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달팽이야, 비에 지지 말고 가자느닷없이 길이 사라지고 짓밟힌다 하더라도치열하게 가자느림은 아름다운 거야껍데기집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도하늘을 지고세상에서 땀 흘린 것만이 네 것이 된다면묵묵히 가자마른 잎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 들으며들판을 지나고자갈을 지나 돌멩이를 더듬고자신마저 풍경이 된다면끝까지 가보자밤이 키우는 창문들 떠나자꾸 어느 벽 앞에 당도하게 되고날 수도 없고 뛸 수도 없다면기어서라도 가자달팽이야, 이제 언덕을 넘었으니조급하면 지는 것빗방울에게 길을 묻지 말고네 눈동자에 뜬 별을 쫓아천천히 가보자가다 보면 네 간 길이 또 다른 길이 되고누군가 그 길을 이정표처럼 삼으며편한 길이 될 수 있을 거야그러니 막다른 곳이 나올지라도너답게 가자느림도 힘이다
안명옥 - 2002년 <시와시학> 등단. 시집으로, 서사시집 <소서노>와 장편서사시집 <나, 진성은 신라의 왕이다> <칼>이 있고, 창작동화로 <강감찬과 납작코 오빛나>, 동화 <금방울전> <파한집과 보한집> 등이 있다. 성균문학상 우수상, 바움문학상 작품상, 만해 ‘님’ 시인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현재 고양예술고등학교에서 문예창작과 교사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