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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재구성] “5년 지난 지금도 초인종 소리에 심장이 철렁” 

유명 국악인의 딸, 수백억 원 자산가 남편 정신병원에 감금… 법원 1심에서 아내 유죄 인정,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수백억 원대 자산가 A(59)씨는 5년 전, 유명 국악인의 딸인 아내 B(51)씨에 의해 두 번씩이나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다가 극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A씨는 B씨를 상대로 이혼청구소송을 제기했고 B씨는 맞소송을 냈다. 1·2심에 이어 대법원은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B씨는 재산분할 23억8500만원, 위자료 4천만원과 늦둥이 아들(7)의 양육권을 2013년 11월 14일 대법원 선고를 통해 인정받았다. 그러자 A씨는 자신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B씨를 상대로 형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월 10일 1심 판결에서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320시간을 선고했다. 사실상 대법원의 이혼소송 판결을 뒤집은 셈이다.

▎수백억 원대 자산가인 A씨는 5년 전 아내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했다 탈출한 뒤 아내와의 소송을 벌였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A씨는 “택배기사에게 문 열어주기조차 겁이 난다”고 말했다.
2010년 5월 17일 오전 10시쯤, 한 남자가 A씨가 묵고 있던 경기 성남 분당의 한 오피스텔 문을 두드렸다. “관리실에서 잠시 점검할 게 있어서 왔다”는 말에 A씨는 별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당시 A씨와 B씨는 별거 중이었다.

건장한 남자 3명이 문을 박차고 들이닥치더니 욕설과 함께 A씨를 위협했다. 이들은 다짜고짜 A씨를 끌고 가려 했다. 폭행을 당할까 두려웠던 A씨는 “따라가겠다”며 그들을 안심시켰고, 잠시 뒤 구급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경기지역 한 병원에 강제로 입원하게 된 A씨는 감시를 피해 같은 병실의 옆 환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가까스로 지인과 연락이 닿은 A씨는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3일 뒤인 5월 20일 오후 2시에 퇴원할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도 잠시, A씨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병원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 이송요원으로 보이는 남자 2명이 A씨를 주차장으로 끌고가 구급차에 태운 것이다.

오후 4시쯤 충북의 한 병원에 도착한 A씨는 3층 폐쇄병동에 격리·수용됐다. 병원 측의 감시는 삼엄했고, 병실 창문은 온통 창살로 막혀 있었다.

“의사의 면담이나 진단도 없이 정체불명의 약을 강제로 먹어야 했습니다. 폭력배로 보이는 남자가 약을 삼켰는지 입을 벌려 확인까지 했고요. 그런데 그 약을 먹으면 술에 취한 듯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해졌어요.”

입원 이틀 후인 5월 22일 오전. A씨는 책에 있는 숫자를 하나씩 오린 뒤 밥알로 붙여 전화번호를 조합해서 옆 사람에게 전달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라고 부탁한 것이다. 하지만 감시원의 눈치를 살피던 옆 사람은 끝내 전화를 걸지 못했다. 입원 후 일정기간이 지난 사람에게 전화가 허용되긴 하지만 통화내용만은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죽겠구나’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탈출을 결심한 A씨는 그날 밤 10시쯤 조용히 흡연실로 이동했다. 한여름 소나기만큼이나 요란한 빗소리는 감시를 따돌리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노트의 용수철을 뽑아 열쇠를 만든 뒤 흡연실 접이식 문을 열었다. 3층이었지만 조금도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눈에 띌까 봐 환자복을 벗어 가슴에 안은 채 택시를 잡아타고 “서울로 갑시다”를 외친 그는 고속도로를 30분쯤 달린 뒤 운전기사의 휴대폰을 빌려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A씨의 악몽 같은 6일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늦둥이 아들 양육권은 B씨에게 넘어가고


이처럼 ‘막장드라마’에서나 봤을 법한 일이 현실에서 가능했던 것은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 때문이다.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부양의무가 있는 부모·자녀 또는 부부 중 일방 등) 2명이 동의하고, 입원이 필요하다는 정신과전문의의 진단이 있으면 환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A씨의 강제입원에 동의한 이는 아내 B씨와 A씨의 어머니였다. B씨는 A씨가 신경정신과에서 알코올의존증 치료를 받아온 점을 이용해 시어머니를 설득했다. 이와 관련 A씨는 “외삼촌이 알코올중독으로 심신이 몹시 피폐해졌다. 막냇동생이 술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했던 어머니였기에 B씨의 설득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B씨와의 결혼생활 기간 신체적 접촉은 다섯 번 정도밖에 없었다. B씨는 제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필요한 약은 넣어주지 않고, 제가 묵고 있던 오피스텔에 불법 침입해 인감도장부터 가져간 사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씨의 주치의인 김정일 박사는 “A씨에게 경미한 알코올의존증이 있긴 했으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소견을 밝혔다.

반면 재판에서 B씨는 정신병원 강제입원은 아들을 걱정했던 시어머니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고, 알코올의존증과 폭행이 있었던 남편을 치료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고 주장했다. B씨는 남편의 폭행으로 인해 치아에 금이 가고,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고도 했다. <월간중앙>은 B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한 뒤 문자메시지를 남겼으나 끝내 회신은 없었다.


▎8월 5일 방송된 MBC <리얼스토리 눈>을 통해 재연된 장면.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7월 10일 1심 판결에서 B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320시간, A씨의 강제입원에 동참한 구급차 운전기사 C씨에게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법원은 양형 이유에 대해 “정신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 피해자를 위법하게 강제로 입원시켜 피해자의 신체 자유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피해자의 음주 및 폭력으로 피고인도 고통을 받은 부분이 있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의 정신병원 입원전력은 형사소송에 앞선 이혼소송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A씨의 이혼 청구에 맞소송을 낸 B씨는 재산분할 23억8500만원, 위자료 4천만원과 늦둥이 아들(7)의 양육권을 2013년 11월 14일 대법원 선고를 통해 인정받았다.

이에 앞서 서울고등법원 제3가사부는 2013년 7월 항소심 선고에서 양육권과 관련해 “원고(A씨)는 피고(B씨)는 원고와 혼인생활을 할 때 가사도우미를 두 명이나 두고도 사건본인(아들)에게 물 한 번 먹여본 적이 없고, 사건본인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전남편과의 사이에 낳은 딸도 잘못 양육해 중학교 때부터 벌써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게 하는 등 사건본인을 양육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반면 원고는 경제적으로 피고보다 넉넉하고 사건본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양육 의지를 갖고 있는 점에서 사건본인의 복지를 위해 원고가 양육자 및 친권자로 지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 주장 사실을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고, 경제적 능력이 자(子)의 양육조건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피고가 사건본인을 3년 넘게 양육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양육상태를 변경해야 할 만한 사정도 엿볼 수 없으므로 원고의 위 주장은 이유 없다”고 밝혔다.

입원전력(前歷)이 이혼소송에도 영향 미친 듯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던 충북지역의 정신병원을 다시 찾아간 A씨. 그는 난간 바로 위 창문의 높이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설명했다.
A씨는 “이혼소송에 앞서 형사소송의 1심 판결이 먼저 이뤄졌다면 고등법원의 판결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며 “정신병원 입원전력이 이혼소송에 불리하게 작용한 것만은 사실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혼소송 재판에서 B씨는 “결혼 후 두 달 뒤인 2007년 4월부터 2010년 5월까지 A씨가 통원치료를 받았음에도 음주습벽(習癖) 등이 나아지지 않자 배우자인 자신이 남편의 입원치료 필요성을 판단했을 뿐 아니라 시부모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사의 동의나 경찰관의 동행이 없었던 흠결에 대해서는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B씨 자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정당행위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법원은 형사소송 1심 판결 ‘피고인의 정당행위 주장 및 책임조각 주장에 대한 판단’과 관련해 “피고인(B씨)은 피해자(A씨)가 정신병원에 입원할 필요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피해자를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했다. 그러므로 절차상의 잘못을 알지 못한 데 대해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A씨의 변호인은 “이혼소송 판결에서 A씨가 B씨에게 4천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判示)한 것만 봐도 정신병원 입원전력이 재판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며 “아내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으로 피해를 본 쪽은 A씨인데도 법원은 ‘정신이상자가 어떻게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겠느냐’며 양육권을 B씨에게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의 변호인은 이어 “이혼소송은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사건이지만 지난 7월 10일 형사소송 1심 판결에서 사실상 이를 뒤집은 셈”이라며 “형사소송 판결이 먼저 났다면 이혼소송 결과, 특히 양육권과 관련한 판결도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형사소송 1심 판결의 ‘범죄사실’에는 “(B씨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해서라도 혼인생활을 계속하고 싶다고 거짓말을 해 피해자(A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데 A씨의 어머니가 동의하게 했다. 그리고 정신병원의 의사에게도 피해자의 증상을 사실과 다르거나 사실보다 과장해 설명함으로써 강제로라도 입원시켜 치료할 필요성이 있는 것처럼 거짓말을 해 피해자를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시했다.

정신병원 입원 후 환자가 퇴원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보호의무자가 동의하거나 6개월마다 열리는 기초자치단체 산하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병원 입장에서는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입원환자 1인당 월 150만원가량을 받는 만큼, 현실적으로 환자 퇴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사라질까


환자 스스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하려면 2008년부터 시행된 인신보호법에 따라 구제청구를 해야 한다. 수용시설에 갇힌 사람이 수용 사유가 없어졌는데도 풀려나지 못할 경우 법원에 직접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하지만 법원이 청구를 받아들이는 비율은 7.5%에 불과하다.

지난해 5월 서울중앙지법은 정신보건법 제24조 1항과 2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재판부는 “정신질환자의 신체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적법 절차의 원칙에 반하는 위헌적 조항이라는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법원행정처는 최근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제도 개선과 가정법원의 역할’에 관한 연구 용역업체 선정에 나섰다. 오는 9월부터 5개월간 연구를 맡겨 이르면 2015년 상반기쯤 정신보건법 개정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 시 가정법원이 사법심사를 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정신보건법의 허술한 규정을 악용, 가족들이 의사 한 명을 속이거나 꾀어 가족 중 일원을 정신병원에 사실상 감금시키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 수는 7만792명으로 이 가운데 67.7%인 4만8천 명가량이 비자의(非自意·강제) 입원으로 집계됐다. 그중에서도 가족에 의한 강제입원환자가 4만3675명(61.7%)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정신병원 입원환자 수가 2011년 6만7223명, 2012년 6만9425명, 2013년 6만9511명으로 매년 증가추세인 점을 감안하면, 강제입원환자는 연간 5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는 7월 15일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해 “헌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반하고 정신질환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의 자기결정권과 신체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위헌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선진국에선 정신병원 강제입원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일부 주(州)에서 법원이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 독일은 강제입원 및 강제치료에 대해 법원의 사전 사법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심사과정에서 환자에게 항변할 기회를 부여하고 절차보좌인도 선임해준다. 호주는 준(準)사법기관인 정신보건심판원이 강제입원 명령뿐만 아니라 입원환자들의 입원 지속 여부에 대해 재검토할 수 있다.

법무법인 ‘도시’의 이금규 대표변호사는 “현행 정신보건법 제24조는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호의무자의 동의 및 정신과 전문의의 판단만으로도 강제 입원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만큼 위헌적 요소가 크다고 할 수 있다”며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 강제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에서 보호의무자와 의료인 외에도 법원에 의한 사전심사 절차를 둬야 한다. 또한 입원기간을 축소시키고 주기적으로 정신보건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퇴원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야 악용 사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경호 월간중앙 기자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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