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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박 대통령과 결별한 유승민 의원의 ‘보수개혁론’ 

“새누리당에 표 주는 건 저소득·저학력층이다”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전민규 기자
증세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정립하고 2011년 당 대표 경선에서 공약 제시 ... 2007년 박근혜 후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 규제는 풀며,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은 현 여권 고위직 인사들이 성안했던 내용

▎유승민 의원은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거 어쩌죠. 인터뷰를 해드리지도 못하고….” 7월 10일 국회의원회관 9층 사무실을 나서던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승강기 안까지 따라붙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틀 전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고 평의원 신분으로 돌아온 그는 자신의 지역구(대구 동구을) 최대 현안인 K2 공군기지 이전 문제를 논의하는 간담회 참석차 의원회관 2층 회의실로 향하는 중이었다.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하리라는 걸 알고 미리 선수를 친 것이다. 그리곤 극도로 말을 아꼈다.

여러 가지로 심경이 복잡할 텐데 지역구 현안 간담회는 어떻게 열었나?

“원내대표 시절에는 워낙 바빠서 몇 차례 연기한 모임이다. 이미 잡아놓은 간담회라 참석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여권 주자 중 1위를 차지했다.

“드릴 말씀이 없다.”

앞으로 인터뷰는 안 하는 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겠나?”

최근의 일로 어머니 마음이 많이 상하셨겠다?

“(긴 침묵) 휴~ 에고.”

그의 모친 강옥성 여사는 유신시절인 1973년 남편 유수호 판사가 선거사범 재판과 관련해 타의에 의해 법복을 벗었고, 이번에 아들인 유 전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갈등을 빚으며 밀려나듯 사퇴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다. 남편과 아들이 모두 박정희 가문과 악연으로 엮인 셈이다. 유승민 의원이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에 발탁됐을 때 강 여사는 “세상사는 참 모를 일”이라며 가벼운 숨을 내쉬기도 했다고 한다.

유 전 원내대표의 침묵과 한숨은 요즘의 고단한 처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주변인사들은 그가 모든 언론 인터뷰 요청에 ‘묵언수행’(함구)하듯 한다고 했다. 한 측근은 “지금 그가 언론에다 말하면 바로 싸움이 되니까”라며 청와대를 의식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유승민 ‘3년 전쟁’의 서막 열렸다


▎지난 4월 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신의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 사진·중앙포토
유 전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이 6월 2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그를 콕 찍어 불신임의사를 표명한 이래 거의 2주 동안 청와대와 당내 친박계의 드센 사퇴 압박에 시달려왔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의지를 밝히며 “정치를 정쟁으로만 접근하고 국민과의 신의를 저버린 채 국민의 삶을 볼모로 이익을 챙기려는 구태정치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민생법안 처리에 미온적인 정치권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박 대통령은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패권주의와 줄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작심발언을 이어나갔다. 특히 “여당의 원내 사령탑도 정부의 경제 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했는지 의문”이라며 원내대표에 대한 강한 불신을 피력했다. 사실상 원내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발언이었다.

이때를 전후해 당·청 간 정책 협의는 전면 중단됐고, 청와대는 유 전 원내대표와의 접촉과 대화를 거부했다. 박 대통령의 참모들과 친박근혜계 의원들은 “국정의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물러나야 한다”며 사퇴 여론 확산에 주력했다. 이 와중에 당내 재선 의원들이 원내대표 축출에 반대의사를 밝히는가 하면,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도 원내대표 사퇴와 관련해 고성이 오가는 등 여권이 총체적인 자중지란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7월 8일 소집된 새누리당 의원총회가 사퇴권고 쪽으로 결론을 내고 나서야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물러났다.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156일, 박 대통령이 6월 25일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사퇴를 요구한 지 13일 만이다. 이로써 국회법 개정안 처리와 청와대의 거부권 행사로 촉발된 여권의 내홍은 외형상 봉합됐지만 그의 사퇴의 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결기를 내뿜었다.

그는 사퇴 연설문에서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것은 법과 원칙, 정의”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에 의해 선출된 자신을 힘으로 몰아내려 한 청와대와 친박계 인사들을 헌법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나아가 “지난 2주간 저의 미련한 고집이 법과 원칙, 정의를 구현하는 데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었다면 어떤 비난이라도 달게 받겠다”면서 “원내대표가 아니어도 더 절실한 마음으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길로 계속 가겠다”고 했다. 이를 지켜본 한 측근 인사는 “앞으로 2~3년간의 ‘유승민 전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를 두고 진보진영에서는 ‘한국 보수의 희망’이라고 추켜세웠다. 그가 보수의 아성이라 할 대구·경북(TK) 차세대 주자인데다, 이회창·박근혜 등 보수진영 지도자의 핵심 참모를 거친 정책통으로서 당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경력이 반영된 듯하다. 실제로 그는 야전형으로 실무에 능한 사람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후보로 나선 2002년 대선 당시 선대위 미디어대책위원회 산하 메시지단장으로 정세분석과 공약개발을 책임졌다. 2007년 박근혜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서도 정책메시지총괄단장을 맡아 캠프운영을 주도했다. 이때는 후보 연설문 작성을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캠프에서 같이 일한 친박계 한 인사는 “어떤 과제가 주어지든 그는 밤을 새워서라도 결과물을 가져오는 지독한 구석이 있었다”고 돌이켰다.

이제 그는 박 대통령의 인사(人事)와 참모 운용, 정책을 두루 비판하는 몇 안 되는 여권 내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한다. 2013년 1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첫 인사인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을 향해 “너무 극우여서 사퇴해야 한다”고 외쳤고, 2014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박 대통령의 참모를 “청와대 얼라들”로 지칭해 권력의 심기를 건드렸다. 같은 자리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재연기된 것과 관련해서는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파기”라며 “이런 문제는 털고 가야 한다”고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해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올 2월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된 뒤로는 정부 정책의 허점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개인적 입지 위해 보수 가치 흔드나?


▎청와대와 친박계의 사퇴 압력을 2주간 버티던 유승민 원내대표가 7월 8일 기자회견을 갖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 사진·중앙포토
완결판이 바로 지난 4월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를 합시다’라는 제목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이다. 당을 대표해 연설에 나선 그는 ‘(박 대통령이 약속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134조 5천억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 ‘창조경제를 성장의 해법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다’ 등 박 대통령의 공약과 정부 정책에 날 선 비판을 가했다. 새누리당이 견지해야 할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전향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그는 “새누리당은 가진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의 편이 아니라 고통받는 서민과 중산층의 편에 서겠다”면서 “현재의 ‘저(低)부담 저복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높이는 중(中)부담-중복지를 논의하기 위해 여야 합의기구 설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특히 “10년 전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해 야당으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날 연설의 주요 포인트는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였고,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는 여당 원내사령탑에 의해 부정되는 날로 기록됐다.

이를 계기로 청와대의 유 전 원내대표에 대한 불신이 더욱 심화됐다고 여권 관계자들은 전한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유 전 원내대표는 부자들이 남의 돈 뺏어먹는다는 식의 아주 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무성 대표도 당시 “여야가 같이 고민하자는 문제 제기일 뿐 당의 방침으로 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당·청 간 논의는 물론이고 당내 공감대도 미흡한 마당에 증세와 복지 확대를 주장한 유 전 원내대표의 행보를 일러 ‘유승민의 쿠데타’,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정통보수를 표방하는 국민행동본부는 7월 1일 언론에 낸 광고문에서 “그는 노무현의 양극화 선동을 높게 평가하면서 ‘가진 자, 기득권 세력, 재벌 대기업 대 빈곤층, 실업자, 비정규직, 신용불량자’로 나누는 계급적 관점에 입각, 대기업을 ‘정부의 특혜와 국민의 희생으로 성장을 이룬’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다”고 질타했다. 결국 4월 국회연설은 향후 유 전 원내대표가 처하게 될 곤경의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소신을 드러낸 대가를 요구받기 시작했다.

정치적 반대파들은 유 전 원내대표의 4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6월 25일 박 대통령 국무회의 비판발언 이후의 대응, 7월 8일 사퇴 연설에서 잘 짜여진 한 편의 사나리오를 보는 듯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선주자로서의 정치적 입지를 도모하고자 보수의 가치를 흔든다’는 확신에 기초한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친박계에서는 2월 원내대표 경선 이전부터 그를 비토했다. 그는 “예측이 안 되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간주됐다고 친박계 핵심 의원이 귀띔했다. 이 의원은 “청와대가 진작에 우려했듯이 결국 그가 원내 의안 처리 등에서 자신의 색깔을 밀어붙이는 통에 국회법개정안, 공무원연금개혁안이 뒤죽박죽되고 말았다”고 혀를 찼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은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그가 국회 연설 등에서 밝힌 정책 구상은 새로 기획하거나 난데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고 반박한다. 한 측근은 “국회 연설은 새누리당이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책 공약 ‘국민과의 약속’의 전문과 기본정책의 범주와 부합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김종인 비대위원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국민과의 약속’을 통해 당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를 밝혔다. 성장과 복지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념·지역·갈등·세대·계층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국민통합적 접근 방법을 모색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와는 별개로 그의 정책이 충분한 숙성 과정을 거쳐 공론화됐다는 점도 간과되고 있다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시절부터 20년에 걸쳐 그와 호흡을 맞춰 온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분당 갑)은 말한다. 그는 “지난 4월 국회연설의 내용은 평소 우리가 늘 하던 얘기”라며 “그럼에도 마치 유 전 원내대표가 완전히 새롭게 기획한 것인양 반응하는 사람들에게서 도리어 우리가 당혹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의원 등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그가 말하는 보수개혁론의 뿌리는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표 경선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와 비교하면 지난 4월 국회연설 내용은 강도와 속도에서 오히려 완화되고 정제된 것이라고 이 의원은 강조했다.

한국형 로제타 플랜까지 끌어안는다


▎2011년 7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왼쪽 둘째). 그는 전당대회에서 새누리당 혁신의 목소리를 높였다. / 사진·중앙포토
2011년 당 대표 경선에 나선 그의 출마선언문의 제목은 ‘용감한 개혁’이다. 그는 여기서 “부자들은 돈이 많아 주체를 못하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인가”라며 화두를 던졌다. “재벌 대기업은 수십조 원 이익을 보는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 과연 보수인가? 4대강에는 22조원이나 쏟아부으면서 밥 굶는 결식아동, 수천만 원 빚에 인생을 저당 잡힌 대학생, 월 1백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비정규직, 쪽방에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기초생활보호도 못 받는 할머니, 할아버지, 이분들을 위해서는 ‘예산이 없다’라고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내뱉는 것이 과연 보수인가?”

그러면서 자신이 꿈꾸는 보수를 “정의롭고 평등하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고 희생하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이때도 헌법 조항을 인용했다. “헌법 34조의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는 보수가 내가 꿈꾸는 보수”라고 규정했다.

4월 국회 연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칭찬했다고 된통 화살을 맞은 양극화 정책도 2011년 경선에서는 더 열정적으로 부각시켰다. “IMF 위기 후 10년을 집권한 민주당도, 4년을 집권한 한나라당도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두 실패했다”고 단정한다. 이어 “수천억 원을 버는 재벌과 백만 원이 없어서 자살하는 사람들, 이 양극을 그대로 두고서는 공동체를 유지할 수도, 국민통합을 이룰 수도 없다”면서 “그런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는 한나라당의 갈 길이 아니다”고 못박는다. 그러면서 당의 정책노선을 이렇게 제시한다. “빈곤층·실업자·비정규직·영세자영업자·택시운전사·맞벌이 부부·무의탁 노인·결식아동·장애인·신용불량자… 이런 어려운 분들의 행복을 위해 당이 존재해야 한다.”

“노무현의 혜안을 높이 평가한다”


▎2011년 7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대구의 한 행사장에서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때는 유승민 의원이 보수의 개혁과 혁신을 강조할 즈음이다. / 사진·중앙포토
요즘 그를 괴롭히는 여권으로부터의 포퓰리즘 공세에도 이미 4년 전에 응사해놓은 상태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진보를 흉내내자, 좌파 포퓰리즘으로 표를 얻자는 차원이 아니다”면서 “어려운 국민을 위한 정당으로 우리 보수가 진정으로 변하지 않으면 5년 후, 10년 후에도 한나라당은, 보수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예컨대 “감세를 중단하겠다. 국가재정을 위해서도 복지에 쓸 돈을 위해서도 감세는 중단 돼야 한다. 토목경제가 아니라 복지·교육·보육·등록금·청년실업·비정규직 등 사람을 위해 쓰겠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보수의 혁신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언젠가 사석에서 우리사회의 저학력·저소득층이 전통적으로 새누리당을 지지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게 새누리당의 명분과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게 그의 소신이었다.

올 4월 국회교섭단체 대표연설 때보다 더 진보적인 제안이 2011년에 제시됐다. ‘한국형 로제타 플랜’이라고 해서 공기업과 대기업에게 청년의무고용할당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공기업과 대기업들이 의무비율을 못 지킬 경우 부담금을 내도록 해서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청년의 임금보조에 쓰도록 한다”는 게 그의 구상이었다. 현재 청년고용촉진특별법(공공기관의 청년고용할당 비율 3% 등)이 시행중에 있으나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4월 이 법의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에겐 고용부담금을 물리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 중이다.

그는 이런 혁신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당대표가 되면 노선과 정책의 획기적인 변화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공언 했으나 2위에 그침으로써 약속 이행을 유보한다. 그로부터 3년여 뒤인 2015년 2월 원내대표에 선출됐고, 4월 국회 연설에서 자신이 생각해 둔 보수의 개혁과 미래를 거듭 밝힌 것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책 비전과 그것의 일관성은 정치인이 성장하는 데 불가결한 요소다. 이런 관점에서 유 전 대표는 나름 정리되고 체계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는 게 측근들이 강조하는 포인트다.

하지만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줄·푸·세 공약(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며, 법질서는 세운다는 내용의 공약)을 만든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친박계를 비롯한 보수진영에서도 그런 그가 증세 쪽으로 돌아선 건 자기 모순이라고 몰아붙인다. 이와 관련해 2007년 박근혜 캠프에서 일한 이종훈 의원은 줄·푸·세 공약은 유 전 원내대표 작품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그는 당시 연설문 작성, TV토론 준비, 메시지 관리 등 워낙 많은 일을 처리했다”면서 “그 공약은 유 전 원내대표가 입안한 게 아니며 현재 정부와 청와대의 고위직에 있는 친박계 인사들이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감세에서 증세로 표변했다는 비판은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반론이다.

박 대통령과 상반되는 정책인 증세 쪽으로 그가 돌아선 시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다. 다음은 이종훈 의원은 말이다. “2008년 당시 유 전 원내대표가 내게 전화를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경제 양극화 현상이 가속화될 텐데 한국이 증세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나도 필연적으로 복지 수요가 증가하게 되므로 증세를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 뒤로 수시로 만나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공감대를 키웠다. 그가 2007년 경선 패배 후 친박이라는 이유로 침묵을 지키다 소신을 처음으로 대중 앞에 밝힌 계기가 바로 2011년 당대표 경선이다. 그 사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해 한국 경제의 실상과 대안을 더 깊이 고민하고 재정립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는 이때 양극화 해소를 사회 통합의 최대 과제로 파악하게 된다. 그래서 이를 가장 먼저 이슈화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혜안을 지난 4월 국회연설에서 언급한 것이다. 그는 4월 국회연설에서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양극화를 말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그분의 통찰을 저는 높이 평가한다”고 말한 대목을 두고 강경 보수진영에서는 그가 노 전 대통령의 선동을 높이 평가하면서 좌파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공격했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은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함에 있어서는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취지로 행한 연설이라고 맞받아친다.

“의리 다한 사람에게 독불장군이라니”

강경 보수층에서 그의 이념적 성향에 의혹을 제기하자 측근들은 그가 이념적 좌표에서 중심을 잃은 적이 없다고 강조한다. 그는 복지보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시장주의자이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전도사’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안보는 철두철미한 보수주의자다.

청와대와 친박 진영의 사퇴 공세가 극에 이를 7월 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자진사퇴 설득에도 요지부동인 그를 일러 “까칠하다”고 했다. 앞서 봤듯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의 문제에는 양보가 없는 게 유승민의 캐릭터다. 그의 업무 스타일와 관련해 일처리가 독선적이라는 지적도 그래서 나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2007년 박근혜 캠프에서 함께 활동한 인사는 “유 전 원내대표는 캠프 회의도 잘 참석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모든 일에 다 관여하려는 듯한 행동 때문에 ‘독불장군’, ‘무소불위’라는 뒷담화도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당시 유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캠프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주도한 인물이다. 심지어 네거티브를 그만하자는 박근혜 후보의 결정을 중간에 돌이킬 수 없다며 번복시킨 장본인이라는 얘기도 캠프 내에 나돌았다고 한다.

유 전 원내대표 측은 같은 사물도 보는 각도에서 달리 보인다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것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 측근은 “경선 초반부터 이명박 후보가 월등히 앞서 나갔다. 누가 봐도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 후보를 상대로 네거티브를 줄기차게 해대는 건 정치생명을 거는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이런 식으로 박근혜 후보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킨 유 전 원내대표에게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불리한 상황을 뒤집고자 동분서주하는 사람을 무소불위, 독불장군으로 폄하한다면 무슨 말을 더하겠느냐는 반응도 나왔다. 이 측근은 “명석한 유 전 원내대표가 사물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면서 그의 주장대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걸 일러 독주한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그는 결코 비민주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다”고 손을 내저었다.

측근들은 그가 아랫사람들에게 까칠하게 구는 일을 거의 본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KDI 시절 박사와 비박사 출신 간 장벽이 엄연하던 상황에서도 출신을 구분하지 않을뿐더러 아래 직원들에게도 한결같이 친절하게 대했다는 것이다. KDI 내 야구인 동호회에도 박사 출신 연구원으로는 드물게 회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원내 갓 진입한 초선 의원들에게도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고 친절을 아끼지 않는 의원으로 정평이 나있다고 말하는 여성 의원도 있다.

정리해보면 유 전 원내대표 측근들은 그를 일러 자기 원칙과 소신이 강하고, 헌법 가치를 중시하며, 일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난 정치인으로 묘사한다. 반대 진영에서는 그의 최근 상황을 ‘국정의 효율성, 당·청 관계 정상화는 뒷전인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보’로 경계한다. 친박계의 한 핵심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는 뭐든 자기가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고, 자기 정치에 대한 과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힐난하기도 했다.

분명한 건 지금 새누리당 내에서 강성의 박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맞서면서까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보’에 나설 만한 배포를 가진 정치인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이종훈 의원은 유 전 원내대표의 미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여운을 남겼다. “정치인은 마음에 누구를 담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양상이 달라진다. 국민을 두느냐 개인을 두느냐 둘 중 하나다. 정치인은 이를 직면해야 한다. 두려움과 고통이 따르더라도 마음에 둔 대상을 따라가게 된다. 참정치인은 그걸 회피하기가 어렵다. 앞으로 유 전 원내대표는 입으로가 아닌 몸으로 말할 것이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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