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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핵심참모들이 말하는 대통령의 ‘청와대 2년 6개월’ 

오직 ‘일’과 ‘고독’의 연속일 뿐 

청와대 관계자, “VIP 제발 일을 좀 적게 했으면”… 권력형 비리 꺼려 동생 등 친인척은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해

▎지난해 1월 1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해외 파견 한국군 부대장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임무수행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단은 8월 26일 청와대 오찬을 가졌다. 1년 7개월여 만에 대통령과 여당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무박4일의 남북 고위급 접촉 마라톤 협상을 지휘한 박 대통령은 잠을 이루지 못한 탓인지 피로한 기색이 완연했다.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의원의 물음에 박 대통령은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고 말했다. 얼마 뒤 청와대 관계자에게 직접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박 대통령이 제발 일을 좀 적게 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통령이 너무 많은 일에 신경을 쓰고 일일이 챙긴다. 취임 후 지금까지 늘 그랬다.” 일에만 파묻혀 사는 대통령이 옆에서 보기에 안쓰럽다는 반응이었다.

덜렁 혼자 남게 되는 청와대 관저

임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지난 2년 6개월 동안, 박 대통령의 참모들이 간헐적으로 밝힌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워커홀릭’에 가깝다. 일과를 끝내고 관저로 돌아가서도 마음을 터놓으며 함께 시간을 보낼 배우자나 자녀가 없다. 의원시절 즐겼던 요가 등 간단한 운동 외에는 각종 보고서를 검토하거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는 등 결국 업무로 환원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올해 초 청와대의 다른 참모는 대통령의 업무량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내가 매일 접하는 서류만 해도 어깨높이에 이른다.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서류를 봐야 할까? 게다가 결정까지 내려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고독하고 지치는 자리다.” 박 대통령은 관저에서도 밤 늦게까지 서류를 검토한다. 그래서 일과 후에 대통령의 전화를 받는 청와대 직원이 실세라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참모진 중에는 새벽까지 업무를 보는 까닭에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올빼미형 참모’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도 있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생활을 규정하는 키워드는 ‘일’과 ‘고독’으로 집약된다.

취임 초부터 그의 업무 스타일은 ‘만기친람(임금이 모든 일을 친히 챙김)’형이었다. 대통령이 좋아하는 정치인도 일을 부지런히 하는 유형이다. 지난해 초 대통령의 참모는 박 대통령 마음에 쏙 든 정치인으로 윤상현 당시 원내 수석 부대표를 들었다. 이 참모는 “윤상현 의원이 원내 수석 부대표로서 헌신적으로 일하기에 (대통령이) 고맙게 생각한다”고도 했다. 당시 윤 의원이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정상회담 대화록 정국 등 여야 대치국면에서 대야(對野) 공세를 주도하는 등 전투력과 뚝심을 과시할 때다.

대통령에게 응당 주어져야 할 위안과 힐링(Healing·치유)은 미흡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 관저에는 서울 삼성동 주민들이 선물해준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가 낳은 다섯 마리의 강아지들이 대통령을 반길 뿐이다.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던 대통령도 관저에서는 덜렁 혼자 남게 된다. 가까이서 보좌하는 참모들은 이 점을 안타깝게 여긴다. “전쟁과 같은 일터에서 가정으로 돌아온 가장은 아이들을 껴안고 볼을 비비는 과정에서 힐링이 된다. 복잡하던 머리도 맑아지고 삶의 에너지를 얻게 되는데 대통령은 그럴 남편이 있나 자녀가 있나? 그럼에도 혈육인 동생들조차 보지 않는다.” 청와대 입성 이후 동생인 박지만 EG회장과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을 만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국회의원 시절의 박 대통령은 박 회장 소생의 조카들을 끔찍이도 아꼈다. 박 회장과 서향희 변호사 부부는 지난 4월 쌍둥이 아들을 보기도 했다. 이제 박 회장의 아들은 넷이 됐다. 박 대통령은 정권 출범 2년 반이 지나도록 조카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일이 없다. 박 대통령은 친인척의 청와대 출입을 허용치 않는다는 입장인 걸로 알려졌다. 청와대 한 참모는 “대통령의 유일한 낙은 국민이 잘살고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혈육의 정은 그 뒤의 일이라고 했다.

대통령이 동생들과 선을 그은 사연


▎지난 6월 4일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국가 원수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긴 박근혜 대통령.
여권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외로운 청와대 생활의 활력소가 될 동생 부부와 조카들조차 만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캠프 내 네거티브 대응팀은 박지만-서향희 부부 관련 시중의 소문과 우려를 박근혜 후보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 서향희 변호사관련 내용도 포함됐다. 서 변호사가 사업적으로 누구랑 연계되고 어떤 일에 관여한다는 식의 보고가 이어지면서 박 대통령이 동생들과 확실히 선을 긋기로 마음을 먹게 된 것 같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대통령은 친인척 비리를 절대적으로 경계한다. 대통령이 가까이 하는 친인척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유혹의 손길이 미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주기 위해서 조카들조차 청와대로 한 번도 초청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로 볼 때 임기 끝나는 날까지 안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집권 3년차 대통령의 파워는 정점을 찍는다. 이런 때일수록 주변관리가 중요하다는 게 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의 인식인 듯하다. 역대 정부가 예외 없이 대통령의 아들 등 여권의 실세가 개입된 각종 게이트 사건으로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부의 한보게이트, 김대중 정부의 최규선 게이트에 모두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돼 사법처리를 받았다. 박 대통령은 동생들을 아예 만나지 않음으로써 이들에게 권력이 없다는 시그널을 발산한다. 친인척 비리 발생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라고 박 대통령의 측근들은 해석한다. 청와대 홍보·정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에는 권력형 비리 사건이 없다”면서 “이는 레임덕을 없애거나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단초가 된다”고 말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대통령들은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친인척, 측근 비리가 터지면서 대통령은 국민 앞에 고개를 못 들었고, 정권은 급속한 레임덕으로 빠져들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런 게 거의 없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일본을 방문한 박근령 씨의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과거사 관련 발언만 해도 그렇다. 그는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사과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며, 신사 참배를 뭐라 하는 것은 내정간섭”이라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대통령의 여동생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우에 따라서는 언니인 대통령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의 큰 파장은 없었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최근의 박근령 씨 행보를 보면 대통령이 그렇게 멀리한 게 잘한 일 같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친인척 관리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근령 씨는) 우리로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난 화살 혼자 다 맞는 이병기 실장


▎2012년 8월 고 육영수 여사 38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의원과 박지만 EG회장.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간 뒤 동생들을 부르지 않았다.
지난 4월 분식회계, 사기대출,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구속을 앞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여권 실세 8인의 이름과 금액이 적힌 ‘성완종 리스트’를 남겼다. 여기에 전·현직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이 등장하면서 박근혜 정부도 중대한 위기로 내몰렸다. 성 전 회장은 목숨을 끊은 전날까지도 여권 핵심인사들에게 연락을 취하며 구명을 시도했다. 이병기·김기춘·허태열 등 전·현직 비서실장, 이완구 국무총리,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등 그야말로 여권의 핵심 실세들을 망라했다. 리스트에 오른 다른 여권 실세들에게도 끈질기게 매달렸으리라 추정된다.

이와 관련해 여권 내부에서는 “아마도 성완종 전 회장은 눈을 감기 전까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을 극도로 원망했을 듯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성 전 회장은 막판까지 자신이 아는 모든 라인을 통해 구속을 면하고자 노력했을 게 자명하다. 구명 로비를 받은 여권의 실세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였다면 그 모든 민원의 종착역은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일 수밖에 없다. 여러 지인으로부터 공은 이 실장에게로 넘어가 있다는 얘기를 접한 성 전 회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청와대로부터의 전화를 학수고대했을 법하다. 하지만 거기가 끝이다. 박 대통령의 원칙주의적이고 교과서적인 면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실장이 대통령 앞에서 형사 피의자인 성 전 회장 선처를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의 심중을 잘 읽는 청와대 관계자는 “성 전 회장을 구명하자면 검찰에 압력을 넣어 구속을 면하게 해야 하는데 이 정부에서는 그 누구도 그런 일을 못한다”면서 “원칙을 어기려는 시도라도 했다가는 혼쭐이 난다는 걸 알기에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에게는 법과 기준에서 벗어나는 타협이나 절충은 설 자리가 없다는 말로 해석된다.

특별사면도 마찬가지의 아주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었다는 후문이다.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단행된 특별사면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비롯한 경제인 14명이 대상자에 포함됐다.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기업인이 상당수 사면될 것이란 일부의 기대를 벗어나 기업 오너 중에는 최 회장만 포함된 것이다. 한국무역협회는 특별사면을 환영하면서도 경제인 사면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역협회는 “국민 대통합과 경제 재도약을 위해 기업인 포함 경제 주체들에 대한 큰 폭의 사면을 기대했으나 소폭에 그쳐 다소 아쉽다”고 유감을 표했다.

사면 명단 오른 기업인도 대거 탈락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서 키우는 진돗개 ‘새롬이’, ‘희망이’를 자신의 반려동물로 정식 등록했다. ‘희망이’와 ‘새롬이’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아래).
청와대 측에 따르면 최초의 사면 대상자 명단에는 대기업 오너와 경영인들이 다수 올랐다. 하지만 서민의 등을 처먹는 파렴치한 기업인이나 사면 전력이 있는 기업인들을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최종심사 단계에서 다 탈락시켰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면이 경제에 주는 메시지를 고려해 기업인들을 포함은 했지만 그 수가 적어 재계가 많이 놀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면은 국민의 정서를 벗어나서도, 대통령에 주어진 권한을 남용해서도 안 된다는 박 대통령의 지론에 따라 사면 범위가 좁혀졌다는 말이다.

지난 2년 반을 돌이켜보면 세월호 참사,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성완종 리스트’ 파문, 메르스 창궐 등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성완종 리스트의 경우 박 대통령 국정지지율을 일순간에 7%포인트나 떨어뜨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가 조기 레임덕에 빠지리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현재 국정지지율은 안보 정국이라는 일회성 이슈가 떠받치기는 했지만 50%를 넘어서기도 했다.

박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서 보좌해본 이정현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 지지율이 앞으로도 견고한 안정세를 유지하리라 자신한다. 그 근거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앞선 정부는 대형 프로젝트 위주의 과시적이고 이벤트성 사업에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박 대통령은 철저하게 내실과 실적 위주의 국정운영을 추구했다. 후대에 짐을 지우는 일이 없도록 인기영합형 사업은 극력 경계했다. 대신 소리소문 없이 국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 챙긴다. 공약이나 국책 사업은 집요할 정도로 피드백을 요구한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낮은 자세를 취하는 게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의 특징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면서 설화를 입거나 입방아에 자주 오른 전임자들과 달리 박 대통령은 권위와 품위를 유지하는 데 각별한 공을 들인다. 국내외를 오가며 설화 한 번 일으킨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대외 이벤트를 최소화했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반짝효과에 연연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초심은 임기 후반으로 오면서 더 강화된다고 이 최고위원은 말한다. “박 대통령에게 지난 2년 반의 기간은 실적 위주가 아닌 근본을 바로 세우는 과정, 즉 비정상의 정상화 기초를 다지는 시기였다. 그 진정성이 일시적으로 흔들려도 곧바로 회복하는 국정지지율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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