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북한.국제

Home>월간중앙>정치.사회.북한.국제

[이슈진단] 친박계 ‘김무성 대선 필패론’의 실체 

“영남권 표몰이로 중부권 주자 당선시킨다” 

지지율 제자리걸음 하는 김 대표 대신 충청·수도권으로 후보 외연 확장 주장… 대통령과 척진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은 대규모 물갈이 공천 불가피 전망도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이 지난해 말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친박계 의원 모임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당내 최대 지지기반을 가진 데다 여권의 가장 안정적인 차기 주자라는데 이론이 없었다. 딱 2년 전인 2013년 9월 4일 자신이 주도한 ‘새누리당 근현대 역사교실’ 첫 모임에는 100명이 넘는 현역 의원이 몰려 들었다. 여세를 몰아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친박계를 제압하고 당권을 장악했다.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여권 부동의 1위를 굳혔다. 당심과 민심이 그에게 쏠리면서 ‘김무성 대세론’도 탄력을 받았다.

최근 상황이 급변할 조짐이다. 사위 마약복용 논란으로 내상(內傷)을 입은 그에게 친박계가 직격탄을 날렸다. 이른바 ‘김무성 불가론’, ‘김무성 대선 필패론’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인 윤상현 의원은 9월 15일 “새누리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러 아쉽다”면서 “야권은 (대선에서) 단일 후보를 내면 여권은 현 상태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나아가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들 중에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며 ‘대안’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친박계가 김무성 대표에게 여당 대선 후보의 자리를 쉽게 넘겨주지 않기로 작심했음을 알 수 있다. ‘친박계 독자후보론’이 공론화되는 순간이다.

격세지감이랄까. 7월 8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사퇴하면서 여권의 균형추는 급격하게 청와대와 친박계로 기울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친박계 내부에서만 나돌던 ‘김무성 필패론’도 수면위로 떠올랐다. 필패론은 그의 정치인의 자질과 비전 같은 기능적 요인에서만 제기되는 게 아니다. 대선 국면에 들어선 김 대표가 선친의 일제시대 행적과 재산 형성, 본인의 정치 행보와 사생활, 인척 관리 등에 대한 강도 높은 검증을 버텨내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주로 논의됐다.

새로 불거진 사위의 마약복용 논란도 김 대표의 득표력을 잠식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음 대선 후보 토론회 등에서 사위 사법처리 과정에서의 영향력 행사 여부는 실체와 별개로 핫 이슈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비록 김 대표 본인은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일반 유권자들은 ‘뭔가 있겠지’라는 심증을 형성하게 되면서 그의 정치적 손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친박계의 공격 포인트다. 대선 국면에서는 김 대표가 예비 사위의 구속을 사전에 인지했느냐와 무관하게 검찰과 법원이 예비 사위의 신분을 인지했느냐도 쟁점이 될 수 있다. 검찰이나 사법부가 마약사범이 김 대표의 사위될 사람임을 알았다면 알아서 눈치를 봤을 수 있다.

이런 전제로 공세가 쏟아진다면 결국 김 대표의 대선 주자로서의 이미지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고 친박계는 말한다. 이와 관련해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는 “김 대표의 영향력 행사 여부를 떠나 그렇게 이름이 알려진 이상 외압이 들어갔다고 인식되는 법”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염두에 두는 인물 있을 것”


▎2013년 11월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윤상현 의원(왼쪽)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최경환 의원(가운데)과 김무성 의원.
친박계 일각에서는 사위 마약복용과 관련한 김 대표의 해명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친박계의 한 국회의원은 “냄새가 나는 것을 뒤집어보라”면서 “김 대표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사실 국회 주변에서는 사위 마약복용 논란을 ‘꺼지지 않은 불씨’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김무성 죽이기’ 차원에서 특정 세력이 이 사실을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 때문이다. 김 대표를 아예 낙마시키는 수순으로 ▷국정감사 후 추가 폭로 ▷친박계 탈레반들의 분위기 띄우기 ▷지도부 개편론 제기 및 비대위 구성 등의 시나리오를 점치는 이들도 있다. ‘김무성 필패론’은 공허하지만 그럴싸하게 정치권 언저리를 맴돈다.

‘친박계 독자 후보론’도 현재로서는 선언적 수준을 크게 벗어나진 못한다. 이게 친박계의 최대 아킬레스건이기에 그렇다. 친박계의 가장 큰 고민은 차기 주자의 부재에 있다. 김무성·오세훈·유승민 등 여당 차기 주자군에 친박계는 명함도 못 내미는 상태다. 구심점이 없기에 세를 형성하지도 못한 게 친박계의 현주소다.

친박계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선까지는 아직 2년 반이나 남았다. 1년 후에 주자를 띄워도 이긴다”는 게 친박 일각의 믿음이다. 이는 박 대통령이 낙점하는 후계자가 여권의 후보가 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박 대통령이 그런 의지를 가졌는지, 능력이 되는지는 그 다음 문제다. 그렇게 믿는 순간 담력과 배짱이 생긴다. 친박계 한 인사는 “대통령이 낙점까지는 아니라도 염두에 두는 인물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친박계가 비영남권 대선 주자의 출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는 점이다. 친박계 책사들의 말을 모아보면 대략 이런 그림이 나온다. “지난 대선은 여야 공히 영남 후보를 내세웠기에 영남 중심의 선거 구도가 펼쳐졌다. 다음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지역연합 전략으로 가도 이긴다. ‘영남+중원’ 연합으로 승세를 굳힐 수 있다. 충청 또는 수도권 후보를 내서 외연을 확장하자. 영남권은 대통령 지지기반으로 선거를 하면 된다. 비영남권 중에서 표의 확장성이 있는 인물이 후보로 적합하다.” 예컨대 계파 내부에서 주자를 찾지 못하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같은 외부 인사를 수혈하면 된다는 의견이다. 부산 출신의 김무성 대표는 처음부터 안중에 없었다는 식이다.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운 유승민 전 원내대표 축출에 앞장선 이들도 이인제 최고위원, 정우택 국회 정무위원장, 이장우·김태흠 의원 등 충청권 의원들이다. 상대적으로 박 대통령의 텃밭이라 할 TK의원들은 유 전 대표와의 관계를 의식한 까닭인지 입장 표명을 유보하거나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했다. 이장우 의원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경상도 의원들은 항상 스탠스가 애매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내가 경상도 의원들한테 그걸로 놀리기도 한다.” 그 때문에 내년 총선에서 여권의 텃밭인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에서 개혁공천이라는 타이틀로 상상을 초월하는 물갈이가 단행되리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명분을 디딤돌 삼아 수도권과 충청권은 당선 가능성 위주로 공천을 하면 총선을 무난히 승리로 이끈다는 게 친박계 일각에서 제시하는 그림이다. 대선도 마찬가지다. 영남권 표를 몰아 중부권 후보를 당선시킨다는 구상이다.

친박계의 독자후보론, 즉 현 여권 1위 주자가 약체여서 대안이 필요하다는 이 주장은 어디서 본 듯하다.

5년 전 친이계 전철을 피할 수 있을까?


▎2012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새누리당 당사 외벽에 당선사례 현수막이 내걸렸다. 친박계는 박 대통령 후광으로 독자 대선후보를 옹립한다는 복안이다.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일부에서는 여권 부동의 1위 대선 주자인 박근혜 의원의 완주 가능성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 대통령과 박 의원이 2010년 8월 단독회동에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공동 노력한다’는 신사협정을 맺었음에도 청와대 참모 중에는 대안을 모색하고 있었다. 한 참모는 “여권 내 ‘박근혜 대세론’은 패배주의 산물”이라며 “역대 주자 중에서 대선 2년 전에 1위를 달리던 이가 성공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솔직히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이 계속 간다는 보장이 없다. 내년(2012년)에는 내려간다. 친이계에서 새 인물이 나오면 박 의원의 지지율은 떨어진다. 당장 이재오 의원이 사심을 버리고 OOO를 밀어주면 20% 지지율의 주자가 등장한다. 그러면 박 의원 지지율은 떨어지면서 ‘박근혜 대세론’은 소멸한다.”

이런 관측은 얼마 후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해 12월 새누리당 지도부가 붕괴되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비대위가 꾸려졌고 이듬해 총선, 대선은 말 그대로 ‘박근혜 페이스’로 흘러갔다.

지금의 청와대는 박 대통령 임기가 이제 막 반환점을 지난 시점에서 차기 주자를 거론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후계자로 생각하는 사람도 없고, 누구는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정치인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정현 최고위원도 “대선 후보는 국민이 키우는 것”이라며 “역대 대통령 중에서 후보를 띄우고 밀어서 성공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소속으로서 자신이 잘하면 당에 도움이 되고, 실패하면 부담을 줄 뿐이지 그 이상 관여하거나 시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단언했다.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너무 교과서적이자 원론적인 발언들이다. 청와대 입장에서 지금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4대 개혁 등 성공적인 국정운영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유승민 전 원내대표 사퇴 이후 안정화된 당청관계를 흔들 수 있는 차기 주자 논쟁이나 파워게임이 수면 위에서 펼쳐져서는 곤란하다. 또 대통령이 특정 계파의 이익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도 경계해야 한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내심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말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다. 청와대와 긴밀하게 교감하는 여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임기 말에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한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대선후보 경선 국면에 즈음해 박 대통령이 누구를 지지 하느냐를 둘러싼 이른바 ‘박심(朴心)’ 논란이 점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대통령이 선호하는 경선주자에게 여권의 고정표가 쏠리게 되므로 경선주자들이 박심 얻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친박계 주자가 등장하자면 김 대표는 반드시 고꾸라져줘야 한다. 5년 전 친이계가 실패한 ‘후보 만들기’에 친박계는 성공할 수 있을까?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10호 (2015.09.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