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책연구원 보고서 ‘여권 파워게임 상황인식 및
대응’ 등에 적시… 미국 민주당, 영국 노동당의 부활에서
‘해답’ 찾아야 총선·대선에서 승산 있다고 분석
▎2002년 12월 19일 제16대 대선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승리가 확정되자 지지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16대 대선 승리 이후 10여 년이 지나도록 야당(당시 여당)은 주요 선거에서 대부분 패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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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형상 앞으로도 한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이 제1야당의 지위를 굳건히 지킬 가능성은 크다. 그렇다고 내년 4월 제20대 총선과 내후년 12월 제19대 대선 전망이 밝다는 것은 아니다. 당내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참패의 위기감이 고조된다. 당의 싱크탱크(Think Tank)인 민주정책연구원도 유사한 보고서를 잇달아 냈다. 두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발(發) 여권의 파워게임은 야당에 호재임에 틀림없지만 막연한 정권 심판론(論)만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분석했다.민주정책연구원(원장 민병두 의원)은 7월 초 ‘여권 파워게임 상황인식 및 대응’이란 보고서를 작성했다. ▷구도(민생놀음 vs 권력놀음) ▷의의(정치 정상화 vs 정치파괴, 중도보수 vs 박근혜 보수, 새정연의 기회 vs 위기)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된 보고서는 ‘박근혜 대통령발 여권의 파워게임은 새정치민주연합에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했다.연구원은 다소 공격적인 내용을 의식한 까닭인지, 보고서 말미에 “이 글은 집필자의 의견이며, 민주정책연구원의 공식 견해가 아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보고서는 이진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이 작성했다.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기간 경제불황에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뭄 등의 여파가 겹치면서 국민의 정치 불신은 가속화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존재 이유에 대한 국민적 회의마저 커지는 상황이다. ‘메르스 사령관’을 갈구한 국민적 요구와 달리 ‘친박 사령관’을 자임한 박 대통령의 ‘민생이탈 화법’과 ‘유승민 죽이기’로 인해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당시 정세를 판단하고 있다.보고서는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메르스 전쟁 보고서’를 낭독했다면 국민적으로, 세계적으로 큰 신뢰를 얻었을 텐데 ‘유승민 배신 보고서’를 읽음으로써 국제적인 신뢰 추락을 자초했다”며 “청와대와 여당 간 파워게임의 본질은 ‘공천권 전쟁’”이라고 분석했다.보고서는 이 같은 국면에서 새정연은 공허한 슬로건이나 단발성 행보를 넘어 민생법안과 연계해 국민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새경제연합 경제활성화 4대 의제(가칭)’, ‘새민생연합 민생 4대 의제’ 등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제안했다.새정연은 6월 30일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공동위원장 정세균·강철규)’를 발족하고 2016 총선, 2017 대선 경제공약 개발에 착수했다. 현재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인 강 위원장은 참여정부에서 3년간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으며, 한명숙 전 대표가 당을 이끌었던 2012년 제19대 총선 때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공천작업에 관여했다.
경제정당·상식정당은 집권의 기틀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 전인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박 대통령은 민생현안만 언급한 채 유 전 원내대표와 관련된 발언은 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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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박근혜 정치’에 대해 “본질적으로 선악 이분법(二分法)의 진영논리에 기초한, 적(敵)이 있어야 존재하는, 적이 없으면 적을 만드는 정치”라고 비판했다. 또 적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자신의 정당성 근거로 삼는 정치라고도 표현했다. 평소에는 야당을 적으로 삼다가 때로는 국회를 적으로 삼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자당(自黨)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적으로 삼는 것을 ‘적을 만드는 정치’의 근거로 들었다. 보고서는 이 같은 행태를 ‘두 국민 정치’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새정연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파괴, 적 프레임의 덫에 빠지지 말고 정치 정상화의 정당을 자임(自任)함으로써 민생 제일정치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박 대통령과 유 전 원내대표의 ‘제로섬 게임(한쪽의 이득과 다른 쪽의 손실을 더하면 0이 되는 게임)’은 새누리당의 딜레마라고 분석했다. 당이 유 전 원내대표와 등을 돌린 박 대통령을 선택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고정 지지층으로 축소되고, 비박인 김무성·유승민 라인을 선택할 경우 확장력은 있으나 당청 갈등으로 고정 지지층이 이탈한다는 얘기다.보고서는 “박 대통령의 최종 목표는 유 전 원내대표가 아닌 김무성 대표의 교체이며, 김무성·유승민 체제를 교체하지 못할 경우 상시적(常時的) 당청 갈등으로 총선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대중기반이 취약한 김 대표는 대체 가능한 만큼, 교체할 경우 새누리당을 명실상부한 ‘박근혜의 당’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보고서는 이 같은 당청 갈등, 즉 여권 내 파워게임이 새정연에는 기회이자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리고 미국 민주당과, 영국 노동당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새정치민주연합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아래는 그 내용의 대강이다.미국 민주당은 1970~80년대 6번의 대선에서 5차례 패했고, 영국 노동당은 18년간 4차례나 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과 노동당이 ‘불임정당’, ‘만년야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면서 보수정당의 ‘영구집권’ 가능성마저 비칠 정도였다.그러자 미국의 공화당과 영국의 보수당은 야당을 경쟁상대로조차 보지 않고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알력이 심했다. 그 과정에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못하는 무능과 무책임이 노출되면서 집권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커졌다. 집권당이 내분·무능·무책임을 드러내는 동안 야당은 철저한 자기 성찰과 혁신을 통해 수권(受權)정당으로 탈바꿈했다.보고서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로 상징되는 민생우선주의로 1992년 공화당 소속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당시 대통령에 승리를 거둔 것을 예로 들어 “생활인의 경제와 보통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유능한 경제정당, 상식의 정당으로 혁신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과 야당 지지율 동반하락의 함정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4·29 재·보선 다음날인 4월 30일 어두운 표정으로 국회 본청을 나서고 있다. 선거에서 새정연은 0대 4 완패를 당했다.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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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정책연구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지지율의 커플링 현상(Coupling·동조화 현상)’을 적시(摘示)한 이 보고서를 작성해 지난 7월 24일 비공개 확대간부회의에서 공개했다. 보고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 때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반면 되레 야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그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말 ‘비선(秘線) 실세 논란’을 불러일으킨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정국이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십상시(十常侍) 국정농단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첫째 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前週) 대비 단 1%포인트 하락한 41%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새정연의 지지율도 1%포인트 떨어졌으나 새누리당은 전주와 같은 41%를 유지했다.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사건(4월 9일)으로 촉발된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확산된 지난 4월 둘째 주에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주와 비교해 1%포인트 하락한 39%를 기록했을 때 공교롭게도 새정연의 지지율도 2%포인트 떨어진 25%를 기록했다. 반면 새누리당의 지지율은 40%로 변동이 없었다.보고서는 “이런 흐름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내년 총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는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야당은 2012년 총선과 대선 그리고 2014년 6·4지방선거, 7·30 재·보선 등 주요 선거에서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왔지만 단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다.이 보고서와 관련해 연구원의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에 대한 2030 세대의 부정적 평가는 85%에 이르지만 새누리당·새정연에 대한 이들 세대의 지지율에는 큰 차이가 없다”며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야당이 이를 흡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권 심판론이 얼마나 먹혀 들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여론조사 전문기관 ‘타임알앤씨(Time Research& Consulting)’의 박해성 대표는 “야당의 정권교체·정권심판 등의 구호가 너무 막연하고 식상하기 때문에 지지층 사이에서조차 피로감이 커진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슈선점, 정책개발 등을 통해 ‘야당이 여당보다 잘할 수 있겠다’,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을 줄 때 야당 지지율도 자연스럽게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