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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포커스] ‘사위 마약복용 논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운명 

‘설마 청와대가 나를 찍어낼까’ 

유동근 CBS노컷뉴스 기자
친박계, 김 대표로는 차기 대선 승리 어렵다며 독자후보 옹립 속내 비쳐… 내년 총선 현 지도부로 치를 수 없다는 회의론도 나와

▎역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김무성 대표는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 관철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64)의 공식 임기는 내년 5월까지다. 현재부터 임기 종료시점까지 사이에 4월 국회의원 총선거가 놓여 있다. 성공적인 공천권 행사와 총선 승리는 대권(大權) 가도를 향한 교두보다.

그의 앞날에 빨간불이 켜졌다.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구속된 사위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중 정치인으로서의 이미지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사법처리 과정에서의 외압 행사 여부도 대선에 도전하는 그를 두고두고 괴롭힐 공산이 크다.

벌써부터 친박(親朴·친박근혜) 진영은 김 대표의 대선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대통령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당 지지율이 40% 대인데 김 대표의 지지율은 20%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면서 “여권이 현재 상태로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권의 1위 주자 김 대표이지만 차기 대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른바 ‘김무성 불가론’이다. 윤 의원은 나아가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들 중에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이 영남에도, 충청에도 있다”며 ‘친박 대망(待望)론’도 제기했다. 김 대표가 ‘사위 마약복용 논란’이라는 정치적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사이 친박계는 정치적 야심과 자신감을 거침없이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위기의 김무성’이란 말이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배경이다

김 대표 사위 이상균 씨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15차례 필로폰과 코카인 등 마약을 투약했다. 김 대표의 차녀 현경(32) 씨의 지난 8월 결혼과정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간 김 대표 측에서 공개해왔던 교제 과정과는 너무나도 다른 사위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김 대표 측에서 묘사했던 이씨는 충청 지역의 건실한 사업가였다. 현경 씨의 마음을 사기 위해 1년 가까이 청주에서 현경 씨의 일터인 수원대학교를 부지런히 오갔다고 했다. 자동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거의 매일 손수 운전해서 왔을 정도로 헌신적이었다고도 했다.

김무성, 그렇게 자세를 낮춰 왔건만…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새 지도부와 오찬을 함께하는 박근혜 대통령.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마주앉는 관례를 깨고 김태호 최고위원이 대통령 맞은편에 앉았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문에 적시된 죄질은 최악이었다. 부유층 자제들과 유흥주점을 드나들며 상습적으로 마약 파티를 즐긴 철없는 사업가 2세에 불과했다. 이씨의 마약 투약 행각이 뒤늦게 공개된 방식에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김 대표 사위의 부적절한 과거가 사정당국의 공개 의도 혹은 적어도 방조 분위기 속에서 드러났다는 점을 통해 현 정권이 그에 대해 갖는 반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의도가 있든 없든 간에 이 사안은 현재보다 미래에 초점에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의 대권 도전을 가정한다면 검증 항목이 추가된 셈이기 때문이다. 그간 김 대표에 대해 예상되는 검증 항목은 주로 과거사였다. 부친의 ‘친일’, 처가 선대의 ‘반(反) 민주’ 행각 등에 대한 의혹이 음양으로 나돌았다.

그러나 사위 이씨가 스캔들로 부각되면서 그 집안의 배경도 덩달아 공개되면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사돈을 맺게 된 신라건설 이준용 회장은 제주지역 개발사업 관련 우근민 전 제주지사에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김 대표가 지역 유력 사업가와 사돈관계를 맺게 된 점은 부산·경남 중심의 지역적 정체성에 충청 지역과의 인연이 더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각종 이권이 결부돼 있는 건설사업가의 사돈이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달가워하지 않는 여론도 존재할 수 있다.

사위 이씨 과거사에 대한 폭로가 뜬금없게 보이지만은 않는 것은 마침 김 대표와 집권세력인 친박이 공천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던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한 비박(非朴·비박근혜) 진영의 인사는 “청와대가 김 대표에 잽치고는 센 잽을 날렸다”고 표현했다. 의도가 깔린 친박 측의 공격이란 해석이 제기된다.

이전까지 김 대표와 친박계는 주로 완전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를 놓고 날을 세웠다.

총선 후보를 국민이 결정하는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는 김 대표가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카드로 처음 꺼내 들었다. 내년 총선까지 순풍을 불어준다면 자신이 주도한 공천을 토대로 대권에 도전하려는 야심이 깔려 있다.

하지만 친박(親朴·친박근혜) 진영에 짙게 드리운 정서는 ‘반(反)오픈프라이머리’ 정서다. 이는 점점 파고를 높이며 김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친박 의원들을 비롯해 청와대와 내각에 포진해 있는 계파 핵심인사들은 기회만 되면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論)’을 설파해왔다.

공천은 김 대표 측에서 ‘잔혹사’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고비마다 그의 발목을 잡아왔다. 그런 그가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다”는 일반적인 평가의 오픈프라이머리란 공천 제도를 통해 당내 의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장악했다. 이 힘으로 대권까지 가려 한다.

김 대표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친박은 전략공천을 관철하려 한다.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세게 이야기하면 할수록 친박은 더 세게 그를 압박했다. 같은 맥락에서 당 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마다 “교묘히 의전을 통해 홀대했다”는 설(說)이 흘러나왔다.

김 대표는 친박이 숨통을 조일 때마다 타협과 절충으로 위기를 빠져나왔다. 한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말까지 들었던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하면서 청와대를 향한 김 대표의 타협은 절정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친박, 김무성 ‘길들이기’에서 ‘쳐내기’로?


▎지난해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김무성 신임 당 대표(가운데)와 최고위원들이 당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끝까지 타협과 분권(分權)이 가능할까?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찬반(贊反)은 점점 타협이 불가능한 형국이 돼가고 있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상향식’이라면 친박이 주장하는 전략공천은 ‘하향식’이다. 서로 모순되는 요구를 상대방에게 하고 있는 셈이다.

그 때문에 결국 당권파인 김 대표와 집권세력인 청와대, 당내 친박이 공천권을 둘러싼 당쟁(黨爭)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김 대표의 둘째 사위 이상균(38) 씨가 마약 투약혐의로 구속됐던 전력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친박이 “김 대표에 대한 ‘길들이기’에서 ‘쳐내기’로 스탠스를 변경한 것 아니냐”는 불안한 관측까지 제기됐다.

김 대표 측근 인사는 “만약 친박이 김 대표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고 하면 공천권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친박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정작 큰 관심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지난 대선과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도운 인사들에 공천을 통해 보은(報恩)해야 하는 친박 의원들과 청와대 및 내각 인사들이 나서 호가호위(狐假虎威)해 오픈프라이머리 불가론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최근 대구 지역을 방문하며 지역 의원들의 참석을 애써 반대했던 점이 알려지면서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반감은 점점 더 실체가 뚜렷해지고 있다.

일단 박 대통령에 대해 ‘위헌적 권력자’란 오명을 덧씌우고 원내대표직을 던진 유승민 의원과 그의 측근 의원들이 대구 지역에 포진해 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반감일 것이란 해석이 먼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 초선의원은 “‘박 대통령이 대구 지역 전반을 물갈이하려 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유 의원뿐만 아니라 친박의원들까지 두려워하고 있다”며 당내 바닥 기류를 전했다. 비단 유 의원의 측근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에서부터 대통령의 ‘줄 세우기’가 시작됐기 때문에 친박도 안심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도 긴장할 수밖에 없다. 대구에 국한될 리도 만무하겠지만, 만약 박 대통령이 총선 공천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든다면 그 수단은 ‘전략공천’을 빌미로 한 하향식의 찍어내리기 공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 되면 오픈프라이머리는 그야말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진다. 김 대표가 친박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권을 장악했던 배경에는 현역 의원들이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해 갖는 ‘공천 편익’ 심리를 겨냥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그런 수단이 무산되면 김 대표는 당내 정치적 자산을 잃게 되고, 김 대표에 대한 당내 지지도 철회될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 때문에 김 대표는 최근까지도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고 공언하고 있다. 김 대표가 황진하 사무총장을 통해 오픈프라이머리 제도 마련의 수단으로 띄운 당내 국민공천태스크포스(TF)에서는 최근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대안은 없다고 말하고 다니라”는 지시가 하달됐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타협은 없다”는 스탠스를 견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천 문제에 대한 김 대표의 비타협적 자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의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가 지금까지 권력 투쟁의 국면에서 결국 박 대통령에 고개를 숙여 왔던 전례가 총선 공천에서도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여전하다. 게다가 김 대표는 사위 문제로 결정적인 발목을 잡힌 상태다.

‘신(新) 마키아벨리즘’ VS ‘깨갱 이론’


▎9월 7일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한 상인과 악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 대구 국회의원들은 초청받지 못했다.
여당 내 전략가로 꼽히는 한 중진 의원은 이를 기(氣)싸움과 관련된 ‘보스의 기질’로 풀이했다, 이른바 ‘깨갱 이론’이란 표현에 김 대표의 리더십을 압축했다.

무릇 보스 기질이란 밀리지 않는 기싸움에서 정치력이 싹튼다는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자들은 결국 권력이 언젠가 스스로에게 돌아올 것이란 강한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 권력자에게 결코 꼬리를 내리거나 ‘깨갱’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그랬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그랬다고도 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줄기차게 고개를 숙여왔기 때문에 한 번 정립된 관계가 변화되지 못할 것이란 전망으로 귀결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 대표가 당권을 장악한 뒤 야심 차게 계획했던 방중(訪中) 과정에서 있었던 ‘개헌’ 발언이다. 김 대표는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가 귀국 뒤 박 대통령으로부터 된서리를 맞았고, 결국 얼마 못 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당권을 장악한 뒤에도 박 대통령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처지에 대한 소회는 김 대표 자신이 유승민 의원의 ‘사퇴’ 중지를 모으기 위해 열렸던 의원총회에서 털어놓은 바 있다. 유 의원이 권력을 내려놓으면 그 다음 차례는 김 대표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던 시점이었다. 김 대표는 유 의원에게 “대통령을 이길 수 없는 것”이라며 ‘인내’와 ‘사죄’를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받은 수모와 모멸감에 대해서는 ‘자리 배치’와 관련된 일화가 상징적이다. 김 대표는 당권을 장악한 초기 최고위원들과 한 번, 유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된 직후 원유철 당시 정책위의장을 대동하고 또 한 번 청와대를 방문했었다.

당시 자료 사진을 보면 박 대통령이 회동을 주재하고 당 대표 자격으로 김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했지만,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의 옆자리거나 비스듬하게 앞자리에 배치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상 대통령과 여당 대표는 마주보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에 대해 한 최고위원은 사석에서 “상식적이지 않는 자리배치”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에 대해 청와대가 의전에 있어 무례를 범했다는 것이다. 김 대표의 청와대 방문 직후 여의도에는 “청와대 비서관급의 모 인사가 자리 배치를 두고 ‘김 대표에게 한 방 먹였다’는 표현을 썼다”는 말이 나돌았다. 청와대와의 권력관계에서 스스로가 을(乙)로 포지셔닝이 된 처지를 김 대표가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자세를 ‘타협과 조정의 리더십’으로 표현하는 의원도 있다.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재선 의원은 당 대표가 된 뒤 보여준 김 대표의 리더십을 ‘신(新) 마키아벨리즘’이라고 규정했다. 권력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원칙 대신 실리를 취해왔는데 그것이 곧 청와대와의 타협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에 깔려 있는 전제는 “언젠가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권력에 근접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극복할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이런 해석에 동조해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무대(김 대표의 별명)가 아웃파이터라면, 친박은 인파이터”라며 “오픈프라이머리를 둘러싼 공천권 다툼에서 치고 빠지는 식의 김 대표가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김무성의 가시밭길 ‘공천사(史)’


▎김무성 대표의 부산 영도 사무실 건너편에 ‘오픈프라이머리’를 홍보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김 대표가 어느 순간 당내 경쟁에서 승기를 잡을 것이란 전망은 최근 들어 점차 힘을 얻는 분위기였다. 여론조사를 하면 여야를 통틀어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 국면을 주도한 뒤 50% 내외의 지지도를 회복한 데 비해 김 대표는 여전히 20% 초반에 머물면서 이런 전망은 다시 불투명해진 측면이 있다. 박 대통령이 견고한 보수층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지난 대선 과정에서 중도로 외연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던 반면, 안보관과 역사관 등에서 여전히 우(右)편향 시각만을 보여주고 있는 김 대표로선 “정치적 정체성을 보면 ‘표의 확장성’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대표의 가능성이 여전하다”고 보는 시각은 그가 지금까지 여러 역경을 겪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특유의 정치적 저력을 보여 왔다는 데 초점을 맞춰져 있다.

국회의원으로서 김 대표는 5선의 국회의원이다. 15대 국회 총선이 열린 1996년, 부산 남구을 지역구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18대 때는 한나라당 공천에 실패,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재(再)입당했다. 19대에도 낙천, 지역구를 부산 영도로 옮긴 뒤 2013년 4월 재선거를 통해서야 국회에 복귀할 수 있었다. 때문에 김 대표의 측근들은 “15대 때를 제외하곤 순탄하게 공천을 받은 적이 없다”고 회고한다.

첫 번째 낙천 위기는 재선에 도전하는 16대 총선을 앞두고 찾아왔다. 갑, 을로 나뉘어 있던 남구가 하나의 지역구로 통합되면서 두 석에서 한 석으로 줄어든 공천 자리를 놓고 경쟁이 벌어졌다. 당시 공천권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쥐고 있었고, 실무는 총재 정무특보를 역임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맡았었다. 김 대표의 측근 의원에 따르면 공천 발표 전날까지 통합 남구의 공천자는 김 대표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초 공천 대상은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고, 갑 지역구의 현역이었던 이상희 전 의원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이회창 총재가 공천 발표 직전 마음을 돌렸고, 김 대표는 구사일생했다. 김 대표 측은 “1997년 대선에서 한 차례 고비를 마신 이 총재는 차기 구도를 바라보고 세대교체 필요성을 절감했고, 향후 김 대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며 당시 결과가 뒤집힌 배경을 설명했다. 낙천 위기는 전화위복이 됐다. 김 대표는 2001년 이회창 총재의 비서실장에 발탁된 뒤 2002년 대선 정국에선 대통령 후보 비서실장까지 역임했다.

17대 총선에서는 ‘희생’이 요구됐다. 16대 때 지역구가 합쳐졌던 남구는 다시 갑, 을로 분리됐다. 그런데 갑 지역구는 상대적으로 보수 세력이 우세했던 반면 바다에 인접한 을 지역구는 2004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바람이 거셌다. 김 대표 측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갑, 을 중 선택권이 김 대표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져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신인이었던 김정훈 의원(현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게 상대적으로 쉬운 지역구를 양보하고, 자신이 을 지역구에 출마해 신승(辛勝)했다.

이 대목에서 김 대표는 당의 총수가 내리꽂는 방식의 ‘하향식’ 공천 제도의 모순을 경험했다고 한다. 김 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자신은 죽고, 당권파에게 협조한 김 의원은 살았다는 주장이다.

김 대표 측은 김 의원이 당선 뒤 3년 만에 치러진 18대 대선 당내 후보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을 도왔다고 보고 있다. 김 대표 입장에선 자신의 배려로 손쉽게 당선된 김 의원이 다른 계파를 지지하는 정치적 배신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그 결과 이 대통령 당선 1년 뒤인 2008년 공천에서 김 의원은 공천됐고, 박 대통령을 도운 김 대표는 낙천했다. 당의 총선 승리에 기여한 공로보다 계파 수장의 대권가도에 도움을 준 공이 더 크게 채점되는 냉혹한 현실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하향식’보다 ‘상향식’ 공천에 진정한 명분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긴 계기가 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던 김무성 대표는 낙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도왔던 김정훈 의원은 공천.’ 김 대표 지지자들의 머릿속에 입력된 공식은 그의 첫 번째 낙천의 배경에 친이(親李·친이명박) 측의 ‘친박 공천 학살’이 존재한다는 가정을 깔고 있다.

박 대통령은 김무성의 공천 탈락을 몰랐을까?


▎2012년 3월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이 기자회견에서 백의종군 의사를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로부터 7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당시 공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사들이 털어놓은 뒷얘기를 들어보면 과연 김 대표가 친이 측의 ‘화살’만을 맞아 낙천하게 된 것이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당시 공천 과정의 복기(復棋)가 가능한 한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김 대표의 공천 탈락을 사전에 몰랐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었던 친이계 이방호 전 의원과 공천심사위원 중 친박계인 강창희 전 국회의장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존재했고, 강 전 의장이 이를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런 가정은 박 대통령이 김 대표의 공천 탈락 사실을 사전에 알았고, 심지어 용인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케 한다. 김 대표 측은 당초 탈락자가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지만, ‘김 대표 퇴출’로 희생양이 뒤바뀌었다는 의심을 갖고 있다.

박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뒤인 2012년 19대 총선 공천에서 제외된 데 대한 평가 역시 엇갈린다. 지도부 없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였던 새누리당은 쇄신책으로 ‘컷오프(cut off·예비경선)’ 제도를 도입했다. 현역의원 평가지수를 통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인사들을 ‘물갈이’ 대상으로 규정했다. 김 대표 측은 “당시 컷오프 룰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2013년 부산 영도로 지역구를 옮긴 뒤 치른 재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받은 점이 당시 불공정함을 방증한다는 것이다.

반면, 김 대표가 적법한 절차에 의해 떨어졌다는 측은 컷오프 기준을 조사했던 여의도연구원이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믿는다. 30여 명의 컷오프 대상 현역 중 중간 정도의 순위를 받았을 정도로 지역구에서 인기가 식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김 대표가 부산 남구에서 영도로 지역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공천 탈락의 진짜 이유야 확인되지 않지만, 김 대표는 첫 번째 낙천은 무소속 출마로, 두 번째는 ‘낙천 수용’ 뒤 재·보궐선거를 이용한 ‘부활’로 돌파했다.

“김무성의 오늘을 만든 것은 8할(八割)이 공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복심으로 통하는 한 측근 인사는 ‘김무성 잔혹사’라는 말을 꺼내며 공천을 언급했다. 그만큼 공천 과정에서 겪은 불이익이 뼈에 사무쳐 있다는 얘기다. 공천이란 주제어는 김 대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관통해 그를 둘러싼 여러 면모를 설명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다.

김 대표 측은 2007년, 2012년 두 차례의 낙천이 ‘친박의 방해’ 때문이라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다. 이는 공천과 관련된 그의 ‘불행한’ 과거사가 박 대통령과의 불편한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을 뒷받침한다.

현재도 그렇다. 김 대표는 “정치 생명을 걸었다”며 완전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를 내년 총선 공천과정에서 실행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이는 친박의 강한 반대에 직면해 있다. 친박은 박 대통령이 지목한 인사를 공천하기 힘든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오픈프라이머리에 정치생명 걸었다지만…

김 대표의 미래도 ‘공천’으로 결정될 것이다. ‘상향식’ 공천을 의미하는 오픈프라이머리의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것이다. 이 방식을 관철시켜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김 대표는 명실상부 유력하고 유일한 대권 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략공천을 허용하면서 박 대통령과 친박에 너무 많은 공천권을 양보를 하게 돼 결과적으로 현역 의원들로 하여금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은 ‘공천에서의 희생’을 치르게 한다면 대권과는 멀어질 것이다. 이런 와중에 사위 마약 논란이 제기돼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무거워진다. 내년 총선을 현 지도부로 치를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더 구체적으로는 친박계가 김 대표를 낙마시킨 뒤 비상대책위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그 빌미의 하나가 바로 ‘사위 마약복용 논란’이 될 수도 있다.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친박계의 기세를 김 대표가 어떻게 당해낼 것인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 유동근 CBS노컷뉴스 기자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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