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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 D-120 안갯속 4·13총선 

안철수 탈당은 새누리당 물갈이 신호탄 

야당의 선명성 경쟁이 새누리당 컷오프, 전략공천 도입 여론 촉발할 가능성… ‘친박계 80% 교체론’ 제기되는 영남권, 상향식 공천 선별 적용할 수도

▎2012년 4·11총선을 앞두고 서울시 선관위가 서울 청계천에서 벌인 투표 독려 캠페인.
내년 4월 총선 선거전이 12월 15일 예비후보 등록과 동시에 120일간의 대장정에 돌입했다. 하지만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면서 여야의 선거전략은 올스톱된 상태다. 안 의원의 행보에 따라 선거 대결구도가 바뀌게 되는 총선은 밑그림 없는 임기응변식의 선거전으로 돌변할 가능성도 커졌다. 여야 모두의 인적 물갈이에 탄력이 붙으리란 관측도 나온다.

새누리당에 야당의 분열은 호재(好材)다. 불과 몇 백 표차로 당락이 갈리는 서울 등 수도권 접전 지역에서 뜻밖의 승리를 낚을 수 있다. 당초 잡았던 목표치(과반의석+α 혹은 180석)를 상향 조정할 판이다. 총선이 여야 일대일 구도에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간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게 된다는 말이다.

곡절 끝에 야권이 다시 하나로 뭉친다 해도 크게 아쉬울 게 없다. 처음의 목표를 향해 달리면 그만이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내년 20대 총선 야권 단일화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논평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도 “야당이 분열하다가도 선거를 앞두고 다시 합치는 경우가 많다”면서 “요즘은 그런 정치쇼를 해도 잘 통하지 않은 시절”이라고 미리 김을 뺐다. 야권의 극적인 합당이나 단일화 반전이 오더라도 결코 당황하거나 놀랄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여권은 느긋하게 야권의 이합집산 과정을 관전하는 입장이다. <중앙일보>가 안 의원의 탈당 다음날(12월 14일)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자. ‘내일 총선 투표를 한다면 어느 당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에 새누리당 30.2%, 새정치민주연합 23%, ‘안철수 신당’ 18.6%로 나왔다. 탈당 직후 조사가 이뤄져 안 의원 탈당에 대한 높은 주목도가 반영된 결과이긴 하지만 3자 구도의 반사이익을 새누리당이 누리는 게 분명해졌다.

새누리당은 서울과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달렸다. 접전이 예상되는 수도권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2012년 총선에서 서울 48개 선거구 중 10%포인트 이내의 득표 차로 승리한 곳이 20곳에 이른다. 경기도 52개 선거구 중 10%포인트 이내의 득표 차로 이긴 곳도 15곳이다. 만약 안철수 신당이 탄력을 받아 선거구 별로 10% 이상의 득표력을 과시한다면 야당은 수도권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김용태 새누리당 서울시당위원장은 “판세가 불리한 서울 선거구에서 야당표의 분산은 새누리당이 기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호재의 하나”라는 희망 섞인 분석을 내놓았다.

야권, 선거 프레임 싸움에서도 손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12월 14일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10단지 경로당을 방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안 의원은 중도보수 성향의 신당을 표방한다. ‘안철수 신당’이 일정한 세를 형성해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을 흡수할 수도 있을까? 이와 관련해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 분석센터장은 “야권에서 중도정당이 새로 나오더라도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전망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40%선을 꾸준하게 유지하는 점을 고려하면 새누리당 지지층의 결속력이 쉽게 이완되지 않으리라는 이유에서다. 윤 센터장은 “기존의 새정치민주연합과 안철수 신당 중 누가 선전하더라도 견고한 지지층을 보유한 새누리당 후보 득표율을 뛰어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야권의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 프레임 싸움에서도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4년차에 치러지는 총선은 통상 정부여당 심판론이 메인 이슈로 뜨게 마련이다. 국정운영 성과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선거의 프레임으로 작용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야권의 분열로 인해 유권자 관심의 초점이 누가 더 선전하느냐는 쪽으로 분산된다. 정부여당 심판론 프레임이 약화됨으로써 야권은 응당 챙겨야 할 제 몫도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여권은 ‘부자 몸조심’ 하듯 표정 관리에 나섰다. 안 의원 탈당 다음날인 12월 1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야당의 분열을 반면교사로 삼아 당내 화합을 다져야 한다고 분위기를 다잡았다. 그는 “당내 분열과 갈등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우리가 당론으로 정해놓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드리고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까지 가던 당내 공천 룰 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논란을 빚어온 공천 룰 특별기구 인선 문제도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김용태 시당위원장도 “이런 때일수록 새누리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견제심리 작동을 막을 수 있다”면서 “안대희·오세훈·김황식·조윤선 등 거물급 인사들이 특혜지역을 버리고 서울의 불리한 선거구에 도전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겉으로는 담담한 반응을 보이는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상황을 즐길 처지만은 아니다. 야권 분열의 파장이 여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정통성 싸움에 내몰리는 야권은 선명성 경쟁, 혁신 경쟁으로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들 것이다. 안 의원은 15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신당의 인적 충원에 대한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부패나 막말, 갑질하는 사람 ▷내 생각은 항상 옳고 다른 사람은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사람 ▷수구보수적인 사람 등 3개 유형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의원 주변에선 여야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가급적 배제하고 합리적 보수 인사들에 대한 영입작업이 본격화되리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문재인 대표 또한 사퇴를 요구하는 당내 비주류를 무한정 포용하기보다는 인물 혁신으로 상황을 정면돌파하는 카드를 택하리라는 게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의 대체적 시각이다. 호남 등 전통야당 지지층의 거부감을 사는 친노 색채를 희석하는 중도 성향의 인사들의 영입 방안도 거론된다. 이를 통해 당을 총선 준비 체제로 신속하게 전환하고 선대위도 계파 안배형이 아닌 인물 중심의 세대교체형으로 구성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의원에게 유리한 오픈프라이머리 설 자리 줄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2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의 진로와 관련한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혁신 경쟁은 선거에 내세우는 인물에서 승패가 갈린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현역 의원 하위 20%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컷오프(Cut off)’ 제도를 실행한다. 이는 새누리당에도 ‘강 건너 불구경’일 수만은 없다. 20% 컷오프에다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시는 의원을 더한다면 적어도 30% 선의 현역 의원들이 새로운 인물로 교체된다. 야당이 공천 혁명을 부르짖는데 명색이 여당이라는 새누리당이 물갈이에 미온적일 경우 야당과 대비되면서 ‘그 밥에 그 나물’ 공천이라는 비아냥을 받게 되리란 건 자명한 이치다.

새누리당 물갈이론이 증폭될 가능성은 거의 100%다. 방법론에서도 상대적으로 신인에게 불리하고 현역 의원이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 완전국민경선제, 즉 오픈프라이머리의 설 자리가 점차 줄어든다는 게 황태순 정치평론가의 전망이다. 황 평론가는 “새누리당은 공천룰을 다룰 특위위원장만 정해졌을 뿐 공천 룰이나 위원의 면면은 아직 오리무중”이라며 “야당이 현역 의원 탈락 제도인 컷오프 제도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서면 새누리당 또한 마냥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에서 내리꽂는 전략공천(우선공천제)은 물론이고 현역 의원의 일정 수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컷오프 제도 도입이 새누리당의 핫 이슈로 부상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일대 물갈이 회오리가 불어 닥치는데 새누리당만 무풍지대로 남긴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안 의원 탈당에 이은 야권 내부의 공천 혁신경쟁이 엉뚱하게도 여당의 공천 룰 협상을 뒤흔드는 효과를 낸다는 데 새누리당 관계자들도 일정 부분 수긍한다. 김무성 대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목으로 오픈프라이머리 관철에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누차 밝혀왔다. 안철수 신당이 세력화하고 야당의 대표성에 상처를 입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천개혁 드라이브를 세게 건다면 새누리당의 공천 룰 협상도 원점에서 재검토될 수 있다.

친박계 성장사가 주는 물갈이 간지(奸智)


▎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한 호텔에서 모임을 가진 새누리당 대구·경북의원들. 최근 여권에서는 영남권 물갈이론이 확산된다.
권력을 쥔 친박계가 공천개혁을 주도하자면 스스로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 육참골단(肉斬骨斷)과 같은 피와 살이 튀는 내부 희생 없이는 비박계의 양보를 요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친박 내부의 물갈이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친박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7선의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용퇴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친박계의 다선, 고령 의원들이 용퇴해야 공천을 통한 물갈이 명분에 힘이 붙는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최근 새누리당 안팎에서는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사자성어가 회자됐다. 한비자에 나오는 말로 ‘개가 사나우면 술이 쉰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에 술을 잘 빚는 주점에 도통 손님이 들지 않았다. 현명한 노인에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주점의 사나운 개가 손님을 보고 짖는데 누가 오겠느냐”고 답했다는 고사다. 친박계의 핵심 의원이 사석에서 ‘맹구주산’을 언급하며 서 최고위원을 친박계의 ‘맹구(猛狗)’로 지칭했다고 <한국일보>가 보도했다. 친박계를 위해서 서 최고위원이 용퇴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기에 파장이 작지 않았다.

친박계 내부에서도 내부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된다. 아직 당내 친박-비박계 간 공천 룰 협상이 초기 단계라서 공론화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어떤 식으로든 공식화되는 순간 상당한 파문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 촉매제가 안철수 신당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당 공천의 역사를 잘 아는 이들은 과거 ‘친이계(친이명박계)’가 저지른 과오를 친박계가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2008년 18대 총선에 즈음에 그해 초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을 추종하는 친이계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를 따르는 친박계에 대한 사실상의 ‘공천학살’을 감행한다. 서청원·홍사덕·김무성·유기준·김재원 등 박근혜 경선 캠프의 주역들이 공천 과정에서 줄줄이 물을 먹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표는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친이계가 주도한 공천 결과에 극도의 분노를 표출했다. “살아 돌아오라”는 박 전 대표의 말에 따라 낙천한 친박계 의원들이 대거 탈당, ‘친박연대’ 내지는 무소속의 이름으로 출마해 금배지를 달고 생환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규모가 30명에 가까웠다.

당시 정황을 잘 아는 친이계 인사는 결정적인 실수 하나가 빌미를 제공했다며 혀를 찼다. “사실 친박계만 물갈이된 게 아니었다. 개혁 공천, 세대교체라는 명분 아래 친이계 내지 중도파 중진들도 불출마 선언을 하거나 낙천돼 2선으로 물러났다. 박희태·김덕룡·강재섭 같은 중진 의원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패착이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을 주저앉히지 못한 것이다. 제 식구는 감싸면서 남더러 희생하라니 씨알이 먹혔겠느냐? 이상득 의원은 청와대의 불출마 요청을 뿌리치고 ‘출마가 곧 당선’인 포항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이른바 친이계가 말한 개혁 공천이 명분을 잃어버렸다. 친박계가 대거 생환하는 데 이 사건이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집권세력의 상징(이상득 의원)이 퇴진을 거부하면서 공천에서 떨어진 친박계 인사들이 재기의 날개를 달았다는 해석이다.

영남권 중진들에게 ‘유정회 의원’ 비아냥


▎12월 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음식점에서 만찬 회동을 가진 김무성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
지금의 집권세력은 친박계다. 개혁 공천을 솔선수범해야 할 입장이다. 친박계의 상징적 인물들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18대 총선과 같은 방식으로 비박계의 대대적 반격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친박계의 한 인사는 “자기 팔이라도 잘라야 남의 목을 치는 것”이라며 다선·고령 의원들의 결단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을 비롯한 친박계 시니어그룹의 거취가 주목받는 이유다. 이는 친박계 태동-성장의 역사에 담긴 교훈이자 간지(奸智)이기도 하다.

더 큰 반전이 올 수도 있다. 물갈이라는 면도날이 다선·고령 의원들을 넘어 친박계 전체를 향하리라는 소문이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핵심부 주변에서 번진다. 이른바 ‘새누리당 영남권 80% 물갈이론’이다. 황당한 구석이 없진 않으나 여권 핵심부의 기류라며 여권의 한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영남권 3선 이상 의원 중 상당수는 공화당 정권의 유정회 의원과 다를 바 없다는 비아냥이 나온다. 유신헌법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된 전국구 국회의원이 구성한 원내교섭단체가 바로 유정회(유신정우회)다. 당시 대통령이 추천권을 행사했다. 지금 영남권 의석 67석(2012년 총선 기준) 대부분 당에서 내리 꽂으면 당선이다. 이런 식으로 의원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했으면 당연히 ‘나가리(일본말로 무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도 국회 혐오증이 극에 달했고 인물을 바꾸라고 한다. 스스로의 정치력과 자생력으로 금배지를 단 의원들은 살아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당이 후보를 바꿔도 항변할 거리가 없다. 대구·경북은 물론이고 부산·경남·울산도 그런 물갈이 대상이다.”

정치적으로 ‘무임승차’했거나 박 대통령의 신뢰를 상실한 이들이 우선 거론된다. 박 대통령을 잘 아는 이들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2006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얘기는 2004년 탄핵 역풍에서 시작된다. 풍비박산이 난 한나라당 대표에 오른 박 대통령은 손발이 부르트는 강행군 유세를 펼친 끝에 121석을 건졌다. 50석도 어렵다는 전망을 오로지 박근혜 개인기로 뒤집은 선거였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의 전초전인 당내 경선에 참여한다. 2006년 대선후보 경선 캠프를 오픈할 당시 냉엄한 정치의 생리를 피부로 절감한다. 30개 정도 준비한 의자를 다 못 채울 정도로 현역 의원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시킨 국회의원 대부분이 여론조사에서 앞서던 이명박 후보 캠프로 달려갔던 것이다. 국회의원에게 중요한 건 공천을 주고 당선을 시켜준 사람이 아니라 다음 공천을 책임져줄 비전과 권력을 가진 사람이란 걸 새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아무리 참을성 있는 정치인이라도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지난 7월 국회법 개정안 논란과 유승민 전 원내대표의 낙마 국면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전개됐다고 여권의 관계자들이 귀띔했다. 영남권 친박계 의원들의 갈지자 행보는 박 대통령에게 결정적 불신감을 안겨줬다는 것. 이때를 전후로 박 대통령은 영남권 의원들에 대한 전면적 물갈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 뒤로 대구 의원들은 박 대통령의 대구 방문에도 수행하지 못하는 등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상태다.

공천 룰과 관련해 새누리당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를 도입하자는 쪽과 말자는 쪽이다. 하자는 쪽은 김무성 대표를 비롯해 이재오·정병국 의원 등 비박계가 중심을 이룬다. 반대하는 쪽은 친박계 의원들이다. 친박계 핵심 인사인 김재원 의원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픈프라이머리는 불가능하다고 이미 확정이 되었기 때문에 주장할 상황도 아니고 가치도 없는 내용”이라고 일축했다.

친박계 핵심 인사들은 왜 오픈프라이머리를 한사코 반대하는 걸까?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 친위그룹 동향을 잘 아는 여권의 A씨는 “오픈프라이머리 반대의 본질적 목표가 김무성 대표 주변 물갈이가 아니라 친박계 물갈이에 있다”고 해석했다. 친박계가 그렇게 공을 들이는 오픈프라이머리 폐기가 궁극엔 친박계 대수술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A씨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정의석 이상으로 중요한 친위그룹 형성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 탈락한 국회의원의 지지자들이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벌였다. 2016년 총선 공천 물갈이가 본격화되면 새누리당도 분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내년 총선 이후 박 대통령의 임기는 2년도 채 남지 않는다. 반면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을 간다. 금배지를 다는 순간 의원들의 안중에 대통령은 없다. 앞서 봤듯이 다음 금배지를 달아줄 사람에게 국회의원들의 시선이 향한다. 이른바 차기 대선주자들에게 줄을 서게 된다는 것. A씨는 “석양을 바라보는 대통령에게 누가 마음으로 따르겠는가”라며 “그래서 더더욱 청와대 참모 출신 등 ‘대통령의 사람들’이 국회에 많이 진출해야 하는 동기가 증폭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원유철 원내대표가 언급했듯 180석을 얻으면 대성공이다. 나아가 국회 개헌 의결정족수인 200석을 넘기면 금상첨화다. 박 대통령의 남은 임기 2년의 국정 운영도 계속 탄력을 받고 정부여당의 국정 장악력도 제고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을 모시는 참모들에게는 절대 안정의석 확보 이상으로 대통령에게 사심 없이 충성할 수 있는 친위그룹의 확보가 중요하다고 A씨는 강조했다. “내년 총선은 박 대통령이 국정후반기와 퇴임 후를 보장받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그러자면 대통령과 국민만 바라보는 확실한 친박을 심어야 한다. 지금 영남권 상당수 친박계 의원은 박 대통령의 신뢰를 잃었다. 이번 총선의 주요 관전 포인트가 친박계 물갈이인 이유다.”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 기존 국회의원을 대신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사람들, 이른바 ‘진실한 친박’(진박)들이 줄을 선다. ‘박근혜 키즈’ 대부분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몸을 담았던 정치 신인들로 박심(朴心)을 업었다지만 현역 의원들에 견줘 지역구 기반은 취약하다.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한다면 살아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 전망이 불투명한 경선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전략공천과 같이 확실한 수단을 동원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수석을 지낸 한 친박계 인사는 “금배지에 연연해 국민과 민생을 외면하는 국회의원들을 교체하라는 게 대구·경북을 비롯한 영남권 유권자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이 인사에 따르면 영남권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아래로부터의 상향식 공천이라기보다는 개혁 공천에 저항하는 현역 의원들의 허울 좋은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영남권에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민심을 왜곡하는 기득권 보호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여권 핵심부의 솔직한 속내로 해석된다. 영남권은 새누리당의 텃밭으로 누구를 공천해도 당선 가능한 지역이다. 지역기반이 보잘것없고 지명도가 떨어지는 정치 신인도 새누리당 공천장을 받으면 본선에서 우위를 점한다.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공감하고 충실히 이행하는 ‘새 피 수혈’을 하자면 결국 전략공천밖에 없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그래서 영남권은 공천 룰의 선별적 적용이 가능한 지역으로 꼽힌다. 신진 등용을 위해 우선추천제와 같은 전략공천을 도입하되 유승민 의원처럼 박 대통령과 대척점에 있는 정치인들에게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진로를 결정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A씨는 “차라리 수도권은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더라도 영남권은 새로운 공천 룰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야 막론하고 제 역할 하는 정당 있나?”

수도권 나아가 충청권 친박계는 국회법 개정안 파동 당시나 유승민 전 원내대표 낙마 과정에서 TK 친박계와 달리 흔들림 없이 일관된 노선을 걸었다는 게 박 대통령 주변의 인식이다. 이들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해도 승리가 가능한 기성 정치인들이다. A씨는 “홍문종·윤상현·이학재 의원 등 수도권 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영남권 출신이 아님에도 매사에 박 대통령 국정철학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정치인들”이라며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박근혜의 사람들”이라고 했다.

국회를 향한 청와대의 공세가 예사롭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12월 15일 정의화 국회의장과 만나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경제 활성화 관련 2개 법안, 테러방지법안을 선거법 개정안과 동시에 처리해달라고 요청했다. 현 수석은 “국민들이 필요로하는 법들은 외면하고 선거법 개정안만 직권상정 한다는 것은 국회의원 밥그릇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라고 입법부를 몰아세웠다.

이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담긴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한 달여간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등에서 민생 입법 처리를 미루는 정치권을 질타했다.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11월 10일), ‘맨날 앉아서 립서비스만 하고 할 일은 안 한다’(11월 24일) 등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12월 1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국회가 경제활성화 법안과 국민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법안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국민 삶과 동떨어진 내부 문제에만 매몰되는 것은 국민과 민생을 외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유감을 나타냈다. 박 대통령은 “안타깝게도 국회의 국민을 위한 정치는 실종돼버렸다”며 법안 협조에 미온적인 야당과 국회를 싸잡아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친박계 고위관계자도 한때 국회와 정당 정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지금 여와 야를 막론하고 제 역할을 하는 정당이 있나? 1980년대 이후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는 다 발전하는데 유독 국회는 후진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국회는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애물단지다.” 박 대통령의 심중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 정치를 근본에서부터 뒤엎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목청을 높였다. 여권 핵심부 속내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클수록 물갈이 폭도 넓어진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만큼 당내 공천싸움은 더 첨예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전략공천에서 탈락하는 친박계 의원들의 반발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거셀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예비후보자간 폭로·비방전으로 비화하는 등 새누리당이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 수도 있다. 친박계 내전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야당도 야당이지만 새누리당이 콩가루 집안 짝이 날지도 모른다”는 게 여권 일각의 우려다.

이처럼 20대 총선 선거전은 야권의 분열, 새누리당의 내부 물갈이와 맞물려 아주 역동적인 양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특히 내년 총선은 2017년 대선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각 정당과 계파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여야의 경계를 뛰어넘는 새판짜기가 시도될 수도 있다. 그 첫 단추가 친박계 물갈이라고 보는 이들이 여권에 적지 않다.

- 박성현 월간중앙 취재팀장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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