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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연말 출범하는 ‘아세안 공동체’ 몸값 상한가 

대중화경제권 VS 대동아경제권 대격전의 최후 승자는 누구?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연평균 6.4% 성장하는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 등장에 중국·일본 경쟁적으로 구애…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

▎11월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27차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연말에 아세안 공동체(ASEAN Community)를 출범시킨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상이 11월 22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아세안 공동체 출범을 위한 ‘2015 쿠알라룸푸르 선언’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12월 31일 아세안 공동체가 새롭게 탄생한다. 아세안 공동체의 회원국은 브루나이·캄보디아·인도네시아·라오스·말레이시아·미얀마·필리핀·싱가포르·태국·베트남 등 아세안 10개국이다. 아세안은 2003년 역내 통합에 나서기로 합의하고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분야를 중심으로 통합작업을 추진해왔으며, 12년 만에 공동체를 창설하게 됐다.

아세안은 1967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싱가포르·태국 등 5개국이 주도해 만든 지역 공동체다. 이후 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가 가입했다. 아세안 공동체의 총 인구는 6억3천만 명으로 세계 3위,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2조7천억 달러로 세계 7위다. 아세안 공동체의 목표는 앞으로 회원국들 간의 각종 장벽을 허무는 단일 권역과 단일 시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아세안 10개 회원국 정상은 역내 통합의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 10년간의 실행 구상을 담은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25’도 채택했다.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는 “아세안이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며 “지금은 아세안의 시대로, 아세안이 아시아의 세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세안이 공동체를 출범시키는 이유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치열해지는 국제 정치·경제 역학 구도에서 10개의 국가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개별 국가보다는 하나의 공동체가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세안 공동체는 유럽연합(EU)처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회원국들을 하나로 묶는 법적, 제도적 틀을 아직까지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다. EU는 각료 이사회와 유럽의회, 유럽중앙은행 등 통합의 구심점과 운영기구를 두고 있고, 단일 통화도 사용하고 있다. 반면 아세안 공동체는 이런 기구가 없으며, 단일 통화를 도입할 계획도 없다. 아세안 공동체는 외교장관 회의를 비롯한 각 분야 장관급 회의, 정상회의 등을 통해 현안을 논의하고 이견을 조절하고 공동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때문에 강제력과 신속한 정책 집행, 현안 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사태의 경우 회원국들 간의 이견을 조정할 기구도 없다.

베트남·인니·태국 등 글로벌 제조업 생산기지로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떠오른 아세안 진출을 놓고 라이벌 관계인 중국과 일본의 경쟁이 뜨겁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아세안 공동체는 앞으로 경제 분야에서 우선적으로 통합을 추진할 계획이다. 실제로 아세안 공동체의 중심축은 경제 통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아세안 10개 회원국은 2007년 통합 경제권으로 만들자는 원칙에 합의하고 2009년 로드맵을 작성해 지금까지 단계별로 관세 철폐 등을 추진해왔다. 현재 아세안 회원국들 중 싱가포르·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브루나이 등 6개국은 모든 관세를 대부분 철폐했다.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베트남 등 나머지 4개국도 2018년까지 관세장벽을 없앨 예정이다.

아세안은 또 경제 통합을 위해 4대 중장기 목표와 5대 원칙을 설정했다. 4대 중장기 목표는 ▷단일 시장 및 생산거점 구축 ▷경쟁력 높은 경제 블록화 ▷균형적 경제 발전 ▷세계 경제로의 통합이다. 5대 원칙은 상품, 서비스, 투자, 노동력,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다. 현재 경제 통합의 진척을 보면 92% 수준이다. 아세안 공동체의 통합작업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레 르엉 민 아세안 사무총장은 “관세 철폐 예외 품목도 거의 사라지고 있고 이제 남은 건 금융규제와 다양한 비관세 장벽뿐”이라면서 “아세안 공동체가 출범하는 12월 31일은 앞으로 아세안이 이룩하려는 경제 통합이라는 여정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아세안 공동체 출범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망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특히 아세안 공동체가 경제 통합을 우선적으로 성공시킬 경우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아세안 공동체가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 6.4% 성장하면서 GDP를 6조6천억 달러로 늘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ADB는 또 아세안 공동체가 앞으로 EU와 겨룰 만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아세안 공동체가 ‘포스트 차이나’(Post China)로서 세계 경제의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이 그동안 글로벌 제조공장으로서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하는 데 밑거름이 됐지만, 높은 임금과 까다로운 노동조건 등으로 투자가 줄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가 아세안에게 절호의 기회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아세안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세안의 가장 큰 매력은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이다. 이는 중국과 경쟁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중국이 지속적인 임금인상과 환율절상, 노동력 수급 불안 등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세안과 중국의 경쟁력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전망이다.

아세안 인구 6% 화교가 역내 자본 70% 장악


▎2013년 5월 미얀마를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세인 미얀마 대통령(왼쪽)과 함께 대통령궁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아세안의 노동력의 또 다른 강점은 상대적으로 젊다는 것이다. 아세안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2025년까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아세안은 지역적 접근성, 문화적 동질성 등으로 여타의 지역 공동체보다 결속력이 단단하다. 또 경제가 발전할 경우 중산층 인구가 늘어나면서 거대한 잠재적 시장이 될 수 있다.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캄보디아 등은 이미 세계적인 제조업 생산기지로 자리 잡거나 떠오르고 있다. 또 민주적인 정권 교체를 앞둔 미얀마도 풍부한 지하자원과 젊은 노동력 때문에 다국적 기업들이 적극 진출하고 있다. 아세안으로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액은 연평균 14.1%씩 증가하고 있다.

각국이 아세안 공동체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중국과 일본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한다. 과거 역사를 보면 일본은 1970~1980년대 아세안 회원국들과 유대를 강화하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중국은 1990년대 후반부터는 아세안 회원국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중·일 양국은 200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세안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중국은 아세안을 포섭해 ‘대중화(大中華) 경제권’을 구축하려는 야심을 보여왔다. 중국은 이를 위해 당근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당근 전략은 대규모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2014년 11월 13일 ‘아세안-중국’ 정상회의에서 이 지역의 기간산업 건설을 위해 20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또 현재 주도적으로 추진중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실크로드 기금도 상당 부분을 아세안의 인프라 건설에 투입할 방침이다. AIIB의 자본금은 500억 달러, 실크로드 기금은 400억 달러다. 중국은 또 해상 실크로드 은행 설립을 위해 최소 50억 위안(8940억원)의 자본금을 출자할 계획이다. 아세안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말 그대로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4440억 달러(2013년 기준) 규모인 아세안과의 교역 규모를 2020년까지 1조 달러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중국의 아세안 진출은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 이유는 동남아 지역 경제를 사실상 화교자본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화교 수는 130여 국에 7천만 명 정도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아세안에 거주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인도네시아 720만 명, 태국과 말레이시아 각 580만 명, 싱가포르 270만 명, 필리핀 90만 명, 베트남 70만 명 등이다. 화교는 아세안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역내자본의 70% 이상을 주무르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경우 상위 10대 재벌을 화교계가 휩쓸고 있고, 200대 기업의 70%도 화교계다. 태국도 25대 재벌 중 23개가 화교계 소유이며 금융업은 80%를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제조업의 3분의 1을 화교가 쥐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림그룹의 소도노 사림 회장, 필리핀의 호텔 재벌인 탄유 회장 등 화교계 경제거물들은 세계적인 거부대열에서도 당당히 상위 랭킹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화교들은 중국 정부의 아세안 진출 전략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또 매년 아세안 지역 청소년 1천 명을 초청, 교육까지 시키고 있으며, 아세안 회원국들의 주요 대학에 공자학원을 개설하는 등 ‘소프트 파워’ 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는 최근 아세안의 인프라 확충 사업에 100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 지원하겠다면서 2016년까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 타결을 위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RCEP는 최근 타결된 미국과 일본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응하는 조약이다. RCEP는 아세안 10개 회원국과 한국·중국·일본·호주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대형 FTA로 지금까지 10차례 협상이 진행됐다. 리 총리의 RCEP에 대한 강조는 아세안 회원국들에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 실크로드)와 관련된 각종 대규모 경제 협력을 제시하며 TPP에 맞대응하는 새로운 경제 협력체를 조속히 출범시키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지난 11월 12일 아세안과 육상 실크로드를 건설하기 위해 란창강-메콩강 협력 제1차 외교장관 회의를 개최했다. 이 회의에는 아세안 회원국이자 메콩강 유역 5개국인 미얀마·태국·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 등이 참석했다. 중국은 메콩강 유역 5개국에 30억 달러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메콩강은 중국 란창강의 하류에 있는 강으로, 중국과 아세안을 잇는 교역의 중추여서 중국이 오래전부터 이 지역의 개발에 눈독을 들여왔다. 중국-태국, 중국-라오스 간 고속철도건설사업도 적극 추진해왔다. 중국은 지난해 말 태국과 북동부 농카이와 방콕을 거쳐 남부 산업지대 라용을 잇는 길이 867㎞의 고속철도 건설에 합의했다. 중국은 최근 라오스와도 총연장 418㎞의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중국은 윈난성 쿤밍에서 라오스, 태국을 거쳐 싱가포르까지 횡단하는 총 길이 3천㎞의 고속철도망 구축을 구상하고 있다. 중국은 또 내년 아세안과의 정상회의를 갖고 전방위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선언할 계획이다.

일본, 아세안 인프라 사업에 ‘물량공세’


▎삼성전자가 후원하는 베트남 최대 보트 경기 대회인 ‘옥옴복(Ooc Om Boc) 페스티벌’에는 매년 3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려든다.
일본도 중국에 질세라 아세안 공동체에 적극 진출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최근 2016~2020년까지 5년간 아세안의 인프라 사업에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함께 160억 달러(18조5천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베 총리는 또 아시아 지역 신흥국가에 대한 엔화 차관 제공 조건을 완화하고 차관 절차를 밟는 데 걸리는 기간도 3년에서 1년 6개월로 단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2014년도 ODA(공적개발원조) 백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엔화 차관을 제공한 아세안 회원국을 보면 미얀마(20억4천만 달러), 베트남(15억5천만 달러), 인도네시아(8억7천만 달러) 등이다. 아베 총리가 대규모 인프라 개발 지원 계획을 밝힌 것은 중국의 AIIB를 의식한 행보라고 볼 수 있다.

일본은 그동안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해 이른바 ‘대동아(大東亞)경제권’을 만들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대동아란 동아시아에 동남아시아를 추가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제 2차 세계대전 때 일본이 동아시아와 동남아를 침략하면서 사용했던 용어다. 특히 일본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지역은 메콩강 유역의 5개국이다. 이 지역은 일본이 과거 점령했던 곳이다. 일본은 이 지역을 새로운 수출과 생산기지로 만들어 경제 도약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의도를 보여왔다. 실제로 일본 기업들은 최근 인건비가 급등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이 지역으로 대거 공장을 옮기고 있다.

일본의 대표 기업들인 미쓰비시·마루베니·스미토모상사 등은 미얀마의 최대 도시인 양곤 인근에 있는 티라와 공업단지와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인근 공업단지 등을 대대적으로 신설 또는 증설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도 내년까지 미얀마에 데이터센터를 개설하고 IT 연구거점으로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말 미얀마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205개로, 2011년 군부에서 민간 정부로 정권이 이양된 후 3년 만에 네 배로 급증했다. 일본 정부는 2014년 11월 미얀마 정부에 260억 엔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같은 해 베트남 하노이 공항 터미널과 고속도로 건설 등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에도 일본 기업들이 대거 진출하고 있다. 지난 4월엔 메콩강을 횡단하는 캄보디아의 최대 교량인 쓰바사 다리가 일본의 ODA 자금으로 완공돼 개통되기도 했다.

일본은 또 태국·미얀마와 공동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의 생산기지가 될 다웨이 경제특별구역(SEZ)을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 7월 5일 프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 및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함께 다웨이 특구 개발 의향서를 체결했다. 총면적 2억㎡(6060만 평)인 다웨이 특구는 태국 수도 방콕에서 서쪽으로 300㎞ 떨어진 미얀마 서남쪽 인도양 해안 지역에 조성된다. 이 특구에서 생산되는 제품은 인도 등 서남아, 중동, 아프리카 등에 손쉽게 운송될 수 있다.

미얀마와 태국 정부는 그동안 다웨이 특구 개발 계획을 추진해왔지만 대규모 자본을 유치하지 못했다. 이 점을 간파한 일본 정부는 다웨이 특구 개발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다웨이 특구 조성에 8천억 엔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웨이 특구는 앞으로 태국에 진출한 1600여 개의 일본 기업의 판로 확대와 물류비용 절감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일본 기업들 중 상당수도 다웨이 특구로 공장을 이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다웨이 특구와 태국 국경을 잇는 130㎞의 도로도 정비할 계획이다. 이 지역에 도로가 갖춰지면 동남아에서 태평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육로가 탄생한다. 현재 태국에서 인도양 방면으로 향하는 물자는 주로 해로인 믈라카 해협을 거친다. 도로가 정비되면 운송시간은 그만큼 대폭 단축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또 지난 5월 태국 북서부 치앙마이와 수도 방콕을 연결하는 총길이 670㎞ 고속철 공사를 수주했다. 일본은 이 구간에 자국의 고속철인 신칸센을 도입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는 4300억 바트(14조3천억원)인데, 일본이 고속철 기술과 건설자금을 모두 지원하기로 했다. 이 고속철은 이르면 2016년 상반기에 착공, 2019년 완공될 예정이다. 일본 스미토모중공업, 히타치제작소, 미쓰비시중공업 등 3개 기업 컨소시엄도 지난 7월 2일 총연장 40㎞인 방콕 근교의 도시철도 사업을 1150억 엔(1조473억원)에 수주했다. 일본은 태국 서부 칸차나부리에서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 접경 지역인 아란 야프라텟까지 574㎞에 이르는 철도를 복선화하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뒤통수 맞은 일본


▎인도네시아 대형쇼핑몰인 코타카사블랑카에서 열린 ‘2015 케이푸드 자카르타’ 소비자 체험행사 참가자들이 42m의 대형 김밥을 만들어 함께 나눠먹고 있다.
중·일 양국의 각축전이 최근 가장 치열하게 벌어진 곳은 인도네시아였다. 양국은 지난 9월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반둥 고속철 건설사업 수주를 놓고 맞붙었다. 일본은 애초부터 150㎞구간에 50억 달러의 비용이 드는 이 고속철 사업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그런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갑자기 무리한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이 사업을 백지화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중국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채무 보증 없이 50억 달러를 빌려주겠으니 이 사업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중국은 이 사업을 수주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일본은 인도네시아의 결정에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국이 고속철 수주 경쟁을 벌인 이유는 인도네시아가 아세안 공동체의 핵심 국가로 부상하리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들어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신흥국가들 중에서도 선두주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의 국내총생산(GDP)은 8960억 달러로 전 세계 국가 중 16위에 해당한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내수시장과 안정된 민주체제를 바탕으로 각종 개혁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경제력을 발전시켜왔다.

아세안 공동체에서 또 다른 유망 국가는 베트남이다. 베트남 경제는 최근 들어 호황을 보이고 있다. ADB는 올해 아시아 주요국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지만, 베트남의 GDP 성장률 전망치는 6.5%로 종전 전망치 6.1%보다 높게 제시했다. ADB는 내년에는 당초 전망치 6.2%를 웃도는 6.6%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13년 5.4%, 2014년 6.0%였던 베트남의 연간 GDP성장률은 갈수록 상승한다. 베트남의 FDI는 2014년 202억3천만 달러로 50배 넘게 불어났다. 경제성장률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연평균 7.5%대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의 노동자 임금이 대폭 올랐기 때문이다. 중국의 노동자 임금은 최근 10년 새 세 배나 올랐다. 2004년 시간당 임금은 4.35달러였는데 2014년에는 12.47달러에 달한다. 반면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2015년 현재 145달러로, 중국 280달러의 50% 수준이다. 베트남의 최저임금은 2012년 98달러, 2013년 114달러, 2014년 128달러, 2015년 145달러로 상승세지만 중국과는 일정한 격차가 유지되고 있다.

베트남은 TPP 타결로 앞으로 더욱 제조업 생산기지로서 각광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외국 기업들은 TPP 회원국에 수출하기 위해 베트남으로 더욱 많은 공장을 옮길 것이 분명하다. 특히 베트남 북부 박닌성(옌퐁공장)과 타이응우옌성(옌빙공장) 두 곳에 공장을 운영중인 삼성전자는 2014년 말 30억 달러(3조5천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승인을 받아내기도 했다. 삼성전자 베트남법인은 매출이나 자산규모 면에서 베트남 최대 기업 페트로베트남을 위협할 정도다. LG전자도 지난 3월 북부 항구도시 하이퐁에서 ‘하이퐁 캠퍼스(생산단지)’ 1차 준공식을 열었다. LG전자는 2028년까지 생산시설을 확충해 스마트폰, TV, 자동차 부품 등을 제조하는 종합 생산단지로 육성할 계획이다. 공장 부지는 80만㎡ 규모로 15억 달러(1조6500억원)를 투자한다.

아세안 교역량은 중국에 이은 2위

이 때문이지는 몰라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1월 5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으로 소원했던 베트남을 방문해 응 우옌 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은 향후 5년간 베트남에 사회기반시설 건설 등에 총 45억 위안(8천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중국이 베트남에 제공하는 ‘돈 보따리’는 앞으로 잘해보자는 일종의 선물인 셈이다. 물론 아베 일본 총리도 9월 15일 도쿄를 방문한 베트남 서기장과의 정상회담에서 1천억 엔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베트남에 지원된 외국의 ODA 자금 900억 달러(107조원) 가운데 30%를 제공할 정도로 최대 원조국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아세안 공동체와 협력을 본격적으로 강화할 계획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일본보다는 우리나라에 훨씬 우호적이다. 아세안 회원국들의 국민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드라마와 K팝에도 열광하고 있다. 현재 아세안에는 국내 중소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고, 우리나라엔 아세안 출신 이주노동자들도 많이 건너와 일한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아세안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다. 아세안과의 교역 규모는 지난해 1353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양측의 교역규모는 2015년까지 1500억 달러, 2025년까지 3천억 달러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세안은 우리나라의 제2위 교역시장이자 제1위 투자 대상지이고 제2위 건설 수주시장이다. 우리나라는 아세안과 지난 1991년 대화관계를 수립했고, 2004년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으며, 2010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했다. 우리나라도 중·일간의 다툼을 이용해 앞으로 중장기 전략을 통해 아세안 공동체에 적극 진출할 필요가 있다. 아세안 공동체에 대한 주도권을 어느 국가가 거머쥐느냐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201601호 (2015.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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