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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공동기획②] 기업기업의 생존조건, 규제부터 풀어라 

‘규제의 섬’에서 기업활동의 오아시스로! 

‘반세기 족쇄’ 수도권규제에 기업들, 지방 아닌 해외로 이전 증가일로 … 국가 경쟁력 강화 위해서는 불합리 규제 과감히 풀어야
수도권은 ‘규제의 천국’이다. 수도권특별법, 그린벨트, 농지, 상수원, 군사보호구역 등 다섯 겹의 빗장이 수십 년째 수도권을 묶어두고 있다. 기업활동에 국경과 이념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유독 수도권규제는 예외로 남아 있다. 국가가 주도하는 계획경제시대의 산물은 이미 생명력을 잃었다. 존재의 이유가 사라진 규제는 기업활동을 가로막는 ‘손톱 밑의 대못’일 뿐이다. 수도권의 경쟁력은 국가 전체의 경쟁력으로 이어진다. 규제로 둘러싸여 섬이 되어버린 수도권에서 기업의 생존조건을 점검한다.


▎경기도 이천시의 SK하이닉스 공장 안에는 얼마 전까지 넓은 밭이 있었다. 수도권 규제에 가로막혀 공장을 짓지 못한 탓이다. 반도체산업의 전초기지가 쓸모 없는 땅으로 버려진 지 8년. 올해 1월에야 비로소 공장 신축공사가 시작됐다. SK하이닉스의 사례는 불합리한 규제로 발목이 묶인 수도권 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5월 경기도 이천시는 541억원의 이례적인 세금 수입을 올렸다.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실적을 거둔 SK하이닉스가 법인 지방소득세 541억8천만원을 납부한 것이다. 하이닉스가 이천시에 둥지를 튼 이후 19년 만의 경사였다. 이천시의 올해 예산이 약 5700여 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연간 재정의 10분의 1이 더 늘어난 것이다. 하이닉스는 1996년 107억원의 세금을 납부한 뒤로 적자가 계속돼 이천시에 세금을 한푼도 내지 못했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잘 키운 자식이 첫 월급을 탔다며 용돈을 내밀었을 때 느꼈던 보람 같았다”고 했다.

조 시장이 이를 감격하면서 받아들인 건 비단 오랜만에 얻은 금전적 수익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8년 동안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규제의 벽이 드디어 허물어졌다는 후련함이 더 크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이 시작된 것이다. 이번 공장 증설은 앞으로 8년간 15조원을 투자하는 대형 사업이다. 이 사업이 첫 삽을 뜨기까지 무려 8년이 걸렸다. 8년 전 이뤄졌다면 지금쯤 증설이 완료돼 지역경제 활성화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지난 8년간 이천지역에서 SK하이닉스를 둘러싸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8년간에 걸친 이천시민의 발자취는 118쪽 분량의 로 지난 6월 발간됐다.

SK하이닉스 공장 증설허가 받는 데만 7년 걸려


▎2007년 4월 12일 서울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을 불허한 정부에 항의하는 상경시위 도중 단체로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천 시민과 경기도 등의 끈질긴 노력 끝에 2013년 12월 정부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을 허용했다.
발단은 200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의 구리공정 생산라인 전환과 공장 신설을 불허한다고 발표했다. 하이닉스는 2010년까지 이천공장에 13조5천억원을 들여 생산라인 3개를 증설하는 계획안을 정부에 제출했었다. 반도체 생산 비중 세계 9위, 연간 실적 7조9천억원, 종업원 수만 9500여 명에 달했던 하이닉스는 이천 지역 경제의 중추였다.

하지만 정부 입장은 강경했다. 정부가 내세운 건 수도권규제였다.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이천시는 자연보전지역으로 개발이 제한돼 있었다. 또 환경정책기본법상 공장 폐수에 섞여 나오는 구리는 배출시설 입지가 불가능했다. 공장 증설이 무산되면 기업의 시장 대응능력이 떨어져 경쟁력에서 뒤쳐질 테고, 이는 지역경제의 타격으로 이어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시와 지역사회는 한 목소리로 정부의 결정을 규탄했다. 2007년 1월 이천 시내에서 열린 하이닉스 공장 증설을 위한 범시민 총궐기대회에는 1만2천 명이 넘는 시민이 참여했다. 조용한 농촌지역인 이천에서 이렇게 대규모 집회가 열린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강경했다. 1월 24일에는 국가균형발전 논리를 내세워 불허 입장을 재확인했다. 시민들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몰려갔다. 상경투쟁에 나선 시민은 무려 4400여 명이었다. 당시 시장이었던 조병돈 시장을 비롯해 릴레이 삭발투쟁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됐다. 수원종합운동장에서 경기도민 궐기대회가 열리고, 경제계와 정치권, 노동계가 똘똘 뭉쳐 중앙정부를 압박했다. 하지만 정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조 시장은 “정부로선 결정을 번복하면 국가균형발전 정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졌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공장 증설에 실패한 하이닉스는 충북 청주에 반도체 공장을 세워 2008년 완공했다. 이천공장은 수도권규제에 묶여 10년 넘도록 새 공장을 짓지 못해 설비가 낡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SK하이닉스가 경쟁력을 잃고 장기 침체에 빠진 것도 당시 공장 증설 시기를 놓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08년 8월 하이닉스 소유의 6만㎡ 농지가 공업지역으로 변경되면서 공장 증설 가능성이 되살아났다. 문제는 여전히 구리 배출이었다. 공장 배출수를 환경기준에 맞추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경기도가 이천시와 함께 구리공정 전환을 허용하는 법령 개정에 나섰다. 경기지역 국회의원들도 힘을 보탰다. 3년간 끈질긴 ‘입법투쟁’이 이어졌다. 끝내 2010년 환경정책기본법이 개정되면서 공장 증설을 가로막았던 거대한 담장이 허물어졌다.

2013년 12월 정부는 SK하이닉스 이천 공장 증설을 허용했다. 7년 간의 대정부 투쟁이 빛을 본 순간이었다. SK측은 시민들의 노력에 화답하듯 곧바로 2014년 1월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같은 해 4월에는 이천시와 ‘동반성장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2021년까지 SK하이닉스가 15조원을 투자해 제조시설과 유틸리티 시설, 자재창고, 기숙사 등을 건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장 증설의 지역경제 파급 효과가 나타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6월 자재창고를 완공한 데 이어 공장 증설도 올해 4월 2-1차분이 마무리됐다. 기숙사는 10월 준공을 앞두고 있다. 이천시 집계에 따르면 공장 증설과 관련해 직·간접으로 생긴 일자리는 모두 3500여 개로 추산된다. 연구직과 사무직, 도급 인력 등을 포함한 수다. 2013년 11월 서울대 경제연구소는 SK하이닉스 증설로 향후 7년 간 55조원의 생산 유발효과와 18조원의 부가가치 효과, 21만 명의 고용창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 시장은 “올해 SK하이닉스가 납부한 세금은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이천의 대표 기업으로써 지역경제에 미칠 긍정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문제는 수도권규제의 불합리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했다기보다 가능한 것을 그동안 불가능하게 억눌렀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환경규제를 내세운 건 사실 핑계에 가깝다. 속내는 비수도권 지역의 반발을 의식한 정치적 판단이 짙게 깔려있었다. SK하이닉스의 공장 증설 문제는 균형발전을 내세워 공공기관과 기업의 지방 이전을 추진하던 정부 정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품 보관창고도 못 짓고 허용면적 고작 300평


SK하이닉스의 경우 거대 기업이어서 시민사회와 정치권, 경제계의 든든한 협력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여전히 각종 규제에 묶여 투자 기회를 놓치고 경쟁력을 상실한 중·소 규모의 수도권 기업들이 숱하게 널려 있다. 경기도가 수년 동안 수집해 정리한 <규제 피해 사례집>에 실린 사례들은 누구를 위한 규제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한 규제들로 가득하다. 마치 수도권이 규제의 바다에 떠있는 거대한 섬처럼 보일 정도다.

대표적인 불합리 규제는 공업용지 조성면적을 6만㎡로 제한한 수도권정비계획법과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 때문에 기업들이 입는 피해는 상당하다.

경기도 A시에 있는 L사는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제조공장을 늘리려다 규제에 묶여 투자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보전권역 안에서 공장 신·증설 시 공장건축면적을 1천㎡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 때문이다. 1천㎡(약 300평)는 전원주택 두세 채를 지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크기다. 웨이퍼 제조 설비를 갖추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L사 관계자는 “제조공정상 1천㎡ 안에서 공장을 짓는 게 불가능한데도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하니, 기업하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었다”고 했다.

간장으로 유명한 샘표식품은 수출계약을 따내고도 저장 시설을 늘리지 못해 포기해야 했다. 샘표식품은 네슬레, 유니레버, 델몬트와 같은 다국적 기업과 간장 등 장류 수출계약을 따냈지만 대부분의 수출 물량을 스스로 포기해야 했다. 물량을 맞추려면 저장시설을 늘려야 하는데 1천㎡ 이내 규제 때문에 정상적인 시설을 갖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주시에 있는 한국코카콜라도 생산량이 늘어 제조·저장시설 1만 9천㎡가 더 필요하지만 수정법상 6만㎡ 제한 규정 때문에 증설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업체는 수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여주에 공장을 설립했다. 공장 증설용 부지도 9만9천여㎡로 충분한 상태다. 임시방편으로 제품을 야외에 쌓아 두거나 천막으로 만든 간이 창고에 보관하는 탓에 겨울에는 제품이 동파하고, 여름에는 변질돼 연간 2억원가량의 재고 손실을 보고 있다.

요구르트제조업체인 H사는 더 황당한 경우다. H사는 2013년 8월 경기 광주공장 폐쇄명령을 받았다. 요구르트 제조과정에서 배출된 폐수에서 소량의 폴리페놀이 검출되어 서다. 폴리페놀은 노화방지와 항암효과를 가진 물질로 알려져 있다. 딸기와 가지, 포도, 팥 등 붉고 검은 식물에 다량 함유된 유익한 물질이다. 그런데 법적으로는 독성물질인 페놀과 함께 배출금지 물질로 분류돼 있다. 수질 및 수질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에는 검출되어선 안 되는 물질을 ‘페놀류’라고 폭넓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내부자료에 따르면 수도권규제로 인한 투자 지연업체 77개사의 투자 지연액은 2조9천억원으로 88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 수 있는 규모다. 이들 중 54개사는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기업인데도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 상태다.

수도권규제는 기업 성장 막는 현대판 ‘전족’


▎경기도 여주시의 코카콜라 여주공장은 제품 출하량이 늘어 저장시설이 부족한데도 수도권 규제에 묶여 창고 등 공장 증설이 불가능하다. 임시방편으로 천막을 지어 보관하지만 동파와 변질 등 해마다 2억원가량의 손실을 보고 있다.
활용 가치가 전혀 없는 국공유지가 ‘알박기’처럼 기업활동을 방해한 경우도 있다. 광주시에서 군용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H사의 경우다. H사는 공장의 진출입로를 새로 만들려다 포기했다. 공장 입구가 좁은 골목길 안에 있어서 컨테이너 트럭의 통행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안전사고의 위험도 컸다. 진입로를 만들 위치에는 공장과 도로 사이에 폭 3m쯤 되는 국유지가 놓여 있었다. 약 150여㎡에 불과해 인근 주민이 텃밭으로 활용할 뿐 전혀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H사는 이 땅을 매입 신청했다. 하지만 불허됐다. 상수원보호구역 내의 국유지는 특별대책지역의 국공유지 매각제한 기준을 적용해 2003년 5월 이전부터 장기간 임대 사용하는 경우에만 매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업체 관계자는 “활용할 수도 없는 땅을 단지 불합리한 규정 때문에 그대로 두면서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규제의 벽에 가로막혀 결국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는 그저 한 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국가경쟁력과 외국기업의 우리나라에 대한 신뢰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글로벌 백신 전문기업이 독감 백신 공장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과 충청도에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한 적이 있다. 당시 이 회사의 백신 본부가 있는 벨기에에서 책임자들이 방한해 정부 관계자와 면담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각종 규제를 내세워 경기도와 충청지역 대신 전남 화순을 건립지역으로 제안했다. 결국 이 업체는 한국을 포기하고 싱가포르에 단기 3억 달러, 장기적으로 10억 달러 규모의 백신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수도권을 규제하면 지방으로 기업이 갈 것’이란 단순한 기대가 헛된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기도에 따르면 2009년부터 경기도 자연보전권역 내 72개 기업들이 규제 때문에 투자를 포기한 금액은 4662억원에 달한다. 기업인들은 이처럼 과도한 수도권규제를 ‘현대판 전족’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어낸 근원은 1982년 12월에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수정법)이다. 이 법과 함께 대대적인 수도권규제가 시작됐다. 지방이 황폐화하고 수도권으로 기업과 인구가 집중돼 정부의 강력한 통제 정책이 필요했던 시기다. 수정법은 공장의 신·증설, 대형 건물 신축은 물론 주민들의 사유재산권까지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규제로 자리 잡았다. 수정법은 수도권을 ▷과밀억제 ▷성장관리 ▷자연보전 3개 권역으로 나눈다. 특히 자연보전권역의 규제는 거의 공장 증설이 불가능할 정도로 까다롭다. 기존 공장과 새로 짓는 공장 면적의 합산 규모가 6만㎡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데, 공장 증설을 원하는 대부분의 기업이 이 기준을 넘어선다. 자연보전권역의 경우 대기업 신·증설이 금지되는데, 경기동부 8개 시·군이 이 권역에 포함된다. 경기도 전체 면적의 37.7%가 자연보전권역에 해당한다. 또 대학의 신·증설도 금지되고, 공업용지 조성 등 대규모개발사업 제한과 공장총량제를 통해 공업입지도 제한을 받는다.

1990년에 제정된 산업집적활성화법(산집법)도 대표적인 규제다. 산집법 상 자연보전지역의 공장 신·증설 기준으로 중소기업은 3천㎡, 대기업은 1천㎡로 제한하고 있다. 대기업은 공장 신·증설을 하지 말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규제가 생기기 전에 확보해 놓은 공장부지도 이 법의 적용을 받아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 김은경 경기개발연구원 전략연구센터장은 “수도권 난개발을 막겠다는 취지로 도입한 규제가 오히려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6년간 규제로 인한 손실액 3조원 넘어


▎정부는 지난해 11월 규제개혁을 정부의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20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국무조정실과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은 ‘찾아가는 규제개혁 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규제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한국경제연구원(KERI)이 지난 6월 10일 발표한 ‘10·30 수도권 규제 완화조치 이후 공장입지 투자계획 변동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6년 동안 수도권규제 때문에 기업이 공장 신·증설 투자시기를 놓쳐 발생한 경제적 손실이 3조3329억원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지난 2008년 10월 30일 단행한 수도권규제 완화조치 당시 경기도와 전경련이 조사한 161개 기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해 나온 결과다. 당시 조사대상 기업들의 2009~2014년 투자 현황을 바탕으로 했다.

수도권규제 완화조치 시행 이후 6년간 공장 신·증설 투자 시기를 놓쳐 입은 경제적 손실은 3조3329억원, 투자 철회 등으로 사라진 일자리 수는 1만2059개였다. 기업들은 투자시기를 놓치게 된 주요인으로 수도권 입지규제(54.2%)를 꼽았다. 특히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인 이천·광주·가평 등의 경우 공장설립 투자가 보류되면서 2조2398억원의 손실이 난 것으로 조사됐다. 수도권규제 때문에 투자계획을 철회하거나 공장을 해외로 이전한 기업은 28개였다.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은 9개에 불과했다. 수도권규제를 강화하면 기업들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란 ‘풍선효과’가 현실에선 거의 실효성이 없었다는 의미다. 또 수도권 지역의 외국인 직접투자액(IFDI)보다 수도권에서 빠져나간 해외직접투자액(OFDI)이 2.6배나 많았다. 순자본유출액만 757억7600만 달러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양금승 한경연 산업연구실장은 “지역균형 발전논리에 따른 규제 위주의 수도권 정책이 부작용만 커지고 있다”며 “지방발전과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를 통한 상생발전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도에 적용되는 각종 규제를 모두 합치면 무려 6952개다. 인접한 강원도와 충청도에 비해 두 배가 넘는다. 워낙 많은 규제가 겹겹이 쌓여있다 보니 실무 공무원들조차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어떤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같은 지역에서도 실무자에 따라 해석과 조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해 12월 말 발표한 전국 규제지도 및 기업환경순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에 국토부가 계획관리지역 내 공장입지 업종제한규정을 폐지했는데도 김포시의 경우 업무처리지침만으로 일부 업종 공장 허가를 제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벨트 이중규제 … 축사 허용하고 가축 사육 금지


▎개발행위가 제한된 그린벨트는 녹지는 사라지고 축사와 비닐하우스 창고 등이 난립하는 곳으로 변질됐다. 불합리한 규제를 고치기보다 새로운 규제로 덧칠하면서 44년 전 도입 당시의 본래 취지는 희미해졌다.
한국경제연구원 임상준 초빙연구원은 ‘수도권규제의 쟁점과 정책방향’ 보고서에서 “지역별로 1인당 생산과 소비수준은 수도권과 지방 간에 현저한 격차를 발견하기 어렵다”며 “지금과 같은 개방경제하에서 수도권을 규제한다고 해서 지방이 발전하지는 않으며, 규제받는 자본은 해외로 유출돼 오히려 국가경제의 하향평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처럼 전문가들의 수도권규제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제기돼왔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앞서 말한 산집법상 공장 신·증설에 있어서 대기업의 면적 제한을 강화하고 중소기업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허용하는 것도 중소형 공장의 난립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수정법 상 자연보전권역은 한강수계의 수질과 녹지를 보전하기 위해 지정한 권역인데, 대규모 공장의 신·증설을 차단하면서도 소규모 공장은 허가를 내주다 보니 기업의 영세화와 소규모화를 불러왔다.

경기도에 따르면 자연보전권역 규제로 투자가 중단·지연된 규모는 2002년 기준 64개 기업, 1조6940억원에 이른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자연보전권역 내 공업용지조성사업 허용면적을 6만㎡에서 100만㎡로 대폭 확대하고, 폐수처리기준 강화를 전제로 한 공장입지 허용을 담은 수정법 개정안이 지난 2010년 제출됐지만 18대 국회 회기가 만료되면서 자동 폐기됐다.

그린벨트 관련 규제도 지난 44년간 수도권을 옥죄어왔다. 경기지역 21개 시·군에 있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는 모두 1175㎢로 경기도 전체 면적의 11.6%를 차지한다. 여의도 면적(8.4㎢)의 140배, 서울시 면적의 두 배에 이른다. 전국의 그린벨트 면적(3868㎢) 중 30.3%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기지역의 그린벨트는 서울시 중심으로부터 반경 약 20㎞ 안팎을 원의 형태로 둘러싸고 있다. 서울의 팽창과 난개발을 방지하려는 취지에서다. 문제는 그린벨트가 특정 지역에 집중돼있다는 점이다. 하남시는 전체 면적의 80%가 그린벨트로 묶여있고 시흥 70%, 구리 65%, 광명 65%, 고양 45%, 남양주 50% 등 지자체 면적의 절반 이상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과천시는 무려 92%가 그린벨트다.

그린벨트 규제의 필요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지만 규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한다. 난개발을 막으려다 오히려 난개발이 심각해진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하남시는 그린벨트 규제의 불합리성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그린벨트 안에 지은 비닐하우스와 축사, 창고 등 불법 건축물 때문에 녹지가 황폐해지고 있다. 그린벨트 규제가 도입된 1971년 당시 하남시의 그린벨트 비율은 98.4%였다. 사실상 시의 거의 모든 땅이 그린벨트로 묶인 것이다. 주민들은 당장 생계를 이을 수단이 막막해졌다. 정부도 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1998년부터 2001년까지 한시적으로 축사 건축을 허용했다. 하남시는 현재 약 5천 동의 축사가 그린벨트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축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오히려 환경 훼손이 더 심각해졌다. 그린벨트에 녹지는 없고 창고만 늘어선 상황이 된 것이다. 축사에서 나오는 오폐수로 인한 환경오염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하남시는 오수·분뇨 및 축산폐수의 처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2년 1월 그린벨트 지역에서 가축 사육을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한다. 축사에서 가축을 기르지 못하게 한 억지였다.

44년 만에 불합리 규제 개선 첫걸음 떼


결국 주민들은 축사를 창고나 버섯 등 작물 재배용으로 용도를 바꿔야 했다. 용도변경은 불법이었지만 주민들이 달리 선택할 방법은 많지 않았다. 3.3㎡당 8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내고, 검찰에 고발을 당하면서도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생업이기 때문이다. 그린벨트의 축사에서 콩나물을 재배하는 한 주민은 “하남시에서 농사짓는 사람 중 전과자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규제가 잘못됐으면 풀어주고서 먹고 살 길을 마련하게 해줘야 하는데 잘못된 걸 알면서도 그대로 두고 다른 규제를 또 씌우는 게 과연 정당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도 관계자는 “그린벨트 지정부터 축사 금지 조례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고치기보다 새로운 규제로 덧입혀 억누르는 식으로 정책이 이뤄져 왔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최근 들어 정부가 불합리한 규제에 대해 칼을 빼 들고 강도 높은 개선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 5월 6일 열린 제3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 국토교통부는 1971년에 지정된 그린벨트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개발제한구역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그린벨트 지정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국민생활의 편익을 위해 최소한의 시설로 허가권자의 승인을 받아 개발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지역특산물 가공·판매·체험 시설을 허용하고 취락지구 내 음식점은 건축규제를 풀어주는 내용이다. 시·도지사가 해제할 수 있는 면적은 30만㎡ 이하다. 과천, 광명, 하남시 지역이 최대 수혜지로 떠오른다. 미니택지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등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조치는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과 해제지침 개정을 거쳐 9월 이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수도권규제 완화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주요 국가들이 산업 성장기에 수도권규제를 시행했다. 영국은 1944년 ‘대런던 계획(Greater London Plan)’을 세울 때 수도권 규제 정책을 포함시켰다. 런던 중심부로부터 반경 30마일 이내의 지역을 시가중심지·교외지대·녹지대·주변지대의 4개 지구로 나누고 중심부에 집중되어 있는 인구와 산업을 녹지대 바깥의 뉴타운으로 분산하는 것으로 골자로 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 정책과 형태가 비슷하다. 이 계획에 따라 런던 근교에 여러 개의 위성신도시가 건설돼 인구와 산업이 증가했지만 중심시가지의 인구가 빠져나가 공동화하는 ‘도넛 현상’이 나타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일본은 1952년 ‘수도권 기성시가지의 공업 등 제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도쿄에 공장과 대학의 신설을 제한했다. 우리나라의 수도권규제정책은 일본식 정책모델을 도입했다. 일본도 그러나 영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이 쇠퇴하고 경기가 나빠지자 규제를 혁파하는 것으로 정책방향을 틀었다. 영국은 대표적인 규제인 ‘사무실개발허가제’ 등을 1979년 폐지한 데 이어 1981년에 IDC, ODP 등의 규제를 연달아 폐지했다. 일본은 2002년과 2006년에 각각 ‘공장 등 제한법’과 ‘공업재배치촉진법’을 폐지했다. 프랑스도 1982년부터 파리 주변 수도권 공장에 대한 과밀부담금을 제외했다.

이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우수한 인력 확보와 산학연 네트워크 형성에 대도시권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수도권 및 비수도권 투자시 소득증대액 비교 분석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과 강원권, 경북권에 각각 1천억 원씩 투자했을 경우 전국적으로 가장 고르게 소득증대를 가져오는 투자지역이 수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프 참조)

정부도 수도권 정책전환과 규제 개선을 여러 차례 약속한 적이 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수도권발전 종합대책’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과 공공기관 지방이전의 대가로 정비발전지구를 도입하고 수도권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지역상생발전기금 조성과 추가적인 규제완화 정책 추진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과밀억제·성장관리권역에서의 대기업 신·증설과 첨단업종 증설이 허용되고 접경지역에 대한 지원기금이 조성됐다. 그러나 정비발전지구 도입과 수도권정비권역 개편, 자연보전권역 규제 개선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도권·비수도권 나눈 사이 기업들 해외로 떠나”


▎지난해 9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규제개혁특별법 공청회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이 패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경기도는 수도권규제 개선이 이뤄지면 파급효과가 막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해 1월 경기도에 제출한 정책제안 보고서(수도권규제현황과 경기도 대응방안)에 따르면 수도권규제가 완화됐을 때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은 417개 사로 조사됐다. 이들의 투자액 규모는 67조504억원에 이르고, 14만7천 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

전경련이 실시한 기업실태조사에서도 수도권규제가 완화되면 법인세수 증가액이 3조9천억원, 신규 일자리 40만 2천여 개가 창출된다고 분석했다. 경기연구원의 자체 조사로는 경기도 내 투자가 10% 증가하면 경기도의 지역총생산(GRDP)이 3% 증가하고 국가 전체 GRDP는 5%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수도권규제 완화에 대한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비수도권 지방의 경우 지방분권 정책의 약화를 우려한다. 수도권규제가 사라지면 기업과 인구가 다시 수도권으로 집중될 거란 걱정이다. 이에 대해 경기연은 광역경제권에 기반한 다핵주의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각 광역경제권의 특성에 따른 산업을 집약화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수도권규제의 모델인 일본의 경우도 다핵분산형으로 규제 정책과 공간구조를 바꿔가고 있다. 경기연 이회회 선임연구원은 “시대변화와 상관없이 빗장처럼 내건 규제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각종 지표와 성과를 분석·평가해 규제 완급을 조절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들의 참여와 합의를 통해 상생을 도출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는 규제개혁의 적기다. 정부도 대대적인 규제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선 불합리 규제 1순위로 꼽히는 수도권규제 개선이 가장 급선무다.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대해 서동원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장은 “수도권규제 완화는 수도권과 지방 간 이해상충의 문제로 보기보다 한국과 외국 간 경쟁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0년 전 대외개방이 안 된 상황에서는 국내에서 제로섬게임으로 수도권 아니면 지방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며 “기업의 경쟁력과 지역 및 국가경제 기여도를 놓고 평가해야지 무조건 수도권은 안 되고 지방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기업을 설득하기보다 되레 등을 돌리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길용 월간중앙 기자

201509호 (2015.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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