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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기획] 장수(長壽) 스포츠 감독의 리더십에서 배운다 

소통방식은 달라도 팀워크 쌓는 능력은 ‘닮은 꼴’ 

이창호 뉴스1 스포츠국장·스포츠평론가
한 팀에서만 10~20년 지휘봉 잡은 김응용(18년), 신치용(20년), 최강희(10년), 유재학(11년) 감독의 공통분모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열하게 승부하며, 선수의 능력을 소중히 여긴다”

▎김응용은 한국 프로스포츠를 대표하는 장수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해태·삼성·한화 세 팀에서 24년 동안 몸담으며 2935경기에서 1567승 1300패 70무를 기록했다. 10회 우승과 1567승은 야구뿐 아니라 전 종목을 통틀어서도 최고기록이다.
4월 20일 서울 강남의 한 음식점에서는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해태 V9’을 함께 한 제자들이 스승의 생신을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한대화·선동열·이강철 등이 눈에 띄었다.

프런트 직원으로서 ‘해태 왕조’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탠 이상국 전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도 함께한 자리였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김응용 전 감독은 “고민할 일이 없으니 마음이 편하다”며 제자들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배구계의 김응용’으로 통하는 신치용 전 삼성화재 감독은 5월 18일 지휘봉을 놓고 배구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로써 신 부사장은 김응용이 2004시즌을 끝으로 현장에서 물러난 뒤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영전한 것과 비슷한 길을 가게 됐다. 1995년 창단 때부터 감독직을 맡아온 신 부사장은 1997년부터 2014~15시즌까지 19시즌 연속 팀을 챔프전에 진출시켰고, 이 가운데 16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16번 우승 가운데에는 8연패(連覇)와 7연패도 한 차례씩 포함돼 있다.

김응용(74)·신치용(60)·최강희(56)·유재학(52). 한국 4대 프로 스포츠의 장수 감독으로 꼽힌다. 한 팀에서 10년 이상 지휘봉을 잡고서 팀의 역사를 만들었다.

‘장수와 성적’, ‘부와 명예’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들 감독에겐 그들만의 특별한 리더십이 있다. 소통하는 방법은 달라도 조직의 힘을 극대화하는 능력은 한결같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치열하게 승부한다.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훈련을 믿고, 사람을 중시한다.

1. 프로야구 김응용 - 성동격서의 달인, 스타선수 주무르는 용장(勇將)

1982년 가장 먼저 출범한 프로야구는 ‘해태 V9’을 완성한 김응용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1983년부터 2000년까지 18년 동안 해태 감독으로 재임한 것을 포함해 삼성 4년, 한화 2년까지 총 24시즌 동안 ‘고독한 승부사’로서 그라운드를 지켰다. 통산 1567승을 올렸고, 10번이나 챔피언에 등극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김응용은 떠났다. ‘야인(野人)’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사에 영원히 남을 족적을 남겼다. ‘해태 왕조의 신화’를 만든 ‘명장’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V9을 일궈내는 동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는 금자탑도 쌓았다.

프로야구 최장수 감독과 삼성 라이온즈의 사장까지 역임했으니 ‘행복한 야구인’이다. 승부의 세계를 떠나 올해 75번째 생일을 맞은 ‘보통 노인’으로 지내고 있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김응용 감독 특유의 카리스마를 리더십의 첫째 덕목으로 꼽았다. 김응용 감독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조직을 장악한다. 김봉연·김준환·김일권·김성한·선동열·이순철·장채근·김정수·조계현·이강철 등 그가 거느린 해태의 주축 선수는 하나같이 개성이 강했다. 스타의식은 물론 자신만의 야구에 대한 자부심·근성·욕심이 남달랐다.

이순철 위원은 “해태 선수들은 우승과 개인 타이틀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선후배고, 동료지만 개인적인 명예를 얻는 과정에서도 지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고 회상한다. 자칫 팀 워크가 깨질 수 있고 개인 성적 경쟁으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들을 장악한 ‘용장(勇將)’이 바로 김응용이다.

해태는 경기 전 훈련을 각 분야별 코치가 이끌었다. 감독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사람은 결국 선수다. 코치는 기량 향상을 지도하고, 감독은 모든 것을 관리하면 된다는 김응용의 지론 때문이다. 선수 스스로 알아서 할 때 최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 위원은 “김응용 감독은 야구는 야구일 뿐이라고 늘 이야기하는 분이었다. ‘자율 야구’니 ‘관리 야구’하는 것을 입에 올리지도 않고 관심도 없었다. 이기면 되고, 우승하면 됐지 이것저것 이름 붙이는 것조차 시큰둥했다”고 했다.

선수·코치·감독에게 각자 역할이 있다

해태는 일찌감치 ‘김응용식 자율 야구’로 정상에 올랐고, 정상을 지켰다고 뒤돌아본다. 김응용은 경기를 엉망으로 하거나,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말보다 행동으로 선수들을 다잡는다. 경기 도중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리는가 하면,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더그아웃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흐른다. 베테랑부터 새내기까지 모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버린다.

‘코끼리’라는 별명처럼 태산만한 덩치의 감독이 말도 없이 격한 행동을 하면 흩어졌던 기운이 순식간에 하나로 다시 뭉치기 마련이다. 김응용은 무서운 조직 장악력을 지녔다.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능하다. 하나로 모두를 휘어잡는다. 베테랑이든, 스타든 가리지 않고 한 명을 타깃으로 삼아 모두에게 감독의 뜻을 전한다.

때론 외부 힘을 이용해 내부를 단속하기도 한다. 심판까지 동원하는 술수도 쓴다. 다분하게 의도된 어필이나 퇴장으로 선수단 분위기와 전체 흐름까지 바꿔놓는다. 기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담당 기자들을 통해 선수단 분위기를 파악하고, 기사를 이용해 모든 선수에게 강한 메시지를 남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김응용은 구슬을 꿰는 특유의 노하우로 ‘해태 왕조’를 만들 수 있었다.

해태에서만 18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경영과 관리의 분리를 철저히 유지한 덕분이다. 해태는 김응용에게 선수단 운영의 전권을 줬고, 김응용은 구단 경영에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 동반자로서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다.

김응용은 이제 “오래 사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용히 고향 땅인 평안남도 평원에 묻힐 수 있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평범한 노인이다.

2. 프로배구 신치용 - 생활의 기본, 훈련의 기본 강조하는 맹장(猛將)


▎김성근 한화 감독이 ‘야신(야구의 신)’이라면 신치용 삼성화재 전 감독은 ‘배신(배구의 신)’이다.
프로배구 신치용 삼성화재 전 감독은 ‘살아 있는 신화’다. 경쟁자를 배구가 아닌 야구의 김응용으로 삼았다. 한 팀에서 더 오래 있는 지도자로 남겠다는 각오로 20년 동안 삼성화재를 지휘하고 있다. 이사대우를 받는 감독이 됐다. 1995년 이후 V리그 9회 우승을 일궈냈다. 2014~15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통산 6번째 통합 챔프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신치용의 지도력에 흠집이 난 건 아니다.

삼성화재 배구단의 훈련장 한쪽 벽엔 ‘헌신’, ‘열정’, ‘결속’이란 문구가 걸려 있다. 3개의 단어 속에 삼성화재가 추구하는 최고가 되기 위한 조건이 담겼다. 신 전 감독은 배구단 사무실에 ‘전승불복(戰勝不復)’, ‘신한불란(信汗不亂)’, ‘겸병필승(謙兵必勝)’이란 사자성어를 붙여놓았다.

준비 없이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감독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다. 전쟁의 승리는 반복되지 않는다. 다시 준비해야 다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땀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는다. 훈련만이 살 길이다. 겸손한 병사는 반드시 승리한다. 승리에 도취하거나 자만하면 다음 전쟁에선 패배의 아픔이 불가피하다.

신치용은 “선수의 잘못은 나의 문제로 끝나지만 지휘자가 잘못하면 전체가 죽고, 팀이 무너진다”고 말한다. 그는 또 “감독은 훈련을 통해 모든 것을 만들고, 선수들은 실점에서 승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치용은 평소 말수가 적다. 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하지만 집요하고, 끈질긴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 배구인들의 평가다. 자기를 잘 드러내지 않지만 지독하게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헌신”이라고 당당하게 밝힌다.

조직관리의 원칙은 기본기의 반복적인 강조다. ‘지옥 훈련’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팀워크는 괜찮다. 신치용은 “술 한잔하거나 함께 노래 부르면서 팀워크를 만들 수 있지만 그런 팀워크는 오래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이 없다”고 평가한다.

프로팀의 팀워크는 강도 높은 훈련 과정에서 고생하면서 만들어져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고생을 시키더라도 진정으로 ‘감독이 선수들을 아끼고 팀을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게 하면 된다는 것이다.

훈련장에선 ‘저승사자’, 코트에선 ‘부처님’

‘신치용식 조직 관리법’엔 세 가지 기본이 있다. 생각의 기본, 생활의 기본, 훈련의 기본이 바로 그것이다. 생각의 기본은 프로다운 사고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정도면 되겠다. 아니다. 연봉이 이 정도인데 더 해야 연봉을 더 받을 수 있다. 프로는 자신과 팀, 팬들에게 책임감을 지녀야 하고 스스로의 가치 창출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팀의 가치까지 높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기본은 규칙적이고 절제된 행동의 규범이다. 삼성화재 선수들은 오전 6시 30분에 하루를 시작한다. 가장 먼저 몸무게를 잰다. 감독이 선수들의 컨디션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자료다. ‘10분 전 문화’가 몸에 배도록 독려한다. 준비되지 않은 이는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다. 프라이드치킨·피자·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은 절대금지다. 대신 삶은 달걀이나 고구마 등 자연식을 먹인다.

밤 10시 30분이면 모든 휴대전화도 반납이다. 밤 11시면 불을 끈다. 무조건 잔다. 입단 후 3년 동안 승용차도 구입 금지다. 결혼하면 허가한다는 단서조항은 있다. 지독하게 철저히 관리한다. 아마는 80%, 자율은 최대 90%를 넘지 못하는 만큼 진정한 프로로서 120%까지 훈련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훈련의 기본은 승리를 위한 마지막 준비 과정이다. 신치용은 휴식을 강조한다. 좋은 훈련은 좋은 휴식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친다. 엉망진창으로 쉬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휴식도 훈련의 연장선이다. 우승보다 중요한 선수와 팀의 자존심을 지키려면 훈련밖에 없다. 결과보다 훈련을 통해 준비한 배구를 제대로 하는 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신치용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훈련장에선 ‘저승사자의 탈’을 쓰고 있지만 코트에선 ‘부처의 탈’로 바꾼다. 훈련을 통해 준비했으니 실전에선 몇 마디만 하면 된다. 조금 강하게 지적하는 것이 “야, 너 뭐해”라고 말하는 정도다.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배구도 사람이 하는 단체운동이다. 팀워크가 가장 좋은 전술이고, 팀워크를 만들기 위해서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사람 관계도 중요하다. 선수와 선수, 선수와 코치, 구단과의 관계 등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 강한 팀워크로 나타난다. 원칙과 기본을 지키면서 팀을 이끌고, 최고의 성적을 만든 것이 신치용 감독의 장수 비결이자 리더십의 밑바탕이다.

3. 프로축구 최강희 - 믿음의 리더십 내세운 코트 위의 덕장(德將)


▎서글서글한 인상의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은 ‘봉동 이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홈경기 후 팬들에게 인사하는 최강희 감독.
‘닥공 축구’를 트레이드마크로 만든 최강희 감독은 2005년부터 전북 현대축구단을 이끈다. 10년째다.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국가대표를 맡느라 잠시 팀을 떠나 있었지만 최강희의 리더십은 지난해 K리그 클래식 우승으로 다시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최강희와 이동국은 ‘찰떡 궁합’이다. 이젠 둘을 떼놓고 전북 현대를 이야기할 수 없는 사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최강희는 2009년 성남 일화에서 이동국을 데려올 때 “시체가 왔다”며 자극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엉망이었던 탓이다.

잔소리를 많이 했다. 동계 훈련 중에 골문 앞 일대일 찬스에서 골을 넣지 못할 정도였다. 코치들에게 “앞으로 동국이에게 절대 골 이야기를 하지 마라”고 지시했다. 이동국에겐 “앞으로 20경기 동안 골을 넣지 못해도 널 빼지 않을 테니 부담 갖지 말고 뛰어라”라고 했다.

이동국에게 최강희는 영원한 은사다. “감독님을 향한 믿음은 변함없다. 감독님도 비슷한 감정으로 나를 대하실 것”이라며 “앞으로도 감독님을 믿고 의지할 것”이라 말한다. 또 “부하 직원들이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사, 부하 직원들이 이 상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고민할 수 있는 상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우리 선수들에게 그런 존재”라며 존경심을 나타낸다.

최강희는 베테랑을 잘 활용한다. 노장을 대하는 방법이 특별하다. 나이가 들었다 싶은 선수들에게 오히려 무관심하다. 그저 믿고 있다는 신뢰만 보내고,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전북 현대에서 은퇴한 최은성 GK 코치는 “최강희 감독님은 ‘밀당’을 잘하신다. 노장들이 알아서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분위기를 만들어주신다. 티 안 내고 챙겨주시기도 한다. 힘든 체력 훈련 때는 고참들만 빼줬다”고 말한다. 경험 있는 선수들에 배려가 남다르다.

최강희는 “노장선수들은 은퇴라는 단어 자체에도 괴로워한다. 나이 먹어가면서 은퇴 시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는데 주위에서 계속 은퇴를 운운하면 가슴에 멍이 들기 마련”이라며 “물어보는 사람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다르다. 언제 은퇴할 것이냐고 묻는 자체가 잔인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강희는 선수단 장악력과 뛰어난 전술 이해력을 지닌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퇴물’로 여기는 선수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눈을 지녔다.

전북 현대에는 이동국 같은 베테랑뿐 아니라 ‘젊은 피’도 쑥쑥 자라고 있다. 2014년 새내기로 팀에 합류한 이재성과 이주용이 대표적이다. ‘신인들의 무덤’이라던 전북 현대의 오명을 씻어냈다. 필요한 선수에겐 충분한 기회를 주며 기다린다.

국가대표로 선발돼 2015 아시안컵에서 활약한 한교원 역시 최강희의 믿음에 보답한 ‘젊은 선수’다. 전북 현대가 K리그 클래식의 강팀으로 존재하는 이유다.

최강희는 2002 아시안게임과 2004년 국가대표 코치를 거쳐 2005년 전북 현대의 지휘봉을 잡고 2006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랐다. ‘강희대제’란 별명을 얻었다. 2009년에는 전북 현대에게 창단 후 첫 우승컵을 안겼다. ‘최강희표 닥치고 공격’으로 K리그 최고의 팀이 됐다.

최강희는 ‘홈에서는 무조건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자 철학이다. 3경기에서 3무를 하는 것보다 2승 1패를 하는 것이 프로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특히 안방에서는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닥공’을 지시한다. 팬심에 보답하는 최강희의 마음이다. 2011년에도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엔 팬들이 ‘봉동 이장’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전북 현대 축구단의 숙소와 훈련장이 있는 곳이 바로 ‘봉동’이고, 최강희도 2005년부터 주민이 됐기 때문이다.

최강희는 스스로의 리더십에 대해 “‘선수들이 지도자로부터 믿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화를 내면 당장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때론 둘만의 대화도 나눈다. 그것도 껄끄러워하면 편지를 쓴다. 문자메시지를 이용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신개념 봉동 이장’이다.

4. 프로농구 유재학 - 낡은 관습은 쓰레기통에, 지장(智將)


▎KBL 통산 첫 500승 고지에 오른 유재학 감독. 그는 천부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부상 때문에 20대 후반 유니폼을 벗었지만 지도자로 더 큰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의 유재학 감독은 ‘만수’다. 만 가지 수로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위상을 쌓았다. 2014~15시즌 통합 우승까지 프로농구연맹(KBL) 사상 최초로 리그 통합 3연패와 6번째 우승을 달성하면서 명문구단으로 올려놓았다. 온전히 유재학의 작품이다.

1998년 인천 대우 제우스(현 전자랜드)의 감독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모비스에서의 11시즌을 포함해 17시즌째 지휘봉을 잡고 있다. 코치 시절까지 더하면 프로 원년부터 19시즌 동안 코트를 지키고 있다. KBL의 산 증인이자 역사다.

‘연구·준비·타파·사명감’이 유재학과 함께 떠오르는 키워드다. 유재학은 특별한 취미도 없다. 비시즌 때 가끔 골프를 치거나 아주 친한 이들과 가볍게 술을 마시는 정도다. 나머지 시간은 온통 ‘농구 생각’뿐이다. 틈나는 대로 연구하고, 고민한다.

그래서 ‘만수’라는 별명이 붙었다. 평소 머릿속에 그려놓은 만 가지 생각 중에서 지금 필요한 것, 다음에 필요한 것을 꺼내 전술과 전략으로 옮긴다. 반복 훈련을 통해 선수들의 몸에 배어 들게 하고, 시즌 때 자율에 맡기면서 전술 이해력과 활용 능력을 극대화한다.

유재학은 “그냥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 몇 가지 전술이 있는데, 계속 고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온다. 그것을 코트에서 해보면 어떨까 하고 준비시키고, 풀다 보면 전술이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말은 쉽게 하지만 지독한 공부의 결과다.

다음은 철두철미한 준비다. 많은 훈련량을 의미하지 않는다. 양보다 질이다. 시즌 중엔 하루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강도는 매우 세다. 밤에 알아서 자율훈련을 한다. 비시즌에 준비한 패턴이 충분하고, 선수들이 능수능란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준비했기 때문이다. 시즌 중에 훈련을 길게 할 이유가 없다.

전술 포인트 몇 가지만 짚어주면 끝이다. 나머지 슈팅과 체력 훈련은 선수의 몫이다. 이런 지도방식은 1993년 모교인 연세대 코치부터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체득한 유재학만의 관리법이다.

2012~13시즌에는 SK가 애런 헤인즈를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모비스는 문태영과 함지훈의 공존 문제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선이 겹친다고 말이 많았다. 유재학 감독은 비시즌에 준비한 기본 틀을 수정·보완하면서 문제를 풀었다. SK와의 챔프전에서 4전 전승으로 챔피언에 올랐다. 문제가 있다고 급격한 변화를 선택하지 않는 신중함의 결과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팀도 마찬가지다. 유재학은 원칙으로 단점을 극복한다. 기본적으로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패턴을 준비하고, 활용도를 높인다. 선수들의 약점을 감출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놓고, 선수들에게 철저하게 약속된 플레이를 통해 움직이도록 한다. 끈끈한 수비와 조직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다.

선수들의 장악력도 뛰어나다.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개성 강한 외국인선수도 녹아들도록 만든다. 통합 3연패의 밑거름이 된 혼혈선수 문태영과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대표적이다. 지시를 어기거나, 항명하는 기미를 보이면 바로 내치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문태영의 적응은 이런 과정을 거친 산물이다.

유재학에겐 편견이 없다. 학연·지연·혈연이란 낡은 관습을 일찌감치 휴지통에 던져 버렸다. 프로감독으로서 승리를 위해, 팬을 위해, 조직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실천한다.

유재학은 신세기 빅스의 사령탑 시절 임근배 코치와 인연을 맺었다. 돈독한 친분이 있거나 같은 학교, 같은 팀에서 함께 뛴 적도 없었다. 그러나 ‘러브콜’을 보냈다. 그 뒤 둘은 10년 동안 동고동락했다. 임근배 코치는 모비스 신화를 만드는 데 주춧돌을 놓았지만 지난 시즌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유 감독과 떨어졌다.

유재학은 “임 코치가 매우 공명정대하고, 바르다는 얘기를 듣고 코치직을 제의했다”고 말한다. 당시 현대에 있던 임근배 코치도 “유 감독이 불러서 깜짝 놀랐다”며 “배경 설명을 듣고 “그런 감독이라면 그 밑에서 코치 생활을 할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장수 비결? 많이 져보고 경험에서 배워라”

모비스 출신인 김재훈 코치는 전술에 밝은 지도자 자질에 방점을 두고 코칭스태프로 발탁했다. KT 출신 조동현은 전자랜드 시절 한솥밥을 먹으면서 제대로 알게 된 성실함과 근성을 높이 평가해 코치로 뽑았다. 성준모 코치는 오리온스 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하고 공부하는 선수라는 점을 눈여겨봤다. 오리온스 코치를 그만두자 모비스의 매니저로 영입했다가 코치로 승격시켰다.

유재학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이란을 꺾고 금메달을 따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에 농구계의 최대 경사를 일궈냈다. 사명감을 똘똘 뭉쳐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재학은 한국 농구의 현재와 미래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국가대표 사령탑으로서 젊은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뒤 맞춤형 지도를 했다. 김종규·이종현·최준용·문성곤 등에게 기술적으로 뭐가 부족한 지, 훈련 태도의 게으름에 대해 모질게 쏘아붙였다.

김종규는 기본기, 이종현과 최준용은 파워, 문성곤은 슈팅 불안을 극복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게으름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이들은 성장했다. 김종규와 이종현은 대표팀에 남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농구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유재학의 열정이 담겨 있다.

KBL의 행정에 대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는다. “대표팀 지원을 통한 국제 경쟁력의 강화와 유망주들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한국 농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한다. 또 “앞으로 아시아권에서도 한국은 금메달 경쟁이 쉽지 않다. 이란·중국·필리핀·일본 등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지금처럼 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사명감과 농구의 인기 하락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유재학은 이상민·조동현 등 후배 감독들이 장수 비결과 우승 비법을 물어보면 “많이 져보고 거기서 스스로 배워야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지름길은 따로 없다.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란 가르침이다.

- 이창호 뉴스1 스포츠국장·스포츠평론가

201507호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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