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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꼴불견’ 국회의원의 언더그라운드 세계 

법을 만드는 쪽도, 깨는 쪽도 우리? 

탄생, 성장, 소멸에 이르기까지 불·탈법, 검은돈의 유혹에 전면 노출… 편법과 일탈 없인 생존 어렵고 특권의식에 빠지면 갑(甲)질 서슴지 않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쇠창살을 통해 본 국회의사당.
임기 종료를 몇 달 앞둔 19대 국회가 성추문, 취업 청탁, 입법 로비 등으로 얼룩진다. 개인의 일탈일까, 구조적 파행일까? 대한민국 입법부의 존재형식을 파헤쳤다.

“가장 아쉬운 건 한 번은 더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는 점이다.”

다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새누리당 전직 국회의원은 10여 년 의정활동의 소회를 밝히면서 이렇게 말끝을 맺었다. 젊은 시절 기업인으로 재력을 다진 그는 중년의 나이에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야당 생활을 오래한 탓인지 은퇴하고서 통장 잔고를 찍어 보니 마이너스였다고 한다. 정치에서 물질적 이득을 얻기는커녕 되레 사업으로 일군 재산을 일부 까먹었다는 것. 그는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지갑을 기꺼이 열었고 그걸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19대 국회에 진출하지 못한 걸 자못 안타까워했다.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19대 총선 공천에서 배제된 건 지금도 가슴 한구석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

그가 19대 국회에서도 금배지를 달았다면 통장 잔고는 더 내려갔을 터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지위는 이처럼 재산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전하고픈 마력의 대상인 걸까? 복수의 전·현직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권력은 당장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유무형의 가치를 향유케 한다. 헌법기관으로서 누리는 법이 정한 혜택, 그가 접하는 고급 정보, 행사하는 입김, 그가 속하게 되는 네트워크 등등. 살면서 두고두고 이익으로 돌아오거나,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가치는 줄어드는 통장 잔고에 비할 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있는 사람일수록 권력의 몽환에 빠져들기 싶다”고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말한다.

법령에 보장된 기능과 권리만으로도 국회의원은 할 만한 자리다. 먼저 입법부 구성원으로 법을 만든다. 또 대정부 질문, 상임위 질의 등을 통해 행정부를 비롯한 국내 공공기관을 감시·견제하기도 하고, 국가 예산의 심의·편성 과정에 참여한다. 게다가 불체포특권(현행범이 아닌 이상 국회 회기 중에는 국회 동의 없이 체포되지 않을 권한), 면책특권(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책임을 지지 않을 권한), 해외 방문시 귀빈 대우(공항 귀빈실, VIP 주차장 이용), 의정활동에 필요한 인적, 물적 지원까지 더해진다.

이런 선망의 대상인 국회가 일탈과 횡포의 온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정치자금법 위반, 형법상 뇌물 수수죄 등으로 19대 국회에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한 사례가 20 건에 가깝다. 현재 구속·불구속 기소된 의원도 10여 명에 달하는 등 의원 정수(300명)의 10% 이상이 사법처리 대상으로 전락했다. 사법처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성폭행 혐의로 신세를 망치기도 하고, 자녀 취업 청탁으로 망신살이 뻗치거나 보좌직원에게 발길질을 해 빈축을 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한민국 권력 체계의 최상층에 자리한 국회의원들이지만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라는 비야냥을 듣는다. 검은 유혹이 많아 한 발 삐끗 잘못 내디디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국회의원의 잘못 꿰어지는 첫 단추


▎지난 9월 1일 국회의사당 개원 40돌을 기념하는 단체사진 촬영에 나선 여야 의원들.
일탈의 대표적인 동기는 ‘돈’ 문제다. 여야의 중진 정치인이었던 박기춘·송광호 의원도 불법적인 금품을 받아 구속됐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 수면 아래서의 검은돈 거래는 드러나지 않을 뿐 비일비재하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회의원 관련 일탈과 잡음의 대부분은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희소가치에 대한 탐욕에서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화될 수는 없겠지만 상당수 국회의원의 탄생과 성장, 소멸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불법행위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한다.

국회의원이 되는 첫걸음인 선거과정부터가 그렇다. 선관위에 신고된 선거운동 비용은 누구나 다 아는 ‘거짓말’로 통한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한 여권 인사는 선거비용만 해도 선관위 신고액과 실 사용액 사이에는 엄청난 갭이 존재한다고 토로했다. 이 인사는 “경합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심하게는 10분의 1 정도밖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비용은 인구 수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1억5천만원을 신고했다면 15억원은 지출했다는 말이다. 이는 그가 주로 활동하던 10여 년 전의 풍속도다.

현재는 나아졌을까? 국회의원 선거를 여러 번 치른 이들은 “요즘도 적어도 신고액의 두세 배 정도는 쓴다고 보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선거운동인 지지 호소용 문자 보내기도 허용된 횟수를 넘어서는 일이 예사이며 사진 촬영만 해도 전문가를 동원해 폼나게 찍자면 수백만 원을 훌쩍 넘긴다. 선거사무소 외벽에 내거는 대형 현수막도 제작 비용은 물론이고 크레인을 동원하는 데도 다 돈이다.

가장 큰 씀씀이는 조직 가동이다. 유권자들에게 특정 후보 지지를 유도하는 조직을 움직이게 하자면 ‘기름칠’을 해야 하고, 수십, 수백 명을 헤아리는 홍보·조직책들도 자비를 들여 선거운동을 해줄 리 만무하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돈 중에는 지출 항목에 없는 경우도 있고, 지출 한도를 넘어서는 때도 있기에 후보가 알아서는 안 되는 비용이다. 설령 발각되거나 발고된다고 해도 후보(후보 배우자, 회계책임자, 선거사무장 포함)와 무관하게 선거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뿌린 금품으로 주장된다. 그래야 후보가 무사하기 때문이다. 회계책임자와 갈라선 의원이 나중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도 어느 선거에서든 비용이 초과하는 구조에 기인한다.

“법정한도액만 쓰는 후보는 욕먹고 떨어져”


▎18대 총선 당시 불법 선거자금을 담은 쇼핑백이 선관위에 적발됐다.
만연한 일탈행위가 왜 쉽게 드러나지 않는 걸까? 선거에 정통한 국회 관계자는 “모든 후보가 작심하고 돈을 쓰기에 일일이 잡아내기에는 선관위 인력이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예전처럼 유권자들에게 직접 돈봉투를 안기는 매표 행위는 사라졌다. 하지만 유권자들을 특정후보 지지 쪽으로 유도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지금도 돈을 줘야 한다. 조직을 운용하는 구조상 필수불가결한 지출이다. 그걸 다 신고하면 법정한도액을 훌쩍 넘긴다. 그렇다고 상대 후보가 하는데 가만히 있을 후보가 있겠나? 선관위 직원이나 경찰이 골목골목을 다 지키는 것도 아닌데…. 선거에 나선 후보는 일단 이기는 게 목표이므로 최대한 돈을 풀고 본다. 법정한도액만 쓰라는 말은 후보더러 죽으라는 말이다. 만약 법정한도액만 쓴다면 욕은 욕대로 먹고 떨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선거구일수록 분위기는 과열되게 마련이다. 후보마다 일단 모든 역량을 쏟아붓고 본다. 음성적인 선거 자금 지출은 잘 발각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덜미를 잡혀도 후보와 무관하다며 잡아뗀다는 각오로 불법은 저질러진다. 누군가 내부에서 자폭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게 선거운동 비용이라는 것이다.

막대한 선거 자금이 순전히 후보 호주머니에서 나온다고 보면 오산이다. 후보가 기본적으로 지출하는 비용도 있겠지만 힘센 정치인일수록 외부 협찬이 많이 들어온다. 주로 국내 기업들이 돈 뭉치를 싸 들고 온다. 역대 정부의 핵심 실세 정치인의 선거를 치러본 인사의 회고담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줄잡아 대기업 10여 곳에서 눈도장을 찍으러 왔다. 한 임원이 그룹을 대표해 방문하는 게 보통이지만 어떤 그룹은 계열사 별로 성의를 표했다. 기업이 성의를 표하는 규모는 보통 3천만원에서 1억원 상당에 이른다. 자금 지원뿐만 아니라 조직 지원을 제의해오는 예도 있었다. 예컨대 선거구 내 자기네 지사망 통해 선거운동을 도울 길이 없느냐고 문의하는 공기업도 몇 있었다.”

이렇게 쌓이는 돈이 엄청나다 보니 선거운동 기간 동안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렇게 남은 돈은 4년간의 지역구 관리비 용도나 후보 개인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으로 추정된다.

뇌물수수보다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달라


▎정치자금에 목말라하는 국회의원들은 검은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는 잘나가는 정치인에게 적용되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고만고만한 초·재선 의원들은 개인 돈뿐만 아니라 일가친척에게 손을 내밀면서 가까스로 비용을 충당하기도 한다.

선거가 끝났다고 해서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과 보좌진에 따르면 지역구 관리에 매달 적게는 1천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의 비용이 든다. 국회의원 세비(1억4천만원)와 후원금(선거가 없는 해 1억5천만원 한도)으로는 감당하기에 벅차다. 씀씀이를 줄이거나 외부의 협찬을 받거나 해야 한다.

결국 돈 나올 곳은 기업밖에 없다. 이런 사정과 맞닿아 정치권에서는 “절 모르고는 시주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된다. 돈을 주는 쪽은 반드시 의원에게 직접 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거액일수록 보좌관을 통하거나 중간다리를 거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게 정치권 사정에 정통한 이들의 전언이다. “오히려 의원들은 보좌진이 알까 두려워 하는 게 금품 수수다.”

역으로 기업인과 단 둘이 만남을 갖는 의원들 중에는 돈 받는 걸 당연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눈치 없이 빈손으로 오는 기업인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치인은 잔뜩 기대하는 데 밥만 먹고 돌려보낸다? 만나지 않은 것만 못한 게 된다”고 말했다.

은밀하고도 음성적인 금품 수수가 극히 일부의 일탈인지, 업계의 관행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고소·고발되는 사례에서만 드러날 뿐이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치인과 기업이 주고받는 거래는 탈 나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서로 좋아서 주고받는 돈이기 때문이다. 양자 사이가 돈 문제로 틀어지는 일도 극히 드물다. 기업의 비밀장부가 검찰에 압수되면서 유탄을 맞는 것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국회의원도 주는 돈이라고 덥석 받진 않는다. 안전하다고 생각해야 봉투를 집어 든다. 그래서 기업도 정치인에게 돈을 안길 때는 꼭 연고자를 찾아 전달한다. 그와 학교 동문이라든가 지연이 있는 내부자를 물색하게 된다는 말이다.

대기업은 통상 정치인에게 건네는 돈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비용쯤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다. 대가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정치자금 수수에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Give & Take)’ 룰이 적용되는 세계도 있다. 급성장한 신흥기업, 사학재단에게서 받은 돈 중에는 간혹 의원에게 족쇄로 작용하기도 한다. 입법 로비, 증인신청 철회, 입찰 청탁 등에서 의원들의 힘을 빌리려 드는 것이다. 일 처리가 어긋나면 그동안의 부적절한 거래가 폭로되는 등 양쪽 관계가 파탄으로 치닫는다. 검은돈이 국회의원의 발목을 잡게 되는 순간이다.

똑같이 검은돈을 받더라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수수죄가 적용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단죄받는 이도 생기는 등 제각각이다. 금품수수 사건으로 사법처리되는 의원 입장에서는 뇌물수수보다는 정치자금법 위반을 선호한다. 뇌물수수는 파렴치범으로 분류돼 정치적 재기 자체가 어려운 데 반해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정치를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순간적인 일탈쯤으로 정상이 참작될 여지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사면·복권 과정을 거쳐 국회로 재진입하는 데도 정치자금법 위반이 뇌물수수보다는 덜 치명적인 죄목이 되는 것이다. 현역 국회의원 중에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사법처리 되고서도 재기에 성공한 예를 심심찮게 찾아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수사 과정에서 한사코 뇌물수수 혐의를 부인하는 건 정치인들의 본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정치인은 범죄 사실을 시인하는 대신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다고 사정당국의 관계자가 전했다.

선거 때도, 선거 이후에도 돈·돈·돈


▎불법금품수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박기춘 의원이 8월 13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신상발언을 끝낸 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
치열한 공천 경쟁도 국회의원으로 하여금 돈에 목을 매게하는 요인이다. 당선이 보장되는 각 정당의 텃밭 선거구의 공천이나 비례대표 상위 순번 배정을 노리는 정치인들은 유력 정치인에게 줄을 대는 게 보통이다. 요즘도 수억 원 대가 오간다는 얘기가 들린다. 과거 총선을 앞두고 국회의원 비례대표에 입후보하고자 했던 모 정당인이 겪었던 일화를 사정기관의 한 관계자가 다음과 같이 전했다.

“모 인사는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고자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당내 유력인사와 선이 닿았다. 4억원이면 당선 안정권에 든다는 말에 현금 다발을 건넸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딴판이었다. 이 인사는 비례대표 후보 명단 끄트머리에 겨우 이름을 걸쳤을 뿐이다. 누가 봐도 의원 임기 4년 안에 금배지 달 가망이 없어 보이는 순번이다. 그는 돈을 되돌려달라고 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유력 정치인에게 돈 내놓으라고 떼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속만 태웠다. 괜히 또 말했다가 돈은 돈대로 못 받고 정치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떼인 걸로 마음먹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이 정당인은 전화 한 통으로 가볍게 문제를 해결했다. 당의 유력 정치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거 참 곤란하게 됐는데요. 검찰에서 어떻게 돈 준 걸 냄새 맡았는지 연락이 왔어요.” 화들짝 놀란 이 유력 정치인은 며칠 뒤에 바로 돈을 돌려줬다는 것이다.

지방선거 때도 당연히 돈이 오간다고 국회 관계자들이 전한다. 지난해 6·4지방선거 당시 영남권 한 기초단체장 공천을 희망했던 한 인사 역시 유사한 문제에 직면했다. 해당 기초단체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 측에서 수억 원 대의 뒷돈을 요구했다. 국회의원 측은 “지역의 시의원, 도의원 등 지방의원들에게 나눠줄 관리비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손을 벌리더라는 것이다. 영남권은 ‘공천=당선’인 까닭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부인의 만류로 출마 의사를 접었다. 이 인사의 부인은 “그 돈으로 차라리 둘이서 골프나 치면서 여생을 즐겁게 살자”며 한사코 반대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는 선거구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예전엔 철저하게 당내 계파의 수장들이 공천권을 나눠 갖던 때도 있었다. 계파의 보스가 결정하면 그걸로 공천은 끝이다. 현역의원 중에서도 보스의 명령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지역구를 물려주는 일이 잦았다. 새로 공천받는 사람은 현역의원에게 인사치레로 일정한 성의를 표시했다. 현역의원은 반대급부로 자신이 관리하던 조직을 이 후임자를 위해 가동해준다. 결국 조직을 물려받는 대가로 금품이 오가는 게 과거 선거풍토의 한 단면이었다.

비서의 임금을 착취하는 못된 의원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9월 7일 성폭행 혐의를 받는 심학봉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에 입성하면 삶의 차원이 달라진다. 일반인에게는 굳게 닫혔던 정보의 문이 활짝 열린다. 국회의원은 정부를 상대로 자료제출을 요구할 권한을 갖는다. 또 지역구나 해당 상임위 관련 업체로부터 여러 가지 민원을 접하는 과정에서 정부 기관이나 민간 기업의 비리와 부정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여기에 특권의식에 젖어 드는 국회의원은 대한민국의 최고 갑(甲)으로 행세한다.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주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예컨대 의원의 식대나 행사 비용을 기업에서 대신 지불토록 하거나, 늦은 밤 술자리에 기업의 대관(對官) 업무 관계자를 부르기도 하는 의원실이 있다. 심지어 과거 국회에서는 전날 먹은 술값 영수증을 기업에 건네며 가서 대신 결제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의원이나 보좌진의 식대 카드 결제를 취소하고 기업의 법인카드로 다시 계산하게 하는 방식이다. 의원에게 어떤 사유에서든 꼬투리를 잡힌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접대가 더 싸게 먹힌다며 흔쾌히 받아들이곤 했다.

돈에 쪼들리거나 수전노 국회의원들은 사무실 운영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다. 국회 사무처는 정책 홍보물 발행비와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연 3천만원 이상을 개별 의원실에 지급한다. 전화비나 복사용지, 커피 구입 등에 쓰여야 할 운영비가 의원 개인 활동비로 전용되는 것이다. 추저분하고 찌질하지만 횡포라면 횡포에 속한다.

일부 의원은 보좌진 급여를 빼돌리는 꼴불견을 연출한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이 동원된다. 하나는 사직한 보좌진의 계좌로 입금된 급여를 돌려받는 방식이다. 국회의원 보좌진 급여는 국회 사무처에서 매달 해당 보좌진의 계좌로 입금한다. 보좌진이 사직하는 경우에도 국회의원이 그 사실을 국회 사무처에 알리지 않으면 같은 통장으로 돈은 입금된다. 나중에 사직한 보좌진에게 연락해서 그 돈을 되돌려 받은 국회의원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적도 있다. 또 하나는 보좌진의 급여를 착취하는 수법도 동원된다. 갓 들어온 비서의 급수를 두어 단계 높여주면서 그 격차만큼의 급여를 되돌려 받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당초 7급으로 채용키로 한 비서를 5급 비서관으로 등록해주면서 150만원 안팎의 급여 차액이 의원 호주머니로 들어가는 일도 있다. 나중에 그만둔 보좌진이 언론에 제보하거나 의원을 경찰에 고소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한다.

이게 가능한 건 의원이 사무실에서 제왕적 지위를 누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인당 4급(2명), 5급(2명), 6·7·9급(각 1명) 등 총 7명의 직원을 둘 수 있다. 여기에 유급 인턴 2명을 더하면 모두 9명이 국회의원을 보좌한다. 보좌진의 임면은 형식적으로 국회의장(4~5급), 국회 사무총장(6~9급)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 임면권은 국회의원이 행사한다. 국회의원이 면직요청서를 국회의장에 보내면 그걸로 끝이다.

국회의원실에는 보좌진이 없다?


▎2012년 5월 제2 의원회관 준공으로 더 넓어진 국회의원회관이 총선에 임박하면서 텅텅 비기 시작한다.
이들 보좌진의 지역구 파견 근무도 일탈의 여지를 남긴다. 내년 4월에는 20대 총선이 치러진다. 과거의 예에 비춰볼 때 정기국회 9~10월 국정감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자리를 비우는 보좌진들이 눈에 띄게 증가할 것이다.

2012년 제2 국회의원회관이 완공되면서 의원 1인당 사무실 면적이 85.6㎡(25.9평)에서 149㎡(45.1평)로 확 커졌다. 덩달아 보좌진의 활동 공간도 늘었다. 하지만 의원실을 가보면 정원 9명의 보좌진이 모두 자리를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국회의원 상당수는 보좌직원 일부를 국회가 아닌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소 등에 상주시킨다.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3명 이상을 지역구에 박아둔다.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9조는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보좌관 등 보좌직원을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보좌진 운용이 입법활동 지원 범주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입법활동, 의정활동에 반영해야 하므로 보좌진의 지역구 파견을 탓할 바 아니라는 의견이 우세한 편이다. 물론 민의 수렴과 유권자들과의 소통은 국회의원의 중요한 책무의 하나이며 장려돼야 한다. 하지만 파견된 보좌진이 의원 홍보활동이나 지역구 표밭갈이 활동을 병행하거나 이에 치중한다면 법 취지를 벗어난 운용이 된다. 특히 전 국민을 대표하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특정 지역구에 보좌진을 상주시키는 경우는 명백한 일탈로 간주될 수 있다. 새누리당의 모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당협위원장 공모에 응하면서 국회 보좌직원 대부분을 지역구에 상주케 했다. 보좌직원들을 자기 선거운동에 동원했다는 입방아에 올랐다. 이런 모호한 상황을 정리하자면 국회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경진 변호사는 “지역에 상주할 직원의 범위와 업무를 국회의장 지침이나 내부 규칙을 정해서 법 취지에 충실을 기하도록 하는 장치가 요구된다”고 말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음험한 커넥션이 짜릿한 전율을 안기는 곳이 바로 국회다. 국회의원의 일탈과 갑(甲)질에는 한계가 없다. 전직 의원 중에는 의정활동을 청렴하게 마무리하고 검약하는 생활을 하는 이도 많다.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 때문에 건실한 정치인들이 도매금으로 넘어간다. 국회의원의 일탈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독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돈으로 엮이는 구조에 들어가면서 생존 차원에서 빚어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국회는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라고도 하겠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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