다. 유럽 하면 흔히들 ‘늙은 대륙’이라고 말하지만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젊은 정치 지도자들이 선출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독일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20.5%에 달하며, 이탈리아(20.4%) 등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리스·스웨덴·포르투갈·오스트리아 등도 각각 17~18%의 고령자 구성비를 보이는 대표적인 늙은 국가들이다.

유럽 각국에서 젊은 정치 지도자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를 바라는 민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경제 위기와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남유럽 국가들에서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에 맞설 젊은 지도자들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과 그리스는 전체 실업률이 25% 안팎이지만 청년 실업률은 그 두 배를 넘는 50%대를 오르내린다. 남유럽 국가들을 보면 급진 좌파 정당들을 대부분 젊은 지도자들이 이끌고 있다. 이들은 기존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고 복지 정책의 축소도 거부하고 있다.

그리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1월 29일 실시된 그리스 총선에서 긴축정책 폐기를 주장하는 급진 좌파연합인 시리자당이 전체 의석 300석 가운데 149석을 얻어 집권 여당인 신민당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그리스에서 급진 좌파 정당이 총선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2010년 이후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에서는 정부의 긴축정책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자주 일어난다. / 사진·중앙포토
그리스 국민들이 긴축정책 폐기를 주장해온 시리자당을 선택한 것은 더 이상 고통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정 위기에 빠진 그리스는 2010년 이후 2450억 유로(297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는데, 그 대가로 국제채권단인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는 강력한 긴축정책 추진을 요구했다. 그리스 정부는 각종 복지정책과 공공서비스를 축소하고, 공공부문 인력 수만 명을 해고하는 등 긴축정책을 실시해야만 했다. 그 결과 재정적자가 상당히 줄긴했지만, 부작용이 뒤따라 실업률은 2010년 12.5%에서 지난해 10월 25.8%로 갑절로 뛰었고, 특히 청년 실업률은 2010년 32.2%에서 지난해 57.5%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당의 긴축정책 중단, 부채탕감 등을 내세운 공약이 그리스 국민에게 먹혀들었다.

시리자당의 대표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그리스 역사상 최연소 총리에 등극했다. 40세인 그는 강경 좌파다. 아테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고교 시절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학교 점거 농성을 주도하는 등 일찍이 좌파운동에 몸담았다. 국립 아테네기술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치프라스는 전국대학생연합 중앙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학생운동에 앞장서왔고 2000년 대학 졸업 후 한때 건축회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30세가 되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 아테네 시장에 도전해 득표율 10.5%로 3위를 기록해 정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2009년 시리자당의 전신인 ‘시나스피스모스(좌파연합)’ 대표로 선출돼 그리스 사상 최연소 정당 지도자가 됐다. 2012년 총선에서 시리자당을 제1 야당의 위치로 끌어올리면서 리더십을 과시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 솜씨와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인 치프라스는 고교 시절에 만난 좌파운동 동지인 컴퓨터 전문가 페리스테라 바치아나와 동거하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둘째 아들의 중간 이름을 쿠바혁명가 체 게바라의 본명인 에르네스토로 지었으며 아테네 프로축구팀 파나티나이코스의 열혈 팬이기도 하다.

치프라스의 트레이드마크는 넥타이를 매지 않는 것이다. 치프라스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을 때도 노타이 차림이었다. 그가 이런 패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것은 실용성과 탈 권위주의를 강조한 이미지를 극대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중산층 가정 출신으로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점에서 노동운동권 출신인 다른 좌파 지도자와 달리 부채 없는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의회에서 폭언을 서슴지 않는 독설가의 이미지도 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치프라스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표현한 바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치프라스가 실용적 개혁노선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처럼 될 수도 있고,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좌파 포퓰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치프라스는 1월 26일에 열린 총리 취임식에서도 파격적 모습을 보였다. 넥타이 없이 흰 셔츠에 감색 재킷 차림으로 나선 치프라스 총리는 전통적으로 그리스 정교 교리에 따라 거행해온 취임 선서를 “언제나 그리스 국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맹세로 대신한 것이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리스는 지난 5년 동안의 치욕과 고통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면서 “그리스를 파괴한 긴축 정책의 각서를 없애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라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취임 후 역대 총리가 참배해온 무명용사들의 묘를 대신해 레지스탕스 묘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긴축정책을 추진해온 스페인에서도 신생 급진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가 부상한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8년 대선 구호에서 따온 이름이다. 포데모스는 2011년 5월 15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긴축 조치와 빈부 격차에 항의하는 데서 시작한 ‘분노하라(Indignados) 시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지도자들이 뭉쳐서 지난해 1월 포데모스를 창당했다. 포데모스는 창당 4개월 만에 치러진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8%의 득표율로 5석을 확보하면서 스페인 정치권을 깜짝 놀라게 했다.


▎1. 지난 5월 폴란드 대통령 선거에서 최연소로 승리한 안드레이 두다 ‘법과 정의당’ 당선자가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2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왼쪽)가 드론업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DJI CEO 왕타오에게서 드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3. 정치인들의 부패와 스캔들에 실망한 이탈리아 국민들은 지난해 새 총리로 마테오 렌치 민주당 대표를 선택했다. / 사진·중앙포토
12월 집권을 예약한 스페인 신생 정당


▎지난해 5월 끝난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극우정당이 기존 양대 정당을 꺾고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프랑스 국민전선(FN)의 마리 르펜 당수가 출구조사 결과를 듣고 기뻐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시리자당과 마찬가지로 포데모스는 긴축 반대를 앞세우며 지지 기반을 넓히고 있다. 포데모스는 5월 24일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인 국민당과 제1 야당인 사회노동당을 제치고 주요 도시의 의회를 장악했다. 포데모스의 승리는 2008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 긴축정책으로 고통을 겪어온 국민들의 불만이 표로 분출됐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극심한 재정위기로 2012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으며, 혹독한 긴축과 구조조정 끝에 2013년 말 구제금융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지난해 실업률은 25%에 이르고, 젊은층 실업률은 56%를 넘어섰다. 유럽 언론들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오는 12월 총선에서 집권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포데모스를 이끌고 있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대표는 37세밖에 되지 않는 젊은 지도자다. 이글레시아스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는 뒤로 질끈 묶은 말총머리와 턱수염이다. 정장 양복을 입고 앞 뒷머리를 짧게 자른 ‘라 카스타’(엘리트)로 불리는 스페인 주류 정치권에 도전하겠다는 ‘반항’을 상징한다. 캐나다 출신 가수 레너드 코헨의 노래 ‘우리는 먼저 맨해튼을 친다. 다음에 (미국을 추종하는) 베를린을 접수한다’가 울려 퍼지는 그의 집회는 마치 록스타의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지지자 수천 명이 추운 날씨에도 집회장 밖에서 소리치며 열광할 정도다.

이글레시아스는 그리스 총선 당시 아테네를 찾아가 치프라스와 손을 잡고 유럽 좌파의 연대를 과시했다. 그는 이윤을 내는 기업의 노동자 해고 금지, 최저임금 인상, 부유세 신설, 기업 법인세 인상, 에너지 기업과 병원, 교육부문의 국유화 등의 공약을 내걸어 긴축과 생활고에 지친 스페인 국민의 마음을 파고든다. 포데모스는 당 재정의 절반은 대중 모금으로, 나머지 절반은 정기 후원으로 해결하고 있다. 모든 선거에 나서는 후보자들을 ‘아고라 보팅(Agora Voting)’이라는 온라인 플랫폼을 사용해 당원들이 직접 뽑고 있다.

이글레시아스는 1978년 역사학과 교수인 아버지와 스페인 노조연맹(CCOO)의 변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부모님이 19세기의 ‘스페인 사회주의의 아버지’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중학교 시절(14세)부터 스페인 공산당에서 청년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반(反)세계화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등 철저한 급진 좌파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2008년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국경이 사라진 시대의 집단행동’이라는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위스의 유럽대학원(EGS)에서 영화에 대한 정치적 분석 연구로 커뮤니케이션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콤플루텐세 대학의 정치학과 교수로 활동하며 2002년 이후 학술잡지에 3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TV토론 프로그램에서 해박한 지식과 달변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포데모스 창당과 함께 대표를 맡았고 현재는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스페인 정치권에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복지확대 공약 이행을 위한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해고 금지정책에 대해서는 스페인 기업들의 경쟁력이 하락하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버지와 정치적 결별을 선언한 마리 르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지난해 10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를 방문, 분리독립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져달라고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남유럽과는 달리 서유럽의 경우 중도 우파 또는 극우 정당들에서 젊은 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서유럽의 젊은 지도자들은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긴축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유럽 통합과 이민 정책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을 이끌고 있는 마린 르펜(46) 대표를 들 수 있다. 국민전선은 3월 22일 지방선거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우파인 대중운동연합(최근 공화당으로 당명을 개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대중운동연합은 29.4%를, 국민전선은 25.2%를 각각 득표했으며, 실업률과 경기 침체로 민심을 잃은 집권여당인 중도 좌파 정당인 사회당은 21.9%를 차지하면서 3위를 기록했다. 4108명의 도의원을 뽑는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은 2명에 불과하던 도의원 수를 62명으로 크게 늘리면서 전국적인 기반을 확보했다. 국민전선은 지난해 3월과 5월 지방선거와 유럽의회 선거 등에서 잇달아 선전하면서 제2 정당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反)유럽연합(EU)과 유로화 탈퇴, 반(反)이민 정책을 내건 국민전선은 앞으로 프랑스 정치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다.

국민전선은 지난 1972년 골수 극우민족주의자인 장 마리 르펜이 창당한 이후 지금까지 프랑스 정치판에서 제대로 정당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국민전선은 식민시대 프랑스의 옛 영광을 되새김질하는 극우민족주의자, 외국인 혐오를 부추겨온 인종차별주의자, 파시스트 등 이른바 ‘수구 꼴통들’이 모인 집합체라는 말을 들어왔다. 2011년 아버지에 이어 당 대표가 된 마린 르펜은 극우, 과격 이미지 세탁에 나섰다. 이민·이슬람·동성애 등 민감한 사회 이슈와 관련해 극단적인 태도와 발언을 삼갔으며, 무엇보다 당을 젊게 가꿨다. 세련되고 말쑥한 이미지의 20~30대를 당 간부에 대거 발탁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전선 후보자의 15%가 30세 이하다.

오는 2017년 대권을 노리고 있는 르펜 대표는 지난 4월 아버지와도 정치적으로 결별을 선언했다. 아버지 르펜 전 대표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은 제2차 세계대전 역사의 수많은 소소한 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는 등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아왔다. 르펜 대표는 그동안 아버지의 그림자를 지우려고 애써왔다. 아버지의 극단적 발언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르펜 대표는 기초·광역 시의원을 거쳐 지난 2004년 유럽의회 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력을 쌓아왔으며, 지난 2007년 아버지의 대선 도전 때는 당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번의 이혼 경력에 3명의 자녀를 둔 금발의 르펜 대표는 ‘부드러운 극우파’라는 말을 들어왔다.

벨기에에선 지난해 38세의 젊은 총리가 등장해 유럽은 물론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린다. 화제의 주인공은 샤를 미셸 총리다. 벨기에가 1839년 독립한 이후 총리들 중 사상 최연소인 미셀 총리는 현재 유럽 각국의 최고 정치도자 가운데서도 가장 젊다. 미셸 총리는 지난해 10월 출범한 중도 우파 연립정부를 이끌고 있다. 연정은 네덜란드어권 정당 3곳, 프랑스어권 정당 1곳으로 구성됐지만, 총리는 프랑스어권인 자유당(MR)의 당수인 미셸이 맡았다. 벨기에는 언어권별로 의석이 배분되는 구조에 따라 적게는 4~5개, 많게는 6~7개의 정당이 연정을 구성할 수밖에 없어 총선 후 매번 정부 출범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2010년 총선에서도 네덜란드어권인 플랑드르 지역의 분리를 주장하는 정당인 ‘새 플레미시연대(N-VA)’가 28%의 득표로 최다 의석을 차지한 바 있으나 벨기에의 분열을 우려한 주요 정당들이 연정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연정 구성에 실패한 바 있다. 당시 18개월간 연정이 구성되지 않아 사상 최장기 무정부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5월 총선에서도 주요 정당들 간의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지체되면서 5개월간 정부가 출범하지 못했다. 미셸 총리는 루이 미셸 전 외교장관의 아들로 16세 때 정당 활동을 시작했으며, 2년 뒤에는 지방의원으로 선출됐다. 25세에 지방 정부 장관이 됐는데, 벨기에 역사상 최연소 장관이었다. 30세에 자유당 대변인, 32세에 개발협력 장관, 35세에 당대표에 올랐다. 미셸 총리는 취임 이후 유럽연합(EU)의 재정적자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연금 지급연령 상향 조정, 임금 동결 등의 강력한 긴축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벨기에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마르크 뤼터 총리도 47세밖에 되지 않은 젊은 정치 지도자다. 뤼터 총리는 43세이던 2010년 총리에 올랐다. 뤼터 총리는 2012년 9월 의회에서 긴축예산에 대한 협상이 결렬되자 신임을 묻기 위해 과감하게 베아트릭스 여왕에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했다. 그 결과 뤼터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이자 중도 우파인 자유민주당이 승리했다. 정권을 다시 잡은 뤼터 총리는 긴축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특히 뤼터 총리는 연금 개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금 개혁의 핵심적인 내용은 연금 수령시기를 2024년부터 65세에서 67세로 늦추고 매년 가입자가 내는 연금보험료를 낮추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들 중 연금 제도가 가장 잘 갖추어진 국가로 평가돼왔다. 그런데도 연금 개혁에 나서는 것은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과거 제도를 유지할 경우 연금 고갈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역대 최연소 영국 총리의 연임 뚝심

뤼터 총리는 또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실업률이 낮은 편이지만 시간제를 늘리는 등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나선다. 1967년생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태어난 뤼터 총리는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소비재 기업인 유니레버와 유니레버 계열사 등에서 10여 년 동안 일했다. 2002년 얀 페터르 발케넨더 총리 밑에서 사회고용부 차관으로 정치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지난 2003년 총선에서 의원으로 당선된 후 2006년에는 자유민주당 당대표까지 올랐다. 당시 나이 불과 39세였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나이(49세)는 젊지만 풍부한 정치 경험을 쌓아온 것으로 유명하다. 캐머런 총리는 5월 7일 실시된 총선에서 집권 여당인 보수당이 하원 전체 의석 650석 중에서 331석을 차지해 승리하면서 재집권에 성공했다. 제1 야당인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99석 뒤지는 232석을 얻어 패배했다. 1987년 이후 최악의 총선 참패를 기록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2010년에 이어 총리직을 연임하게 됐다. 당시 44세의 나이로 영국 역사상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됐던 캐머런은 이번 총선에서는 여유롭게 승리했다. 부유한 주식 중개인의 아들로 태어난 캐머런은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를 거친 전형적인 영국 엘리트 출신이다. 영국 국왕 윌리엄 4세의 직계 후손이며,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는 먼 친척이기도 한 캐머런은 1988년부터 1992년까지 보수당 정책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정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존 메이저 전 총리의 비서관으로 경력을 쌓았으며, 1994년부터 7년 동안은 미디어기업 칼튼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일했다. 2001년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의회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캐머런은 예비내각 교육부 장관, 하원 부의장, 부당수 등을 거치면서 승승장구해왔다. 2005년에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총선에서 패배하자 보수당 개혁과 집권을 내걸고 당수로 선출됐다.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였다.

보수당이 예상을 깨고 완승을 거둔 이유는 무엇보다 캐머런 총리가 오는 2017년까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기 때문이다. 또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가능성을 우려하는 잉글랜드 지역의 민심도 대거 보수당으로 쏠렸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 혜택을 줄일 것이라는 공약 역시 반(反)이민정책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게다가 증세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지난 5년간의 경제성과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는 분석이다.

유럽 각국에서 좌파와 우파 상관없이 40대 정치지도자가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은 실업률 급등과 같은 경제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문에 유럽 정치 지형의 변화를 볼 때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위기 상황에서 유권자들에게 신뢰와 새로운 비전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유럽 각국에서 불고 있는 젊은 지도자들의 돌풍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주목된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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