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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 인터뷰] 키신저 뒤를 잇는 미래학자 로버트 카플란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 21’ 디렉터
■ 카다피의 최후를 잘 아는 김정은은 생존을 위한 최후 보험으로 영원히 보유할 것 ■ 21세기 중에 북한 붕괴되고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 탄생 ■ 통일이 지역의 균형을 깨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 통일한국의 청사진 알리는 게 우선 ■ 박근혜 대통령 10월 방미에 앞서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길

▎로버트 카플란 신미국안보센터 선임연구원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를 넘어 공존·공영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퓰리즘 그리스 사태로 본 실패한 신(神)민주주의의 추악한 얼굴. 지하경제 비율 25%로 미국(7%)에 비해 크게 높고 탈세 만연. 남의 돈 쓰고 배째라. 그리스의 부도와 그리고 도덕적 파산’.

7월 초 한국의 주요 신문에 실린 기사 타이틀들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한국은 금붙이까지 모아가면서 타개책 마련에 골몰했는데 그리스는 국가적으로, 개인적으로 모두 엉망진창이라는 게 기사의 핵심이다. ‘게으른 그리스인’, ‘집집마다 풀장과 요트를 하나씩 갖고 있는 배짱이들’, ‘일하고 놀고 지내는 데 더 열심인 문화’ 같은 얘기가 가십처럼 흘러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극복한 선배로서 그리스를 하대(下待)할 수 있는 명분이자 근거가 신문·방송을 도배했다. 그리스 사태를 좌우 이념논리에 끼워맞춰 설명하는 ‘한국적 분석’도 빼놓을 수 없다. 좌는 그리스 기득권의 탈세와 부패에, 우는 그리스 정부의 퍼주기 복지를 국가부도 사태의 원인으로 꼽았다.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은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그리스 부도의 원인이 지정학적(Geopolitics) 배경에서 시작됐다고 말한 인물이다. 간단히 말해 냉전 당시에는 서방에 유효했지만, 20세기 말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요도가 떨어지고, 21세기 들어 아시아권으로 미국 군사력이 이동하면서 그리스가 서방의 이해권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것이 카플란의 분석이다.

미국과 유럽이 외면하는 과정에서 경제위기가 왔고, 적극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결국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무사했던 이유도 바로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경제적 관점도 중요하지만, 미국 주도 하의 지정학적 관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게 카플란의 지론이다.

유대인 출신의 카플란은 현재 워싱턴DC 소재 군사·외교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www.cnas.org) 선임연구원으로 있는 국제 정치·외교 전문가다. 2011년 <포린 폴리시(www.foreignpolicy.com)>에 의해 세계를 움직이는 100인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인물로, 전 세계를 지정학이라는 분석의 틀로 연구하는 석학이다. 냉전 당시 통하던 이념 중심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적 관점을 중시한 글로벌 정세 분석으로도 유명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공영라디오 방송인 NPR을 비롯해 미국 주류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독특한 세계관을 주기적으로 알리면서, 미 육·해·공군의 장성을 대상으로 정책 브레인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 MBA과정의 교수로 재직한 것은 물론, 이란-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군기자로도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유럽 전역과 발칸반도, 중동 전체를 돌아다니며 익힌 현장감각을 기반으로 활발한 저술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2014년 발간된 <아시아의 불타는 솥(Asia’s Cauldron)>이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을 비롯해, 발칸·중동·아시아 등 전 세계를 범주로 하는 10여권의 책이 전부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알래스카에 나타난 5대의 중국 전함


▎로버트 카플란 선임연구원은 박 대통령의 9월 중국 열병식 참관 및 한·중 정상회담이 미국과의 강력한 동맹관계가 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현장의 공기를 읽고 이해하는 실전연구가라는 점은 필자가 카플란 인터뷰에 관심을 가진 가장 큰 이유다. 아카데믹 세계를 발판으로 한 책상물림 세계관이 아니다. 사선을 넘는 미군이 현장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군사전략으로서의 국제정치학이란 점에서 특별한 가치와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미 전설로 접어든 헨리 키신저를 잇는 차세대 국제정치전문가가 카플란의 미국 내 위상이다. 인터뷰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이 이뤄진 지 1주일 뒤인 9월 9일 워싱턴 신미국안보센터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워싱턴의 하반기 업무는 9월 7일 노동절이 끝나면서 본격화된다. 의회도 9월 8일부터 문을 열었다. 3주간의 여름휴가를 끝내고 첫 출근한 날 아침의 인터뷰다. 질문은 중국에서 관한 부분부터 시작됐다.

지난 9월 3일 중국의 군사 퍼레이드를 어떻게 보는가?

“먼저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알래스카에 나타난 중국 전함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고 싶다. 중국은 9·3 군사 퍼레이드 시기에 맞춰 5대의 중국 해군 전함을 알래스카 근해에 보냈다. 중국은 다음과 같은 명확한 신호를 미국에 보냈다. ‘우리는 미국이 엄청난 해군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미 해군이 태평양 전역에서 활동한다는 것도 잘안다. 그러나 그 같은 상황은 어제오늘의 일이지만 내일은 아니다. 우리는 (미래에) 미국에 준하는 해군력을 갖게 될 것이다. 태평양에서의 중국 해군력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우리는 원하기만 한다면 (본토 선제공격이 가능한) 미국의 해안선 가까이 갈 수도 있다. 미국의 태평양에서의 해군력 우위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 해군의 태평양 장악을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태평양 장악이 옳다고 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태평양에 인접한) 아시아권의 내일을 가늠하는 대국이다. 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한층 더 강해지고 거대해질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9월 3일 군사 퍼레이드와 알래스카에 출현한 중국 전함이 갖는 공통점에 해당한다. 미국은 톈안먼광장의 9·3 군사 퍼레이드보다 본토 코앞에 다가온 5대의 중국 전함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으로 느껴졌다.”

중국의 해군력이 강해질 경우 동아시아의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중국의 군사력이 강해진다고 해서) 미국의 군사적 우위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워싱턴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같은 방향은 이미 수많은 논의를 통해 결정된 상태다.”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와 관련해, 유사시 미국이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은데?

“중국의 군사 팽창이 강화되면서 일본의 군사무장화는 불가피할 것이다. 무기를 현대화, 고성능화하는 것이 필연적이다. 지금까지 제한해왔던 무력 사용의 범주도 한층 더 넓혀나갈 것이다. 일본 그 자체가 중국에 맞서는 군사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센카쿠 공동대응과 같은) 미국과의 군사적 협력체제를 강화하는 일에도 매진할 것이다. 미국은 기꺼이 협력할 것이다.”

한국·일본, 중국의 영향권에 복속되지 않을 것


▎2013년 북한 3차 핵실험 이후 평양시내 곳곳에는 핵 보유와 제국주의 타도 등을 담은 선동적인 구호들이 나붙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항일승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 참가한 사실이 워싱턴에서는 어떻게 비쳐지는가?

“지도를 보자. 한국은 일본·중국 사이에 끼인 나라다.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가까이 있고 거대한 시장이란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지도자치고 중국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만큼 강력한 관계를 갖는 나라는 없다. 역대 그 어떤 한국의 대통령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무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그같은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란 점이라 판단된다.”

워싱턴의 일반적인 분위기지만,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의 지도자에 대해서는 비판을 삼간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있더라도, 미국과의 동맹관계 강화를 역설하면서 함께 가자는 점에 방점을 두는 것이 현재 분위기다. 변화가 있다 하더라도, 한순간에 달아오르거나 차가워지는 외교가 아니다. 카플란의 발언은 그런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일부에서는 중국이 아시아권을 상대로 ‘핀란드화(Finlandization)’를 진행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막강한 군사력, 경제력을 바탕으로 주변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잠식해가는 중국판 ‘깡패외교’를 어떻게 보는가?

“한국, 나아가 일본은 다른 아시아권에 비해 핀란드화가 되기 어려운 나라들이다. 핀란드화가 되기 쉬운 캄보디아 ·필리핀·베트남과는 환경이 다르다. 핀란드화의 대상이 될 곳은 남중국해에 인접한 나라들이다. 지리·경제·군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과 일본은 중국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복속되지 않을 것이다.”

통일 한반도는 내셔널리즘에 휩싸인다


▎2013년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함에서 해상 경계를 펴는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
한국 일부 지식인 사이에서는 20세기 냉전논리인 지정학이 아니라, 같은 문화권인 아시아 지리학에 기초한 국제정세에 주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멀리 있는 친구보다, 가까운 이웃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어떻게 보는가?

“지정학과 지리학은 별개의 논리가 아니다. 지정학은 영토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이라 볼 수 있다. 그 같은 경쟁은 기본적으로 지리학에 기초한 것이다. 지리학과 지정학은 상이한 개념이 아니라, 보완 개념이다. 물리적,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고 해서 모두 이웃이 될 수는 없다. 멀리 있다고 해서 이웃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지정학적 관점이 전부는 아니다. 지리학적 접근법을 통한 지정학적 관점의 국제 관계 해석이 필수적이다.”

최근 지뢰문제로, 한국과 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항공모함 파견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의 군사전문가들은 미국의 아시아 군사정책에 의문을 던지는데?

“나는 항공모함을 보냈는지 여부를 잘 모른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워싱턴은 결코 태평양에서의 미군의 열세나 약화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최근 박 대통령은 남북통일을 국가적 캠페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통일에 대한 얘기가 갑자기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지정학의 최고 권위자로서 통일 후 한국은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나라가 될 것이라 보는가?

“먼저 북한을 보자. 한국은 북한의 붕괴가 필연적이라 볼 듯하다. 한국은 그 같은 상황에 대비한 정책이나 방안을 미리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21세기 중에 북한의 붕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재통일도 이뤄질 것이다. ‘그레이트 코리아(Great Korea)’의 탄생이다. 통일 이후 한반도는 국가적 내셔널리즘에 빠질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내셔널리즘을 상회할 수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결과적으로 일본, 나아가 중국과도 긴장상태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통일이 된다 하더라도 미국과의 군사동맹은 한층 더 절실하게 될 것이다. 북한을 막는 동맹으로부터 주변국과의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동맹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통일한국이 미군주둔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동맹관계가 지속될 수 있다고 보는가?

“통일한국이 원할 경우에 한해 그 같은 동맹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통일한국이 원치 않는다면 한반도에 주둔할 필요가 없다.”

카플란은 북한의 붕괴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일어날 것이란 분석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듯 느껴졌다. 의도적으로, ‘21세기 안에 붕괴가 일어날 것’이라는 장기적 차원의 통일에 주목했다. 북한 붕괴에 대한 얘기보다, 붕괴 이후의 계획을 빨리 구체적으로 짜라는 것이 얘기의 핵심이다.

북한 문제로 넘어가자. 북한은 핵보유국이다. 통일에 앞서 핵 문제가 관건이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전제로 핵포기를 언명했다.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면 미국은 북한과 대협상(Big Deal)에 들어갈 수 있을까? 쿠바나 이란과 같은 관계 개선, 정권 보장이나 국제사회로의 인도 같은 일들을 북한에서도 접할 수 있을까?

“쿠바나 이란 같은 대협상이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이유는 북한에 있다. 쿠바의 경우 섬나라인데다 정권 자체가 북한만큼 호전적이지는 않다. 북한의 호전성은 쿠바를 훨씬 능가한다. 2003년 리비아 카다피는 화학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북한은 리비아 카다피의 최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했는데도 카다피와 리비아는 무너졌다. 따라서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험으로 영원히 보유하고 한층 더 발전시켜나갈 것이다. 핵을 보유, 발전시켜나갈수록 북한체제의 안정과 자신의 권력이 영원해질 것이라고 김정은은 확신할 것이다.”

미·중이 남중국해 바다와 하늘 나눠 가질 것


▎2014년 7월 제주 남방해역에서 열린 한·미·일 수색구조훈련에 참가한 미국 해군 7함대 소속의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현재 한·일 두 나라는 외교적으로 긴장상태에 들어가 있다. 한·중·일 3국 간의 만남을 통해 양국간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생각은 있지만, 회의적인 반응도 많다. 미국은 한·일 양국관계를 어떤 식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은가? 장기적인 차원에서 동맹관계인 한국과 일본을 미국으로 연결시키는,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를 구상하고 있는가?

“그렇게 가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과 일본은 과거 적대적인 관계의 나라다. 두 나라를 동시에 엮어 군사체제를 이룩한다는 것은 어렵다. 한미·미일동맹을 따로 유지하면서, 서로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수준으로 나아갈 것이다.”

카플란은 한·일 두 나라의 관계가 역사적 차원에서 물과 기름의 관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다른 미국의 아시아 전문가와 달리, 역사적 앙금이 존재하는 한 성숙한 관계는 어려울 것이라 분석했다. 그러나 역사 문제를 둘러싼 사죄나 교훈 같은 얘기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당신은 저서에서 중국의 아시아권에 대한 팽창 의욕을 19세기 카리브에서의 미국의 세력 팽창에 비교한 적이 있다. 미국이 카리브해에 대해 재해권을 주장했듯이 중국도 남중국에서 비슷한 구도를 원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1823년 먼로주의를 발표하면서, 유럽에 대해 남미에서 손을 떼라고 말했다. 물론 미국도 유럽의 상황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현재 시진핑(習近平)의 대국주의와 어떻게 다른가?

“전혀 다르다. 미국의 경우 아메리카 대륙을 자국 영토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카리브해에 영유권을 확장하게 된다. 중국은 이미 수천 년간 자국 영토를 보유하면서도 남중국해의 영해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21세기에 들어서 갑자기 영해·영공권을 주장하면서 주변국가들과 마찰을 일으키는 것이다. 카리브해는 아예 미국의 의사에 반대할 만한 나라가 없었지만, 중국은 아세안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존의 질서를 무시한 힘의 의한 남중국해의 영해·영공권 주장이란 점에서 크게 다르다. 19세기와 21세기 상황은 전혀 다르다.”

시진핑 주석이 워싱턴 방문 도중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권리’를 재삼 강조할지 모르겠다. 미·중 간의 협상 메뉴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절대 없다. 그렇지만, 남중국해에 대한 미국의 시각이 지금까지 이뤄져왔던 식으로 흘러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남중국해의 바다와 하늘은 중국과 함께 나누는 식으로 흘러갈 것이다. 파워를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분명한 것은 미국이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막아낼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유지하기는 하겠지만, 중국도 수직 상승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맞아 미국은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중국의 팽창에 걸맞게, 어느 정도는 중국의 힘과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과 함께 협력(Cooperate)하면서 남중국해의 평화와 번영을 지켜나가는 식이다.”

시진핑 주석의 워싱턴 방문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전체적으로 우호적일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중시 여기는 것은 미국에서의 환대일 것이다. 워싱턴에 머무는 것도 24시간 정도에 불과하다. 미·중 양국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만한 엄청난 합의나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니다. 베이징(北京)으로 돌아가서 자신의 국민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수준의 화려한 방문이 될 것이다.”

미국 아시아 정책의 근간은 윈-윈(Win-Win) 전략


▎로버트 카플란 선임연구원은 한·중 군사협력은 동북아 균형을 깨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오른쪽은 2014년 발간된 그의 저서 <아시아의 불타는 솥(Asia’s Cauldron)>.
중국 경제의 하락세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영향권도 줄어들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주식시장이 내리막이기는 하지만, 중국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보면 그렇게 크지 않다. 미국과 달리 주식시장 규모가 지극히 소규모다. 주식이 내려간다 해도 2014년 수준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중국 경제 자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가 완전히 파산하지 않는 한, 중국의 군사 팽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아시아권에서의 미국과 중국 간의 긴장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냉전 당시의 구소련과의 관계에 비교할 때, 중국과의 긴장상태가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가?

“비교하기가 어렵다. 냉전 당시 미국은 구소련과 경제적 관계가 전무했다. 완전히 적이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은 경제적 관계는 강화하면서 경쟁적 관계에 들어서 있다. 적으로 완전히 무시하면서 붕괴시키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다. 앞서 말했듯이, 협력하면서도 경쟁하는 긴장관계다.”

중국과의 협력은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전제로 한 경쟁관계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카플란은 분석한다. 군사적 우위를 통해 상대방을 밀어붙이는 제로섬(Zero Sum)게임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윈-윈(Win-Win) 전략이 미국의 방침이자 아시아 정책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카플란의 생각이 현재와 미래의 미국정책으로 굳어진다고 할 때 한반도의 통일에는 긍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듯 욕심은 끝이 없다. 말하기는 쉽지만 과연 어디까지 주장하고 양보할지가 최종 난제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인도가 전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인도만큼 중요한 나라도 없다. 지리학·지정학적 의미에서부터 현재의 인구는 물론 팽창하는 국력을 볼 때 중요성이 한층 더해가고 있다. 인도는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선천적인(natural) 나라다. 미국이 인도와 적극적으로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에 대항할 필요는 없다. 미국이 할 수 있는 일은 인도가 (중국에 대해) 하려는 일을 도와주는 선에 그칠 것이다. 경제·군사적 관점에서의 협력과 지원은 핵심이 될 것이다. 인도는 그 같은 미국의 뜻을 잘 알고 있고,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을 바라고 있다. 경제·외교·군사 모든 면에서 인도가 강해질수록 미국에도 좋아질 것이다. 모디 수상은 수십 년간에 걸쳐 나타난 인도 정치인 가운데 가장 유능하고 흥미로운 인물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모디와 시진핑 누구를 더 신뢰(Trust)하면서 함께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신뢰라는 말은 부적절한 말이다. 인도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과 함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이념을 공유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은 일당독재 전제주의 국가로 미국의 경쟁상대에 해당된다. 두 나라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중국과 아무리 다각적인 교류를 벌이고 경제관계를 돈독히 한다 하더라도 함께 동맹관계를 구축할 관계는 아니다. 인도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나라가 중국이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존재감이 극히 미미하다. 신문·방송에 등장하는 중국 관련 뉴스의 10분의 1도 안될 듯하다. 미국은 다르다. 최근 중국 경제가 추락하면서 인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수직 상승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 관한 뉴스의 비율은 2대 1 정도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의 미국인의 중국에 대한 관심은 이미 끝났다. 투자를 한다고 해도 결과가 너무도 빈약하기 때문이다. 미개척지 인도의 경우 투자에 비해 산출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인도에 대한 카플란의 기대와 평가는 평균 미국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러시아, 아프간에서의 과오를 우크라이나에서 되풀이

당신은 21세기 아세안에서 베트남의 역할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 전망했다.

“지리학·지정학적으로 볼 때 베트남의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엄청난 인구와 뜨거운 민족주의, 해군 강화에 대한 강력한 열망,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남중국해 섬들에 대한 영유권 확보 의지 등을 고려하면 베트남의 가치와 역할은 크게 신장될 것이다. 남중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가장 유효한 국가가 될 것이다. 미국은 그 같은 베트남의 생각을 지원할 것이다.”

베트남은 미국이 잊을 수 없는 공산주의 적이었다. 워싱턴이 베트남과의 협력체제에 적극 나설 수 있을 것인가?

“그 논의는 이미 오래전에 종결됐다. 미국과 베트남과의 관계는 좋아질 것이다. 사실 미국과 베트남은 단 한 차례의 전쟁을 치렀을 뿐이다. 역사상 베트남과 중국과의 전쟁은 부지기수다. 미국은 경제적 지원과 군사고문단 파견을 통해 베트남과의 교류를 강화할 것이다. 미국과 베트남의 합동 군사훈련 같은 것도 가능하다. 그런 생각은 최근 수년간 구체적인 계획 아래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어떻게 되는가? 국지적인 전투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전부 독식할 때까지 공세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역시 만만치 않다. 20세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과오가 우크라이나에서 재현되고 있다.”

마지막 질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곧 워싱턴을 방문할 예정이다. 만약 당신이 외교·안보 어드바이저라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먼저 북한의 미래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길 권한다. 둘째는 과거사를 잊고 일본과 함께 하는 한·일 공존 공영의 길을 찾아볼 것을 기대한다. 셋째는 항상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건히 하라는 말이다. 넷째는 그 같은 과정을 거친 뒤 중국과의 평화적인 문제에 관한 협력을 증진하라고 말하고 싶다. 중국과 군사 문제에 관한 협력체제로 나아갈 경우 동북아 전체의 세력균형을 깬다는 점을 유념해주길 바란다. 미국은 한국이 원하는 한 한미동맹을 결코 공수표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카플란과의 인터뷰는 40분 만에 끝났다. 곧 출간될 저서를 위해 분초를 아끼면서 인터뷰에 임했다.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오해 없이 정확히 알리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중국의 위상 강화가 필연적이며 미국은 그에 대한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도 인터뷰를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통일 한국이 잘못하면 지역의 균형을 깨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협력 요청에 앞서 통일 한국의 청사진을 알리는 것이 절실하다는 것도 인터뷰를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한반도와 주변국 모두가 태풍전야라는 사실은 너무도 명확하게 와 닿았다.

- 글·사진 유민호 월간중앙 객원기자, ‘퍼시픽 21’ 디렉터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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