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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언론 공동기획] 박근혜-아베 대타협 결단의 걸림돌 

“위안부 문제, 정상회담서 확고한 해결의지 천명해야”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정상(頂上)의 의향대로 움직이는 것이 국가 관계의 기본 속성 … 창조적 아이디어로 과거사 족쇄 함께 풀어갈 방법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인 지난 6월 22일 주일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기념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일본의 전시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도 과거사에 얽힌 원한이다. 과거의 상처가 아무리 커도 화해, 치유의 노력은 중단할 수 없다. 국경 없이 교류, 공존했던 한일 고대사의 ‘아름다운 시절’도 있었다. 반성과 관용에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고, 우정의 시대를 복원하는 데에는 역사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도쿄 미나토구(港区)에 있는 미야코호텔은 한국대사관 근처에 위치한 오래되고 아담한 호텔이다. 6월 22일 늦은 오후, 조용한 고급주택가인 이 호텔 일대가 전에 없던 소란에 휩싸였다.


▎지난 3월 11일 서울에서 만난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일본 외무성 외무심의관(왼쪽)과 이경수 외교부 차관보. 스기야마 심의관은 일본 정부 내 대표적인 온건파로 조만간 외무성 차관에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사진·중앙포토
“조센징은 다케시마를 일본에 돌려달라!”

“우리나라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방해 말라!”

극우단체가 가두 유세차량을 대동하고 대형 스피커를 통해 이런 구호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으며, 대규모 경찰인원이 동원되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차량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체크한다. 이런 소란 가운데 검은색 세단이 차례차례 호텔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도쿄의 한국대사관이 주최한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이 쉐라톤 미야코호텔에서 개최된 것이다. 필자도 초청을 받고 호텔로 향했는데 이중삼중의 엄중한 검문 탓에 걸어서 호텔까지 가는데 한참이 걸렸다.

호텔을 향해 소란스러운 언덕길을 걷던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대규모 행사는 오랫동안 도쿄 최대 규모의 호텔인 ‘뉴오타니’에서 열리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왜 최근 한일양국 관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중요한 행사를 도쿄 토박이도 잘 모르는 호텔에서 진행하느냐는 것이었다. 호텔 연회장 입구에서 오랜 지인인 한국대사관 직원과 인사를 나누면서 왜 이곳에서 행사를 진행하는지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았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시다시피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최악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이번 수교 50주년 기념식도 일본 측 귀빈은 별로 없을 것이라 생각해서 인원이 적어도 회장이 꽉 차 보이도록 한국대사관 근처의 작은 호텔로 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베 총리가 참석하고 윤병세 장관도 오면서 회장이 참석인원을 전부 수용하지 못할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다급히 호텔의 다른 연회장도 빌려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별실로 쓰기로 했습니다.”

롯데호텔과 절연한 일본정부


▎혐한 시위에 참여해 구호를 외치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 한일 관계가 악화될수록 이들의 비이성적인 주장과 논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마침 연회장에 “민단 관계자 분과 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가급적 별실로 이동해주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같은 시각 서울의 일본대사관에서도 한일수교 50주년 기념 리셉션이 열려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다. 한국의 리셉션에서도 역시 ‘호텔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일본 외무성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오랫동안 일본대사관 주최의 이벤트는 롯데호텔에서 개최하는 것이 관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작년 7월 11일 롯데호텔에서 개최가 예정되었던 자위대 창설 60주년 기념식이, 당일 전날 호텔 측의 갑작스러운 장소대여 거부로 행사 자체가 취소되었습니다.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을 고려한 조치였던 것 같습니다만, 같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 땅에서 중요한 이벤트가 취소된 것은 일본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결국 이 대소동 뒤에 일본 정부는 앞으로 롯데호텔과는 일절 관계를 끊기로 했습니다. 이번 50주년 리셉션도 내부적으로 논의한 결과 롯데호텔 옆에 위치한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거행하기로 결정됐습니다.”

이처럼 한일이 각기 기념행사를 치렀던 호텔문제만 놓고 봐도 현재 양국의 관계가 얼마나 미묘하고 곤혹스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미야코호텔에서 개최된 행사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한국인 여성이 가야금을,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 여성이 와곤(和琴, 일본식 가야금)을 연주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되었다.

아베 총리의 참석은 그 전날 윤병세 외교부장관이 방일하여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장관과 한일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하고 나서 공식적으로 발표됐다. 윤 장관은 취임한 지 2년 3개월 동안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없었으며 이날이 첫 번째 방일이었다. 그런데 윤 장관은 방일 직전 주말에 일부러 독일을 방문하여 일본 근대화 산업시설을 세계 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대해 반대의견을 전달하고 바로 일본을 방문한 것이다. 윤 장관은 왜 갑작스럽게 일본을 방문한 것일까? 미야코호텔에서 윤 장관에게 직접 질문하려 했지만 그가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대독한 후 급하게 행사장을 빠져나가는 바람에 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대신 일본 외교관계자에게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한일 외교에는 두 개의 라인이 존재합니다. 먼저 기시다 외무장관(사이키 아키타카 외무차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는 공식라인입니다. 둘째는 스가 요시히테 관방장관, 야치 쇼타로 내각안전보장국장과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전 주일대사) 사이의 비공식 루트입니다. 전자를 한일 쌍방의 강경파, 후자를 온건파라고 불러도 좋을 듯합니다. 이번에 활약을 한 건 후자인 비공식 루트입니다. 이 루트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가 결정된 뒤에, 이 실장과 같은 외교부 출신이자 라이벌인 윤 장관이 중간에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일본은 19세기 후반의 조선시대부터 라이벌 관계인 한국의 정치가들을 교묘하게 이용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권모술수는 한일 쌍방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필자는 최근에 일본의 모 외교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탄식하는 소리를 들었다.

미소 띤 양국 정상사진 거의 없어


▎7월 1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 6월 24일 세상을 떠난 김연희 할머니 영정사진이 시위대 앞에 놓여 있다. / 사진·중앙포토
“일본외무성의 실세인 사이키 외무차관은 완고한 대한 강경파로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완료’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넘버투인 스기야마 신스케(杉山晋輔) 외무심의관은 과거 서울의 일본대사관에 공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 인물로 외무성 내에서 친한 온건파의 좌장이다. 사이키 차관은 올 6월에 차관에 취임한 지 2년이 지나 보통이라면 스기야마 심의관에게 바통을 넘겨주어야 하는데 아베 총리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어 앞으로 1년 더 유임할 것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한국측에서는 일본 정부 및 자민당의 유력정치인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스기야마 대망론’을 유포시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목소리가 마치 복싱의 잽(jab)과 같은 효과를 내고 있어서 멀지 않아 외무차관 교체가 발표될 것 같다.”

이야기를 미야코호텔의 한일 50주년 리셉션으로 되돌리자. 행사장에 ‘주빈’인 아베 총리가 도착하자 소란스러웠던 장내는 조용해졌다. 전방 왼쪽의 대형스크린에는 아베 총리와 관련된 6장의사진이 차례로 비춰졌다. 2006년 당시 아베 총리가 한국의 국립묘지를 방문한 사진과, 아베 아키에 총리 부인이 한국의 초등학교를 방문한 사진, 셋째는 2013년 10월 8일 인도네시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에서 찍은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의 투샷 사진. 넷째와 다섯째가 작년 3월 25일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세계핵군축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한미일 3개국이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의 사진. 마지막은 올해 3월 29일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 리콴유 전 수상의 국장에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의 사진이다.

그때까지 나와 담소를 나누던 한국외교관이 사진을 보면서 작은 소리로 푸념을 늘어놓았다. “저 여섯 장의 사진을 모으는 데 정말 고생했습니다. 무엇보다 양국 정상들이 한번도 단독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제회의 등에서 양측 정상이 함께 사진을 찍은 게 드물고 더구나 미소를 띤 사진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간신히 ‘여섯 장의 미소’를 찾아낸 것이다. 이 3년간 한일 관계가 얼마나 얼어붙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래도 자신의 미소를 스크린상에서 과시할 수 있었던 아베 총리가 스크린 바로 앞에서 역시 미소를 머금은 채 연설을 했다.

“지금부터 반세기 전에 한국과의 국교정상화에 힘쓴 사람은 제 외조부인 키시 노부스케와, 종조부(작은 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 두 분이었습니다. 이후 50년 만에 양국의 왕래는 500배로 늘어났으며 무역은 110배로 늘어났습니다. 제 고향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는 예전에 에도시대에 조선통신사가 상륙한 장소로 부산시와 자매도시입니다. 여기에 케네디 미국 주일대사도 참석하셨습니다만, 이제부터는 일·미·한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새로운 50년의 역사를 쌓아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베 총리는 강한 어조로 연설한 후 마지막 인사를 “감사합니다”라는 한국어로 마쳤다.

그러나 장내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당황한 한국인 사회자가 임기응변으로 “아베 총리에게 큰 박수를 부탁합니다”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단상 밑으로 내려왔던 아베 총리가 다시 등단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필자의 근처에 서 있었던 한 한국인은 박수를 보내는 대신 혀를 찼다.

“아베 총리가 어떤 연설을 할 것인가 기대했는데 고작 자기 선조와 고향 자랑, 미국에 대한 아부뿐이란 말인가?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과거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는 사죄는커녕 언급도 없군. 정말 구제불능 일본총리다.” 확실히 아베 총리의 스피치뿐 아니라 이 리셉션 자체가 무언가 맹숭맹숭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국측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은 어떻게 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것이냐”는 문제일 것이다. 반면 일본이 가장 걱정하고 있는 것은 “한국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도대체 얼마나 만연한 것인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 이어 마이크를 잡은 기시다 외무장관, 윤병세 외교부장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김태환 한일의원연맹 회장 대행 등 가운데 ‘위안부’나 ‘메르스’를 언급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냄새 나는 것은 뚜껑을 덮어라”라는 속담이 꼭 들어맞는 상황이다.

뚜껑 덮어도 냄새를 막을 수는 없어


▎김일성 주석 21주기인 7월 8일 0시 김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북한 정권의 움직임은 향후 한일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사진· 중앙포토
나는 이러한 분위기를 보면서 최근 자주 분화하는 일본의 화산을 떠올렸다. 한꺼번에 확 분화한 후 화산은 순간의 조용함을 되찾는다. 화산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는 누구나 다음은 언제 분화할 것인가 안절부절 못하면서도 분화에 대해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분화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정말로 다시 분화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불길한 것을 멀리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나 냄새 나는 것을 뚜껑으로 덮는다고 해서 냄새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리셉션장에 2012년까지 주한 일본대사를 맡았던 무토 마사토시(武藤正敏) 씨가 보였다. 1975년 외무성 최초의 한국어 연수생이 된 이래 일관되게 한국문제를 다뤄온 일본 외무성 최고의 한국통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도 알고 지내온 무토(武藤) 전 대사에게 견해를 물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지론을 말했다.

“결국 국가라고 하는 것은 정상의 의향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양국의 정상끼리 티격태격하면 아랫사람들이 아무리 지혜를 짜내고 상의를 해도 사이가 원만해지지 않습니다.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내적, 외적 요인에 의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생각을 바꾸었다, 그 정도 의미일 것입니다. 실제로는 위안부 문제 언급을 조금 자제한 것에 지나지 않고 언제 또다시 폭발할지 모릅니다.”

확실히 최근 갑자기 한일간 갈등의 새 불씨가 되었던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 근대화 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록은 6월 21일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과 이번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축하무드’에 의해 한때는 해결했다고 생각됐다. 우여곡절 끝에 등재가 결정됐지만 ‘강제노동’과 관련된 한일 양측의 해석 차이로 이 문제는 개운치 못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일간 최대현안이라 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 것일까? 필자는 6월 한달 내내 적지 않은 일본의 전문가에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물었다. 그 대부분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첫째로 1965년 오늘, 한일기본조약이 조인돼 양국간 국교가 정상화됐다. 조약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과 이에 부속된 4개의 협정, 그리고 25개 문서를 총칭한다. 이 가운데 4개의 협정은 ‘어업’, ‘재일교포 법적 지위·대우’, ‘재산·청구권과 경제협력’, ‘문화재·문화협력’ 등이다.

이중 ‘재산·청구권과 경제협력’ 분야의 협정에서는 제1조에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한국에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 방법과 목적을 포함하여 상세한 사항이 적혀 있다. 계속되는 제2조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즉 총 5억 달러의 사실상의 배상금에 의해 식민지시대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에 들어 한국측에서 “1965년 당시는 전쟁 중 종군위안부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없었다”는 주장이 크게 일어났다. 그래서 1995년 7월 당시의 무라야마 총리 정권 아래에서, 총무성과 외무성의 관할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을 설립했다. 합계 61명의 위안부에 대하여 각 200만 엔의 ‘보상금’과, 총리의 ‘사죄편지’를 건넸다. 그러므로 더 이상 일본정부가 관여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 위한 새로운 주체 필요


▎지난해 11월 미얀마에서 열린 ASEAN+3 정상회의에서 만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올가을 성사 가능성이 큰 양국 정상회담의 향방에 따라 동북아 정세는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 사진·중앙포토
이러한 설명을 들어도 아무래도 산뜻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웃나라끼리의 분쟁으로 가장 해결하기 곤란한 것은 영토문제이지만, 위안부 문제는 양국에서 지혜를 쥐어짜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다. 일본의 최대 우호국이어야 할 이웃 나라인 한국이 정부차원에서 해결을 원한다면 어떻게든 방법이 도출될 수 있으리란 생각이다.

과거의 조약에 의해 ‘해결완료’라고 말한다면 오키나와의 미군 후텐마 비행장을 나고시(名護市) 헤노코(邊野古)에 이전하는 문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비행장 이전에 관해서는 2002년 7월에 대체시설협의회에서 일·미 쌍방이 이미 합의했다. 2006년 5월에 미군재편협의(DPRI)의 최종보고서에도 일·미 양국 정부가 합의했다. 2012년 12월 25일의 아베 총리와 나카이마 히로카즈 오키나와현 지사와의 회담에서는 나카이마 지사가 오키나와 현민을 대표해서 승인했다. 그리고 올해 4월 28일의 일미외교·국방장관회의(2+2)에서도 일·미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합의하고 공동문서에 사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지금도 아베 정권을 흔드는 중차대한 문제가 되고 있으며 적지 않은 일본 국민이 이전 반대파를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일간의 ‘가시’가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는 북·일간의 ‘가시’가 되는 납치문제와도 매우 닮아 있다. 첫째, 두 사안 모두 완전히 과거에 일어난 문제이며 현재와는 관계가 없다. 둘째, 한쪽은 정권의 최고 중요 과제로 내걸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해결완료’라며 무시하고 있다.(일본은 납치문제 담당 각료까지 설치하고, 아베 총리는 타국의 정상과 회담 때는 반드시 납치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셋째로 한쪽은 국내에서 각양각색의 시민운동과 활동이 벌어지고 있으며 이 문제가 고조될 때마다 상대국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져간다. 그리고 넷째는 한쪽 나라에서 과감하게 주먹을 치켜들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난감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국민들은 누구나 납치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다면 위안부 문제의 빠른 해결을 기대하는 한국인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한 일본의 전문가 중 구로다 가츠히로(黑田勝弘) <산케이신문> 객원 논설위원의 지론에 주목하게 된다. 구로다 씨는 1970년대부터 한국에 30년 이상 머물며 활동한 일본 최고의 한국통 저널리스트로 한국에서도 설명이 필요없는 인물일 것이다. 구로다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한 문제임과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말려들게 된 글로벌 이슈가 됐다. 그러므로 일본은 국익의 관점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하루 빨리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첫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빠른 시기에 해결하면 좋겠다’라고 운을 뗀다. 그러면 아베 총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즉 한일 정상회담을 위안부문제 해결의 장소가 아닌, 해결을 향한 합의의 장소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 측에서 모종의 액션을 취한다. 예를 들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재단을 새롭게 만들고, 그 재단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상대로 대화와 협상을 한다. 그 대신 한국 측은 일본의 국가적, 법적 책임을 묻기로 한 것을 철회하는 방법이다.” 확실히 이 ‘구로다안(案)’은, 현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9월 3일 김정은 베이징 방문이 중대 변수

그런데 필자는 한일 관계에는 향후 두 가지의 ‘변수’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북한문제다. 김정은 정권은 최근 여러 명의 고위급 간부가 망명했으며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처형되는 등 크게 요동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지독한 가뭄 때문에 겨울에 심각한 기아가 예상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실상 김정은 정권의 운명을 결정하는 날은 9월 3일이 될 것이다. 이날 중국의 시진핑 정권이 베이징에서 항일전쟁승리 7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예정하고 있다. 이 기념식에는 김정은 제1비서도 초대됐다.

앞서 5월 9일에 러시아도 모스크바에서 전승 70주년 기념 군사퍼레이드를 거행하며 김정은 제1비서를 초대했다. 그러나 김정은 제1비서는 행사 직전에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취소하고 그 준비를 위해 4월에 러시아를 방문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해버린 전례가 있다.

그러나 9월 중국행사에 참가하는 문제는 김정은 정권에 러시아 방문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중요하다. 만약 참가한다면 그것은 시진핑 정권이 2년반 동안 계속해서 주장해온 ‘2개의 조건’을 김정은 정권이 받아들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첫째로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동결하는 것, 둘째는 북한의 핵문제를 협의하는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다.

즉 김정은 제1서기의 방중은 동북아지역의 정세에 있어서 ‘해빙’이 되는 것이다. 아마 김정은 제1비서가 방중한다고 하면 아베 총리도 첫 일북 정상회담을 목표로 베이징을 방문할지도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리고 일한관계도 동시에 ‘해빙 무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9월 3일 김정은 제1서기가 방중하지 않으면 이는 ‘악몽으로의 행진’이 된다. 즉 10월 10일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즈음하여 ‘새로운 위성 로켓발사’라고 선전하며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실험을 할 것이다. 아마도 연내에 4번째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은 김정은 정권의 전복을 진지하게 모색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과 한국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을 여유가 없어진다. 결론을 말하면 9월 3일이 지나면 ‘북한변수’에 의해 한일 관계는 호전될 수밖에 없다는 시나리오가 성립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앞으로의 한일 관계를 좌우하는 또 하나의 변수는, 아베 총리의 건강문제다. 현재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은 국회에서 안보법제를 추진하고 9월에 최종적으로 법안을 가결시키려 하고 있다. 정기국회는 본래 6월 25일로 종료되지만 아베 총리는 95일이나 국회를 연장시키며 9월 27일까지 전대미문의 장기 국회를 만들었다.

아베 총리는 왜 이렇게까지 안보법제에 집착하는 것일까? 일본에서도 ‘새로운 일·미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라든가 ‘전후 70년을 계기로 안전보장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라고 하는 그럴듯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베 총리의 건강문제다. 필자는 평소 국회기자석에서 아베 총리를 바라보고 있으며, 아까 첫머리에서 언급한 미야코호텔의 일한 50주년 리셉션에서는 가까이에서 그를 관찰했다. 필자는 의사는 아니지만 아베 총리의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이 상당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6월 22일의 리셉션 현장에서 몸 상태가 좋지 못한 듯한 아베 총리를 관찰하고 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베 총리는 어쩌면 자민당 총재의 임기가 끝나는 9월 말 건강 문제로 전격 사임할 생각인 것은 아닌가라고. 2007년 9월 퇴진한 제1차 아베 정권과 같은 패턴이다. 아베 총리가 누구보다 존경하는 외조부 키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1960년 6월 사직했을 때 일미안전보장조약의 변경이라고 하는 국가의 장래를 결정하는 ‘실적’을 남겼다. 아베 총리는 그런 외조부의 비원이었던 헌법 개정을 자신의 실적으로 삼고 싶었을 것이다.

국경이 없었던 시대가 그립다

그러나 헌법 개정까지 그의 건강상태가 유지될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므로 그것을 대신하여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가능하게 하는 안보법제를 자기의 실적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8월 15일 발표 예정인 전후 70주년의 ‘아베담화’는,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이 걱정하는 것 같은 과격한 내용은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국이 크게 반발할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면 일본의 야당이 국회에서 격렬하게 추궁하기 때문에 아베 총리의 비원인 안보법안은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베담화’를 내각회의 결정이 아니라 개인적인 담화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한관계 개선을 위한 아이디어를 하나 내보고 싶다. 그것은 일한 양국이 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것이다. 역사연구라고 해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위안부 문제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수수께끼 고대사’를 공동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일본의 고대사는 수수께끼 투성이다.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기록된 일본의 건국신화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히미코(卑彌呼)가 통치했다는 3세기의 야마타이코쿠(邪馬台國)는 어디에 있었던 것인가? 그 후 일본을 통치했다는 야마토(大和) 왕조의 정체는 무엇인가? 6세기 후반부터 4대에 걸쳐 일본을 지배한 소가(蘇我) 씨는 누구인가? 6세기 말에 성덕태자(聖德太子)는 왜 수(隋)나라 황제에게 무례한 서한을 보낸 것인가? 서기 645년 다이카(大化)의 개신은 무엇인가? 한반도를 무대로 한 최초의 일중전쟁인 서기 663년의 하쿠수키노에(白村江)의 싸움은 왜 일어난 것인가?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좁은 일본열도의 범위 안에서만 일본사를 해석해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작년 가을 후쿠오카현 무나카타시(宗像市)에 며칠간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한반도에서 출발한 배가 일본열도에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해 하늘에 제를 올려 감사했던 무나카타타이샤(宗像大社)를 견학했다. 현해탄에서 한반도 쪽을 바라보기도 하고 그 고장의 학자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서 ‘국경이 없었던 고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한국학자들이 쓴 논문을 읽기 시작하면서 예전에 고교에서 배운 <일본사>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당시의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하나의 생활권’이라고 생각하면 ‘일본고대사의 수수께끼’는 대부분 풀리는 것이다.

일한수교 50주년을 기념해서 마침 <일본 속의 한국문화>라는 45분짜리 DVD가 출시됐다. 도쿄 한국대사관 부속 한국문화원이 제작한 것으로 그것을 보아도 고대에 있어서의 ‘일본과 한국의 일치’가 잘 이해된다. 아무튼 이제부터 한일 공동으로 연구해야 할 것은 현대사보다 고대사라는 생각이다. 고대사 연구가 공동으로 진행되어 ‘한일은 한 뿌리’였다는 것에서부터 양국의 화해가 진전되기를 기원한다.

- 콘도 다이스케 일본 <주간현대> 부편집장

201508호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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