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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리포트] 대북 투자자문사 자료로 본 북한의 유럽자본 유치전략 

“평양에서 ‘유러피언 드림’을!” 

비용절감과 시장 창출에 목말라하는 유럽 기업들에 투자 문호 활짝… 2000년대부터 기업인, 기자단 초청해 주요 산업, 금강산 관광특구 홍보
밖에서 보는 김정은 정권의 이미지는 공포 정치와 강경 노선으로 일관된다. 하지만 경제 발전과 해외 자본 유치에는 전혀 다른 면모를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네덜란드 소재 대북 투자자문사가 작성한 북한의 외자유치 활동 관련 자료는 해외 기업인들에게 더없이 사근사근한 북한의 속살을 보여준다.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선 평양 만수대 지구의 창전거리.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로 찾는 명소다.
관광산업 활성화에 공을 들이는 북한이 최근 유럽과의 경제협력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산업은행 통일사업부가 최근 네덜란드 컨설팅업체 GPI로부터 입수한 대북 투자 설명자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탐색(Exploring new business opportunities / European trade & investment mission to North Korea)’ 등에 따르면 북한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새 경제협력 대상 물색에 열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GPI 컨설팅은 이 투자 설명자료에서 “북한이 해외시장에 다양한 재화와 용역을 수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외국 투자자를 필요로 한다”며 “특히 유럽과의 사업을 환영한다”고 전했다.

또 유럽 투자자들에게 북한은 기회의 땅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컨대 요즘 유럽의 기업들은 비용절감, 신상품 개발, 새 시장 창출 등의 과제를 안고 있는데 북한은 구미가 당기는 대안으로 자리매김한다는 것이다. 이 자료는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은 경제를 아주 강조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경제개혁 조치들이 추진되고 있다”고 사례를 나열했다. 국영농장과 국영기업에 더 큰 재량권이 주어지고, 외국 투자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경제특구도 증가 추세라는 것이다.


▎최근 새로 개장한 평양시내 순안국제공항 청사 전경. 기존 청사보다 6배 이상 확장된 규모로 알려졌다.
이 자료를 작성한 GPI 컨설팅은 1995년 설립된 네덜란드 법인으로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의 물류사업 관련 자문 회사다. 올해 초 GPI 컨설팅 본사가 위치한 로테르담에서 유럽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북한 투자설명회를 열었으며, 2014년에는 유럽 기자단의 북한 방문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이 회사는 북한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아래 투자 관련 북한 방문단을 모집, 방북을 주선하는 기업으로 알려졌다. 2008년, 2011년, 올 5월 유럽 투자단의 방북도 이 회사의 작품이었다.

GPI 컨설팅은 자료에서 북-유럽 간 주요 협력 분야로 재생에너지·의류·조선·농업·수산업·원예·물류·광업·석공·요식업은 물론 IT산업 등도 꼽았다. 또 북한은 저임금 숙련 노동력을 지렛대삼아 여타 아시아 국가와 경쟁하는 나라라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GPI 컨설팅은 “근로자 임금이 급상승하는 중국에 생산기지를 가진 기업들이 그 대안의 하나로 북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도 전했다.

2017년 북한 관광객 100만 명 시대 열릴까


▎1. 북한 당국은 지난해 10월에 방북한 유럽기자단에 미린 승마장을 개방했다. / 2. 북한 내 건설 분야가 활기를 띠면서 수요가 늘어난 전선 제조공장을 유럽 언론인들이 둘러보고 있다. / 3. 외국 투자자들이 주로 찾는 북한의 의류 제조공장. 북한은 외자유치 차원에서 각종 산업 시설을 공개하고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북한은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유럽 투자단을 평양으로 유치, ‘북한에서의 사업’ 등을 주제로 각종 설명회를 열었다. 유럽 투자단은 5월 11∼14일 열린 18회 평양국제상품전람회를 참관하는가 하면 평양에서 사업을 하는 유럽 기업인들의 모임인 EBA(European Business Association) 회원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지난해 10월엔 유럽 기자단이 북한을 찾았다. 독일·영국·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언론인들로 꾸려진 방북 기자단은 유럽·중국·한국의 기업들이 투자한 북한 내 직물공장을 견학했다. 북한은 새 아파트 건설 현장, 리노베이션에 들어간 국제 비행장, 돌고래 수족관은 물론 최근 개장한 미린 승마장을 유럽 언론에 공개하고 인터뷰도 허용했다. 저임금 고 숙련 노동력에 매력을 느껴 북한에 투자하는 외국의 의류 업체들이 나날이 증가한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고 GPI 컨설팅은 전했다. 또 건설 붐과 함께 수요가 증가하는 전선 및 타일 생산공장 또한 북한이 외국인 투자를 희망하는 주요 업종의 하나로 소개됐다. 특히 유럽 기자단을 대상으로 하는 북한 경제정책 설명회에는 북한의 과학원(Academy of Sciences) 회원들이 발제자로 나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북한의 이 같은 투자유치 다변화 활동은 핵·미사일 개발이 촉발한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가 지속되면서 대북 투자유치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데 따른 자구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현철 산업은행 통일사업부장 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은 지금까지는 중국 중심의 교역 및 외자유치에 치중해왔다”면서 “해외 투자유치가 더욱 절실해진 요즘은 현지 프로모터를 통해 유럽으로까지 유치활동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북한은 독일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유럽에 정기적인 북한 여행정보를 제공한다. DPA통신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을 찾은 관광객 10만명 중 유럽인은 5500명이다. 러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도 관광객이 유입되고 있으나 중국인 관광객이 주를 이룬다. 북한은 2017년 100만 명, 2020년 200만 명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독일 언론은 보도했다. 관광객 유치는 대외 이미지 개선과 최소한의 투자로도 외화 획득이 가능한 효자산업으로 북한에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북한이 동해안의 금강산과 원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지도 모른다. 북한의 대외 투자유치에 대한 열망은 GPI 컨설팅이 산업은행 통일사업부에 제공한 ‘원산-금강산 투자 설명자료(The Wonsan-Mt. Kumgang International Tourist Zone/ Trade & investment options in North Korea)’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A4용지 18쪽 분량의 영문판으로 제작된 이 자료는 크게 4개 파트로 구성돼 있다.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계획 ▷투자자를 위한 법적·제도적 환경 ▷시중호 관광지역 세부 개발계획 ▷국제관광을 위한 금강산 특구 세부 개발방안 등이다.

북한 당국자 PT자료에 나타난 투자유치 의지


▎무역박람회격인 평양국제상품전람회에는 북한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중국 기업들도 참여한다.
특이한 점은 이 4개 파트 자료가 북한 당국자의 육성을 그대로 소개한다는 사실이다. GPI 컨설팅은 올 상반기 금강산을 방문한 외국 투자자들에게 북한 당국이 발표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했다고 밝혔지만 세부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북한 당국자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제안설명(PT)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 자료 1쪽에는 ‘친애하는 김정은 장군(The dear respected Marshal Kim Jong Un)’, 6쪽에는 ‘우리 당과 인민의 지도자이신 친애하는 김정은(The dear respected Kim Jong Un, the supreme leader of our party and people)’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곳곳에 ‘우리나라(our country)’라는 표현도 보인다.

첫째 파트인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개발 계획 소개(Introduction to Development Plan of Wonsan-Mt. Kumgang International Tourist Zone)’은 원산, 금강산 지역 명승지의 위치, 지형과 기후를 묘사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 48호 정령(2014년 7월)에 따라 개발에 들어간 원산, 마식령스키장, 울림폭포, 석왕사, 통천, 금강산에 대한 기본 현황과 사업계획도 뒤를 잇는다.

특히 금강산 지역은 “과거 10년 이상 국제관광지대로 운용돼 왔으며, 지역 관리와 주민들의 관광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관광객들에게 친절하며, 서비스 또한 고품격”이라고 자랑한다. 북한은 2012년 최고인민회의 법령 제정을 통해 기존 11년제 의무교육을 1년 늘인 ‘12년 의무교육제’를 도입한 바 있다. 이 자료에서 북한 당국자는 “12년 무상교육제에서 중등 일반 교육을 이수한 능력과 근면성, 책임감을 갖춘 노동력이 풍부하다”고 전제, “또 정준택원산경제대학에 신설된 관광경제학과는 관광 서비스를 제공할 인력을 양성한다”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음을 과시했다. 앞서 GPI 컨설팅이 유럽 기자단과 투자자들에게 중점적으로 홍보한 저임금 숙련 노동력의 존재를 북한 당국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둘째 파트인 ‘투자자를 위한 법적·제도적 환경(Legal Environment for Wonsan- Mt. Kumgang International Tourist Zone)’은 북한이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법률적 환경 조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는 점에 주목한다. 북한은 “정부가 투자자의 권리, 이익, 재산과 신변을 보장한다”고 못을 박았다. 외국인 투자자의 재산을 몰수하거나 국유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헌법 16조에 명기돼 있고,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도 국제 중재를 통해 종결할 수도 있음도 공언했다. 또 내국인과 동일한 지위에서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특구 내외에 물품의 반입, 반출도 자유롭다고 했다. 50년 임대 가능한 토지는 필요한 경우 연장할 수 있으며 이 권리의 양도 또는 리스도 허용된다. 이런 활동에 따른 과실 송금도 얼마든지 허용된다는 게 북한의 설명이다.

외자유치라면 사는 집도 헌다


▎1.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평양 도심을 취재하는 유럽기자단. / 2. 북한 당국은 외국인들에게 돌고래 수족관을 비롯한 각종 명소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 3. 유럽 자본과의 합작으로 문을 연 평양 시내 커피숍에서 선보인 커피. / 4. 북한이 외국 투자자들에게 공개한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
셋째 파트인 ‘시중호 관광지역 세부 개발계획’은 총 4쪽에 걸쳐 20개 세부 항목별 사업기간, 추정 사업비용을 명시해 눈길을 끈다. 예컨대 시중호 남동쪽에는 총 640석 규모의 오토캠핑장이 들어설 수 있는 숙박지구가 조성된다. 합작 형태로 10년에 걸쳐 추진될 이 사업에는 미화 89만 달러가 소요될 전망이라고 밝히고 있다. 10억원 남짓한 돈이면 사업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또 시중호 북쪽에 들어설 해물 요리점은 65만 달러, 시중호 북서쪽 골프장 앞에 들어설 고속보트 선착장에는 43만 달러가 투입된다. 시중호 인근에는 비용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2개의 18홀 코스를 갖춘 골프장과 4천 명을 수용하는 해수욕장, 황토 진흙 치료 시설, 응급시설도 선보일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금강산 특구 세부 개발방안’은 인프라 구축 계획을 제시한다. 통천에는 승객 3천~4천 명 수용이 가능한 공항이 건설되며, 원산과 금강산을 잇는 철도 118㎞ 구간의 열차 안전운행 차원에서 곡선반경을 직선으로 정비한다. 이를 위해 9개의 터널이 추가로 뚫린다. 또 양쪽을 잇는 90㎞ 구간의 도로에도 74개의 다리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설한다.

유럽 투자자들과 기자단에 대한 집중적인 홍보가 일정한 성과를 나타낸다고 북한은 주장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7월 23일 오응길 원산-금강산국제관광지대 개발추진 위원회 부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아시아와 유럽의 기업들이 이미 사업에 협조해나갈 의향을 표시해 여러 투자계약이 체결됐다”고 밝혔다. 외국 기업들이 투자 의향을 밝힌 분야는 설계, 정보기술, 건재, 식료공업 분야와 여객운수 및 숙박시설 운영 등 관광지 개발과 관광사업 전반인 것으로 보도됐다.

GPI 컨설팅의 이들 자료를 분석한 산업은행 통일사업부는 “북한은 관광지대의 성공을 위해 기존 건물을 철거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적극적인 투자유치 노력이 엿보인다”고 평가했다. 예컨대 ‘원산-금강산 투자 설명자료’ 12쪽 중반의 “장재호 부근 건물이 적어 철거가 용이하고 신축하기에 적합해 모델 지역이 될 수 있다(The advantage of this area as a model area is it has a few buildings to remove and a good condition for construction)”고 제안하는 대목이 외국 투자자들의 눈길을 끈다는 것이다. 투자 결정을 내리는데 필요한 친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설득력을 갖는다는 말이다.

나아가 북한의 투자유치 계획이 구체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라고 분석됐다. 지역별·단계별 개발 계획 마련에서부터 합작회사 등의 투자방식, 투자기간과 예상비용 등 과거보다 구체적이고 진일보했다는 것이다. 통일사업부는 “개발계획을 지원하기 위해 도로·철도·항만·전력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한 많은 고려가 있다는 점도 현실적인 변화의 한 징후”라고 덧붙였다.

북한 관광특구 사업을 남북한 공동사업으로


▎(왼쪽) GPI 컨설팅이 작성한 대북 투자 설명자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탐색’ 영문판. / (오른쪽) GPI 컨설팅이 작성한 대북 투자 설명자료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의 탐색’ 영문판.
북한 법제가 투자자를 보호해주고, 인센티브 제공하는 장치를 강화하는 점도 예전에 보지 못했던 이채로운 장면이다. PT 자료의 상당부분이 외국인들이 궁금해하는 법제 관련 사항으로 채워졌다. 북한 법을 통한 권한의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믿음을 준다는 것.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정령뿐만 아니라 헌법, 법령 등에서도 구체적으로 투자유치를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고 산업은행 통일사업부는 분석했다. “투자유치를 위해 북한 법제를 여러 번 개편했고 새로운 법령 및 하위 규정 등의 제정을 통해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북한이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판단해보면 북한은 투자유치를 위해 적극 노력 중이며 각종 여건 개선에도 전향적이라는 것이다.

취약점도 없지는 않다. 산업은행 통일사업부는 “지역별 개발계획을 공급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제시한다”고 미흡한 대목을 짚었다. 사업성 평가를 하자면 수요자의 관점에서 객관적 전망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데, 향후 수요증가 예측 없이 공급자 기준에서만 설명한다는 지적이다. 개발 자체 만으로 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므로 사업성에 기초한 냉정한 판단, 평가 근거를 제시할 때 실질적인 투자유치로 이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자면 2015년 현재 관광객 구성 비율 및 인원에 대한 자료 공개와 같은 구체적인 수요 예측 전망이 뒷받침돼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북한의 대외 신뢰도 제고가 선행돼야 투자유치 노력이 빛을 발하게 된다. 해외 투자자들이 대북 투자를 기피하는 이유는 법과 제도의 문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낮은 대외신뢰도 때문이라고 산업은행 통일사업부는 언급했다. “북한 정부가 법치주의를 실천하고 법을 지킨다는 믿음을 주지 않으면 투자자들은 법률의 제정에도 불구하고 북한 투자를 주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하현철 산업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북한의 대외투자 유치 노력에 전략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북한이 2013년 경제개발구법을 만들고, 지난해에는 국가경제개발위원회, 무역성 등을 통폐합해 외자유치 주무부처인 대외경제성을 신설하는 등 창구 일원화 정책을 펴온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해외 투자자 친화적인 정책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성과가 크지 않아 최근까지도 제도 개선은 진행형이라는 것이다. 그는 “원산-금강산 관광 개발을 남한의 DMZ세계생태평화공원 개발 등과 연계해 남북한 공동 복합관광사업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것도 서로가 윈(win)-윈(win)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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