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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호 특별기획] 원희룡·남경필·김부겸·안희정-차세대 리더 4인에게 정치의 길을 묻다 

“보수와 진보 이분법 시대 끝나… 정쟁 멈추고 극한 내몰린 민생 보듬어야” 

‘저성장이 끝없이 지속된다’는 ‘뉴 노멀 시대’ 어떻게 극복할까… ‘통합과 수렴의 정치’가 총선 이후 정치지형 바꾸는 ‘대수로’ 될 것

▎2009년 10월 출범한 독일 보수 우파 연정. 중도 우파 기민·기사당 연합과 친기업 성향의 자민당이 참여했다. 왼쪽부터 기도 베스터벨레 당시 부총리 겸 외무장관(자민당 총재), 앙겔라 메르켈 총리, 호르스트 제호퍼 기사당 총재.
한국 정치가 위기다. 저성장 시대에 걸맞은 혁신의 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도덕적 호소로는 안 된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절박성에서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래서 개방성, 확장성, 유연성이 트레이드마크인 차세대 리더 4인을 만나 물었다. 한국정치, 과연 어디로 가야 하나?

김부겸·원희룡·남경필·안희정 등 차세대 정치 리더 4인이 “보수와 진보 이분법 시대의 종언”을 선언했다. <월간중앙> 2016년 신년호 특집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서다. 이들은 전 세계를 덮치는 뉴 노멀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 시스템의 창출을 제안했다. 보수와 진보세력이 합의가 필요한 국정 어젠다에 대해서는 과감히 장벽과 텐트를 허물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단기적으로는 2016년 한 해 각 정파가 정쟁을 멈추고, 극한으로 내몰린 민생을 돌볼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뉴 노멀의 시대가 장기화되리란 전망을 내놓았다. ‘새로운 정상상태(new normal)’라는 말은 협박의 뉘앙스마저 담고 있다. 저성장의 시대를 이제 ‘정상’으로 알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아직까지 어떤 경제학자도 ‘끝없이 지속된다’는 이 저성장의 늪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그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경제상황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은 유연함을 바탕에 깔지 않으면 안 된다. 좌우파 정치노선 모두 뉴 노멀의 시대가 만든 새로운 광장 안에서는, 어떤 정치적 처방도 아직은 준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 응한 4인의 리더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통합정치 행보에 깊은 공감과 경이를 표시했다. 독일에서 3연속 집권하며 유럽 내 독일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메르켈은 2005년 총리로 좌우 대연정을 이끌었고, 2009년 총선에서도 기독민주-기독사회-자유민주당의 연정을 성공시켰다. 2013년엔 좌우 연정을 아주 큰 틀에서 이뤄내 그의 여장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물론 메르켈의 ‘통 큰 연정’은 다당제 기반 내각제 등 독일 정치지형이 전제된다. 연정이 불가피한 정치구조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전임 슈뢰더 정부의 신중도 노선을 배척하지 않고 수용했다. 이 점에 대해 4인 모두 높은 평점을 매겼다. 기민당의 기존 보수색에 갇히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은 메르켈의 개인적인 캐릭터와도 맞닿는다. 그는 동독 출신 여성, 이혼 경력 등 기민당 내 정통 보수진영과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았다. 이런 비주류적 특성이 메르켈식 신보수 노선의 한 자양분이 됐다. 당내에선 핸디캡이었을지 몰라도 총리가 된 뒤에는 정치 스펙트럼상 반대편의 정당과 연정을 성사시킨 힘이 됐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사민당 좌파정부를 이끌면서도 노동시장 유연화 등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이 같은 ‘신중도’ 노선은 왼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며 중도로 확장한다는 점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발을 딛는 신보수와 방향은 다르지만 본질은 유사하다. 슈뢰더와 메르켈의 궁합이 들어맞을 수밖에 없었던 이상적 구도다. 우리 정치도 각성된 의지와 불가피한 현실이 맞물리면 독일과 같은 대통합의 정치를 못할 것도 없다. 인터뷰에 응한 4인도 대통합론의 원칙에 모두 공감했다.

‘1987년 체제’를 혁파하라

4월 총선에서 대구 출마를 준비하는 김부겸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1987년 체제’의 혁파를 주장했다. 87년 체제는 5년 단임과 소선구제, 거기에 따르는 승자 독식과 지역패권주의로 요약된다. 그는 보수와 진보의 융합을 ‘산업화, 민주화 세력의 화해’로 표현했다. 자신의 정치적 진로에 대입해서는, 두 세력의 화학적 결합을 총선 승리를 통해 촉발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가 청산을 주장한 87년 체제 중 가장 악독한 유산은 지역패권주의일 것이다. 그 유산은 아직도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TK(대구·경북) 출신이 권력 기관장을 독식하고, 소위 ‘배신자론’의 주인공 유승민 의원과 함께 TK지역의 물갈이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역을 단위로 묶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정황이다. 야권에서도 마찬가지다. ‘DJ 정신’을 내세워 호남당이 나올 판이다. 탈당한 안철수 의원도 호남 여론의 동향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여야가 선거구 획정싸움에 목을 매는 것도 사실은 지역의 기득권 지키기에 다름 아니다.

김 전 의원은 소선거구제의 철폐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대구는 새누리당에 대한 정당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이라 전제하며, 소선구제 하에서 야권 후보의 대구지역 당선이 ‘낙타의 바늘구멍 통과’만큼이나 어렵다는 점을 시인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지역패권주의’의 폐해와 함께 그 허구성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고향이라는 대구가 광주와 함께 전국에서 가장 낙후된 광역시란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대구와 광주 경제가 함께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영호남 대결구도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지역 갈등은 오히려 서울과 지방 간의 격차가 더 첨예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이 김 전 의원의 생각이다.

새누리당 내 개혁적 보수의 핵심 일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통합과 수렴 정치를 위한 전제조건을 강조했다. 보수와 진보 공히 “자기 진영의 어젠다부터 확실하게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보수세력 혁신의 키워드를 ‘포용적 경제’로 제시하면서도, 그것이 연정과 같이 양대 세력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엔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양 진영의 정치경제적 이념이 결국 수렴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4∼5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기간, 다시 말해 20년 정도의 시간적 성숙이 필요한 과제”라고 못박았다. 양대 세력 통합론에 대해 그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구호와 제스처로서의 통합’이다. 원 지사는 그래서 형식적인 통합은 의미가 없고, 내용이 담보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의 정치경제 지론인 ‘포용적 경제’를 보수와 진보의 구태 청산의 개념으로도 설명했다. 복지와 분배만을 외치는 진보, 대기업에 몰아줘 경제를 키우자는 보수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환멸감을 표시했다. 둘 다 전장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을 기다리는 항공모함 같은 것이란 주장이다.

포용적 경제의 현존하는 롤모델 국가는 어딜까? 원 전 지사 역시 독일을 제시했다.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독일경제는 경제의 포용정책을 정치가 훌륭히 백업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최근 중국의 행보에도 주목했다. 권위적 동원이긴 하나 정부 주도 하의 경쟁력 제고와 분배 개선에 나섰다는 것이다.

IS 사태도 결국은 뉴 노멀 시대가 부른 참화


▎2007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이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 김현종 UN대사, 문재인 비서실장 등과 한·미 FTA협상 유공자 격려오찬장으로 걸어오고 있다. 진보성향의 노 대통령이 한·미 FTA를 성사시킨 것은 보수진영 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독일 슈뢰더의 사민당 좌파 정권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책적 양보를 할 수 있었던 점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 슈뢰더의 뒤를 이은 메르켈 우파 정권이 사민당과 대연정을 성사시킨 것은 높이 평가했으나, 그것은 대연정의 사회경제적, 정책적 토대가 튼튼했기 때문이란 점을 잊지 않고 지적했다. IMF 경제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역할, 한·미 FTA를 발효시킨 노무현 대통령의 역할에도 높은 평점을 부여했다. 좌파 세력의 대통령이 우파 정책을 참고하여, 자신의 진영을 개혁한 것은 정치 리더로서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라고 언급했다.

그는 좌우 연정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면서도 만일 자신이 집권한다면 권력의 30%를 정치적 반대진영에 내줄 수 있다는 점을 약속했다. 그러나 공조를 위해서는 깊은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빠뜨리지 않았다. 개혁보수의 황태자란 별명에 걸맞게 원 지사는 진영의 정체성을 함부로 훼손하는 통합의 정치보다, 보수의 품격을 월등하게 높이는 지점에서 집권의 승부처를 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차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원희룡 지사보다 훨씬 더 담대한 사고의 틀을 보여줬다. 인터뷰 발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 전략으로 야당과의 연정을 권유한 것이다. 그는 “총선 전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1당에 총리를, 2당엔 부총리를 준다고 공약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권력을 나누는 차원을 넘어 후반기 국정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는 계기로 그는 연정 카드를 제안했다.

자신이 실험한 경기도의 연정이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은 것에 상당히 고무된 듯, 예컨대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노동개혁의 키를 맡기는 연정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카드라고 보았다. ‘연정의 남경필’을 각인하면서 차차기 대선에서 진보-보수 대통합과 통일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는 항간의 소문을 뒷받침했다.

남 지사는 전 세계가 직면한 뉴 노멀의 시대를 매우 심각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IS 사태도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결국 경제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고실업 사태에 직면한 유럽의 차별받는 무슬림이 격한 분노를 표시하면서 잘못된 저항의 방식을 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3포, 5포, 7포까지 나온 우리나라 청년들의 문제에도 우려를 금치 못했다. 이렇게 방치했다가는 “IS와는 다른 형식의 집단 분노가 표출될 것”이라 전망했다.

“한국 정치지형 바꾸는 대수로 될 것”


▎국회 본회의장에 견학 온 중학생들. 4·13 총선을 통해 구성될 20대 국회는 통합과 수렴의 정치를 주도할 책무가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정치권에서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분류되지만 실제 행보는 그렇지 않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을 모색하며, 중도 또는 중도 우파 쪽 인사들과도 너른 교분을 유지하고 있다. 특권에 저항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친노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스펙트럼 확장의 불가피성을 설득해야 하는 과제를 지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도 공과 과를 균형적으로 평가하는 등 이념과 진영을 넘어선 정치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요즘엔 ‘안희정 구원투수론’이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호랑이 눈을 뜨고 총선의 결과를 주시하게 될 것이다.

안 지사는 2015년 한 해 행정부와 의회의 정치 시스템 작동 전반에 대해 허탈감을 표시했다. “여야가 국가적 단결을 이뤄야 할 상대라는 사실을 존중하면서, 상대의 견해와 주장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하는 언행이 필요했다”는 감상이다. 규제개혁, 노동시장의 구조개선, 복지와 분배의 전략 등의 분야에서 여야가 정책적 합의와 연합을 도모할 수 있었지만 결국 실패했다고도 했다. “정치적 반대 진영을 존중하는 리더십의 부재”를 그 이유로 꼽고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시도하고 있는 경기도 연정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할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할 때, 연정은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남 지사의 연정 실험이 국정 모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더 큰 비전과 연결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다. 그는 언젠가 집권에 성공한다면 “국가적인 의제와 미래 비전을 놓고 정치적 반대 진영과 상의하고, 나아가 그들이 참여하는 정부를 함께 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전문가들은 독일과 같은 대통합의 정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보수의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행보도 신보수의 탄생이란 이슈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보수정당 내 소장개혁파의 존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세력화엔 번번이 실패했다. 학생운동권 출신 손학규 전 경기지사, 김부겸 전 의원 등이 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내에 머물지 않고 반대진영으로 당을 옮긴 게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보수정당의 개혁보수가 세력을 키우거나 정당으로 독립하기란 극히 어렵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그럼에도 이들 차세대 리더 4인은 지난 3∼4년간 ‘보수·진보의 대통합’이란 주제를 놓고 많은 토론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월 중에는 제주도에서 ‘뉴 노멀시대 한국 정치의 내일’이란 큰 테마를 놓고 4인 대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월간중앙>은 이 토론회의 결과를 2월호에 상세하게 보도할 예정이다. 평소 메르켈식 연정의 필요성에 공감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이들 4인의 차세대 리더 그룹이 주창하는 새로운 정치는 총선 이후 한국 정치에 새로운 물꼬를 트게 될 것”이라 전망했다.

- 한기홍 월간중앙 선임기자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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