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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석] 여의도 귀환하는 최경환(경제부총리)의 미션 

‘친박계 물갈이’ 악역 담당자? 

전국 단위 개혁공천 추진과정에서 정치적 반발 예상… 총선 앞두고 한국경제 수렁으로 빠져들면 책임의 화살 쏟아질 수도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사이로 알려진 최경환 경제부총리(왼쪽)와 김무성 대표는 총선 공천과정에서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
‘친박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여의도 정가 복귀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경북 경산·청도 출신 국회의원인 그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자면 공직자 사퇴시한인 1월 14일까지는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정권 최고 실세’라는 자리는 안티 세력을 낳을 수도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2014년 7월 16일 기획재정부 장관에 취임할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정치 지형을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취임 이틀 전인 7월 14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김무성 의원이 친박계 ‘맏형’격인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당 대표최고위원에 선출됐다. 당의 주인이 바뀌는 순간이자 김무성 의원의 당권 행보에 제동을 걸려던 여권 핵심부의 시도가 좌절되는 충격이었다. 김무성 대표 체제의 출범으로 ‘주류(친박계)-비루쥬(비박계)’라는 당내 역학구도 역시 일거에 허물어졌다. 대표를 내준 마당에 친박계를 더 이상 주류로 불러줄 명분이 사라졌다. 김무성 신임 대표는 “당청은 이제 수평관계”라며 더 이상 청와대 주도의 일방통행은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해 4월 세월호 참사 이래 청와대의 국정장악력이 현저히 약화되면서 친박계 내부 전열도 흐트러지는 등 몰락의 징후가 완연했다. 친박계 중심 인물로 분류되는 최 부총리는 더없이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세종시로 내려갔을 법하다. 이렇게 몰리다가는 2016년 20대 총선의 공천도 장담하기 어려운 위기적 상황이었다.

1년 5개월이 지난 요즘은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더없이 어울릴 정도로 상황이 급변했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친박천하(親朴天下)’다. 지난 2월 친박계의 이주영 의원을 누르고 당 원내대표에 오른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과의 극심한 갈등 끝에 7월 낙마하면서 판이 뒤집혔다. 속절없이 밀리던 친박계가 박 대통령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등에 업고 반격에 나섰다. 박 대통령이 연일 ‘국회 심판론’을 제기하며 전방위 국정 장악에 나서면서 공천 룰 싸움에서도 친박계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최 부총리는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부여된다. 정치권은 그의 복귀가 당내 권력지형의 재편, 공천 룰을 둘러싼 친박-비박계 간 진검 승부를 촉발하리라 점치기도 한다. 그가 김무성 대표가 버티는 새누리당에서 친박계의 새 구심점을 형성하리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친박계의 ‘맏형’으로 내부를 다독이고 당내 현안과 정국 이슈를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바통을 최 부총리가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다. ‘최 부총리 사람’으로 통하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9월 “4선 친박 의원 중에서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영남에도 충청에도 있다”고 언급, 20대 총선에서 4선에 도전하는 최 부총리의 존재감을 한껏 부각시켰다.

최 부총리가 전면에 나서 공천 룰 협상을 진두지휘할지, 2선에서 여론을 수렴하고 막후 협상력을 발휘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최 부총리는 정치 현안과 관련된 언론 인터뷰는 일절 사양한다. 경제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하는 인터뷰 정도만 소화하는 등 여의도 복귀를 앞두고 암행에 가까운 행보를 취한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최 부총리는 언론의 조명을 원치 않는다”고 기류를 전했다. 당에 복귀하더라도 당분간 은인자중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TK의 명실상부한 박근혜 대리인


▎11월 16일 터키에서 열린 ‘2015 G20 안탈리아 정상회의’ 결과를 설명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그는 경제 수장으로서 전천후 소방수 역할을 다했다고 자평한다.
희망사항은 말 그대로 희망사항에 그칠지도 모른다. 복귀와 동시에 당면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당장 공천 룰 문제만 보자. 의원총회를 통한 세 대결에서는 친박이 아직은 밀린다. 상당수 의원들이 공천을 의식해 친박계에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친박계가 비박계를 제치고 당내 다수를 점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공천룰 결정의 최고기구가 최고위원회인지 의원총회인지를 두고 당내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않다. 친박계가 다수인 최고위원회가 최고의결기구가 되면 친박계가 유리하고 의원 총회를 통한 의결에서는 비박계가 우위에 있다. 친박계의 이익을 관철하는 과정에서 최 부총리 역할론이 제기될 수 있다. 계파의 수장이라면 그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해야 권위가 서는 법이다.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TK) 공천 실무도 최 부총리의 몫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던 박 대통령의 주문(11월 10일 국무회의)에 호응해 텃밭인 TK에서 옥석을 가려내야 한다.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최 부총리가 손을 들어주는 인물이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으로 해석될 게 뻔하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최근 언론인 모임에서 나왔다는 얘기를 전했다. “모임에서 어느 언론사 국장급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얼마 전까지는 대구는 유승민 의원, 경북은 최경환 부총리에게 관리를 맡겼다. 유 의원의 관리가 시원찮아 이제는 최 부총리에게 대구와 경북을 다 맡기게 된 것 같다.’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이제 최 부총리가 나서야 할 때다.” TK의 명실상부한 박근혜 대리인이 최 부총리가 되리라는 의미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정국이 롤러코스트를 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야권의 혁신 경쟁, 선명성 경쟁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총선을 앞둔 예민한 시기에 집권여당인 새누리당도 그에 못지 않은 전국 단위의 개혁 공천과 인적 물갈이의 회오리가 몰아칠 건 자명하다. 현역의원 교체 비율을 놓고 여야가 경쟁에 돌입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공천을 통한 인물 교체, 세대 교체를 고대하는 친박계에는 야당의 분열이 일견 희소식이기도 하다. 윤상현 의원은 “야권발 혁신 경쟁이 시작됐다”면서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고 공천 물갈이 당위성에 힘을 실었다. 결국 우선공천제로 표현되는 전략공천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자면 오픈프라이머리 제도를 고수하는 김 대표를 넘어서야 한다. 최 부총리는 공천과 총선에 관련된 인적·제도적 청산 과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입장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최 부총리는 친박계 중심의 정권재창출을 주도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그에 앞서 믿을 만한 친박 인사를 다수 국회에 진출시키는 과정에서 김 대표와의 충돌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듯 김 대표와 최 부총리는 12월 9일 측근들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야당이 권력 다툼으로 분열하고 있는데 새누리당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라도 절대 분열하면 안 된다”다며 “더욱 똘똘 뭉쳐 단결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박근혜 대선후보 경선 캠프에서 김 대표, 최 부총리와 함께 일한 친박계 관계자는 두 사람 사이가 아주 돈독했다고 기억한다. “당시 최 부총리는 상황실장, 김 대표는 조직총괄본부장으로 기억된다. 캠프 내에서 김 대표에게 가장 깎듯이 대한 이가 최 부총리였다. 그때는 형, 아우 같은 사이였다.” 이런 관계는 정권 출범 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김 대표는 아무 때나 편하게 최 부총리를 술자리에 불렀고 최 부총리도 가급적 합석했다고 주변에서는 전한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를 의식하게 되는 상황이라고 앞서의 친박계 관계자가 말했다. “당으로 복귀한 최 부총리가 예전처럼 김 대표 밑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 대표 역시 박 대통령의 신임이 실린 최 부총리를 편한 아우로만 대하기에는 상황이 아주 껄끄럽다.”

신세 진 이도 많지만 반감 품는 이도 적지 않아


▎2012년 7월 서울 여의도 대하빌딩에 있는 박근혜 대선 경선후보 선대위를 방문한 최경환 당시 선대위 공보팀장(왼쪽에서 둘째). 지금은 여권의 2인자 반열에 올라 있다.
최 부총리가 여권에서 갖는 무게감이 예전과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경제사령탑으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는 세계 경제의 위기상황에서도 선방했음을 자부한다. 12월 10일 기재부 기자단 송년 만찬에서 “취임 이래 안 해본 일 없이 고군분투했고 전천후 소방수 역할을 요구받은 한 해였다”면서 “수출이 조금만 받쳐줬으면 3% 후반, 4%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소비 등 내수 위주로 성장하니까 성장률에 견줘 체감 경기는 괜찮은 편이라고 자평했다. 2016년 경제 위기설에 대해서도 “대내외 여건을 다 짚어봤지만 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으며 “객관적으로 보면 한국은 선방하고 있고 한국 경제가 위기라면 세계에 위기가 아닌 나라가 어디 있는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물론, 그의 발언으로 한국 경제상황의 불안감이 씻겨지진 않는다. 한국경제연구원(KDI) 추정 2016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2.6%로 2014년(3.3%)보다 0.7%나 떨어졌다. 그의 재임기간 1년 반 동안 가계부채는 170조원, 국가채무도 국내총생산의 40%를 넘어섰다. 기업도 사상 첫 총 매출 감소, 11개월째 수출 규모 뒷걸음질이라는 악재 속에 대한민국이 놓여있다.

최 부총리 취임 후 기획재정부는 관가로부터 ‘부처 위의 부처’로 군림한다는 빈축을 샀다. 최 부총리는 추경호 국무 조정실장을 포함해 1급 이상 6명을 이동시켜 조직 내 인사의 숨통을 텄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10월 개각은 기재부의 위상과 권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사례로 회자된다. 기획재정부 차관보를 지낸 강호인 전 조달청장이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됐고 방문규 보건복지부 차관도 기재부 정통 관료 출신이다. 기재부의 파워가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국회 관계자는 “최 부총리 취임 이후 기재부 관료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면서 “흡사 1960~80년대 국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며 막강 파워를 행사했던 ‘경제기획원(EPB)’이 부활한 것 같다는 푸념이 다른 경제부처에서 나올 정도였다”고 돌이켰다. 정권의 2인자를 장관으로 둔 기재부가 예전의 경제기획원에 버금가는 권능을 행사했음을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최 부총리에게 신세 진 이들도 많지만 반감을 품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눈밖에 난 친박계 의원들을 어찌할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11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1차 사회보장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최 부총리가 설령 2인자라 해도 과거 정부의 2인자들과는 권력의 크기나 행사 방식이 사뭇 다르다는 평가도 눈길을 끈다.

과거 정부의 2인자들은 대통령과의 긴밀한 소통 속에서 권한을 위임받아 실권을 행사했다. 반면, 최 부총리는 신임은 받지만 대통령이 거의 관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랫사람들(친박계)이 떠받드는 케이스에 가깝다고 친박계의 한 관계자가 분석했다. 이는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거니와 2인자 두기를 꺼려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한때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박 대통령은 일대일로 관리하는 직할 통치를 선호한다”면서 “누군가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관리하는 유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최 부총리는 자신이 정권의 2인자라는 항간의 시선과 평가에 불편해하리라는 관측도 있다.

그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으리라는 관측이 여권 내부에서 제기된다.

장관직을 그만두는 순간 대통령의 신임을 상징하는 경제부총리라는 우산은 사라진다. 평소 그에게 불만을 품은 관계, 재계, 공기업은 물론, 동료 의원들조차 눌러왔던 감정을 표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해 총선을 앞두고 한국경제가 더 악화된다면 온갖 책임의 화살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정치적으로도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기다린다. 위상에 걸맞은 역할을 하다 보면 반드시 자기 손에 피를 묻히게 되는 게 권력의 생리다. 여권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 낙마 과정에서 친박계 의원들에게 엄청난 실망감, 나아가 배신감마저 느꼈다고 여긴다. 박 대통령이 반대의사를 표명한 국회법 개정안에 다수의 친박계 의원이 찬성했다. 또 박 대통령이 비토 의사를 분명히 한 유 전 원내대표 거취를 묻는 의총에서도 많은 친박계 의원이 입장 표명을 유보함으로써 재신임에 동조한 결과를 낳았다.

당으로 복귀하는 최 부총리는 대통령 눈밖에 난 친박계 의원들과의 관계설정부터 고심하게 된다. ‘가박(가짜 친박)’을 솎아내고, ‘진박(진짜 친박)’을 보강하는 이른바 ‘친박계 물갈이’의 악역을 담당할 1순위로 최 부총리가 꼽힐 수밖에 없다. 또 다선·고령의 친박계 시니어 그룹의 거취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칼자루가 주어진다면 뿌리칠 수 없는 이가 바로 최 부총리다. 반발하는 ‘옛 동지’들을 다독이고 분란을 수습하는 과제가 그 앞에 놓여 있다. 그는 총선 이후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대표 경선주자로도 거론된다. 여권 2인자로서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검증대에 오른다고 하겠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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