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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대처 총리의 재림? 캐머런 ‘또 하나의 싸움’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총선 압승과 국민지지 발판으로 ‘21세기 영국병과의 전쟁’에 두 팔 걷어붙여 … 노조 파업 요건 강화, 공무원 정원 감축, 복지 축소 등 ‘강한 영국’ 만들기에 ‘올인’

▎2011년 영국의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정부의 연금정책에 항의하는 총파업에 들어간 가운데 시위자들이 맨체스터시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7월 15일 영국 하원에서 열린 집권여당인 보수당 평의원들의 모임인 ‘1992위원회’ 총회장.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 회의에 참석해 자신이 구상한 국가개조계획을 설명했다. 캐머런 총리는 국가개조를 위해선 노동과 복지 개혁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이와 관련된 법안이 의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1992위원회는 보수당이 1992년 총선에서 승리했을 때 당시 장관 등 정부의 고위직과 당직을 맡지 않은 평의원들이 결성한 모임이다. 이들은 매주 회의를 갖고 정부와 당의 주요 현안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조율해왔다.

1997년 이후 처음 보수당만으로 단독 정부를 꾸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캐머런 총리는 각종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면 당의 단결이 중요한 만큼 평의원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때문에 캐머런 총리는 이 모임에서 국정 운영 방침과 앞으로 추진할 개혁 정책의 청사진을 밝혔다.

평의원들은 캐머런 총리의 국가개조계획에 대한 구상과 비전에 박수를 치며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평의원들의 캐머런 총리에 대한 신뢰는 지난 5년 동안 수행해온 각종 개혁정책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실제로 보수당이 지난 총선에서 대승한 것은 캐머런 총리가 개혁정책을 용기와 뚝심으로 추진했던 덕분이었다. 긴축재정이 일시적으론 국민들에게 고통을 줬지만, 결과적으론 영국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은 올 초 고용인구가 1년 전보다 55만 명 늘어나고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8%로 독일(1.6%)·프랑스(0.2%)를 앞섰다. 지난 총선 결과를 보면 하원 전체 의석 650석 중에서 집권여당인 보수당은 331석을 차지하면서 과반의석인 326석을 넘었다. 반면 5년 만에 정권 교체에 나섰던 제1 야당인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99석 뒤지는 232석을 얻어 패배했다.

5년 임기를 다시 보장받은 캐머런 총리는 앞으로 자신이 재임하는 동안 영국 경제를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캐머런 총리는 기존의 ‘낮은 임금, 높은 세금, 높은 복지’에서 ‘높은 임금, 낮은 세금, 낮은 복지’라는 새로운 국정기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캐머런 총리는 이를 위해 지난 총선에서 제시한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세계 1%의 인구, 4%의 GDP, 7%의 복지 국가


▎5월 영국 총선에서 완승을 거둔 보수당 대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가 부인 서맨사 여사와 함께 보수당사에 도착해 엄지를 들어 보이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향후 5년간 소득세, 부가가치세, 국민건강 보험료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공약한 바 있다. 캐머런 총리가 이런 공약을 지키려면 재정적자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재정적자는 201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1.6%(1634억 파운드)에 달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4.3%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재정적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일본 다음으로 높다. 또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2008년 42%에서 4월 말 현재 80.4%로 늘어났다. 현재 영국의 나랏빚 규모는 1조4800억 파운드(2535조원)나 된다.

캐머런 총리는 앞으로 추진할 강력한 긴축정책에 대한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과 장관들의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는 조치부터 내렸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5월 25일 자신을 포함한 장관의 봉급을 5년 동안 동결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로 매년 80만 파운드(140억원)가 절약돼 2020년까지 400만 파운드의 예산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장관의 연봉은 13만4565파운드(2억3천만원), 총리는 14만2500파운드다. 캐머런 총리는 “봉급 동결은 재정적자를 반드시 줄이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시”라면서 “총리와 장관 모두가 국가 정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BBC방송 등 영국 언론들은 “총리와 장관의 봉급을 동결한다고 해서 엄청난 예산을 아낄 수는 없다”면서도 “재정적자 축소를 위한 캐머런 총리의 솔선수범과 의지는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보수당 정부는 캐머런 총리의 지시에 따라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의 진두지휘로 7월 8일 복지 지출을 대폭 삭감해 재정적자를 5년 안에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내용을 담은 2015~2016 회계연도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예산안의 핵심은 연간 120억 파운드(21조200억원)규모나 되는 복지 지출의 삭감이다. 저소득층 가정 출신 학생에게 주던 지원금을 2016/2017년도부터 대출제로 바꾸고, 청년(18~21세)에게 지원하는 거주 보조금의 경우 부모와 같이 산다면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임대주택 거주자도 연소득이 3만 파운드(5234만원) 이상이면 임대료를 더 내도록 했다. 이와 함께 다자녀 세액 공제도 두 자녀까지로 혜택을 축소하기로 했다. 오즈번 장관은 향후 5년 동안 복지 지출 삭감뿐 아니라 탈세 근절, 정부 부처 예산축소 등을 통해 총 370억 파운드(64조 5천억원)를 절약하겠다고 밝혔다.

소득세 면제를 받는 최저 연봉의 상한선도 내년부터 1만 1천 파운드로 올렸다. 반면 현재 20%인 법인세율은 2017년 19%, 2020년 18%로 단계적으로 낮아지고, 100만 파운드 이상 상속금에 대한 세금이 인상된다. 복지예산은 삭감됐지만 국민건강보험(NHS) 예산과 학생 1인당 공립학교 지출은 늘리고, 공적개발원조(ODA)와 국방예산은 GDP의 0.7%와 2% 수준으로 유지된다. 캐머런 총리가 “일한 만큼 대가를 보장해주되 일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혜택을 주지 않는다”라고 강조해온 정책 기조가 예산에 그대로 반영됐다.

오즈번 장관은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위기상황을 보라”면서 “국가가 빚을 조절하지 못하면 빚이 국가를 통제하는 사태가 벌어진다”며 긴축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리스가 천문학적인 빚 때문에 사실상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진 것은 과잉 복지와 탈세 때문이다. 오즈번 장관의 발언은 그리스 사태를 타산지석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국의 인구와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의 1%와 4%인데, 복지 지출은 전 세계 복지지출의 7%를 차지한다. 영국도 말 그대로 ‘과잉 복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영국 전체 예산에서 복지는 30%나 된다. 보수당 정부의 재정 긴축정책이 시행되면 1942년 복지국가를 지향하며 내걸었던 ‘요람에서 무덤까지’(from the cradle to the grave)라는 슬로건이 종지부를 찍는 셈이다. 이 슬로건은 1942년 영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보고서에서 제창한 사회보장 제도를 말한다.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보장한다는 것이다.

야당보다 높은 수준의 보수당 생활임금


▎영국 굿우드에 있는 롤스로이스 공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들. 영국은 한때 제조업 경쟁력이 바닥을 치기도 했다
이 슬로건은 선진국들의 사회보장제의 최고 목표이자 이상이 됐지만 과잉 복지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면서 선진국들이 이 슬로건을 수정하거나 개선할 수밖에 없었다. 이 슬로건의 원조인 영국은 이미 국가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복지모델이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해가 지지 않는 국가’라는 말을 들었던 영국은 1976년 과잉 복지 때문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복지에 쏟아붓는 돈이 늘어나면서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영국 전체에 만연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사회보장제도는 재정 적자만 늘린 게 아니었다. 노동자의 근로의욕, 기업들의 투자 의욕, 기업가정신을 모두 꺾었다. 한마디로 재정 부담을 넘어서는 과도한 복지제도가 고질적인 ‘영국병’을 낳은 것이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는 복지지출 축소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는 보완책도 도입하기로 했다. 내년 4월부터 시행할 생활임금제이다. 생활임금은 물가를 반영해 노동자와 그 가족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말한다. 보수당 정부는 25세 이상 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시간당 7.2파운드(1만2550원)에 맞추고 2020년까지 9파운드(1만5690원)로 올릴 계획이다. 현재 영국의 21세 이상 근로자 최저임금은 6.5파운드다. 시간당 9파운드의 최저임금은 지난 5월 총선 때 야당인 노동당이 2020년까지 8파운드로 올리겠다고 했던 공약보다 더 높은 금액이다.

영국 언론은 생활임금이 시행되면 근로자 600만 명이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저임금이 2020년에는 실질적으로 13% 이상 상승하게 된다면서 2013년 기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5개국에서 최저임금 수준 10위를 기록한 영국의 성적이 2020년에는 껑충 뛰어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머런 총리는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번 돈을 세금으로 내고, 정부는 다시 이 돈을 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와 함께 돌려주는 터무니없는 회전목마를 끝내겠다”고 강조했다. 파격적인 최저임금 인상에 경제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존 크리들랜드 영국산업연맹(CBI) 사무총장은 “이번 결정은 비즈니스 입장에서는 큰 도박”이라며 “임금 지불을 하려면 고용주들은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분투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고용자 다수가 최저임금을 받는 서비스업·소매업·농업·청소업 등 분야에서 고용주들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캐머런 총리는 심지어 노동당이 추진해온 기업들의 성별 임금 공개를 의무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캐머런 총리는 “근로자 250명 이상의 기업은 매년 강제적으로 남녀 임금 차이의 세부사항을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면서 “여성에게 투표권과 직업이 없던 시절이 과거의 일이 됐듯이 여성이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것도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과거의 일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캐머런 총리는 “남녀 임금격차 공개법은 우리가 당연히 고쳐야 하는 관행에 변화 압력을 줌으로써 여성 임금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차별의 그늘에 햇빛을 비추는 일”이라고 밝혔다.

관대한 복지에 반대하는 영국 국민들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공장 굴뚝이 스타디움 바닥에서 솟아오르고 있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의 강력한 긴축 예산안은 지난 7월 20일 의회에서 찬성 308표, 반대 124표로 통과됐다.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던 노동당 의원들은 대부분 기권했다. 해리엇 하먼 노동당 당수 권한 대행은 “지나치게 관대한 복지에 반대하는 영국 국민의 바람을 노동당이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사실상 예산안 통과를 지지했다. 영국 언론은 저소득층의 권리 보호를 기조로 하는 당론을 고려해 노동당 의원들이 적극적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복지 축소를 묵인해준 셈이라고 평가했다. 노동당의 이런 입장 변화는 총선 참패를 통해 무책임한 복지확대로는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투표 결과로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가 목표로 하는 5년 후 흑자재정 전환에 ‘청신호’가 켜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즈번 재무장관은 각 부처에 2019~2020회계연도까지 예산 25% 절감과 40% 절감이라는 두 개 시나리오에 따라 각각 계획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등 긴축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즈번 장관은 각 부처가 내놓은 안을 검토해 오는 11월 25일 ‘예산 점검 보고서’를 통해 최종 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오즈번 장관은 또 각 부처에 지방자치단체에 권한을 이양하고 공공서비스 통합을 수월하게 하는 방법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재무부는 예산 축소에 따른 공공서비스 품질 저하 우려에 대해서는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에 따른 효율을 강조했다. 재무부는 모두 3천억 파운드(540조원)에 달하는 국가 소유의 토지와 건물 가운데 일부를 처분, 흑자 재정을 달성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오즈번 장관은 “지난 보수당 1기 정부 때도 공공서비스의 질은 향상시키면서도 980억 파운드를 절약한 바 있다”며 “수입 안에서 살림이 가능한 영국을 만들기 위해 정부 지출 삭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보수당 정부는 재정흑자를 법으로 강제하는 ‘균형예산법’을 도입할 방침이다. 복지지출로 인한 재정압박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오즈번 장관은 “앞으로는 좌파든 우파든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반드시 재정흑자를 유지하도록 의무화하겠다”고 밝혔다. 보수당 정부는 올 가을 의회에 이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보수당 정부는 또 대대적인 공무원 감축에도 나설 계획이다. 오즈번 장관은 전체 공무원(2014년 말 기준 43만9천 명)의 23%에 해당하는 10만 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공무원 예산에서만 100억 파운드를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영국의 공무원 수는 과거 노동당이 표심을 얻기 위해 채용을 확대하면서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재정적자의 원인이 돼왔다. 1997년 집권한 토니 블레어 총리와 노동당 정부의 경우 1999년 50만4천 명이던 공무원 규모를 2005년에는 57만 명까지 늘렸다. 특히 경찰·교사·의료공무원 등을 포함한 공공부문 전체 종사자는 1999년 544만6천 명에서 2010년 631만7천 명으로 90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이는 영국 전체 노동인구의 약 20%에 달하는 규모다. 반면 캐머런 총리는 지난 5년간 공무원 감축정책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공무원을 9만 명 줄였고 공공부문에서는 92만 명을 감축했다. 고위 공무원의 수도 40% 정도 줄었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는 복지개혁의 다음 수순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할 계획이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7월 15일 ‘노동조합법안’(Trade Union Bill)을 공개했다. 이 법안은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이후 30년 만에 가장 강력한 노동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지난 1기 정부 때 이런 내용의 입법을 추진했다가 당시 연정 파트너인 자유민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중도에 포기했었다. 이번에 다시 추진하는 법안의 핵심은 의료·교육·교통·소방과 같은 핵심 공공 분야 노조의 무분별한 파업을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보면 파업 찬반 투표에 전체 조합원의 50% 이상이 참여하고, 전체 조합원의 40% 이상이 찬성해야 합법적인 파업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합원 1천명의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할 경우 최소 500명 이상이 투표에 참여해야 하고 400명 이상의 찬성표가 나와야만 한다.

투표율과 상관없이 단순히 과반수 찬성으로 파업을 하는 기존의 관행을 막겠다는 것이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조합원을 협박하거나 강제로 파업에 참여시키는 것도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일부 극단 세력이 주도한 파업으로 국가경제가 마비되는 사태를 막겠다는 의도다. 투표용지에도 노사 간 분쟁 내용과 계획한 노동쟁의 종류를 적시하도록 했다. 또 파업을 가결한 투표의 유효기간을 4개월로 정했다. 오래전 가결된 파업 가결 투표를 바탕으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파업 2주 전에 고용주에게 통보하지 않을 경우도 불법으로 간주되고, 파업 때 대체인력 고용 등 파업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가 공공노조와 전면전에 나선 의도는 파업 등 노사분규가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은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노동운동의 역사가 깊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노사분규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져왔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전체 조합원이 아닌 노조 지도부가 주도해 파업을 벌이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파업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로 공무원노조(PCS)의 경우 지금까지 한 번도 파업 찬반투표에서 투표율 50%를 넘은 적이 없다. 노동법 개정의 실무 책임을 맡고 있는 사지드 자비드 산업부 장관은 “노조원의 10~15%가 파업을 결정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노조법 개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과한 내용이 아니며 영국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전통 좌파를 고집하는 노동당의 국유화 ‘역행군’


▎영국 역사상 최장수 총리로 ‘영국병’ 퇴치의 선봉에 선 마거릿 대처 전 총리.
자비드 장관은 노조와 정치권이 결탁한 ‘정치 파업’을 근절하기 위해 정치후원금도 규제하기로 했다. 영국에선 노조가 좌파 정당인 노동당에 대한 정치후원금을 노조비에 끼워 넣어서 걷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조합원 개개인에게 동의를 얻어야 돈을 걷을 수 있다. 이 경우 정치후원금을 내는 조합원이 크게 줄어들 것이기 때문에 노동당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현재 영국에선 노조 조합원 450만 명이 총 2500만 파운드(446억원)의 정치후원금을 내고 있다. 자비드 장관은 지난 5월 총선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이후 단행된 개각에서 캐머런 총리가 노동개혁을 위해 특별히 발탁한 인물이다. 오즈번 재무장관, 보리스 존슨 런던 시장과 함께 차기 보수당 당수로도 거론되고 있는 자비드 장관은 파키스탄 이민 2세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의 노동조합 법안에 대해 노동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공부문 최대 노조단체인 유니슨의 데이브 프렌티스 사무총장은 “영국은 이미 파업을 막는 강력한 법이 있다”면서 “캐머런 총리의 의도는 아예 파업을 못 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처는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총리직을 세 번 연임하는 등 영국 역사상 최장수이자 첫 여성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다. 대처의 첫 임기 시절 영국 경제는 강성 노조의 득세, 방만한 공공부문, 과도한 복지 때문에 골병이 들었다는 의미로 ‘영국병’이란 말까지 나왔다. 특히 강성 노조들의 파업사태가 만연했다. 당시 복지지출 삭감과 세금 인하,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 보장 등 개혁 정책을 마련했던 대처는 무엇보다 먼저 노동개혁에 나섰다. 대처는 노조가 권력을 장악하던 노동시장을 개혁하고자 1980년부터 노조 결속력 강화에 기여한 ‘클로즈드 숍’(Closed shop·노조원 중에서만 직원을 채용하기로 단체협약을 맺는 제도)을 단계적으로 약화시켜 이를 1988년에 전면 폐지하는 등 다섯 차례에 걸쳐 노동법을 개정했다.

대처는 1984년 탄광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자 9500여 명을 연행하는 등 개혁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후 영국은 민간 부문이 활기를 찾아 1990년대 들어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세를 보였다. 또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해외 직접투자 유입 증가 등의 긍정적 성과를 가져왔다. ‘철의 여인’이란 말을 들었던 대처는 노동개혁 덕분에 영국병을 해결하는 업적을 남겼다.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의 강력한 국가개조 개혁에 야당인 노동당은 반대의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한 채 노선과 정체성 문제로 내분에 휩싸여 있다. 노동당은 무엇보다 차기 지도자 선거로 정신이 없다. 지난 총선 패배로 사임한 에드 밀리밴드 전 당수의 후임을 뽑는 선거는 8월 중순 시작돼 오는 9월 10일 끝난다. 새 당수 자리를 놓고 후보 4명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앤디 버냄(45) 의원, 이베트 쿠퍼(46·여성) 의원, 리즈 켄달(44·여성) 의원, 제레미 코빈(66) 의원 등이다. 당수에 도전하려면 최소 35명의 의원들로부터 지지 서명을 얻어야 하는데 버냄 의원이 가장 많은 68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최근 여론조사업체 유고브가 노동당 당원을 대상으로 차기 당수 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코빈의원은 43%의 지지를 얻어 다른 후보 3명을 17%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32년째 국회의원으로 활동중인 코빈 의원은 노동당 내에서도 ‘골수 좌파’라는 말을 들어왔다.

코빈 의원은 민영화된 철도·에너지 기업을 다시 국유화하자고 주장한다. 캐머런 총리의 복지개혁에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특히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을 대폭 올려 그 돈으로 무상교육을 하자고 주장한다. 등록금 폭등으로 빚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데 100억 파운드(18조 원)의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코빈이 당수로 선출되면 노동당이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와 같은 반(反)긴축정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빈 의원은 핵무기 철폐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전기기사의 아들인 코빈 의원은 공공부문 노조단체인 옛 전국공무원노조(NUPE)의 상임 활동가로 일한 노조 출신 정치인이다. 코빈 의원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처럼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세 번 결혼한 코빈 의원은 아들을 평범한 학교가 아니라 수월성 교육을 시키는 중학교에 보내겠다는 두 번째 아내와 싸웠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이혼하기도 했다.

‘제 3의 길’ 창안자 토니 블레어의 탄식

코빈 의원이 차기 노동당 당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블레어 전 총리(1997년부터 2007년까지 세 차례 총리 연임)는 “낡은 좌파 공약으로는 노동당이 더 이상 승리할 수 없다”면서 “보수당은 극단적인 좌파라서 쉬운 상대인 코빈 의원의 당선을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서슴지 않고 했다. 블레어 전 총리는 국유화와 소득 분배 같은 전통적 좌파 공약을 과감히 버리고 우파의 가치관을 포용하는 ‘신(新)노동당’ 노선으로 세 차례 연속 총선에서 승리한 바 있다. 블레어 전 총리는 “1979년 총선 이후 노동당이 대처 전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에 네 번 연속 선거에서 진 이유는 노동당 스스로가 전통 좌파를 고집했기 때문”이라며 “노동당은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 안주하려는 충동을 거부하고 제발 미래로 나아가라”고 호소했다. 블레어 전 총리의 고언(苦言)처럼 지난 총선에서 당시 전통 좌파인 밀리밴드 당수가 복지 혜택 확대를 내세우는 바람에 중도층이 대거 등을 돌려 노동당이 패배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런데도 차기 지도자로 밀리밴드 전 당수 보다 더 강경한 인물이 당수가 될 경우 노동당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게 블레어 전 총리의 우려다.

노동당이 앞으로 좌향좌를 계속할 경우 블레어 전 총리의 지적처럼 노동당이 정권을 잡기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 또 코빈 의원이 당수가 될 경우 노동당이 정체성을 놓고 분열할 수도 있다. 아무튼 노동당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캐머런 총리와 보수당 정부는 앞으로 강력한 복지·노동개혁을 통해 ‘제2의 영국병’ 치유에 총력을 기울일 게 분명하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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