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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 포커스] 박근혜 대통령의 대중(對中) 밀착외교 손익계산서 

거인(미국)의 어깨에서 거인(미·중)들 사이로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중국 설득해 2012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 복원… 10월 방미에선 한미동맹 강화 통해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구체화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중국 톈안먼 성루에 올라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인민해방군의 열병식을 지켜봤다.
#1. 지난 9월 3일 오전 10시 중국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열린 항일(抗日) 전쟁과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열병식에 초청을 받은 49개국 정상 및 대표들과 함께 천안문 성루에 올랐다. 박 대통령은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왼편에서 나란히 성루로 이동해 돈독한 한·중관계를 과시했다. 박 대통령은 성루에선 시 주석의 오른쪽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 자리를 잡고 인민해방군의 행진을 지켜봤다. 중국 정부가 박 대통령을 사실상 동맹이나 마찬가지인 푸틴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좋은 위치에서 열병식을 참관하도록 한 것은 최상의 예우로 손색이 없다. 중국의 혈맹으로 불리는 북한의 지도자가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이 톈안먼 성루에서 시 주석의 바로 옆 자리나 마찬가지인 좌석에 앉은 것은 한·중 관계의 질적 도약 및 달라진 북·중관계, 더 나아가 동북아의 역동적인 역학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고 할 만하다.

톈안먼 성루에는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이 두 차례 오른적이 있다. 김 전 주석은 1954년 10월 1일 건국 5주년 기념 열병식 땐 마오쩌둥 전 중국 국가주석과, 1959년 10월 1일 건국 10주년 기념 열병식 때는 저우언라이 전 중국 총리와 함께 인민해방군의 행진을 각각 지켜봤었다. 당시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였지만, 중국은 이제 북한 대신 한국의 손을 잡은 셈이다. 중국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장롄구이 교수는 “박 대통령을 시 주석 가까운 위치에 자리를 배려한 것은 중국이 한국을 매우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에선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불참했고, 최룡해 노동당 비서가 참석했다. 최 비서는 시 주석의 오른쪽 맨 끝 편에 자리했다. 김 제1위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최 비서의 위상이 떨어지기 때문이지만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최 비서는 김 제1위원장의 특사가 아닌 북한 대표단 단장의 자격으로 노광철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이길성 외무성 부상 등 3명만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다. 북한은 이번 열병식에 의장대는 물론 군사 참관단조차 파견하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시 주석과 단독 면담조차 못한 최 비서는 9월 3일 오후 평양으로 귀환했다.

항일 역사를 뜻하는 숫자 상징들


▎중국 헬리콥터 편대가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뜻하는 ‘70’ 모양으로 대열을 맞춰 열병식장 상공을 비행했다.
#2.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톈안먼 안쪽에 있는 단문(端門) 앞에서 49개국 정상과 대표를 맞았다. 단문은 자금성의 남문이며 오문(午門)과 함께 사실상 황성의 정문 역할을 한다. 수와 당나라 등 고대 중국 황궁의 정문은 대부분 단문이라고 불렸는데 이는 천하를 다스리는 ‘황제의 문’을 의미한다. 그 앞에서 시 주석은 외국 지도자들을 맞으며 중화부흥을 알렸다. 실제로 중국은 사상 최대 규모의 이번 열병식을 통해 항일전쟁 승리의 의미를 되새기는 동시에 첨단 무기를 통해 군사력을 과시했다. 이번 열병식에 군 병력 1만2천여 명과 500여 대의 각종 무기, 200여 대의 군용기가 동원됐다. 이들 무기는 전부 중국산이며 84%가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최신형이다. 특히 주목을 받은 무기는 사거리 2만㎞로 추정되는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인 둥펑(東風)-21D(DF-21D)와 사거리 3천㎞인 둥펑-26(DF-26)이다. 둥펑-21D는 세계 유일의 지대함(地對艦) 탄도 도미사일로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항해하는 미국의 항공모함을 타격할 수 있어 ‘항공모함 킬러’로 불린다.

지대지(地對地)탄도미사일인 둥펑-26도 태평양상의 미군 전략기지인 괌을 타격할 수 있어 ‘괌 킬러’라는 별명이 붙었다. 사거리 1만∼1만2천㎞로 추정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31A도 선을 보였다.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둥펑-31A는 고체 연료를 쓰기 때문에 사전 연료 주입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다. 주력 전투기인 젠(殲·J)-10과 젠-10A, 젠-11, 젠-15, 방공미사일 시스템 훙치(紅旗)-6, 대전차 미사일 시스템 훙젠(紅箭)-10, 전략핵폭격기인 훙(轟·H)-6K 등도 공개됐다. 훙-6K는 구소련의 TU-16 전략폭격기를 모방한 무기다. 작전반경 3500㎞로 핵폭탄, 공대공·공대지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다.

열병식에서는 다양한 ‘숫자 상징’도 눈길을 끌었다. 열병식에서 가장 두드러진 숫자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을 뜻하는 ‘70’이었다. 헬리콥터 편대는 아라비아 숫자 ‘70’ 모양으로 대열을 맞춰 열병식장 상공을 비행했고 열병식 소요시간도 70분으로 맞춰졌다. 열병식이 시작되자 팔로군, 신사군, 동북항일군 등 10개의 영웅·모범부대는 총 70개의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했다. 중국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합친 전체 56개 민족으로 구성됐음을 뜻하는 ‘56’이라는 숫자도 빼놓을 수 없다. 56개 민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56문의 대포가 승전 70주년에 맞춰 70발의 예포를 발사했다. 또 하나 눈에 띈 숫자는 ‘갑오전쟁’(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부터 올해까지 121년이 지났음을 의미하는 ‘121’이다. 국기게양을 맡은 호위부대는 톈안먼광장의 인민영웅기념비에서 게양대까지 이동하면서 121보를 걸었다. 이는 일제의 만행이 청일전쟁 때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며 그 후 121년간 중국 인민이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고 난관을 극복해왔음을 강조한 것이다.

시 주석은 기념사에서 “항일전쟁으로 중국인은 3500만명이 숨졌다”면서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당시 인류의 자유·정의·평화를 위해 희생한 영령과 무고하게 도살된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영원히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중국이 겪은 전쟁의 비극을 다른 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시 주석은 또 인민해방군 병력 30만 명을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병력 감축은 정예화, 현대화에 초점을 맞춰 이뤄지는 것이어서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동북아의 국제질서가 한·중 관계 강화로 크게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정세는 전통적으로 중국-러시아-북한 VS 한국-미국-일본의 대립관계였지만 최근 중국-러시아, 한국-중국이 밀착하면서 북한의 고립화 경향이 나타나고 있고, 소외된 일본도 동맹국인 미국에 바짝 다가가고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한·중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반면 북·중 관계는 김 제1위원장이 권력을 잡은 이후 갈수록 악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입증됐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의 열병식에는 시 주석의 진정한 친구가 옆에 서게 되는데, 주인공은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이 아니라 한국의 박 대통령”이라면서 “이런 모양새가 북한과 중국이 얼마나 냉랭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그동안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협력이 필요한 결정적인 상황에서 사실상 북한 편을 들어왔지만 시 주석 취임 이후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크게 진전시켜왔다. 중국 정부는 열병식에 참석한 박 대통령을 각별히 예우했다. 박 대통령은 열병식 전날인 9월 2일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시진핑 국가 주석과 리커창 총리와의 연쇄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특별 단독 오찬 자리에 초대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박 대통령을 잘 모시라”고 수차례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박 대통령을 위한 별도의 영접팀과 전용 대기실을 마련해줬다.

북한의 끝없는 고립과 한·중 밀착


▎박근혜 대통령은 9월 2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과 한·중 정상회담을 마친 후 일대일 특별 오찬을 가졌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정상회담과 특별 오찬에서 북한의 추가 도발 억제에 공감하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다. 양국 정상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에도 반대한다”면서 “9·19 공동성명과 유엔 안보리 관련 결의들이 충실히 이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두 정상의 이런 언급은 지난 8·25 고위급 합의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조선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감행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 나온 것이다.

중국의 대북 경고 메시지는 북한에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유엔 안보리 결의는 1718호, 1874호, 2087호, 2094호 전부를 의미한다. 이 결의들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또 추가 핵실험과 어떤 유형의 탄도미사일 발사도 금지했다. 한·중 정상의 이번 합의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건설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요청에 시 주석이 화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 “북한의 도발과 핵·미사일 관련 전략적 도발을 정상 차원에서 공동으로 억제, 예방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발신했다”면서 “한·중 정상 차원에서 북한의 전략적 도발 가능성에 대해 사전경고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두 정상이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고 ‘의미 있는’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은 것도 시기적으로 유의미한 부분이다. 중국이 핵·경제 병행 노선을 천명하고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면서 비핵화 협상을 거부하고 있는 북한에 대해 사실상 압박을 가한 셈이다. 중국은 거부권을 가진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북핵 관련 대북제재 수위를 결정하는 핵심 국가다. 양국 정상이 ‘의미 있는’ 6자 회담이라고 규정한 것도 북핵 불용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6자 회담이 대화를 위한 대화가 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두 정상은 이와 함께 북한이 민감해하는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누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가 분단 70년을 맞아 조속히 평화롭게 통일되는 것이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이에 대해 시 주석은 “한반도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지난 9월 4일 귀국하는 전용기 안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과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 “중국과 조속한 시일 안에 한반도 평화통일과 관련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남북한 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변화상을 설명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 대통령은 평화 통일이 될 경우 남북간 긴장 상황이 영원히 해소되고 동북아 지역의 안보 위협도 줄어들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국들에도 ‘대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 주석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은 일본의 군비 확장과 미국의 동북아 지역 개입의 빌미가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의 평화 통일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한·중 정상회담 발언을 걸고넘어지다


▎2013년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한미 장병 낙동강 방어선 100㎞ 종주 행군’에 나선 양국의 병사들.
북한은 박 대통령의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곧바로 표출했다. 북한의 대남조직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나눈 발언을 언급하며 “해외 행각 중인 남조선 집권자가 최근 비무장 지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를 두고 ‘북의 도발사태’니 그 누구의 ‘건설적 역할에 감사를 드린다’느니 하는 온당치 못한 발언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집권자가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을 늘어놨다”면서 “남조선 집권자가 북·남 합의 정신에 저촉되고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무책임한 발언들을 서슴없이 내뱉고 있는 것은 당면한 북·남 관계 일정마저 가늠할 수 없게 하는, 매우 심각한 사태”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당기관 등이 아닌 조평통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비난한 것은 중국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 매체들은 중국 항일전쟁 70주년 기념 행사를 특별히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 5월 열린 러시아의 제 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행사 때는 김 제1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을 비중 있게 다뤘던 것과 대비된다. 혈맹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운 중국의 국가적 행사에 대해 냉담할 정도로 대응하고 오히려 한·중 정상회담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은 북·중관계의 변화된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중 관계는 이번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계기로 ‘경열정냉(經熱政冷: 경제는 뜨겁고 정치·안보는 차갑다는 뜻)’의 상태에서 ‘경열정열(經熱政熱: 경제와 정치·안보 분야 모두 뜨겁다는 뜻)’의 단계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은 동북아 지역에 신질서 태동을 알리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서방진영의 정상들이 참석하지 않는 행사에 박 대통령이 중국, 러시아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점은 상당한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한국 대통령이 눈에 띄는 노란색 옷을 입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곁을 걸어가는 풍경이 한국과 중국의 밀착을 상징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중 양국은 이미 경제적 측면에서 밀접한 관계다. 중국은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대상국이다. 중국과는 연간 1천만 명의 인적교류와 3천억 달러의 교역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가장 중요한 터전이다. 위기에 빠져들고 있는 국내 경제를 반등시키는 데는 중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양국은 그동안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내실화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앞으로 한층 더 성숙한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것으로 보인다. 자칭궈 중국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은 “현재 한·중 관계는 경제·정치·사회 등 모든 측면에서 좋다”면서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등 우리나라가 동북아 지역에서 이니셔티브를 강화하는 계기도 만들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10월 말~11월 초에 한국에서 개최하는 것에 합의한 것은 동북아의 국제 질서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눈에 띄는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과거사 문제와 한·중·일 3국 협력문제를 분리해왔지만, 중국은 일본의 영유권 분쟁 등을 이유로 3국 정상회의 재개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한·중·일 협력제체, 한·미·일 3각 공조의 양립?


▎2014년 3월, 한·미·일 3자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 미국 대사관저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보는 가운데 아베 총리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을 설득해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라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난 3년간 중단됐던 한·중·일 정상회의가 재개된다면 그동안 과거사와 영토 갈등으로 정체돼 온 한·중·일 협력 체제가 완전히 복원되는 의미가 된다. 한국 대통령과 일본·중국 총리가 참여해 3국 협력을 논의하는 한·중·일 정상회의는 2008년부터 총 5차례 개최됐었지만,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국유화 조치로 중·일 갈등이 격화된 2012년 이후 중단됐었다. 한·중·일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면 박 대통령의 핵심 외교전략인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주도로 한·중·일 3국이 불신과 갈등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협력과 공동번영의 역내 평화구도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한·중·일 3국은 자유무역협정(FTA)은 물론 원자력 안전, 핵 안보, 재난관리, 환경, 청소년 교류 등의 분야에서 협력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개최된다면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취임 후 첫 방한을 한다면 경색된 한·일 관계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나아가 한·중·일 정상회의를 통해 한·일 관계 개선의 모멘텀이 마련될 경우 한·미·일 3각 공조 복원을 위한 관계 개선을 요구해 오던 미국에 화답하는 모양새도 된다. 2013년 2월 취임한 박 대통령과 2012년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일본 총리는 과거사 문제 등을 둘러싼 갈등 속에 취임 후 아직 한 차례도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아베 일본 총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함께 한·일 정상회담도 하고 싶다”고 희망을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열병식 참석으로 한·중 관계 발전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미 동맹 강화라는 과제도 떠안게 됐다.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패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은 미국의 우려를 살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겉으로는 박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북한 문제 때문이라면서 이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내심으론 상당한 불만이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과 관련, 마크 토너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참석은 한국이 주권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며 이는 한·중 양국의 관계가 한층 강화된 신호로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이 미국의 강력한 우방이자 동맹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가는 이해하지만, 한·중 관계 강화에는 경계심을 보였다. ‘이해한다’는 말은 ‘지지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의 불만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더글러스 팔 카네기국제평화연구원 부회장은 “대북 레버리지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중국과 협력하려는 한국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중국이 한국을 가장 마지막으로 침략한 나라라는 점에서 한국 정부가 참여 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연구원도 “박 대통령은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더 큰 협력을 끌어내려는 노력을 했다”면서도 “한·미 동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매우 견고하며 한·중 관계 발전이 한미 동맹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 조야에선 한국의 ‘중국 경사론(傾斜論)’이 제기되면서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일 對 중국 구도 사이에 선 한국

그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이 이번 열병식을 통해 일본은 물론 미국에 분명하게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번 열병식을 계기로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전략에서 ‘대국굴기(大國掘起: 큰 나라로 우뚝 선다)’전략으로 가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최신예 무기를 선보이면서 ‘과시(swaggering) 전략’을 구사한 것에 불쾌감을 보였다. 피터 쿡 국방부 대변인은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이기 때문에 굳이 열병식을 통해 능력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면서 “중국이 열병식에서 신무기를 선보인 것은 처음이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니다”라면서 중국의 열병식 의미를 애써 축소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과거의 적이었던 미국과 일본이 견고한 동맹으로서 아시아와 글로벌 무대에서 공통의 이해와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고자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의 의도는 중국의 열병식을 계기로 한국 등 동북아 지역에 반일정서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동맹국으로서 일본을 적극 지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방미 및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신(新) 밀월관계에 합의하면서 양국의 공동 비전 성명을 발표했었다.

오는 10월 16일 개최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의 의제는 한미동맹 발전, 북핵 문제 등 대북 공조, 동북아 평화 번영을 위한 협력,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실질협력 증진 등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과 중국의 열병식 참석에 이어 10월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510호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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