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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헤리티지재단 창립자 에드윈 퓰너가 보는 한반도의 미래 

“북·미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주한미군, 북핵 문제 해결돼야”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사진 오상민 기자
■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환영… 협정의 세부사항 사전 타결이 관건
■ 경직된 北 김정은 체제 굉장히 위험해 보이지만 일부 유연성도 감지돼
■ 박근혜 정부, 햇볕정책 등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교훈으로 활용했으면
■ 시민사회, 통일방안 도출 관련해 부수적 사안들로 내부 분열 말아야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은 북한 지도자의 진짜 생각이 뭔가를 알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의 보수적 두뇌집단인 헤리티지재단은 2011년 12월 북한 당국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발표 후 채 4시간도 지나지 않아 기자들을 상대로 긴급 브리핑을 실시했다. 북한의 급변사태와 관련해 전 세계에서 가장 기민하게 반응한 싱크탱크라는 찬사를 받았다. 1973년 설립된 헤리티지재단은 이 같은 순발력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보수주의적 싱크탱크로 자리매김했다.

재단의 창립 멤버인 에드윈 퓰너 전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은 1977년부터 2013년까지 오랫동안 재단이사장을 맡아 이 조직을 미국 최고의 아이디어 뱅크로 만들었다. 그가 10월 8일 서울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 국제전문가 포럼’ 참석차 방한했다. 이틀 뒤 북한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군인과 주민 10만 명 이상이 동원된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가졌다. 퓰너 전 이사장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이 장면을 한국에서 지켜봤다.

그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체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유연성을 발휘한다”고 북한 내부를 진단했다. 기회가 된다면 북한을 방문해 실상을 몸으로 느껴보고 싶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정·재계를 대표하는 많은 인사와 각별한 친분을 다져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유년시절은 6·25 한국전쟁 기억으로 점철된다. 숱하게 죽어나가던 미군 장병들의 소식을 접하면서 한국이란 나라를 주목하게 됐다고 한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는 북한이 최대 규모의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기 하루 전인 10월 9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진행됐다.

북한은 아직도 미지의 땅, 은둔의 나라다. 한국에 북한 관련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된다고 보나?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가 어떤 통로를 통해 북한 정보를 얻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은 북한 정보에 익숙한 정부 관료, 유엔 및 국제기구 관계자, 서구의 북한 연구 학자, 탈북자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얻는다고 판단된다. 또 70년에 가까운 분단의 세월을 거치면서 관련 정보를 분별하고 걸러내는 능력도 키워졌을 것이다.”

헤리티지재단은 북한 관련 정보를 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얻는가?

“북한 정보를 입수하고자 모든 채널을 다 열어둔다. 한국 정부의 관료나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는 남한 비정부기구(NGO) 관계자, 한국 내 북한 연구자 등을 총망라한다. 워싱턴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접촉이 활발하다. 북한을 잘 아는 제 3국 정부 관계자, 전문가 그룹과도 긴밀히 교감한다. 또 탈북자들이 펴낸 책이나 인터뷰 등 여러 방면으로 자료를 수집한다. 이런 정보들을 우리 연구자들이 취합해 북한 동향을 파악한다.”

15년 전 불발된 방북(訪北), 기회 꼭 이뤄졌으면


▎2013년 2월 25일 열린 제 18대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박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쌓아온 에드윈 퓰너 전 이사장은 이날 취임식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북한 당국과 직접 접촉하기도 하나?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정보를 받은 적은 없다. 15년 전인가 북한 당국으로부터 방북 초청을 받았는데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초청 이후) 상황이 급변하는 하는 바람에 때를 놓쳤다. 이제 그때가 왔다며 방북을 요청하는 전화벨이 울리기를 지금도 기다리는 중이다.”

북한에 간다면 뭘 가장 하고 싶은가?

“방북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북한 지도자의 진짜 생각이 뭔지, 북한 주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알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한반도 밖에서도 남북통일은 바람직하다고 보나?

“필요하다. 한국은 마치 한 개의 허파로 숨을 쉬는 사람과도 같다. 반드시 다른 한 쪽의 허파와도 연결돼야 한다.”

한반도 통일 시점을 점쳐본다면?

“내 나이가 올해 74세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남북 통일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김정은 체제의 내구성, 지속성을 진단해달라.

“(조금 뜸을 들이면서) 김정은은 스위스에서 유학을 했다. 스위스에 그칠 게 아니라 미국까지 와서 헤리티지재단에서 인턴 생활이나 연구를 했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을 했을 텐데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권좌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저렇게 아주 혹독하게 즉흥적으로 처단하는 경직성에 비춰볼 때 사실은 상당히 걱정스럽다. 김정은은 올해 32세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다. 많은 사람의 얘기를 경청해야 하는데 인척인 고모부까지 저렇게 처형해버리면 감히 누가 김정은에게 입을 떼려 들겠나? 이런 점에서 굉장히 걱정되고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휴전선 지뢰폭발 사건 당시 남한과 협상하고 사과도 해서 대북방송 확성기를 끄게 하는 등 갈등을 씻어냈다. 어느 정도의 유연성은 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다.”

언급한 대로 스위스에서 공부했으면 서구 사회를 경험한 셈인데 김정은에게서 서구적 면모나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겠나?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지만 지금 단정적으로 말하기엔 이르다. 시간이 더 지나봐야 해답을 알 수 있다.”

북한 당국은 한반도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미국에 꾸준히 요구해왔다. 이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내 생각에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언제나 환영한다. 하지만 북한이 요구하는 협정 논의에 앞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문제, 또 북한 핵 개발 문제 등 세부적인 내용을 다 들여다봐야 한다. 따라서 지금 평화협정에 대해 뭐라 언급하긴 이르다. 중요한 점은 서명이 들어간 문서가 아니라 다양한 현안을 두고 서로 머리를 맞대려는 자세 아니겠나.”

야간통행금지가 실시되던 시절에 첫 방한


▎에드윈 퓰너 전 이사장은 한국 시민사회가 통일을 향한 공동의 비전을 창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재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재단 산하 아시아연구센터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1982년 설립된 아시아 연구센터는 그의 오랜 세월에 걸친 아시아에 대한 애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일찍이 ‘아시아 시대’의 도래를 예측했다. 평소 헤리티지재단의 미래가 아시아센터에 있다고 말해 왔다.

아시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이 베트남전쟁으로 굉장히 어려운 시기를 보낼 때 설립됐다. 미국 정책 결정권자들은 베트남전쟁의 후유증도 있고 해서 아시아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시아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은 문화혁명의 후유증에 몸살을 앓았고, 동남아 국가들도 나름 복잡한 내부 문제로 진통을 겪던 시절이다. 하지만 미국은 오래전부터 태평양 연안국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한국과 필리핀 같은 나라에 선교사를 파견해 근대화를 도운 역사적 기억도 있다. 아시아는 미국이 결코 등한시해서는 안 되는 지역이었다. 아시아 각국에 걸맞은 정책을 입안·제공하고 그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유럽 간 교역량이 미국-아시아 간 교역량을 앞지르던 시절이지만 조만간 역전되는 날이 온다고 예측했다. 지금은 세 배 이상 아시아가 앞서간다.”

지난해에도 방한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제언을 발표하는 등 한반도 통일문제에 관심을 표명했다. 개인적으로 한국이 그렇게 특별한 나라인가?

“그렇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 관계 아닌가. 1941년 생인 나는 한국에서 전쟁이 터졌을 당시 한낱 어린 소년에 불과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신문에서는 연일 미군 사상자 명단을 쏟아냈다. 어린 마음에 희생된 그들이 모두 내 친구의 아버지, 삼촌처럼 와 닿았다.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어디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나라의 자유를 위해 미군 장병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목도했다. 그때 벌써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랄까 강한 인상이 뇌리에 깊이 꽂힌 것 같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궁금했을 것 같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때는 언제인가?

“1971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때 한국은 헐벗고 가난한 그저 그런 나라였다. 자정이면 야간통행금지가 취해지는 등 시민의 자유가 억압받았다. 지금은 격세지감이다. (인터뷰 탁자 위에 놓인 삼성 갤럭시 휴대전화를 들어 보이며) 일본 제품이 아니지 않느냐, 한국산이다. 이게 한국의 현재를 말해준다. 한국의 경제발전은 정말 큰 기쁨이자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만난 한국인들은 내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친절할 뿐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생각과 가치를 나눌 줄 알았다. 여러분들과 지금과 같은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됐다.”

예를 든다면?

“수십 년 동안 훌륭한 분들과 친분을 다지는 영광을 안았다. 박근혜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박세직 전 서울올림픽조직 위원장,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한양대 설립자 김연준 박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돌아가신 분도 있고 현역으로 활동하시는 분도 많다. 이분들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 한화는 이라크 재건 사업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 지도층 인사 중에는 2세, 3세와도 교분을 이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족끼리 함께 만나기도 하는 등 흉허물 없이 지낸다. 이런 친밀감 덕분인지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다른 나라에 비할 바 아니다”

기자들에게 나를 ‘테드 퓰너’로 소개한 DJ


▎국민의 정부 시절 김대중 대통령과 접견 중인 에드윈 퓰너 전 이사장. 그는 한국의 정·재계에도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전·현직 대통령과의 일화도 많을 것 같은데 들려달라.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당선인 시절 서울 동교동 사저에서 만찬을 함께한 적이 있다. 많은 언론인이 열띤 취재 경쟁을 했다. 당시 한 언론인이 김대중 당선인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은 진보성향의 정치인으로 아는데 왜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와 같이하는가?’ 김 당선인이 남긴 대답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는 미국 민주당의 거물 정치인인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과도 가깝고, 헤리티지 재단의 테드 퓰너와도 잘 지낸다. 나는 진보에서 보수에 이르기까지 친구의 범위가 아주 넓다.’ 김 당선인은 테드 케네디의 이름을 내게 붙여 ‘테드 퓰너’라고 부르는 등 유머에 자신의 의중을 녹여 전달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박 대통령과의 인연도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1월인가 국회의원 신분의 박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다. 그때 나와 집사람은 워싱턴 자택에서 박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렇게 박 대통령과는 약 15년에 걸쳐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략 20여 차례 미팅을 가졌다. 한·미 관계에서부터 미국 국내 문제, 세계무역에 이르기까지 자주 토론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은 다른 이들의 발언을 경청할 줄 알고 질문도 많이 했던 걸로 기억된다. 전반적으로 통찰력이 뛰어났다.”

가까이서 본 박 대통령은 토론에 적극적이었나?

“일각에서는 의사소통이 일방통행식이라고 하는데 한 번도 그런 면모를 보인 적이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자 했고, 질문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열정을 가진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귀를 막고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유형이 결코 아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좋은 친구 사이

에드윈 퓰너 전 이사장은 한국 지도자들과의 만남이 결코 의례적이라거나 피상적인 관계에 머문 적이 없음을 강조했다. 그는 “각자의 소신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공감대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신뢰를 돈독히 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삼성그룹과는 3대에 걸친 친분을 자랑한다. 헤리티지 재단은 1995년부터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딴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언젠가 아들이자 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현 삼성전자 부회장) 씨가 헤리티지 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며 워싱턴 정가와 재계를 익힐 기회를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퓰너 전 이사장이 재단의 영광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이자 이 회장이 두 팔을 벌려 그와 진한 포옹을 나눴었다고도 돌이켰다. 그는 “지금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좋은 친구로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와도 이렇게 돈독한 관계를 맺는 경우가 있는가?

“대만의 정치인·경제인들 중에 지인이 많은 편이다. 홍콩에도 중국에 반환되기 이전부터 흉금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유럽에서는 대처 전 영국 총리와 굉장히 깊은 인간적 유대감을 나눴다. 2013년 대처 전 총리가 타계했을 때 정말 애석했다. 한국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나라다.”

그는 10월 8일 한반도선진화재단, 글로벌피스파운데이션 등의 주최로 서울에서 열린 ‘한반도 통일 국제전문가 포럼’의 의장 자격으로 방한했다. 이 포럼에서 그는 시민사회 영향력은 필연적으로 확대된다고 단언했다. 기술혁명이 시민사회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면서 상향식 민주주의도 더 활성화 된다는 논리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시민사회의 기반이 되는 개인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점을 중대한 변화로 꼽았다. 그는 “시민사회 차원의 더 창의적이고 유연하며, 효과적인 상향식 공동목표 달성이 가능해졌다”고 강조했다.

포럼에서는 북한의 시민사회에 대한 언급도 나왔다. 그는 북한 정부의 내부 선전선동이 주로 주변 국가를 불신토록 하는 데 집중돼 있다고 비판했다. 막 태동 단계에 들어선 시민 사회의 취약한 기반을 잠식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 게 김정은 체제의 노림수라는 것이다. 정권에 대한 두려움, 이웃 국가에 대한 두려움을 주입해 신뢰에 기반한 자발적 결사체의 등장을 사전에 차단하려 든다고 풀이했다. 그는 “정부가 권력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시민사회 분야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한반도 통일 국제전문가 포럼’은 ‘통일을 위한 시민사회 역할 및 국제 협력방안 모색’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어떤 취지의 행사였나?

“말 그대로 한반도 통일로 가는 길에 시민사회의 역할을 고찰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남북 화해와 협력 시대를 준비하는 시민사회의 바람직한 역할을 논의했다. 국제사회와 해외동포들과의 협력방안도 도출하는 등 평화통일을 위한 기반구축 차원에서도 중요한 계기가 되는 뜻 깊은 행사였다.”

지금 이 시기에 왜 시민사회인가?

“사회 구조가 변할 때는 두 가지 힘이 작동한다. 하나는 정부 주도의 위로부터의 변화 움직임이고, 또 하나는 시민사회·시민단체 등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힘이다. 정치든, 경제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자면 이 두 가지 힘이 접목돼야 한다. 그래서 시민사회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한반도 통일로 가는 여정에서 시민단체·시민사회가 수행하게 될 역할을 함께 협의하고 공유하는 기회가 됐다.”

이념적 지향이 제 각각인 시민단체 차원의 통일 방안 조율이 가능할까?

“시민사회가 번영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자발적인 조직들이 함께 모여야 한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각기 강점을 결합하고 키워나가면 된다. 부수적이고 무관한 사안들 때문에 내부적으로 분열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 조직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상향식 공동목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하다. 신세대가 시민사회에 헌신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한국은 정치·경제·이념·지역적으로 분열상이 날로 심화된다.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나라다.

“비정부기구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공통의 비전 아래 하나가 될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를 도출하기를 바란다. 배제의 논리를 배제해야 한다. 나눗셈과 뺄셈보다는 곱셈과 덧셈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야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전진할 수 있다.”

“TPP는 일본을 개방경제로 이끄는 수단일 뿐”

한반도 통일 방안은 언제, 어떤 계기로 접하게 됐나?

“통일 문제와 관련해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얘기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 재임 당시 유엔 방문 차 뉴욕에 들른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만찬을 함께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햇볕정책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한국이 햇볕정책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통일을 향해 둘러가는 것인지, 질러가는 것인지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올바른 길을 찾아가게 되듯이 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햇볕정책’, ‘평화번영정책’ 등에 힘입어 남북관계가 활성화되기도 했다. 이후 보수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다. 진보 정부 10년, 보수 정부 8년의 대북 정책을 조망한다면?

“먼저 한국 내부의 정책 논쟁에 관여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웃음) 햇볕정책이 추구하던 궁극적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기에 실패라고 할 수도 있지만 통일로 가는 긴 여정의 첫걸음을 떼어 옮겼다는 데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북 관계에서는) 하나하나의 걸음걸이가 다 제 몫을 하게 마련이다. 이런 시도가 쌓인 연후에야 한국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게 된다. 지나간 역사에서도 우리가 배울 게 많다. 박근혜 정부가 역대 정부의 정책을 외면할 게 아니라 교훈으로 새겨서 남북관계를 지혜롭게 풀어가면 좋겠다.”

근래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이 과거보다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사고의 기초는 ‘생각의 힘’에 달려 있다. 자유와 교육, 기업 활동 심지어 선거 참여에 대한 공동의 아이디어가 중요하다. 시민사회의 공동의 목표에 헌신하는 지도자들의 모임은 통일한국을 위한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한국의 비정부기구의 기반과 역량은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한국에서도 세계적 싱크탱크의 탄생이 가능할까?

“아산정책연구원을 보자. 저명한 석학과 우수 인력을 다수 거느리며 글로벌 임팩트가 있는 어젠다와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10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한국에서 가능해졌다. 싱크탱크는 아이디어가 갖는 힘을 나누고, 공유하며, 확산시켜나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지적 활동이 경제성장 못지 않게 중요시된다.”

최근 타결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관련해 한국이 TPP 창립국 기회를 상실해 불이익이 예상된다는 적이 있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 협력관계는 아주 견고하다. 이미 3년 전인 2012년 한·미간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상태다. 미국이 TPP를 서두르는 이유는 일본을 좀 더 개방된 경제로 이끌어 미·일 경제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자 함이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미국과 일본의 경제 협력은 한·미 간의 그것에 많이 못 미친다. 10월 박 대통령의 방미 과정에서도 확인되겠지만 한·미 관계는 아주 공고하다.”

- 글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 사진 오상민 기자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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